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은 점점 밝아온다. 수행원들이 주의를 주려는 듯 헛기침을 한다. 우콘이 그 소리를 듣고 볼일을 보러 오신 곳 근처로 다가갔다. 친왕께서는 떠나가고 싶은 마음이 없어 어디까지나 마음이 끌리는 것을 느끼셨으나, 그렇다고 이대로 머물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교토에서 누군가 자신을 찾아 헤맨다 해도 오늘 하루만큼은 여기에 숨어 있으리라, 세간의 눈을 피하는 것도 살기 위함이니 지금 헤어져 가면 죽음이나 다름없다고 결심하신 친왕은 우콘을 가까이 불러,
"매정한 사람이라 생각하겠지만, 오늘만큼은 돌아가고 싶지 않소. 종자들에게는 이곳 가까운 어디선가 남의 눈을 피해 시간을 보내도록 하시오. 그리고 도키카타에게는 교토로 가서 산사의 암자에 몰래 참롱(參籠)하고 있다고 그럴듯하게 둘러대라고 전해 주시오."
하고 말씀하셨다. 우콘은 어이없는 상황에 기가 막혔다. 아무 생각 없이 가오루 대장인 줄 알고 문을 열어 들였던 어젯밤의 실수를 생각하니 정신이 아득해졌으나, 억지로라도 냉정을 찾으려 애썼다. 이미 엎질러진 물이라 소란을 피워봐야 소용없는 일이었고, 상대의 신분 또한 함부로 대할 수 없었다. 니조의 인에서의 짧은 시간에도 깊은 집착을 보이셨던 것도 이리될 수밖에 없었던 두 사람의 숙명이었으리라, 인간의 실수라고만 치부할 수는 없는 일이라 스스로를 위로하며,
"오늘 집안에서 마중 수레가 오기로 되어 있는데, 아가씨께서는 어찌하실 작정이신지요. 이처럼 나타난 운명에 대해 저희가 무슨 말을 할 수 있겠습니까마는, 지금 상황은 좋지 않습니다. 오늘은 돌아가 주시고, 마음이 있으시다면 다른 좋은 날을 기다려 주십시오."
하고 아뢰었다. 세상 물정에 익숙한 말투라고 여기시며,
"나는 긴 근심에 머리가 흐려져 남들이 무슨 비난을 해도 상관없다는 심정이오. 무슨 일이 있어도 떨어져 돌아갈 수는 없소. 자존심이 조금이라도 남아 있다면 나 같은 신분의 사람이 이런 짓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오? 어디론가 데려갈 마중 수레가 오면 갑자기 근신일이 되었다고 하면 그만이 아니오? 비밀은 누구를 위해서라도 지켜야 한다는 점을 알아주시오. 그 외의 일은 나로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이오."
라고 말씀하셨다. 이 여인에게서 느끼는 애착의 강함을 스스로 깨닫게 된 친왕께서는 비난도 정의도 모두 잊으셨다.
우콘이 돌아가기를 재촉하는 이들에게 다가가 친왕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고 전하며,
"그런 일은 좋지 못하다고 당신들이 다시 한번 말씀드려 보세요. 이렇게 무리한 일을 처음 말씀하셨을 때 어찌하여 말리지 않으셨단 말인가요? 어리석게도 왜 말씀하시는 대로 안내해 드렸나요? 도중에서나 여기서나 결례를 범하는 사람이 나타났다면 어찌 되었겠습니까?"
하고 타일렀다. 내기는 예상했던 대로 사태가 복잡해졌음을 생각하며 서 있었다.
"도키카타라고 하시는 분은 누구신가요?"
"접니다."
대내기 도키카타는 웃으며 말했다.
"호되게 꾸중하시니 두려워서 제가 아니라고 하고 도망칠까 싶었습니다. 농담입니다만, 진지하게 말씀드리면 그토록 애타게 그리워하시는 안쓰러운 친왕님을 뵙고 나니 누구라도 자기 일 따위는 어떻게 되든 상관없다는 마음이 드는 법입니다. 친왕님 분부는 잘 알아들었습니다. 당직 서던 이들도 모두 일어났으니 말입니다."
라고 말하고는 곧장 떠나갔다. 우콘은 친왕이 머물러 계시는 것을 어떻게 꾸며대야 할지 몰라 고통스러워했다. 일어나서 나온 여관들에게,
"대감께서는 이유가 있으셔서 오늘은 절대로 그 모습을 누구에게도 보이고 싶지 않아 하신답니다. 도중에 재난을 당하신 모양이에요. 입으실 옷가지 등을 오늘 밤이 지나고 나서 몰래 가져다드리도록 수행원에게 명령하라는 심부름을 방금 제가 했습니다."
라고 말하였다. 여관 중 한 명이,
"어머, 무서워라. 고바타 산이라는 곳이 그런 곳이라더군요. 평소처럼 길을 앞서가는 사람도 두지 않고 몰래 나들이를 하셔서 그런가 봐요. 큰일이었군요. 참 안됐기도 하지."
라며 말하는 것을,
"쉿, 조용히 해요. 아래쪽 하인들이 듣기라도 하면 또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니까요."
라며 다시 타일렀으나 우콘은 거짓말을 하는 것이 두려웠다. 공교롭게도 이럴 때 대장의 심부름꾼이라도 온다면 집 안 사람들에게 뭐라 해야 할까 우콘은 걱정하며, 하세의 관음보살님께 오늘 하루 무사히 지나가게 해달라고 간절히 기도했다. 어머니 부인께서 이시야마 절로 참배를 시키려고 마중을 보내기로 한 날이었기 때문이다. 우콘을 비롯해 수행하려는 이들은 전날부터 정진결제(精進潔齋)를 하고 있었기에,
"그럼 오늘은 가시지 못하게 된 거군요. 아쉬워라."
라고 말하기도 했다.
여덟 시쯤 되어 격자문을 올리고 우콘이 혼자 히메기미의 거처를 시중들었다. 방의 발을 모두 내리고 '물기(物忌)'라고 적은 종이를 붙이기도 했다. 어머니 부인께서 직접 마중을 나오면 히메기미가 악몽을 꾸어 근신하고 있다고 둘러댈 셈이었다.
침실에 두 사람분의 세면 대야가 운반되는 것은 평범한 일이나, 친왕께서는 그런 물건에도 질투를 느끼셨다. 가오루가 와서 아침에 일어났을 때 이 세면 대야로 세수하겠구나 싶어지자 문득 불쾌해지셔서,
"그대가 씻고 난 물로 나는 씻겠소. 이건 쓰고 싶지 않구려."
하고 말씀하셨다. 지금까지 감정을 억누르고 냉정한 척하는 가오루에게 익숙해져 있던 히메기미는, 잠시라도 함께 있지 못하면 죽을 것 같다며 격정을 숨기지 않는 친왕을 보며, 열애란 바로 이런 것을 말하는가 싶었다. 하지만 기괴한 운명을 짊어진 자신인지라, 이 잘못이 밖으로 알려졌을 때 어떤 대접을 받게 될지, 무엇보다 친왕의 부인이 불쾌해할 것을 생각하며 슬퍼하고 있을 때, 연인이 누구의 딸인지 모르는 친왕께서,
"그대가 누구의 자식인지 모르는 것은 거듭 유감이오. 자, 있는 그대로 말해 보시오. 좋지 못한 가문이라 해도 그런 일로 나의 사랑이 흔들릴 리 없지 않소. 오히려 더욱 사랑하게 될 것이오."
하고 말씀하시며 억지로 캐물으려 하시는 데 대해 절대로 입을 열지 않는 히메기미였으나, 다른 일에는 고운 말씨로 애교 있게 대답하며 사랑을 받아들이는 듯한 모습이 친왕께는 더없이 가련하게 느껴졌다.
아홉 시쯤 이시야마 행 마중 무리가 산장에 도착했다. 수레 두 대를 가져왔는데, 예의 그 동국의 거친 무사들이 일곱, 여덟 명의 많은 하인을 거느리고 있었다. 품격 없는 태도로 왁자지껄 떠들며 문을 들어서는 모습에 여관들은 비웃으며 보이지 않는 곳으로 들어가라고 말하기도 했다. 우콘은 어찌해야 좋을지 몰랐다. 친왕께서 와 계신다고 해도 그토록 고위 관직자가 교토를 떠나 있다는 사실은 누구의 귀에든 들어갔을 테니 말이다. 다른 여관들과 의논하지도 않고 히타치 부인에게 편지를 썼다.
어젯밤부터 부정 타는 일이 생겨 참배를 갈 수 없게 되어 안타까워하십니다. 게다가 지난밤 흉몽을 꾸셨다 하여 적어도 오늘 하루는 근신하시라고 권했기에 틀어박혀 계십니다. 거듭 참배하지 못하게 된 것을 저희도 몹시 아쉽게 생각합니다. 무슨 암시인지 이번 일은 행하지 않는 편이 나은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 일이 끝난 뒤 우콘은 히타치 집안 사람들에게 식사를 대접했다. 벤의 니(尼)에게도 갑작스럽게 물기가 생겨 나가지 못하게 되었다고 전했다.
평소라면 따분하고 지루하여 안개 낀 산등성이 하늘만 바라보며 시간이 더디게 가는 것을 안타까워했을 히메기미였으나, 시간이 흘러 해가 저무는 것을 진심으로 아쉬워하는 친왕의 마음이 전해진 탓인지 덧없이 해가 저물어 버린 느낌이었다. 오직 두 사람만이 함께하며 친왕은 봄날 하루 종일 보아도 질리지 않는 연인을 바라보며 지내셨다. 흠잡을 데 없는 애교 가득한 미모를 지닌 여인이었다. 그렇다 해도 니조의 인의 여왕보다는 못하였다. 하물며 화려한 꽃이 만발한 듯한 로쿠조 부인과 비교할 만한 미모는 아니었으나, 비할 데 없는 열정으로 사랑하시는 마음 탓에 과거에도 현재에도 본 적 없는 미인이라고 친왕께서는 여기셨다. 히메기미 또한 청초한 풍채의 대장을 남편으로 삼아 세상에 이보다 더한 미남은 없으리라 믿고 있었으나, 구석구석 모든 곳이 아름다우신 친왕을 대하며 그분이야말로 가오루보다 더한 미남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친왕께서 벼루를 끌어당겨 종이에 이런저런 낙서를 하시거나 능숙한 그림을 그려 보여주시니, 젊은 여인의 마음은 그쪽으로 한껏 기울어질 것만 같았다.
"만나러 오고 싶어도 내가 오지 못하는 동안에는 이것을 보고 있으려무나."
하고 말씀하시며 아름다운 남녀가 함께 있는 그림을 그려 주셨다.
"언제나 이렇게 있고 싶구나."
라고 말씀하시며 동시에 눈물을 흘리셨다.
"긴 세월을 기약하였건만 더욱 슬픈 것은, 내일 일조차 알 수 없는 이 목숨이로다."
이렇게까지 당신이 그리워 전도가 불안해서 견딜 수가 없어요. 뜻대로 행동할 수도 없어서, 어떻게 찾아올까 고심을 거듭하는 사이에 죽어버릴 것만 같은 기분이 듭니다. 그토록 냉담했던 당신을 그대로 두지 않고, 어떻게든 찾아내어 재회를 이룰 수 있었을까, 오히려 괴로워질 뿐이었는데.
여인은 친왕께서 먹을 찍어 건네주신 붓으로,
"마음을 한탄하지 않았으련만, 목숨만이 정해지지 않은 세상이라 생각했다면."
라고 적었다. 자신의 사랑이 변할까 두려워하는 마음이 있는 듯하여, 친왕께서는 이를 보시고는 더욱 가련하게 여기셨다.
"어떤 사람의 변덕에 데기라도 한 것이오?"
하며 미소 지어 말씀하시고는, 가오루가 언제부터 이곳으로 데리고 왔는지 그 시기를 캐물으려 하시는 것을 여인은 난처해하며,
"제가 말씀드릴 수 없는 것을 어찌 그리 집요하게 물으시나요."
라며 원망하는 모습도 앳되게 보였다. 언젠가는 알게 되겠지 생각하면서도, 직접 지금 이 여인에게 말하게 하고 싶은 마음이 들고 계셨다.
밤이 되어 교토로 일단 돌려보냈던 도키카타가 와서 우콘을 만났다.
"중궁전에서도 심부름꾼이 와 있었습니다. 좌대진께서도 언짢아하시며, 행선지도 알리지 않고 몰래 다녀오시는 것은 경솔한 처사이고, 혹여 무례한 자와 마주치기라도 하여 임금님 귀에 들어가면 자신의 잘못이 될 터이니 조심하시라고 성화셨습니다. 히가시야마에 훌륭한 상인이 계시다는 이야기를 듣고 뵈러 가셨다고 제가 말씀해 두었습니다."
이렇게 친왕께 전달할 내용을 말한 뒤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