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며 친근하게 적은 옅은 녹색 편지를, 사카키에 유를 매달아 신성하게 만든 가지에 묶어 보낸 것이었다. 츄조의 답장은,
"똑같은 날들만 계속되는 무료함 때문에 자주 옛날 일을 떠올려 보곤 합니다만, 그것 때문에 당신님을 연상하는 일도 많습니다. 하지만 이곳에서는 아무것도 현재로 이어지지 않고 있답니다. 별세계이니까요."
등이 여러모로 적혀 있었다. 여왕의 편지에는 유의 끝자락에,
그 시절은 어떠하였던가, 유다스키 마음속에 간직하며 그리워하는 까닭에.
라고만 적혀 있었다. 사이인님의 글씨에는 세밀한 맛은 없으나 고아하고, 한자를 흘려 쓰는 법 등이 이전보다 더 능숙해지신 듯했다. 하물며 그분 자신의 아름다움은 얼마나 성장했을까 하는 상상을 하며 가슴을 두근거리고 있었다. 신벌을 두려워하지도 않은 채.
겐지는 작년 노노미야에서의 이별이 바로 이맘때였음을 떠올리고, 자신의 사랑을 방해하는 것은 신들이라고도 생각했다. 복잡한 사정이 얽혀 있을수록 정열이 타오르는 자신의 버릇을 정작 본인은 깨닫지 못하는 것이다. 마음만 먹었다면 카모의 사이인과 결혼하는 것이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었건만, 당시에는 태평하게 굴다가 지금에 와서야 후회의 눈물을 끝없이 흘리고 있는 것이다. 사이인께서도 보통의 다정한 편지가 아닌 것을 그간 얼마나 많이 받아보셨을지 알 수 없는 노릇이나, 겐지를 잘 이해해주시는 마음에서 가끔 편지 답장을 적어주시는 것이다. 엄밀히 말하자면, 신성한 직책을 맡고 계시니 조금은 근신이 부족하다고 할 수도 있는 일이지만.
천태의 경전 예순 권을 읽으며 뜻이 난해한 부분을 승려들에게 묻는 등 겐지가 절에 머무는 것을, 승려들은 자신들의 선행 덕분에 부처님의 힘으로 이분이 절로 인도된 것이라 여기며 법사들의 명예라 하여 하급 승려들까지 기뻐하였다. 고요한 절의 아침저녁으로 인생을 관조하며 돌아가는 것이 얼마나 싫었을지 모를 일이나, 무라사키노뇨오 한 사람이 버리기 힘든 굴레가 되어 오래 머물지 못하고 돌아가려는 겐지는 그전에 성대한 독경을 행하였다. 절에 있는 모든 법사는 물론, 주변의 하층민에게도 많은 보시를 하였다. 돌아가는 길에는 절 앞 광장 곳곳에 그런 사람들이 모여들어 눈물을 흘리며 배웅하였다. 량암 중이라 검은 수레를 탄 상복 차림의 겐지가 평소보다 더 뛰어나게 보일 리는 없으나, 그 아름다운 용모에 마음이 끌리지 않는 이가 없었다.
부인은 며칠 사이에 한층 더 아름다워진 듯하였다. 고아하고 차분한 가운데 겐지의 사랑을 불안해하는 기색이 보이는 것이 가련하였다. 몇몇 사람을 생각하는 여러 번민이 겉으로 드러나 이 부인의 눈에 띄는 일이 있었던 것일까, '색이 변한다'는 내용의 노래를 읊어 보낸 것은 아닐까 하여 애처롭게 여긴 겐지는 평소보다 더 깊은 사랑을 부인에게 느꼈다. 산에서 꺾어 온 단풍은 정원의 것보다 훨씬 붉고 고왔기에, 오랫동안 아무런 편지도 쓰지 않아 참을 수 없는 적적함도 느끼던 겐지는 그저 평범한 선물로 삼아 어소에 계신 중궁의 처소로 보내게 하였다. 편지는 묘부에게 쓴 것이었다.
"모처럼 어소에 들어가셨다는 소식을 듣고, 두 궁님 모두에게 문안을 드리지 못하고 있었기에 그때 찾아뵙고 싶었습니다만, 잠시 종교적인 공부를 하려고 그전부터 마음먹고 날짜까지 정해 두었던 터라 실례를 범하였습니다. 이 단풍은 저 혼자 보기에는 비단을 어두운 곳에 두는 기분이 들어 견딜 수가 없어 보내드립니다. 좋은 기회에 궁님께 보여드려 주십시오."
라고 말하였다. 실제로 드물게 아름다운 단풍이었기에 중궁도 기쁘게 보셨으나, 그 가지에는 작게 묶은 편지가 하나 달려 있었다. 여관들이 그것을 발견했을 때, 궁은 얼굴색이 변하셨다. 여전히 저 마음을 버리지 않았구나, 동정심 깊고 훌륭한 인격을 갖추었으면서도 이런 일을 돌발적으로 저지르는 모순이 저 사람에게 있구나, 여관들도 의아해할 게 틀림없다 하며 반감을 느끼시고는, 병에 꽂아 비사시의 기둥 쪽으로 치워 버리셨다.
평범한 일이나 도구의 일에 대해서는 신뢰를 보여주시면서도 정중하게 감정을 숨기고 전해 오시는 중궁을 보며, 겐지는 언제까지나 이성적인 모습만 보이시는 것에 원망을 느꼈다. 도구의 뒷바라지는 겐지가 도맡아 하고 있었기에, 이번에만 냉담하게 굴면 사람들이 의아하게 여길까 싶어 겐지는 중궁이 어소를 나오시는 날 찾아갔다. 우선 제를 알현하였다. 제께서는 마침 한가하신 터라 겐지를 상대로 옛이야기와 지금의 이야기를 나누셨다. 제의 용모는 원과 많이 닮으셨고 거기에 요염한 기운이 조금 더해진, 그리움과 부드러움이 가득한 분이셨다. 제께서도 겐지와 마찬가지로 겐지를 통해 원의 일을 떠올리셨다. 나이시노스케와의 관계가 아직 끊어지지 않았다는 것도 제의 귀에 들어와 있었고, 스스로 알아차리지 못하신 바도 아니었으나, 어쩔 수 없는 일이라 생각하셨다. 이제 막 시작된 사이도 아니고, 자신이 알기보다 먼저 겐지가 그 여인의 연인이었기 때문이라 여겨, 연애를 하기에 가장 걸맞은 두 사람이니 어쩔 수 없다고 마음속으로 용인하시고는 겐지를 꾸짖으려 하거나 하는 마음은 조금도 없으셨다. 시문에 대해 겐지에게 질문하시거나 풍류 있는 노래 이야기를 나누던 중, 사이구의 하향식 날의 일이나 아름다웠던 모습 등도 제는 화제로 올리셨다. 겐지도 마음을 터놓고 노노미야에서의 새벽 이별이 사무쳤던 일 등을 모두 말씀드렸다. 스무날 달이 겨우 비쳐 들며 밤의 정취가 무르익어 갈 무렵, 제께서는,
"음악을 듣고 싶은 밤이로구나."
하고 말씀하셨다.
"저는 오늘 밤 중궁께서 퇴출하신다기에 방문하려 합니다. 원의 유언을 받들고 있고, 달리 돌봐드릴 사람도 없는 분이시기에 친절히 모시고 있습니다. 도구와 저희와의 관계를 보아서도 모른 척할 수가 없습니다."
라며 겐지는 아뢰었다.
"원은 동궁을 자신의 자식이라 여기고 사랑하라고 말씀하셨으니, 나는 어느 형제보다 소중하게 생각하지만 눈에 띄게 대접해서도 안 될 것 같아 스스로 자제하고 있소. 동궁은 이제 글씨도 훌륭하게 쓰시더군. 모든 면에서 평범하기 짝이 없는 내 불명예를 그분이 회복해 주리라 기대하고 있소."
"그분은 여러모로 어른스럽게 행동하시지만, 아직은 뭐라 해도 어린 나이시니까요."
겐지는 도구의 학업 등에 대해 아뢴 뒤 퇴출하던 중, 황태후의 오라비인 후지다이나곤의 아들로서 득의양양한 전성기를 누리는 젊은이인 도노벤을 만났다. 그는 여동생 뇨고가 있는 레이케이덴으로 가는 길에 겐지를 보고는, 『한서』에서 태자 단이 자객을 진왕에게 보냈을 때 그 천상을 보고 불성공을 두려워했다는 구절인 "흰 무지개가 해를 꿰뚫으니 태자가 두려워했다"는 말을 겐지에게 들으라는 듯 나직이 읊조렸다. 겐지는 민망했으나 나무랄 필요도 없다고 여겨 그대로 모르는 척 지나쳐 버렸다.
"방금 전까지 어전에서 머물다가 이곳으로 올라오니 깊은 밤이 되었습니다."
라고 겐지가 중궁에게 인사하였다. 밝은 달밤이 된 어소의 정원을 중궁은 내다보시며, 원께서 제위에 계시던 시절 이런 밤이면 음악 연주를 시켜 자신을 즐겁게 해주셨던 일 등 옛 추억이 마음에 떠올라, 이곳이 같은 어소 안이라고는 생각하기 어려우셨다.
아홉 겹 구름에 안개가 가로막는가, 구름 위 달을 멀리 그리워하는구나.
이 노래를 묘부를 통해 겐지에게 전하게 하셨다. 궁의 옷자락이 스치는 소리도 희미하게나마 들려오자 겐지는 원망스러움도 잊고 우선 눈물부터 흘렸다.
"달빛은 그 시절 가을과 다름없건만, 가로막은 안개가 이토록 야속하구나."
안개가 꽃을 가리는 작용에도 사람의 마음이 나타난다고 옛 노래에도 있었던 듯하옵니다.
등의 말을 겐지는 했다. 중궁은 슬픈 이별의 순간에 동궁에게 장래의 일을 여러모로 가르쳐 주려 하셨으나, 깊이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아 애처롭게 여기셨다. 평소에는 일찍 잠자리에 드시는데, 중궁께서 떠나실 때까지 깨어 있으려 하시는 듯했다. 자신을 남겨두고 어머니가 떠나시는 것이 서운하신 듯하나, 차마 억지로 붙잡으려 하지 않는 모습이 어미 된 마음으로는 더없이 애달팠다.
겐지는 고시노벤의 말을 떠올리면 남 모를 옛 비밀도 두려워져, 상시(尚侍)에게도 오랫동안 편지를 쓰지 않고 있었다. 시우(時雨)가 내리기 시작할 무렵, 무슨 생각을 했는지 상시 쪽에서,
"찬바람 불어올 때마다 기다리는 사이에, 기약 없는 시간이 어느덧 흐르고 말았네."
이런 노래를 보내왔다. 마침 만물이 마음에 사무치는 때이기도 했고, 얼마나 남의 눈을 피해 이 편지를 썼을지 상상하니 연인의 애정이 기쁘게 느껴졌다. 답장을 하기 위해 사자를 기다리게 하고, 당지가 든 장의 문을 열어 종이를 고르고 붓을 살피며 겐지가 써 내려가는 답장은 예사로운 것이 아님을 여관들의 눈에도 분명히 보였다. 상대는 과연 누구일까 하며 팔꿈치나 눈짓으로 서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아무리 괴로운 마음을 아뢰어도 답장이 없으시니, 보람 없는 기다림에 제 마음은 완전히 기운을 잃고 말았습니다.
"만나지 못해 꾹꾹 참으며 흘린 눈물도, 그저 흔한 가을비라 여기시나요."
마음이 통하는 사이였다면, 오가기도 하는 사이였다면, 하늘도 쓸쓸한 빛깔로만 보이지는 않겠지요.
등의 정열적인 글귀들이 늘어놓아져 있었다. 이렇게 여자 쪽에서 겐지를 유혹하려는 편지는 다른 곳에서도 오곤 하지만, 정이 담긴 답장을 쓰는 데 그칠 뿐 겐지의 마음 깊이 와닿지는 않는 듯하였다.
중궁은 원의 일주기를 지낸 것에 이어 법화경 팔강을 열 예정으로 여러 가지 준비를 하고 계셨다. 십일월 초순의 기일에 눈이 몹시 내렸다. 겐지로부터 중궁에게 노래가 전달되었다.
"이별했던 오늘이 돌아왔건만, 뵙던 분을 다시 만날 기약은 언제라 할 것인가."
중궁에게도 슬픈 날이었기에 즉시 답장이 왔다.
"살아가는 나날은 괴롭기만 하나, 돌고 돌아 오늘만큼은 그 시절 그대와 만나는 기분이 들어."
교묘하게 쓰려 하지 않았는데도 아취가 풍기는 고상한 글씨로 보이는 것도 겐지의 생각 탓일 것이다. 특징이 뚜렷한 화려한 글씨는 아니지만 결코 평범하지는 않다. 오늘 하루만큼은 연정도 잊고 종일토록 부친인 원을 위해 눈 속에서 불공을 드리며 겐지는 하루를 보냈다.
십이월 십여 일에 중궁의 팔강이 있었다. 매우 숭엄한 불사였다. 오일 동안 매일 불전에 새로 올리는 경전은 보옥으로 만든 축에 얇은 비단 표지를 입힌 것뿐이었고, 겉포장의 장식 등도 매우 정교하였다. 평소 일상용품에도 아름다운 취향을 잃지 않는 분이시니, 하물며 부처님을 위해 준비하신 물건들이 사람들의 눈을 놀라게 할 정도였음은 당연한 일이다. 불상 장식과 화대 덮개 등의 화려함에 극락세계도 쉽게 상상할 수 있었다. 첫날은 중궁의 부제(父帝)의 명복을 빌기 위함이었고, 이튿날은 모후를 위해, 삼일째는 원(院)의 명복을 빌기 위함이었는데, 이날은 법화경 제오권의 강좌가 있는 날이었기에 고관들도 현재 조정의 실권자들을 의식하지 않고 많이 참석하였다. 오늘의 강사로는 특히 존귀한 승려가 선택되어 「법화경을 어찌 얻었는가, 땔나무를 하고 나물을 캐고 물을 길어 공양하며 얻었노라」는 노래가 낭송될 무렵부터는 감동을 자아내는 일이 많았다. 불전 앞에 친왕들도 저마다의 공양물을 들고 나타났으나, 겐지의 모습이 가장 우아해 보였다. 필자는 늘 같은 말을 반복하는 듯하지만, 볼 때마다 아름다움이 새롭게 느껴지는 사람이니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마지막 날은 중궁 스스로가 부처님께 결합을 맹세하기 위한 공양이었는데, 중궁의 출가가 이 의식 자리에서 불전 앞에 보고되자 누구 할 것 없이 뜻밖의 감정에 휩싸였다. 효부쿄 친왕의 마음도, 겐지 대장(大將)의 마음도 다급해졌다. 놀람의 정도를 그 어떤 말로 다 표현할 수 있으리오. 중궁은 의식 도중에 자리를 떠나 발 뒤편으로 들어가셨다. 중궁은 굳은 결심을 오라버니인 친왕에게 알리고, 에이잔의 좌주를 불러 수계를 청하셨다. 백부인 요카와의 승도가 장중으로 들어가 머리카락을 자를 때 사람들의 흐느끼는 소리가 중궁을 에워쌌다. 평범한 노인조차 마침내 출가하는 것을 보는 것만으로도 슬픈 법이다. 하물며 아무런 예고도 없이 갑작스럽게 출가를 감행하셨으니, 효부쿄 친왕도 매우 슬퍼하였다. 참석한 이들도 동정을 금할 수 없는 중궁의 처지와 이 쓸쓸한 결말의 현장을 보고 우는 자가 많았다. 원의 황자들은 아버님께서 얼마나 총애하셨던 후비였는지를 현 상황의 안타까움에 비추어 생각하며 모두 암담한 심정이었다. 사람들은 위문의 인사를 드렸으나 겐지는 마지막까지 남아 놀라움과 슬픔에 말도 마음도 잃은 듯했으나, 남의 눈이 의식되어 애써 마음을 추스르며 거처로 향하였다. 사람들이 갈팡질팡하던 모습도, 흐느끼던 소리도 한동안 멎고 여관들은 눈물을 닦으며 여기저기 모여 있었다. 밝은 달이 하늘에 떠서 눈빛과 어우러진 정원을 바라보아도 원께서 살아 계시던 시절의 일이 떠올라 참기 힘든 마음을 겐지는 억누르며,
"무슨 계기로 이토록 갑작스럽게 출가를 하셨습니까?"
라고 인사를 전하게 하였다.
"이는 지금 바로 생각한 일이 아니옵니다만, 작년에 슬픈 일이 있었을 때 바로 출가했다면 세상을 소란스럽게 할까 염려되었고, 저 자신 또한 마음을 다잡지 못할까 생각하였습니다."
늘 그러하듯 묘부가 그 말씀을 전하였다. 겐지는 발 안의 모든 풍경을 상상하며 슬퍼하였다. 수많은 여인의 옷자락 스치는 소리 등에서 몸부림치며 슬픔을 억누르고 있음이 느껴졌다. 바람이 거세게 불어 발 안의 차분한 쿠로보코 향의 연기도, 불전 앞의 명향 냄새도 희미하게 새어 나왔다. 겐지의 옷에 밴 향기까지 섞여 극락을 연상시키는 밤이었다. 동궁의 사자도 왔다. 이별하기 전 동궁이 했던 말 등이 중궁의 마음속에 새롭게 되살아나, 냉정을 유지하려 하시던 마음도 흔들려 답장을 온전히 전하지 못하시자 겐지가 말씀을 보태었다. 누구 할 것 없이 상식을 잃을 정도로 슬픔에 마음이 흐트러진 때인지라, 자칫 비밀이 탄로 날 위험이 있는 말은 할 수 없다고 겐지는 생각하였다.
"달이 사는 하늘 위를 그리워하여 사모하나, 이 세상의 어둠 속에서 여전히 방황하게 되나니."
저에게는 그렇게 보입니다만, 출가하시기로 마음먹으신 심정에는 경복을 금할 수 없습니다.
라고만 말하고, 거실에 여관들도 많은 듯하여 겐지는 버림받은 남자의 비통한 심정을 간단한 말로 전할 수도 없었다.
"모든 근심에 세상이 싫어졌다 해도, 언제쯤 이 세상을 완전히 등질 수 있을까."
훌륭한 신앙을 갖게 되는 날은 언제나 오려는지."
궁의 인사는 동궁에게 드리는 답장을 겸한 마음인 듯했다. 슬픔을 견디지 못하고 겐지는 물러나왔다.
니조의 저택으로 돌아와서도 서쪽 대(對)로는 가지 않고 자신의 거처 쪽에서 홀로 누웠으나 잠이 올 리 없었다. 인생이 갈수록 슬프게 느껴져 자신도 승려가 되고 싶다는 마음이 일었으나, 그렇게 하면 동궁이 가여워질 것 같아 마음을 돌이켰다. 적어도 모친만은 최고의 지위에 모시려 했던 원의 뜻이었으나, 그 지위마저도 호의를 갖지 않은 자들의 고통스러운 압박 때문에 버리게 된 것이었다. 비구니가 되시면 후비로서의 대우를 받으실 수도 없을 것이며, 게다가 나 자신까지 동궁의 힘이 되어 드리지 못해서는 안 된다고 겐지는 생각하였다. 밤새 이 일을 생각한 끝에 겐지는 중궁을 위해 비구니용 가구와 의복을 만들어 올리는 선행을 해야겠다고 마음먹고, 연내에 모든 물건을 갖추고자 서둘렀다. 오묘부(王命婦) 또한 따라나서 비구니가 되었다. 이 여인에게도 겐지는 비구니용 물품을 보냈다. 이런 경우 훌륭한 시가(詩歌)가 지어질 만도 한데, 궁의 여관들이 읊은 노래 등이 당시의 상세한 기록과 함께 전해지지 않는 점을 필자는 안타깝게 여긴다.
겐지가 산조의 궁저를 방문하는 일도 한결 편해졌고, 중궁께서도 직접 이야기를 건네시는 일도 있게 되었다. 어린 시절부터 품어온 겐지의 연정은 출가로 인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었으나, 이 이상 더 가까이 다가가는 것은 겐지로서 지금 생각할 일이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