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이란 으레 다 죽게 마련이라지만, 그때 가족의 일로 마음 편히 의지할 곳이라도 있다면 그것을 위안 삼아 슬픔을 이겨낼 수도 있을 터인데, 내 경우에는 내가 떠난 뒤 너희를 맡아줄 사람 하나 없는 이 상황에서 너희를 두고 가려니 참으로 비통하구나. 그러나 이런 일에 방해받아 순수한 신앙을 얻지 못한다면 모든 것이 허사가 되어 영원한 어둠 속을 헤매게 될 것이다. 너희를 눈앞에 두고 있으면서도 죽는 날에는 헤어져야 하니 사후의 일에까지 간섭할 순 없으나, 나뿐만 아니라 너희 조부모님의 불명예가 될 만한 경솔한 결혼은 절대 하지 말거라. 근본도 없는 일시적인 유혹에 이끌려 이 산장을 떠나는 일도 없도록 하렴. 그저 스스로는 일반 사람들과는 다른 운명을 타고난 인간이라 여기고, 이곳에서 생을 마칠 각오로 지내는 것이 좋다. 그 굳건한 신념만 있다면 길게 느껴지는 인생도 언젠가는 다하는 법이다. 특히 여자인 너희들은 세속적인 행복을 바라지 않고 견뎌냄으로써 남들에게 비난받는 일 없이 평생을 보내는 것이 좋겠지."
말씀을 듣고 있던 히메기미들은 자신들이 어떻게 될지에 대한 불안함보다, 아버지가 돌아가시면 인생을 한시도 살아갈 수 없을 것이라는 평소의 마음가짐이, 이렇게 고아가 되어 겪을 앞날에 대해 말씀하시는 것 때문에 말할 수 없는 슬픔으로 다가왔다. 미야께서는 마음속으로 딸에 대한 애정에서 벗어나려 노력하셨겠으나, 아침저녁으로 곁에서 따뜻한 손길로 길러오셨던 만큼 갑작스레 그런 의견을 말씀하신 것은 냉혹해서가 아닐지라도, 여왕들에게는 원망스럽게 느껴지는 것도 당연해 보였다.
내일이면 절로 들어가려 하시는 날, 평소와는 다르게 미야께서는 집 안 여기저기를 둘러보셨다. 임시 거처로 삼은 채 여러 해를 보내신 너무나도 간소한 건물에 대해서도, 자신이 세상을 떠난 뒤에 이런 집에 젊은 여왕들이 여전히 참고 살 수 있을까 걱정하시며, 눈물을 글썽이며 염불을 외우시는 모습에도 청초한 아름다움이 있었다. 나이 든 여방들을 불러,
"내가 어디에 있든 안심할 수 있도록 여왕들을 잘 모셔주게. 무슨 일이 있어도 처음부터 남의 눈에 띄지 않는 집이었다면 그곳의 딸이 나중에 타락한들 문제 삼을 자도 없겠지. 우리 집안은 이제 세상 사람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겠지만 말일세. 어쨌든 한심한 타락을 해서는 조상님들께 면목이 없는 일이야. 가난하고 간소한 생활밖에 할 수 없는 것은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이니 그것은 괜찮네. 귀족의 딸은 귀족답게 품위를 떨어뜨리지 않고 남들에게 멸시받지 않는 처신을 끝까지 지키는 것이 세상에 대해서나 자신들에게나 깨끗한 일이라고 생각하네. 세상과 같은 행복을 얻게 하려다가 그렇게 되지 못하면 오히려 비참해질 뿐이니, 결코 경솔한 생각으로 자네들이 여왕들에게 과실을 범하게 하는 계략은 꾸미지 말게."
라며 타이르셨다.
드디어 그날 아침 일찍 길을 나서려 할 때에도 미야께서는 여왕들의 거처로 가셔서,
"내가 없는 동안 너무 쓸쓸하게 생각하며 지내지 말거라. 기분 좋게 음악이라도 즐기며 지내렴. 무슨 일이든 뜻대로 되지 않는 인생이니 비관만 해서는 안 된다."
라며 말씀하시고는 자꾸 뒤를 돌아보며 절로 향하셨다. 가뜩이나 외로운 처지의 여왕들은 더욱 쓸쓸함을 느껴 근심만 깊어갔고, 아침저녁으로 둘이 함께 지내며 이야기하면서,
"둘 중 한 사람이라도 없으면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까요. 하지만 내일 일은 알 수 없으니까요. 만약 둘이 헤어지게 된다면 어떡하죠?"
등의 말을 하며 울기도 하고 웃기도 했다. 유희에 관한 것도, 공부하는 일도 함께하며 서로를 위로했다. 절에서 행하시는 삼매 수행의 날수가 오늘로 끝날 예정이라 하여 여왕들은 아버지가 돌아오시길 기다리던 날 저녁, 산의 절에서 미야의 심부름꾼이 왔다.
"오늘 아침부터 몸 상태가 좋지 않아 집으로 돌아가실 수 없습니다. 감기인 듯하여 오늘 하루 치료를 하고 있습니다. 평소보다 더욱더 당신들과 만나고 싶은 때인데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라는 말씀이 전해졌다. 히메기미들은 놀라움에 가슴이 순간 꽉 막히는 기분이 들면서도, 솜을 두껍게 넣은 미야의 옷을 짓게 하여 보내드리곤 했다. 그 뒤로 이삼 일 동안은 여전히 미야는 산을 내려오지 못하셨다.
상태를 살피기 위해 장원에서 편지를 보냈더니,
"큰 병에 걸린 것 같지는 않구나. 그저 어딘지 모르게 괴로울 뿐이니 조금이라도 괜찮아지면 돌아갈 생각이다. 지금은 애써 심신을 안정시키려 하고 있다."
라는 구두 답변이 있었다.
아자리가 줄곧 곁에서 간호하고 있었다.
"큰 병환이라 생각되지는 않으나, 혹여 이것이 수명의 다함이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히메기미들의 일을 아무것도 염려하지 마십시오. 사람에게는 저마다 독립된 숙명이 있는 법이니, 당신께서는 결코 걱정하지 마시옵소서."
이렇게 아자리는 말하며, 끝까지 은애의 정을 버리도록 가르침을 올리고는,
"이제 와서 이곳을 떠나시는 일은 하지 않으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라며 타이르는 것이었다. 이는 8월 20일 무렵의 일이었다. 만물이 깊이 사무치는 시절이라 히메기미들의 마음에는 아침 안개와 저녁 안개가 걷힐 틈도 없이 탄식이 이어졌다. 새벽달이 화려하게 빛을 발하고 우지 강의 물이 선명하게 맑아 보일 무렵, 그쪽을 향해 문을 올리게 하고 두 사람이 바깥 경치를 바라보고 있자니 종소리가 아스라이 울려왔다. 날이 밝았구나 하고 생각하던 참에 절에서 사람이 와서,
"미야께서는 이 밤중 무렵에 돌아가셨습니다."
라고 울며 전했다. 그 하나의 소식이 다음 순간에라도 올지 모른다는 생각에 마음 놓을 틈이 없었으나, 막상 그것을 전해 듣게 된 히메기미들은 넋을 잃은 듯했다. 너무나 슬플 때는 눈물이 어디론가 가버리는 법인가 보다. 두 여왕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엎드려 있었다. 아버지의 죽음이란 날마다 머리맡에 앉아 간병해온 끝에 맞이한 것이니 세상 이치로 받아들일 수도 있겠지만, 병중에는 얼굴조차 뵙지 못한 채 이렇게 된 것을 히메기미들이 탄식하는 것도 당연하다. 잠시라도 아버지와 이별한 뒤에 살아있는 것을 용납하지 못하겠다는 마음을 둘 다 품고 있어 자신도 죽어야만 한다며 울고 있지만, 목숨이란 잃은 사람에게나 잃으려는 사람에게나 좌지우지할 자유가 없는 것이니 어쩔 도리가 없다. 아자리에게는 훨씬 이전부터 유언이 있었던 터라, 장례 절차도 약속한 말대로 이 승려가 도맡아 처리했다. 유해가 되신 아버지라도 다시 한번 뵙고 싶다고 히메기미들은 바랐으나,
"이제 와서 그런 일을 하실 수는 없습니다. 병중에도 저는 히메기미들께 뵙지 않는 것이 좋겠다고 말씀드렸으니, 이렇게 되신 후로는 서로 무익한 집착을 만들게 될 뿐이며, 당신들의 장래를 위해서도 좋지 않습니다."
아자리는 허락하려 하지 않았다. 임종 때까지의 모습을 전해 듣는 것만으로도, 아자리의 지나칠 정도로 초연한 태도를 히메기미들은 원망스럽고 미우며 심지어는 증오스럽기까지 했다.
출가하려는 뜻은 예전부터 깊으셨던 미야였지만, 완전히 고아가 될 히메기미를 두고 떠나는 것이 마음에 걸려, 살아있는 동안은 적어도 곁을 떠나지 않고 지키는 아버지가 되어주심으로써 한편으로는 갈 곳 없는 인간 세상의 외로움도 달래고 계셨던 것이다. 그것도 영원할 수는 없어서 생사의 선에 가로막혀 끝나버린 것은 돌아가신 미야를 위해서도, 사모하는 여왕들을 위해서도 슬픈 일이었다.
가오루 또한 우지의 하치노미야의 부고를 들었다. 너무나 덧없는 사람의 목숨이 슬프고 존귀한 인격의 분이 애석하며, 한 번 더 느긋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던 것들이 많이 남았다는 생각이 들어 인생의 비애를 절실히 통감하며 울었다. 이것이 마지막 만남일지도 모른다고 하셨지만, 늘 인생의 덧없음과 연약함을 느끼고 계셨던 분의 말씀이었기에 특별한 감정으로 하시는 말씀이라 여기지 않았고, 이렇게 빨리 그 슬픈 때가 닥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기에 거듭거듭 슬펐다. 아자리가 있는 곳으로도, 산장 쪽으로도 가오루는 조문의 물품을 많이 보냈다. 이런 호의를 보이는 이는 달리 없었기에 슬픔에 잠겨 있으면서도 두 여왕은 예전부터 이처럼 호의적인 보살핌을 끊임없이 베풀어주는 가오루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평범한 집안의 부모 죽음도 그 경우엔 이만큼 슬프지 않을 것 같으니, 하물며 오직 아버지 한 분만을 의지하고 오늘까지 온 히메기미들은 얼마나 깊은 슬픔에 잠겨 있을 것인가 하고 가오루는 우지의 산장을 상상하며 불사를 위한 비용 등을 아자리에게 많이 보냈다. 저택 쪽으로도 늙은 벤노키미에게 주는 것처럼 금품을 보냈고, 독경에 필요한 물건 등까지도 보냈다.
늘 밤처럼 어두운 세월도 지나 9월이 되었다. 들산의 색깔은 더욱 사람의 눈물을 자아내기 일쑤였고, 다투어 떨어지는 나뭇잎 소리, 우지 강의 울림, 폭포처럼 흐르는 눈물이 모두 하나가 되어 이 여왕들을 더욱 깊은 슬픔의 골짜기로 몰아넣었다. 이래서야 생명은 전생부터 정해진 것이라 하나, 그 짧은 시간조차 참고 살아가기 어렵지 않을까 하고 여방들은 히메기미들을 걱정하며, 불안한 마음에 여러모로 위로하려 애썼다.
이 산장에도 염불을 하는 승려가 와 있었고, 미야께서 기거하시던 방은 이제 안치된 불상을 유품으로 보아야 할 처지가 된 지금, 그곳에 때때로 시중들던 이들이 모여 불공을 드리고 있었다.
효부쿄 친왕으로부터도 잦은 위문 편지가 왔다. 이 와중이라 그런 성격의 편지에는 답장을 쓸 기력조차 없어 방치해 두었더니, 나카나곤에게는 이런 태도를 취하지 않았을 터인데 자신만은 끝까지 거리감 있게 대한다며 여왕들을 원망하고 계셨다. 단풍 계절에 우지에서 시회를 열려던 니오우미야는 사랑하는 이의 거처가 상가(喪家)가 된 지금은 그럴 보람도 없다며 그만두었으나, 매우 아쉬워하셨다.
하치노미야의 사십구재도 끝났다. 시간은 슬픔을 완화해 줄 것이라 생각하신 미야께서 긴 편지를 우지로 쓰셨다. 시우(時雨)가 가끔 지나가는 듯한 날의 저녁이었다.
수사슴 우는 가을 산골, 어떤가요, 작은 싸리 잎에 이슬 맺히는 저녁 무렵은.
이런 날씨에 연인이 얼마나 쓸쓸한 마음으로 있을지 헤아려 주시지 않는 것은 너무나도 냉담하오. 시들어가는 들판의 풍경도 차마 평온히 바라볼 수 없는 나입니다.
등이라고 적힌 글자였다.
"이 말씀처럼, 너무나 존귀한 분을 무시하는 태도를 취해 왔으니 말이에요, 무엇이라도 당신이 답장을 올리세요."
대히메기미는 예전처럼 나카노키미에게 권하며 쓰게 하려 했다. 나카노키미는 오늘까지 살아오면서 벼루 따위를 끌어당겨 글을 쓰게 될 줄은 그 당시에는 생각지 못했던 터라, 안타깝고도 시간이 이렇게나 흘러버렸구나 하는 생각에 또다시 급히 눈물이 솟아 앞이 흐려지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게 되어, 벼루를 옆으로 밀쳐두고,
"역시 저는 쓸 수가 없어요. 요즘은 이렇게 일어나 앉을 수 있게 되었지만, 슬픔의 날에도 끝이 있다는 말이 정말일까 생각하면 제 자신이 싫어지거든요."
라고 가련한 모습으로 말하며 울먹이는 것도 언니의 입장에서는 마음 아픈 일이었다. 저녁 무렵에 온 심부름꾼이,
"벌써 열 시가 많이 넘었습니다. 오늘 밤 안에 돌아갈 수 있을는지요."
라고 말하는 소리를 듣고 오늘 밤은 묵고 가라고 일렀으나,
"아닙니다. 어떻게든 오늘 밤 안에 답장을 전해드리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렇게 서두르는 것이 가여워, 오오히메기미는 자신이 슬픔을 초월했다는 모습을 보여주려는 것이 아니라, 단지 나카노키미가 편지를 쓰지 못하고 끙끙대는 것을 동정하여,
"눈물에 앞이 가려지는 산골 집 울타리에, 사슴들만이 소리 높여 우는구나."
라는 답장을, 검은 종이 위의 밤 먹물 자국이라 잘 분간할 수는 없었으나, 그것을 애써 고치려 하지도 않고 붓 가는 대로 적어 봉한 뒤 곧바로 여방에게 건네주었다.
심부름꾼 사내는 고하타산을 넘어가는데, 비를 머금은 하늘이라 유난히 어둡고 무서운 길이었으나 겁이 없는 자를 골라 보냈는지, 기분 나쁜 조릿대 숲길을 말을 멈추지도 않고 몰아 한 시간 만에 니조의 저택으로 돌아왔다. 어전으로 호출되어 나갔을 때도 옷이 몹시 젖어 있는 것을 미야께서 보시고 하사품을 내리셨다.
지금껏 받아본 적 없는 사람의 글씨체로, 그보다 조금 연상인 듯한 느낌과 재식(才識)이 있는 사람 특유의 필치를 미야께서는 살펴보셨다. 하지만 과연 어느 쪽이 언니 여왕이고 어느 쪽이 나카노키미인지 열심히 들여다보며 침실로 들어가지 않고 깨어 계셨는데, 이 긴 시간 동안 얼마나 마음 깊이 사무치는 편지이기에 그러시는가 싶어 여방들은 수군거리며 반감을 느끼기도 했다. 졸렸던 탓이리라.
효부쿄 친왕은 아직 아침 안개가 짙게 깔려 있을 무렵에 일어나 다시 우지로 편지를 쓰셨다.
"아침 안개 속에 길을 잃고 울부짖는 사슴 소리를, 어찌 예사로 애처롭다 들을 수 있겠소."
제 마음속에서 우러나오는 것은 두 마리 사슴의 소리에도 뒤지지 않는 슬픈 울음소리입니다.
라고 하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