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고 말씀하시며 뇨보에게 십삼현을 내오게 하여 부인에게 연주하게 하시려 했으나,
"예전에는 선생님이 계셨지만, 그때도 저는 제대로 배울 수가 없었는걸요."
부끄러운 듯 말하며 나카노키미는 악기에 손조차 대려 하지 않았다.
"이 정도 일에도 아직 당신은 거리감을 두니 야속하지 않습니까. 요즘 오가는 곳의 사람은 아직 마음이 풀릴 정도의 사이도 아닌데 미숙한 거문고라도 들려달라고 하면 주저 없이 탄답니다. 여인은 부드럽고 솔직한 것이 좋다고 그 중납언도 말하더군요. 그이에게는 이토록 낯을 가리지는 않겠지요. 워낙 각별한 사이니까요."
등등 가오루의 이름까지 거론하며 원망하시자, 부인은 한숨을 쉬며 거문고를 조금 탔다. 근래에 쓰지 않은 거문고는 줄이 풀어져 반섭조로 가락을 맞추셨다. 부인의 거문고 타는 손끝 소리가 아름답다. 사이바라 '이세의 바다'를 부르시는 궁의 목소리가 품위 있고 맑아, 슬그머니 기초 뒤편으로 다가와 듣던 뇨보들은 모두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어 보였다.
"두 분의 안주인을 두시는 것은 원망스러운 일이지만, 그것 또한 세상 이치이니 어쩌겠습니까. 결국 이 부인을 행복한 분이라 말할 수밖에 없지요. 이곳처럼 귀한 안주인이 되어 사시는 분이라곤 생각할 수 없었던 예전 생활로 다시 돌아가고 싶다고 자주 말씀하시는 것은 대체 무슨 까닭입니까."
라고 고집스럽게 말하는 늙은 뇨보는 오히려 젊은 뇨보들에게,
"조용히 하세요."
라며 제지당했다.
비파 등을 가르치며 3~4일간 니조인에 궁이 머무르셨는데, 근신일이라는 핑계를 대며 로쿠조인으로 오지 않으시자 사다이진가의 사람들은 서운해했고, 다이진이 궁궐에서 퇴근하는 길에 니조인으로 찾아왔다.
"지독하게 구시는데, 대체 무슨 일로 오셨는지 묻고 싶군."
등등의 말씀을 하시자 궁은 불쾌해하셨으나, 객전 쪽으로 나가 면회하셨다.
"어떤 기회가 없는 한 이 원에 들를 일이 없어진 저에게는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가슴에 사무칠 뿐입니다."
라며 대화를 나누고 로쿠조인 이야기 등을 잠시 한 뒤, 다이진은 궁을 데리고 나갔다. 자식들과 기타 고위 관료, 덴조비토 등을 많이 대동한 위세의 거대함을 보며, 비교조차 할 수 없는 자신의 무력한 처지를 생각한 나카노키미는 우울한 기분이 되었다. 뇨보들은 엿보며,
"정말 아름다우신 다이진님, 저토록 훌륭한 자제분들까지 모두가 한창 젊고 아름다운 분들이지만, 어느 분도 아버님께는 미치지 못하지 않나요? 어쩜 저리 미남이실까."
라고 말하는 이도 있었다. 또한,
"저리 거창한 차림으로 굳이 마중까지 나오다니 분하군요. 세상살이란 참으로 편치 않네요."
라며 한숨짓는 여인도 있었다. 부인 스스로도 외로웠던 지난날을 떠올리며, 저 화려한 사람들의 세계 한구석을 차지하는 것은 불가능한 희미한 존재임을 깨닫고 더욱 막막해져, 역시 자신은 우지로 은퇴해 버리는 것이 무난하리라 생각하게 되었다.
날은 빠르게 흘러 어느덧 한 해가 저물었다. 정월 말 무렵부터 부인은 예사롭지 않은 신체적 고통을 느끼기 시작했다. 궁 역시 출산을 앞둔 여인의 고뇌를 겪어본 적이 없었기에, 앞으로 어떻게 될지 걱정하며 지금까지 이곳저곳에 기도를 올리게 한 데 이어, 추가로 다른 곳에서도 수법(修法)을 시작하도록 명하였다. 상태가 매우 위태로워 보였기에 중궁에게서도 문병 사절이 왔다. 나카노키미가 니조인으로 거처를 옮긴 지 어느덧 3년이 되었지만, 남편인 궁의 애정만큼은 지극했음에도 일반 사람들로부터는 아직 직접적인 친왕비에 걸맞은 존경은 받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때는 모두가 놀라 문병 사절을 보내고, 몸소 니조인을 찾는 이들도 있었다.
미나모토노 주나곤은 궁이 걱정하시는 것 못지않은 불안을 느끼며 애를 태웠으나, 형식적인 문병을 가는 것 외에는 가까이 다가가 살필 수도 없었기에 남몰래 기도 등을 올리게 할 뿐이었다. 그의 약혼자인 온나니노미야의 모기(裳着) 의식이 코앞으로 다가와 세상은 그날의 성대한 의례 준비로 시끌벅적했다. 모든 일을 제(帝)께서 직접 책임자인 것처럼 살뜰히 보살피셨는데, 이를 보면 후원하는 외척이 없는 편이 오히려 더 큰 행복을 누릴 수 있겠구나 싶었다. 돌아가신 어머니 후지쓰보 뇨고가 공주를 위해 준비해 두었던 수많은 조도구에 더하여, 궁중의 작물소나 지방 장관 등에게 명하여 제작하게 한 물건들이 무수히 완성되어 있었고, 의식이 끝난 후 통혼하기 시작하라는 제의 내의가 가오루에게 전달되던 때였다. 사위가 될 쪽에서도 평소와 다른 긴장감을 느낄 법하건만, 여전히 그쪽 일은 아무래도 좋다고 여겨진 가오루는 오로지 나카노키미의 무거운 출산 과정을 가엾게 여기며 탄식을 이어갈 뿐이었다.
2월 1일, 나오시모노(直物)라 하여 정월 제목(除目) 때 미처 마무리되지 못한 관료들의 승진 및 보직 변경이 행해질 때, 가오루는 곤다이나곤이 되어 우대장을 겸임하게 되었다. 지금까지 좌대장을 겸하고 있던 우다이진이 군직만을 사임하고, 우(右)가 좌(左)로 옮기며 우대장이 새로 임명된 것이다. 신임 인사차 여러 곳을 돌던 가오루는 효부쿄노미야에게도 들렀다. 부인이 산고를 겪고 있던 때라 궁은 니조인의 서쪽 대에 머물고 있었기에 그쪽으로 가오루가 찾아온 것이었다. 승려 등이 와 있어 의례를 받기에는 불미스러운 장소임에도 궁은 놀라며, 새로운 나오시 복장에 裾가 긴 시타가사네를 갖춰 입고는 손님에 대한 답례 배례를 위해 층계 아래로 내려오셨는데, 대장도 훌륭했으나 궁 또한 지극히 기품 있는 모습으로 보였다. 이날은 우코노에후의 하급 관원들을 초대해 연회를 열고 포상을 내리는 관례가 있었기에 자택에서 하겠다고 말했으나, 인근에 나카노키미가 산고를 겪는 니조인이 있어 조금 주저하고 있던 차에, 유기리의 사다이진이 동생을 위해 자신의 집에서 연회를 열자고 제안하여 로쿠조인에서 행하게 되었다. 황자들도 동반객으로 연회에 참석하고, 고위 관료들도 초청에 응하여 다수 참석한 덕에 신임 대신의 대향연 못지않게 성대하고 조금은 지나치게 시끌벅적한 잔치가 되었다. 효부쿄노미야도 참석하셨으나, 부인 걱정에 연회가 끝나기도 전에 서둘러 니조인으로 돌아가자, 사다이진가의 새 부인은 이를 못마땅하게 여기며 질투했다. 똑같이 사랑받고 있음에도 권세 있는 집안의 딸이라는 오만한 마음에서 그리 생각한 것이리라.
겨우 그날 새벽, 니조인의 부인이 아들을 낳았다. 궁도 매우 기뻐하셨다. 우대장 역시 승진의 기쁨과 동시에 이 소식을 전해 들을 수 있어 기뻐했다. 지난밤 연회에 참석해 준 것에 대한 감사를 표함과 동시에 아들의 출산을 축하드리기 위해, 가오루는 집에 돌아오자마자 곧장 니조인으로 향했다.
효부쿄 친왕이 그 후로 줄곧 니조인에 머물렀으므로 축하를 전하러 출사하지 않는 이가 없었다. 우부야시나이(탄생 3일째 밤)는 아버지인 궁의 주관이었고, 5일에는 우다이진이 출산 축하를 올렸다. 톤지키 50구, 바둑알, 완반(온반) 같은 정해진 물품은 그 관례를 따랐으며, 산모인 부인에게는 요리를 담은 찬합 30개와 영아의 옷을 5벌 겹쳐 만든 것, 기저귀 등에 눈에 띄지 않는 사치가 다해져 있음이 자세히 보면 알 수 있었다. 아버지인 궁에게도 아사키나무 쟁반과 고조쿠 등에 요리, 후즈쿠(면류) 등이 올려졌다. 여방들에게는 겹친 요리 외에 바구니에 담은 과자 30개가 곁들여 나왔다. 몹시 사람들의 눈길을 끌지는 않게 했다. 7일 밤은 주구께서 보내신 출산 축하연이었기에 좌석에 나열한 이들이 많았다. 주구 다유를 시작으로 전상 역인, 고급 관료들은 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찾아왔다. 제께서도 출산 소식을 들으시고, 효부쿄 친왕이 처음으로 아버지가 된 기쁨의 징표를 꼭 전달해야 한다고 말씀하시며 태도를 신왕자에게 하사하셨다. 9일에도 사다이진의 출산 축하가 있었다. 사랑하는 딸의 경쟁자인 부인을 반기지 않으나 궁의 뜻을 고려하여 그날 밤은 자식들을 여러 명 보내 접객의 임무를 다하게 했다.
부인 또한 지난 몇 달간 마음고생을 이어온 동시에 신체적 고통 또한 적지 않아 막막한 기분뿐이었으나, 이렇듯 화려한 분위기에 휩싸이는 날이 오자 조금은 위로받았을지도 모른다.
우대장은 나카노키미에게 이렇듯 흔들리지 않는 위치가 생겨버리고 왕자의 어머니가 되어버렸으니, 자신의 사랑에 냉담함만 더해질 것이고 궁의 애정 또한 이 부인에게 더 많이 쏠릴 것이라 생각하니 분한 마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하지만 처음부터 바랐던 나카노키미의 행복이 이로써 확실해졌다는 점에서는 기뻐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달 20일 무렵에 온나니노미야의 모기(裳着) 의식이 거행되었고, 다음 날 밤 우대장은 후지쓰보로 향했다. 그곳에 의식이라 할 만한 것은 없었고, 조용히 치러졌다. 천하의 대사처럼 보일 정도로 애지중지하던 공주의 남편을 일개 신하인 남자가 맡게 되는 것에 불만을 느끼는 이들도 있었다. 약혼이야 허락했다 치더라도, 결혼을 그리 서두를 것까지야 있겠느냐며 비난하는 이도 있었지만, 한번 마음먹은 것은 즉시 실행에 옮기는 제(帝)의 성품을 보건대, 과거에 유례가 없을 정도로 제의 사위로서 가오루를 극진히 대우하려는 생각인 듯했다. 제의 사위가 되는 사람은 예나 지금이나 많았겠지만, 제께서 한창 재위 중에 평범한 인간처럼 사위를 맞는 일에 이토록 열중하신 적은 일찍이 없었을 것이다. 사다이진도,
"우대장은 참으로 훌륭한 운명을 타고난 남자구려. 로쿠조인조차 스자쿠인이 만년에 출가하실 때 그 어머니 궁을 얻었을 정도이니, 나 같은 이는 하물며 누구의 허락도 없이 제멋대로 주워온 것에 불과하지."
하고 말하였다. 부인인 궁은 그 말이 사실임을 부끄럽게 여겨 아무런 대꾸도 할 수 없었다.
3일째 밤에는 오쿠라쿄를 필두로 온나니노미야의 후견인으로 제께서 임명하신 이들과 궁 소속 관원들에게 하명이 내려져, 우대장의 전구(前駆)들과 즈이지, 차역, 도네리들에게까지 포상이 내려졌다. 일반 가문의 신랑 대접과 조금도 다를 바가 없었다. 그 후로는 가오루도 남몰래 후지쓰보를 드나들었다. 마음속으로는 옛 일과 옛 인연이 있는 사람 생각뿐이라, 낮에는 하루 종일 상념에 잠겨 지내고 밤이 되면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온나니노미야를 찾아가는 일이, 평소 그런 습관이 없던 가오루에게는 귀찮고 괴롭게만 느껴져 궁궐에서 자신의 저택으로 궁을 모셔오기로 생각했다. 그 뜻을 아마미야(尼宮)께서 기쁘게 여기시어 본인이 거처하시는 신전을 온통 신부인 궁에게 물려주겠다고 하셨으나, 가오루는 황송한 일이라며 자신의 염송당 사이에 복도를 짓게 했다. 서쪽 좌식 쪽으로 궁을 모셔올 셈인 듯했다. 동쪽 대(對) 등도 불탄 뒤에 다시 훌륭한 건축물이 세워져 있었는데 설비를 더욱 아름답게 단장시켰다. 가오루가 그러한 준비를 한다는 것이 제의 귀에 들어가, 결혼하자마자 남편의 집으로 들어가는 것이 어떠하겠느냐며 불안하게 여기셨다. 자식을 사랑하는 제의 마음 또한 어둠에 가려진 듯 다르지 않은 것이다. 아마미야의 처소로 칙사가 찾아왔는데, 편지 안에도 오로지 온나니노미야에 관한 이야기뿐이었다. 돌아가신 스자쿠인이 특별히 이 아마미야를 지원해 달라고 유탁(遺託)하셨기에, 출가한 뒤에도 니혼(二品) 내친왕의 대우는 변함이 없었고, 궁의 부탁은 모두 들어줄 정도의 호의를 제께서는 보여주고 계셨다. 이처럼 지고한 분을 시부모님과 어머니로 모시고 소중히 대접하는 영광도 어찌 된 일인지 가오루의 마음에는 특별히 기쁘게 여겨지지 않아, 지금도 툭하면 수심에 잠긴 얼굴을 하고서 우지의 미도(御堂) 조영을 중요하게 여겨 서두르고 있었다.
효부쿄 친왕의 와카기미가 50일이 되는 날을 세어가며 그 식용 축하 떡을 준비하는 데 열심이었고, 대나무 바구니나 노송나무 바구니 등까지 몸소 고안했다. 침향나무, 자단, 은, 황금 등을 다루는 뛰어난 장인을 많이 집에 두고 있는 사람이었기에 그들은 뒤질세라 제작에 힘썼다.
가오루는 또 궁이 계시지 않은 틈을 타 니조인의 부인을 찾았다. 마음의 탓인지 나카노키미에게 무게감과 고귀함이 더해진 듯 가오루는 느꼈다. 이제 가오루도 결혼했으니 자신에게 폐가 되는 마음은 모두 흩어졌으리라 안심하고 부인이 밖으로 나왔으나, 여전히 예전과 같이 쓸쓸한 표정으로 눈물을 머금고,
"자신의 의지가 아닌 결혼을 한 고통이라는 것은 생각지도 못할 만큼 견디기 힘든 것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번민만 날로 더해갑니다."
라고 가오루는 신부인 미야에게 동정이 부족한 듯한 말을 하며 부인에게 호소했다.
"참으로 당치 않은 말씀을 하시는군요. 그런 말이 혹여 남의 귀에라도 들어가면 큰일입니다."
라고 나카노키미는 말하면서도, 누가 보아도 선망의 대상이 되어 있으면서도 그에 만족하지 못하고 여전히 고인을 잊지 못하는 이 사람의 순수한 애정을 기쁘게 생각했다. 언니가 살아있었다면 하고 생각하기도 했으나, 그랬다 한들 자신과 마찬가지로 승산 없는 경쟁자를 품고 박복함을 한탄하는 데 그쳤을 터였다. 재산도 없는 자신들은 세상 어디에서도 무엇 하나 제대로 대접받지 못하는 것 같다고 생각하니, 언니가 끝까지 인정에 굴하지 않고 결혼하지 않으려 했던 마음가짐이 얼마나 훌륭했는지 생각되었다.
가오루가 와카기미를 꼭 보여달라고 말했다는 소식을 듣고 부끄러운 마음도 들었지만, 그에게 거리감을 두는 사람으로 비치고 싶지는 않았다. 무리한 연애를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원망을 사는 일 외에는 그의 기분을 상하게 하고 싶지 않았던 나카노키미는, 직접 대답은 하지 않은 채 유모에게 안긴 와카기미를 미스 밖으로 내보여 주었다. 말할 것도 없이 추한 아이일 리가 없었다. 놀라울 정도로 피부가 희고 아름다웠으며, 높은 소리를 내며 생긋 웃어 보이는 와카기미를 본 가오루는 이것이 자신의 아이였더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부러운 마음이 들었다는 것은, 그의 마음 또한 인간 세상에 쉽게 떨어지기 어렵게 된 것일까. 하지만 그는 죽은 연인이 평범하게 자신의 아내가 되어, 이런 아이를 유품으로 남겨주었더라면 하고 바랄 뿐이었다. 명예로운 결혼을 한 것으로 보이는 온나니노미야에게서 빨리 아이가 태어났으면 하는 생각 따위는 꿈에도 하지 않으니, 참으로 유별난 사람이 아닐 수 없다. 이렇듯 죽어 다시는 돌이킬 수 없는 사람에게만 미련을 두고 새로운 아내인 내친왕에게 애정을 가지지 않는다는 따위는 너무나 안타까운 일이라 적기도 민망하다. 이러한 괴짜를 제께서 특별히 아끼시어 사위까지 삼으셨을 리는 없으니, 공인으로서의 재능이 완벽했을 것이라 여기는 수밖에 없다.
이렇게 어린 사람을 거리낌 없이 보여준 부인의 호의가 고마워 평소보다 더 정겹게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어느덧 날이 저물었다. 다른 곳에서 밤을 지새워서는 안 될 처지임을 괴로워하며 가오루는 한숨을 내쉬며 돌아갔다.
"정말 좋은 향기예요. '꺾어보니 소매에 향기 배는 매화꽃'이라는 말처럼, 휘파람새도 향기를 맡고 찾아올지도 모르겠네요."
라며 웅성거리는 유모도 있었다.
여름이 되자 고쇼에서 산조의 미야는 방위가 불길해졌기에, 4월 초하루, 아직 봄과 여름의 절분(節分)이 지나기 전에 온나니노미야를 가오루의 저택으로 모시기로 했다.
그 전날 제(帝)께서 후지쓰보로 행차하시어 등화(藤花)의 연회를 베푸셨다. 남쪽 비사시 사이의 발을 걷어 올리고 어좌의 의자가 놓여 있었다. 이는 제께서 여신 연회로, 궁이 주최한 것이 아니었다. 고위 관료와 덴조비토의 접대 상차림 등은 구라료에서 마련하였다. 사다이진, 아제치 다이나곤, 도 다이나곤, 사효에노카미 등이 참석하였고, 황자들 중에서는 효부쿄노미야, 히타치노미야 등이 시종하였다. 남쪽 정원의 등나무 꽃 아래에 덴조비토의 자리가 마련되어 있었다. 고료덴 동쪽에 악인들을 불러 해 질 녘부터 쌍조를 연주하게 하였고, 방 안에서는 히메미야 측에서 연주용 악기를 내어, 대신을 비롯한 사람들이 이를 어전으로 운반하였다. 로쿠조인이 친필로 적어 산조의 아마미야에게 주었던 거문고 악보 두 권을 오엽 가지에 묶어 사다이진이 들고 나와 그 유래를 아뢰고 올렸다. 잇따라 13현, 비와, 와곤 등 명악기들이 나왔다. 스자쿠인으로부터 전해 내려온 것으로 가오루의 소유물이다. 피리는 가시와기 다이나곤이 꿈에 나타나 전달할 사람을 유기리에게 암시했던 유품으로, 매우 좋은 소리가 나는 악기라고 로쿠조인이 아끼시던 것을 우대장에게 선물하는 것은 이 아름다운 기회밖에 없다고 생각하여, 가오루를 위해 그가 준비해 온 듯하였다. 대신에게 와곤, 효부쿄노미야에게 비와 연주를 맡기셨다. 피리를 맡은 우대장은 이날 비할 데 없이 묘한 음률을 불어 제꼈다. 덴조비토 중에서도 창가(唱歌) 역에 어울리는 이들이 불려 나와 흥겨운 합주가 이어지는 밤이 되었다. 어전에는 온나니노미야 측으로부터 후즈쿠가 올려졌다. 침향나무 오시키 네 개, 자단 다카쓰키, 등나무색 무라구라의 타니시키에는 같은 꽃의 꺾은 가지가 수놓아져 있었다. 은제 양기, 유리 술잔, 술병은 감청색 유리였다. 효에노카미가 어전의 시중을 들었다. 술잔을 올릴 때, 대신은 자신이 자주 나서는 것은 좋지 않으며, 그 역할에 합당한 궁들도 계시지 않는다 하여 우대장에게 이 영광스러운 역할을 양보하였다. 가오루는 사양하였으나, 제께서도 그 희망을 품으신 듯하여 술잔을 올리는데, "오시"라는 소리를 내는 법이나 몸가짐 등도 어전에서 누구나 하는 역할이라지만 비할 데 없이 훌륭해 보이는 것은, 오늘날 사위로서의 마음가짐이 더해졌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답례로 술잔을 받아 계단 아래로 내려가 무도의 예를 올리는 모습 등은 빛이 나는 듯하였다. 황자나 대신들이 술잔을 받는 것조차 지극히 영광스러운 일인데, 하물며 사위로서 각별히 환대하시는 제의 마음이 있는 자리였으니 행복 그 자체인 듯한 모습이었으나, 계급은 정해진 것이었기에 대신과 아제치 다이나곤 아래의 자리로 돌아와 앉았을 때는 마음이 쓰일 정도였다. 아제치 다이나곤은 자신이 이 영광을 누려야 했던 사람이 아닌가, 부럽구나 하고 마음속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옛날 이 궁의 어머니인 뇨고를 연모하여 그이가 후궁에 들어간 후에도 줄곧 잊지 못하고 소식을 보냈던 터였다. 결국 다시 낳은 히메미야를 얻고자 하는 마음이 생겨, 궁의 후견인 대신 남편이 되기를 사람을 시켜 간청하려 하였으나, 그이가 가망 없는 일임을 알고 아뢰지도 않았던 터라 아제치는 안타깝게 여겼다. 우대장이 천재로 태어났다 하더라도 현재의 제께서 이토록 사위를 애지중지할 일은 아니며, 금정 내의 거처에 가까운 전사에서 일개 신하가 신혼의 꿈을 맺고, 결국 연회니 뭐니 화려한 짓을 벌이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고 비난하였으나, 그래도 등화의 연회에 마음이 끌려 참례하고 있었고, 속으로는 화가 나 있었다. 촛불을 들고 노래를 문대 앞에 놓으러 오는 이들은 모두 득의양양한 얼굴이었으나, 이런 경우의 노래는 형식적인 고리타분한 것들이 많을 터이므로 일부러 조사하여 적으려 하지 않았다. 상류층 사람이라 하여 가작이 나오는 것은 아니지만, 기념으로 한두 곡을 들어 적어 둔다. 다음은 우대장이 정원으로 내려가 등나무 꽃을 꺾어 왔을 때, 제께 아뢴 노래라 한다.
임금의 머리 장식으로 꺾으려 하니, 등나무 꽃 피는 높은 가지에 차마 소매를 거는구나.
아는 체하는 태도가 조금 반감을 불러일으키지 않는가.
만 년을 두고 피어날 꽃이기에, 오늘 보는 이 빛깔도 싫증 나지 않는구나.
이는 제(帝)의 어제(御製)이다. 또 누군가의 작이겠지.
그대 위해 꺾어 든 머리 장식은 보랏빛 구름에 뒤지지 않는 꽃의 자태인가
세상 흔한 빛깔도 아니어라, 구름 위까지 치솟아 오른 등나무 꽃이여
뒤의 노래는 화가 나 있던 다이나곤의 노래인 듯싶다. 어느 노래든 필자가 잘못 들어 틀린 부분이 있을지도 모른다. 대체로 이런 식의 노래들로, 감격적인 부분은 적은 듯하였다.
밤이 깊어감에 따라 음악은 절정으로 향해 갔다. 가오루가 부른 '아나타후토'의 목소리는 끝없이 좋았다. 아제치 역시 예전에는 뛰어난 목소리를 가진 사람이었기에 지금도 훌륭하게 맞춰 노래하였다. 사다이진의 일곱째 아들이 아이의 모습으로 생황을 분 것이 유별나고 재미있어 제께서 옷을 하사하셨다. 대신은 계단 아래에서 무도의 예를 올렸다. 날이 밝아올 무렵 제께서는 평소의 어전으로 돌아가셨다. 포상은 고위 관료와 황자들에게는 제께서, 덴조비토와 악인들에게는 히메미야 측에서 품목에 등급을 나누어 내렸다.
이튿날 밤 가오루는 히메미야를 자신의 저택으로 모셔갔다. 의식은 화려하기 그지없었다. 여관들은 거의 모두 전송을 나왔다. 비사시의 소에 궁이 타셨고, 비사시가 없는 이토게구루마가 세 대, 황금으로 만든 비로게구루마가 여섯 대, 보통 비로게구루마가 스무 대, 아지로구루마가 두 대 뒤를 따랐다. 유모 서른 명, 동녀와 하녀가 여덟 명씩 시중들고 있었는데, 또한 대장가에서도 의장용 수레 열두 대에 자택의 유모를 태워 마중을 나왔다. 전송 나온 고위 관료, 덴조비토, 6위의 구로도 등에게 모두 화려한 복장을 하게 하였다.
이렇게 맞아들인 온나니노미야를 가오루는 아내로서 편안한 마음으로 지켜보게 되었는데, 궁은 아름다웠다. 몸집이 작고 우아하며 차분하여, 어디 한 군데 결점이라곤 없는 것을 알고 자신의 숙명 또한 나쁘지 않은 듯하다고 기뻐했으나, 그렇다고 해서 지난 슬픈 사랑의 상처가 조금이라도 치유된 것은 아니었다. 지금도 어떤 순간에도 마음 둘 곳 없이 옛 생각만 사무치는 가오루였기에, 살아생전에는 이에 대한 위로를 얻지 못할 것이며, 부처가 되어서야 비로소 원망스러운 인연이 무슨 업보인지가 분명해져 잊을 수 있게 되리라 생각하며 오로지 절을 짓는 일에만 마음을 쏟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