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2: 꽃 핀 소녀들의 그늘에서 · 게다가 질베르트에게 말해봤자 소용없었을 것이다. 우리는 말을 할 때면 언제나 상대의 귀와 정신이 우리의 말을 듣고 있다고 착각하곤 한다. 나의 말들은 질베르트에게 닿기 전에 폭포의 움직이는 휘장을 통과해야 했던 것처럼 왜곡되어, 알아볼 수 없고 우스꽝스러운 소리만을 내며 아무런 의미도 갖지 못한 채 질베르트에게 전달되었을 것이다. 말에 담긴 진실은 곧장 길을 찾아가지 않으며, 거부할 수 없는 명백함이라는 재능도 타고나지 않았다. 상대의 내면에서도 그와 같은 진실이 형성될 만큼 충분한 시간이 흘러야만 한다. 그때가 되면 모든 논리와 증거에도 불구하고 반대파의 신봉자를 배신자로 여기던 정적은, 정작 그 진실을 퍼뜨리려 애썼으나 이제는 그에 미련이 없어진 이가 품었던 바로 그 혐오스러운 신념을 함께 공유하게 된다. 걸작을 소리 내어 읽던 예찬자들에게는 그 우수함의 증거를 스스로 보여주는 듯했으나 듣는 이들에게는 광기 어린 혹은 평범한 이미지로만 비쳤던 그 걸작도, 작가가 알 수 없는 너무 늦은 때가 되어서야 비로소 그들에 의해 걸작으로 선포될 것이다. 사랑에 있어서도 이와 마찬가지로, 어떤 짓을 하든 간에 절망에 빠진 이가 외부에서 그 장벽을 허물 수는 없다. 오히려 그가 더는 그것에 신경 쓰지 않게 되었을 때, 사랑하지 않던 이의 내면에서 다른 방향으로부터 불어온 노력의 결과로, 예전에 아무리 공격해도 성공하지 못했던 그 장벽들은 무용지물이 되어 저절로 무너질 것이다. 내가 질베르트에게 미래의 나의 무관심과 그것을 예방할 방법을 알리러 갔더라면, 그녀는 그런 행동을 통해 그녀를 향한 나의 사랑과 그녀에 대한 나의 갈망이 자신이 생각했던 것보다 더 컸다고 추측했을 것이고, 나를 보는 그녀의 지루함은 더욱 커졌을 것이다. 사실 내 안에서 수시로 뒤바뀌는 상반된 마음의 상태를 통해 그 사랑의 끝을 그녀보다 더 잘 예견할 수 있게 해 준 것도 바로 그 사랑이었음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충분한 시간이 흐른 뒤라면 편지로나 직접 만나서라도 질베르트에게 그런 경고를 전했을지도 모른다. 그것이 그녀를 내게 덜 필수적인 존재로 만들기는 했겠지만, 동시에 그녀가 내게 필연적인 존재가 아님을 증명할 수도 있었을 테니까. 불행히도 나에 대해 잘 알거나 잘 알지 못하는 몇몇 사람들이 내 부탁을 받고 하는 행동이라고 믿게끔 만드는 방식으로 그녀에게 나에 대해 이야기했다. 코타르 씨, 심지어는 우리 어머니, 그리고 심지어는 노르푸아 씨까지도 그랬다는 사실을 알게 될 때마다…… 노르푸아 씨까지도 그랬다는 사실을 알게 될 때마다, 그들이 서투른 말로 내가 막 이루어냈던 모든 희생을 무용지물로 만들고, 내가 마치 그 태도를 버린 것처럼 잘못된 인상을 주어 나의 신중함이 낳은 모든 결과를 망쳐놓았을 때, 나는 이중으로 괴로웠다. 우선, 성가신 사람들이 나도 모르는 사이에 방해하여 결국 소멸시켜 버린 내 고통스럽고도 유익했던 절제 생활을, 이제는 그날부터 다시 시작하는 것으로 기록할 수밖에 없게 된 점이다. 하지만 그뿐만이 아니다. 질베르트를 만나더라도, 그녀가 이제는 나를 의연하게 체념한 사람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그녀가 거절했던 만남을 위해 뒤에서 수작을 부리는 사람으로 여길 터이니 기쁨도 덜했을 것이다. 나는 남을 해칠 의도도, 도울 의도도 없이 그저 심심풀이로, 혹은 우리가 그들 앞에서 어쩌지 못하고 무심코 털어놓아 그들이 우리처럼 눈치 없이 굴 때, 딱 적절한 순간에 우리에게 그토록 큰 해악을 끼치는 사람들의 부질없는 수다를 저주했다. 우리 사랑을 파멸로 이끄는 불길한 작업에서, 그들은 한 사람은 지나친 친절함 때문에, 또 한 사람은 악의 때문에 일이 해결되려는 찰나에 모든 것을 망쳐버리는 습관을 가진 두 사람만큼 큰 역할을 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우리는 코타르 같은 불청객들에게 느끼는 것만큼 그 두 사람에게 화를 내지는 않는다. 후자는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이기 때문이고, 전자는 바로 우리 자신이기 때문이다. | TRANSREAD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