봄이 되었다. 어소에서는 내연이나 답가 등 화려한 행사만이 이어졌지만, 중궁께서는 인생의 비애만을 느끼며 내세의 극락왕생을 위한 불공에 정진하고 계셨고, 그러자 든든한 힘이 자연스레 주어지는 듯한 기분도 드셨으며 겐지의 연정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는 점에서도 기쁨을 느끼셨다. 거처 옆의 염송실 외에 새로 지은 미도가 서쪽 대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있었는데, 그곳에서 다시 비구니다운 엄중한 수행을 하고 계셨다. 겐지가 찾아뵈었다. 정월이라 해도 내방객은 드물었고, 수행원 몇 명만이 쓸쓸한 모습으로 맥없이 사무를 보고 있었다. 백마의 절회였기에 이 행사만큼은 이곳 궁으로도 파견되어 여관들이 구경하였다. 고관들이 수없이 드나들던 일은 이미 과거의 사실이 되어, 그들은 궁저를 그냥 지나쳐 맞은편의 현 태정대신 저택으로 몰려가는 것도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지만, 중궁께서도 쓸쓸함을 느끼셨다. 그런 곳에 천 명의 고관에 맞먹는 모습으로 겐지가 일부러 참하하러 온 것을 보셨을 때는 이유 없이 눈물을 흘리셨다. 겐지 또한 왠지 모르게 가슴에 사무치는 듯한 기분으로 주위를 둘러보며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순전한 비구니의 거처가 되어 발의 테두리도 기장도 짙은 회색이었다. 그런 것들 사이로 보이는 여관들의 엷은 회색 옷과 노란 하가사네 소매 끝자락 등도 도리어 요염하고 기품 있게 보이지 않는 것도 아니었다. 풀려가는 연못의 살얼음에도, 싹트기 시작한 버들가지에도 자연의 봄만이 보여 겐지의 마음을 여러모로 아프게 했다. '소문으로 듣던 마쓰가우라시마를 오늘 보았으니 과연 마음 있는 해녀가 살고 있었구나'라는 옛 노래를 읊조리는 겐지의 모습이 아름다웠다.
바라보는 해녀의 거처라 생각하니, 먼저 눈물부터 흐르는 마쓰가우라시마여.
라고 겐지가 말했다. 지금은 거처의 대부분을 부처님께 내어 드리고 거실은 구석 쪽으로 옮겨진 생활이었기에, 궁의 자리와 겐지 자신의 자리가 가깝게 느껴져,
지난 시절의 흔적조차 없는 우라시마에, 다가오는 파도가 유난히 반갑구나.
라며 거들고 나서는 여관에게 가르치시는 목소리도 희미하게 들려왔다. 겐지의 눈물이 방울방울 흘러내렸다. 이제는 인생을 달관한 비구니가 된 여관들에게 이를 보이는 것이 부끄러워 오래 머물지 못하고 겐지는 퇴출하였다.
"점점 더 훌륭해 보이시네요. 온갖 행복을 누리시던 시절에는 그저 천하 제일의 사람이었을 뿐, 그것만으로는 아직 인생을 다 알지 못하셨던 터라 아무리 훌륭하고 아름다우셔도 올바른 의미에서는 부족한 점이 있었답니다. 고난을 겪으시며 비로소 깊이가 생기셨군요. 하지만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에요."
등등 늙은 여관이 울면서 칭송하고 있었다. 중궁 또한 여러모로 과거의 겐지의 모습을 마음속으로 떠올리고 계셨다.
봄철 관직 임명 때도, 이 궁에 딸린 사람들은 당연히 얻어야 할 관직을 얻지 못했고, 중궁의 권리로 추천받은 이들의 품계 승진 또한 그대로 방치되어 불행을 슬퍼하는 이가 많았다. 비구니가 되심으로써 후비로서의 지위는 소멸했고, 그와 함께 식읍 또한 사라져야 한다는 법률 해석을 내세워 정부의 대우가 달라졌다. 중궁께서는 미리 예견하셨던 일이라 그에 대해 아무런 집착도 갖지 않으셨으나, 측근 관리들이 의지할 곳을 잃고 슬퍼하는 모습을 볼 때면 마음이 조금은 흔들리기도 하셨다. 그럼에도 스스로 희생을 감수하더라도 동궁의 즉위에 지장을 주지 않기를 기도해야 한다고, 중궁께서는 어떤 경우에도 생각하시며 오직 불공에 전념하셨다. 마음속 깊은 곳에 남모를 공포와 불안이 있었기에, 스스로의 신앙을 통해 그 업보가 동궁에게 미치지 않기를 바라셨던 것이다. 그렇게 스스로 마음을 다독이셨다. 겐지 또한 중궁의 심중을 알고 있었기에 지극히 당연한 일이라 생각했다. 한편 가사(家司)로서 겐지에게 속한 관리들 또한 임명 결과가 좋지 못했다. 체면이 상한 기분이라 겐지는 집 안에만 틀어박혀 있었다. 좌대진 또한 공인으로서, 또 개인으로서 행복이 사라져 버린 오늘날을 비관하여 사직서를 올렸다. 제께서는 원(院)께서 매우 신임하시며 국가의 기둥이라고 유언하셨던 것을 생각하시어, 사직서를 받아들일 수 없어 번번이 돌려보내셨으나, 대신 또한 거듭 사의를 표명하고는 그대로 출근하지 않았기에 태정대신 일족만이 번창할 뿐이었다. 국가의 중진인 대신이 칩거해 버리니 제께서도 마음이 불안하셨고 세간의 사람들도 탄식하였다. 좌대진가의 공자들도 훌륭한 젊은 관리들이라 모두 순조롭게 관위가 오르고 있었으나, 이제 그런 시대는 지나가 버렸다. 산미 중장 또한 이런 세상에 기운이 빠져 있었다. 태정대신의 넷째 딸에게는 가끔 왕래하고 있었으나, 성의 없는 사위라는 점에 반감을 사고 있었기에 본때를 보이려는 듯 이번 임명에서도 이 사람 역시 현직에 머물러 있었다. 하지만 그는 그런 것에는 안중에도 없었다. 겐지조차 불우함을 탄식하는 시대이니, 하물며 자신 같은 자는 응당 이렇게 다뤄져야 한다고 체념하고는 줄곧 겐지를 찾아와 학문도 유희도 함께 즐겼다. 청년 시절 두 사람 사이에 강했던 경쟁심을 떠올리며, 지금도 유희를 할 때면 한쪽이 하는 것을 능가하고자 다른 쪽이 애를 쓰는 일이 종종 있었다. 춘추의 독경회 이외에도 여러 종교 행사를 열거나, 시대에 뒤처진 박사나 학자들을 모아 시를 짓거나 운 맞추기 놀이를 하며 관직의 임무를 소홀히 하는 생활을 이 두 사람이 하고 있다는 점을 문제 삼으려는 사람도 있는 듯하다.
여름비가 언제 그칠지 모르게 내려 모두가 무료함을 느끼던 무렵, 산미 중장이 여러 시집을 들고 니조 저택으로 놀러 왔다. 겐지 또한 자택 도서실의 평소 쓰지 않는 책꽂이에서 희귀한 시집을 골라내어, 시인들이 눈에 띄지 않게 하면서도 여러 명을 불러 좌우로 사람을 나누고, 좋은 내기를 걸어 운 맞추기 승부를 내기로 했다. 숨겨둔 운자를 맞춰가는 과정에서 어려운 글자가 많이 나와 경험 많은 박사들조차 곤혹스러운 표정을 지을 때, 때때로 겐지가 주는 조언이 번번이 정답으로 이어지곤 했다. 대단한 박식함이었다.
"어찌하여 이토록 무엇 하나 못 하시는 게 없는 걸까. 역시 전생의 인연이 특별한 분임에 틀림없어."
등의 말을 학자들이 칭송하고 있었다. 결국 오른쪽이 지고 말았다. 이틀 정도 지나 산미 중장이 패배에 대한 대접을 했다. 너무 성대하지는 않게 운치 있는 히와리고 도시락이 나왔고, 이긴 쪽에게 줄 내기 물품도 많이 준비해 왔다. 오늘도 많은 문사가 초대되어 모두 자리에서 시를 지었다. 섬돌 앞 장미꽃이 조금 피기 시작한 초여름 정원의 경치에는 짙은 춘추의 색채 이상의 무언가가 있었다. 자연스러운 분위기가 감도는 즐거운 모임이었다. 중장의 아들로 올해부터 어소 시동으로 나가는 8, 9세 소년으로 재미있게 쇼(笙) 피리를 불기도 하는 아이를 겐지는 귀여워했다. 이 아이는 시노키미가 낳은 차남이다. 좋은 배경을 가져 세간에서 귀하게 대접받는 아이였다. 재주가 있고 얼굴도 아름다웠다. 주객이 취기가 오를 무렵 이 아이가 '다카사고'를 노래하기 시작했다. 매우 사랑스러웠다. ('다카사고 산마루에 핀 하얀 동백꽃, 그것이라도, 더 그것이라도, 오늘 아침 핀 첫 꽃을 만나보고 싶구나' 따위의 가사다) 겐지는 옷 한 벌을 벗어 주었다. 평소보다 허물없는 태도의 겐지는 더욱 아름다웠다. 입고 있던 노시와 단의 또한 얇은 옷이었기에 고운 살결이 비쳐 보였다. 늙은 박사들은 멀리서 바라보며 겐지의 아름다움에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만나보고 싶구나 사유리바의'라는 다카사고 노래가 끝날 무렵, 중장은 술잔을 겐지에게 권했다.
그 꽃을 가질 수 있다면, 오늘 아침 피어난 첫 꽃에 뒤지지 않는 그대의 향기를 보노라.
라고 건배의 말을 건넸다. 겐지는 미소를 지으며 술잔을 받았다.
철도 아닌 오늘 아침 피어난 꽃은 여름비에 벌써 시들고 말았구나, 향기도 피우지 못한 채.
완전히 쇠락해 버렸는데 말이지."
나머지는 이미 취한 척하며 겐지가 마시려 하지 않는 술을 중장은 허락하지 않겠다는 듯 계속 권했다. 그 자리에서 지은 시가는 많았으나, 이런 때의 진지하지 못한 작품을 잔뜩 늘어놓는 것은 무익한 일임을 츠라유키도 경고하고 있기에 여기에는 적지 않겠다. 노래도 시도 히카루 겐지를 찬미하는 내용이 많았다. 겐지 자신도 기분이 좋아져 '문왕의 아들이요 무왕의 아우라'라며 『사기』 주공전의 한 구절을 입에 올렸다. 그 문장의 뒤는 성왕의 숙부라는 뜻인데, 이는 겐지가 명료하게 말할 수 없을 터였다. 효부쿄 친왕도 줄곧 니조 저택을 찾아오셨는데, 음악을 좋아하시는 분이라 종종 함께 그런 유희를 즐기곤 하셨다.
그 무렵 나이시노스케가 어소에서 본가로 퇴출했다. 전부터 학질을 앓고 있었기에 궁중에서는 할 수 없는 주술 같은 치료법을 친가에서 시도해 보려 한 것이었다. 수법(修法) 등을 행해 나이시노스케의 병이 완전히 낫자 가족은 모두 기뻐했다. 바로 이때가 얻기 힘든 기회라 여긴 연인들은 서로 뜻을 모아, 무리한 방법을 써가며 겐지는 매일 밤 찾아갔다. 젊은 시절의 화려한 용모를 지닌 이의 병후, 약간 수척해진 얼굴은 매우 아름다웠다. 황태후도 같은 저택에 머무는 시절이라 위험천만한 일이었으나, 이런 일이 있을수록 그 사랑이 더욱 흥미로워진 겐지는 몰래 찾아가는 밤을 자주 거듭하게 되었다. 이 정도까지 되었으면 눈치챌 사람도 있었을 텐데, 황태후에게 알리려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물론 대신도 몰랐다.
비가 갑자기 크게 쏟아지고 벼락이 급작스레 격렬하게 치던 어느 새벽, 공자들과 황태후 측근 관리들이 소란스럽게 이리저리 뛰어다니기도 하고, 그 밖에 평소 이 시간에는 나오지 않던 사람들도 그 근처에 나와 있는 모습이 엿보였으며, 여관들도 두려워하며 조다이 근처로 모여들고 있었기에 겐지는 돌아가려 해도 돌아갈 수 없는 처지가 되어 어찌할 바를 몰랐다. 비밀을 공유하는 두어 명의 여관이 곤혹스러워했다. 벼락이 그치고 비가 조금 잦아들 무렵, 대신이 나와 처음에 황태후의 어전 쪽으로 문안을 갔던 것을, 마침 또 비가 솨아 소리를 내며 쏟아지기 시작했기에 겐지도 나이시노스케도 알아차리지 못했다.
대신은 하급 관리들이나 하는 짓으로 갑자기 방의 발을 걷어 올리고 얼굴을 내밀었다.
"어떠하냐, 아주 무서운 밤이었으니 이쪽이 걱정되어 나오지 못했구나. 중장이나 궁의 료(亮)는 왔었느냐?"
등의 말하는 꼴이, 다급한 어조로 대신다운 침착함이라곤 조금도 없었다. 겐지는 들키고 싶지 않다는 생각에 신경을 쓰면서도, 이 대신을 좌대진과 비교해 보니 우스워 견딜 수가 없었다. 차라리 방 안으로 들어와서 말을 걸었으면 좋았을 것을. 나이시노스케는 곤란해하며 기어 나왔으나, 얼굴이 붉어진 것을 보고 대신은 병이 아직 완전히 낫지 않은 것인가 싶어 열이 있는 것이라 여기고 걱정하였다.
"왜 네 얼굴색이 이런 것인가. 끈질긴 모노노케 탓이구나. 수법을 좀 더 행하게 했어야 했는데."
이렇게 말하던 중, 연한 오난도색의 남성용 띠가 나이시노스케의 옷에 감겨 있는 것을 대신은 발견했다. 이상한 일이라 생각하며 보고 있는데, 또 남자의 회중지에 낙서가 적힌 것이 기장 앞에 흩어져 있는 것도 눈에 띄었다. 도대체 무슨 무서운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인가 하며 대신은 놀랐다.
"그것은 누가 쓴 것이냐, 이상한 물건이 아니냐. 내놓거라. 누구의 글씨인지 내가 조사하겠다."
그 말을 듣고 돌아본 나이시노스케도 자신이 그것을 발견했다. 이제 둘러댈 방법은 없었다. 대답할 수 있는 일도 아니었다.
나이시노스케가 넋을 잃은 듯하니, 대신 정도의 귀인이라면 딸이 수치심을 견디지 못하리라 여겨 상스럽지 않게 배려해야 마땅하건만, 그런 사려조차 없이 성미 급하고 침착하지 못한 대신은 스스로 종이를 손으로 집어 들었을 때 기장의 틈새로 나긋나긋한 자태를 한 채 죄를 저지른 자답게 숨으려 하지도 않고 느긋하게 누워 있는 남자도 보았다. 대신에게 들키고 나서야 비로소 얼굴을 잠옷 속으로 숨겨 어물쩍 넘기려 했다. 대신은 경악했다. 무례하다고 생각했다. 분해서 견딜 수 없었으나 과연 그 자리에서 면전에 대고 분노를 터뜨릴 수는 없었다. 눈앞이 아찔해지는 기분으로 노래가 적힌 종이를 들고 침전으로 가 버렸다. 나이시노스케는 정신이 아득해지는 듯하여 죽을 만큼 걱정했다. 겐지 또한 연인이 가엾어, 불량한 행실로 인해 마침내 두려운 규탄을 받을 운명이 닥쳐왔음을 슬퍼하면서도 그 심정을 감추고 나이시노스케를 이런저런 말로 위로했다.
대신은 생각하는 것을 남김없이 밖으로 털어놓지 않으면 견디지 못하는 성격인 데다 노인의 편굴함까지 더해져, 어떤 점은 짐작해서 말하지 않는 편이 낫다는 배려도 없이 유창하게 겐지와 나이시노스케의 부적절한 관계를 황태후께 고해바쳤다. 우선 목격한 사실을 서술하였다.
"이 접은 종이의 글씨는 우대장의 글씨입니다. 이전에도 그녀는 대장의 유혹에 넘어가 정인 관계를 맺고 있었는데, 인물에 경의를 표하여 저는 불만도 말하지 않고 결혼까지 시키려 했습니다. 그때는 도무지 마음이 없는 태도를 보여 저는 안타까워 견딜 수가 없었지만, 이것도 인연이겠거니 참고, 관용로우신 폐하께서도 저에 대한 정의(情誼)로 과거의 죄는 용서해 주시리라 부탁드려 원래 목적대로 궁중에 들였습니다만, 그런 관계가 있었기에 공연히 뇨고로 삼아 주시지도 못하는 처지라 저는 줄곧 쓸쓸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또 이런 죄를 저지르지 않습니까. 저는 슬퍼서 견딜 수가 없습니다. 남자는 다 그렇다고들 하지만 대장도 괘씸한 분입니다. 신성한 사이인에게 연서를 보내고 있다는 말을 하는 자도 있었지만, 저는 믿을 수 없었습니다. 그런 짓을 하면 세상 전체가 신벌을 입을뿐더러 자기 자신도 무사하지 못하리라는 것을 알고 있을 것이라 생각했고, 학문과 지식으로 천하를 감화시키는 분이 설마 그럴 리 없다고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전해 들은 태후가 겐지를 미워하는 마음은 대신의 그것과는 비교도 되지 않았기에, 엄청난 분노가 얼굴색에 드러나기 시작했다.
"제께서 제라 해도 예부터 모두에게 경멸받고 계시지 않느냐. 은퇴한 대신도 소중히 여기던 딸을 형이자 태자이신 분께 올리려 하지 않았어. 그 딸은 아우이자 보잘것없는 겐지, 그것도 나이 어린 사람에게 짝지어 주려고 남겨둔 것이지. 그 아이 역시 동궁의 후궁으로 정해져 있던 사람이 아니더냐. 그런데도 유혹해 버렸으니, 그때 부모든 누구든 나쁜 짓이라고 말한 사람이 있었나? 모두 대장을 편들며 결혼시키고 싶어 했지. 본의 아니게 제께 올렸던 것 아니냐. 나는 동생을 가엽게 여겨 다른 뇨고들에게 뒤지지 않게, 후궁 최고의 명예를 얻게 해 주어야겠다, 그래야 박정한 사람에게 복수할 수 있겠다고 생각하며 애를 썼건만, 좋아하는 사람이 시키는 대로 하는 편이 그 애에겐 나아 보이는군. 사이인을 유혹하려 드는 것 따위는 물론 있을 법한 일이야. 무슨 일이든 이 시대를 저주하고 덤비는 사람이니 말이다. 동궁의 치세가 하루라도 빨리 오기를 바라는 사람으로서는 당연한 일이겠지."
매서운 어조로 누구든 가리지 않고 심하게 헐뜯으시는 말씀을 듣고 있자니, 대신은 오히려 욕을 먹고 있는 당사자가 가엽게 느껴졌다. 괜한 이야기를 했다고 후회했다.
"하지만 이 일은 당분간 비밀로 해 주십시오. 제께도 말씀드리지 마시고요. 어떤 일이 있어도 용서해 주실 것이라며 그 애는 제의 애정에 응석을 부리는 것일 뿐이라 생각합니다. 제가 훈계하여 그래도 그 애가 듣지 않을 때는 제가 책임을 지겠습니다."
등의 말을 하며 대신은 처음의 기세와 달리 나약한 태도를 보였으나, 이미 태후의 기분은 풀리지 않았고 히카루 겐지에 대한 증오 또한 줄어들지 않았다. 황태후인 자신도 함께 사는 저택 안에 들어와 이런 불경한 짓을 하는 것 또한 자신을 더욱 모욕하려는 속셈일 것이라 생각하니, 분하고 원통한 마음이 더할 뿐이었고, 이를 계기로 겐지를 배척할 음모를 꾸미려 하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