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 저는요?"
"중요한 사람이지. 당신이 잠깐만 기다렸더라면 그 얘기가 나올 참이었어. 당신 역시 실망했고 꼴이 말이 아니야."
"피해자라고요!"
"소프로니아, 이제 냉정해졌으니 알겠지. 당신이 피해를 보면 나도 똑같이 피해를 본다는 걸 말이야. 그러니까 그런 단어는 별로 의미가 없어. 돌이켜보면 내가 무슨 바보짓을 해서 당신을 그렇게까지 철석같이 믿었는지 모르겠군."
"그리고 제가 돌이켜보면――" 신부가 말을 가로채며 소리쳤다.
"당신이 돌이켜보면, 어떻게 그렇게 바보였는지 의문이 들겠지. 아, 이 단어를 써도 괜찮겠어?"
"당연하죠, 그럴만한 이유가 충분하니까요."
"나를 그렇게까지 철석같이 믿은 바보짓 말이야. 하지만 그 어리석은 짓은 양쪽 다 저지른 거잖아. 난 당신을 떨쳐낼 수 없고, 당신은 나를 떨쳐낼 수 없어. 이제 어떻게 될까?"
"수치와 비참함뿐이겠죠." 신부가 쓰라린 목소리로 대답했다.
"글쎄, 그렇지 않아. 서로의 처지를 이해하는 게 우선이지. 내 생각엔 그게 우리를 버티게 해줄 것 같아. 자, 내 이야기를 세 가지로 요약해 볼게. (팔 좀 줘봐, 소프로니아.) 더 간결하고 명확하게 말이야. 첫째, 우리가 당했다는 사실을 남들이 알게 되어 굴욕을 느끼는 건 사양해. 그러니 이 사실은 우리끼리만 비밀로 하기로 하지. 동의해?"
"가능하다면, 동의해요."
"가능하냐고! 우리끼리는 서로 잘 속여왔잖아. 힘을 합치면 세상도 충분히 속일 수 있지 않을까? 동의한 거로 치지. 둘째, 우린 비니어링 부부에게 원한이 있고, 우리가 당했던 것처럼 다른 사람들도 똑같이 당했으면 하는 원한도 있지. 동의해?"
"네, 동의해요."
"이제 순조롭게 셋째로 넘어가자고. 소프로니아, 당신은 나를 모험가라고 불렀지. 맞아, 난 모험가야. 거창하게 꾸며대지 않고 솔직히 말해서 그래. 당신도 그렇고, 여보. 많은 사람이 그렇지. 우리는 비밀을 지키고 우리 계획을 추진하기 위해 서로 협력하기로 하자."
"무슨 계획인데요?"
"돈이 되는 거라면 뭐든지. 내가 말하는 우리 계획이란 건, 우리의 공동 이익을 말하는 거야. 동의하지?"
그녀가 잠시 망설이다가 대답했다. "그런 것 같네요. 동의해요."
"바로 통과됐군, 보이지! 자, 소프로니아, 딱 반다스 마디만 더 하지. 우린 서로를 완벽하게 알아. 당신이 나에 대해 알고 있는 과거의 지식으로 나를 비꼬려 들지 마. 그건 나도 당신에 대해 똑같이 알고 있는 지식이니까. 나를 비꼬는 건 곧 당신 자신을 비꼬는 셈이고, 난 당신이 그러는 꼴을 보고 싶지 않아. 우리 사이에 이런 좋은 합의가 이루어졌으니, 그 편이 훨씬 낫지. 마지막으로 정리하자면――오늘 당신은 성질을 부렸어, 소프로니아. 다시는 그러지 않도록 해. 나도 성질머리가 아주 더러운 편이거든."
이렇게 희망찬 결혼 계약서에 서명하고, 날인하고, 교부까지 마친 행복한 부부는 집으로 향했다. 알프레드 램플 씨의 하얗고 창백한 얼굴에 그 끔찍한 손자국이 남았을 때, 그것이 그가 사랑하는 아내 램플 부인에게 남아 있던 자존감의 실체나 가식을 단번에 벗겨내어 그녀를 굴복시키겠다는 의도를 품고 있었음을 의미하는 것이었다면, 그 목적은 곧 달성된 듯했다. 이제 그 성숙한 숙녀는 지는 해를 받으며 남편의 에스코트를 받아 자신들의 보금자리로 향하는 동안, 고개를 숙인 얼굴에 분가루를 바를 필요조차 거의 없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