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오노미야
히카루 겐지가 세상을 떠난 뒤, 그 빼어난 미모를 물려받은 사람을 많은 유족 중에서 찾기란 어려웠다. 원(院)의 폐하는 너무나 황공하여 수에 넣을 수 없었다. 현 제(帝)의 제3의 미야와, 같은 로쿠조인에서 성장한 스자쿠인의 뇨산노미야의 아들인 와카기미 두 사람이 각기 미모로 이름을 날렸고, 실제로도 뛰어난 귀공자였으나 히카루 겐지가 그러했던 것만큼 눈부신 미남은 아닌 듯하다. 다만 일반적인 사람으로서는 참으로 훌륭하고 요염한 자태를 갖춘 분들이었을 뿐 아니라, 모든 조건이 갖추어진 신분이기에 사람들이 존경하는 마음이 실제 이상으로 아름답고 뛰어난 사람으로 대접하는 경향이 있었다. 무라사키 부인이 특별히 아끼고 길러준 분이었기에 산노미야는 니조의 인에 머물고 계셨다. 물론 도구(東宮)는 특별한 분으로서 소중히 여기셨지만, 제(帝)와 황후도 이 산노미야를 매우 아끼시어 어소 안에 머무실 전각도 마련해 주셨으나, 미야는 그보다 기분 편한 자택 생활을 즐기시어 대체로 니조의 인에 머물곤 하셨다. 겐푸쿠 후에는 산노미야를 효부쿄노미야라 부르게 되었다. 뇨이치노미야는 로쿠조인의 미나미노초 히가시노타이에 예전 그대로 방의 구조도 바꾸지 않은 채 지내며, 아침저녁으로 예전의 아름다운 양할머니인 뇨오를 그리워하였다. 니노미야도 같은 로쿠조인의 신덴을 가끔 찾아와 머물곤 하셨고, 어소에서는 우메쓰보를 거처로 사용하셨으나 우다이진의 둘째 딸을 아내로 맞이하였다. 다음 태자로 거론되는 분이라 신하들의 존경 또한 남다르며, 그 인품 또한 견실한 분이었다.
우다이진에게는 여러 딸이 있었는데, 장녀는 도구(東宮)를 모시고 있으며 경쟁자 없는 좋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차녀는 순서대로 산노미야와 혼인하리라고 세간에서도 보고 있고 주구 또한 그렇게 마음먹고 계셨으나, 효부쿄노미야에게는 그럴 마음이 없는 듯했다. 연애 결혼이 아니면 싫다는 태도였다. 유기리 다이진 또한 마찬가지로 딸들을 형제인 미야가에 시집보내는 것을 세간의 이목 때문에 꺼리고 있었으나, 혹시 간곡히 청해온다면 동의하는 데 주저하지 않겠다는 태도를 보이며 효부쿄노미야에게 충분한 호의를 드러내고 있었다. 다이진의 여섯째 딸은 현재 자신 있는 귀공자들의 동경의 대상이었다.
로쿠조인께서 떠나신 뒤, 부인들은 모두 눈물을 머금고 각자의 집으로 떠나갔으며, 하나치루사토라 불리던 부인은 유산으로 받은 히가시노인으로 거처를 옮겼다. 주구께서는 대부분 궁중에 머무셨기에 인(院) 안이 적적하고 사람이 줄어든 것을 보고 유기리 우다이진은,
"옛사람들의 경우를 보더라도, 살아생전 마음을 다해 지어 올린 집이 사후에 돌보는 이 없는 폐가가 되어 버리는 것은 영고성쇠를 너무나 노골적으로 보여주는 것 같아 보기 좋지 않소. 그러니 적어도 내 한 세대만큼은 로쿠조인이 황폐해지지 않게 하고 싶소. 인근 거리가 인적이 드물어 적막해지는 일은 없게 할 것이오."
라고 말하고는, 도호쿠노초로 그 이치조노미야를 옮기게 하여, 산조의 저택에서 하룻밤씩 번갈아 가며 달에 열다섯 날을 공평하게 나누어 머물렀다. 니조의 인이라 하여 꾸미고 가꾸었으며, 로쿠조인의 하루노고텐이라 하여 지상의 극락이라 불리던 보석 같은 집도 오직 한 여성의 자손만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었나 싶어, 아카시 부인은 여러 궁님들을 보살피며 행복하게 지내고 있었다. 유기리는 어떤 부인에게든 원께서 대하셨던 것처럼 모두 어머니로서 모시고 있었으나, 무라사키노 우에가 이처럼 원의 뒤에 남겨져 계셨더라면 얼마나 자신이 성의를 다해 모셨을까, 마지막까지 자신만이 특별히 베푸는 호의를 받을 수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면, 지금도 다이진은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길이 없었다.
천하에 로쿠조인을 사모하지 않는 이가 없어, 무슨 일이든 불이 꺼진 듯하여 탄식하지 않을 때가 없었다. 하물며 원을 가까이서 모시던 이들이나 부인들, 왕자들이 원과 이별한 슬픔에 흘린 눈물은 그 양을 헤아릴 수 없었다. 그와 더불어 지금도 무라사키노 우에를 추모하는 마음은 누구에게나 있어, 사람들에게 그분의 모습이 잊히는 때란 없었다. 봄꽃의 만개는 짧아도 그 인상은 깊게 남는 법이라 해야 할 것이다.
니혼노미야(二品宮)의 왕자는 원께서 맡기셨기 때문에 레이제이인 폐하께서 각별히 사랑하셨다. 원의 황후께서도 황자 등이 없어 심란해하셨기에, 이 아이를 돌보며 노후의 의지처로 삼고 싶어 하셨다. 겐푸쿠 식도 원의 어소에서 올렸다. 열네 살 때였다. 그해 2월에 시종이 되었고, 가을에는 벌써 우코노에노주조(右近衛中将)로 승진했다. 추천권을 가진 위계의 승진도 이 사람에게 추가해 주시며, 왜 그렇게 서두르시는지 싶을 정도로 빠르게 높은 자리로 이끄셨다. 거처하는 전각 근처의 타이(對)를 이 사람의 소시(曹司)로 배정하고, 장식 등도 원 자신의 구상대로 하게 했으며, 젊은 여방부터 동녀, 하인에 이르기까지 뛰어난 이들만 가려 뽑아 갖추게 하셨다. 남들이 공주를 모시는 것 이상의 호화로운 생활을 하게 하니 눈부셔 보일 정도였다. 원 곁의 여방들 중에서도, 황후의 여방들 중에서도 용모가 뛰어나고 느낌이 좋으며 품위 있는 여성들은 모두 주조의 소시 소속으로 두게 하였고, 원에 머무는 것이 어디에 있는 것보다 즐겁도록 배려하셨으며, 마치 즐거운 장난감처럼 여기셨다.
현대의 모궁께서는 불공드리는 일에만 전념하고 계셨고, 매달 행하는 염불, 일 년에 두 번 있는 법화의 팔강, 그 밖의 이따금 있는 불사 등을 빠짐없이 행하는 것이 본분인 듯하여, 드나드는 주조를 오히려 당신 자신이 자식처럼 의지하고 계셨기에 안쓰러워 곁을 떠나지 못했고, 원께서도 궁중에서도 늘 불러대었으며, 도구(東宮)와 동생 되는 궁들도 친구처럼 여겨 함께 놀고자 하였기에 틈이 없어 괴로운 주조는 한 몸을 몇으로 나누어 쓸 수 없을까 하고 탄식하였다. 가끔 귀에 들어와 어린 마음에도 납득할 수 없었던 일은 지금도 풀리지 않은 채 마음속에 남아 있었으나 묻는 이도 없었다. 모궁께는 그러한 의문을 품고 있다는 것조차 송구스러운 문제였기에, 다만 자기 마음속으로만 끊임없이 그 일을 생각하며,
'어찌하여 내가 태어나게 되었는가, 무슨 숙명으로 이런 번민을 짊어지고 내가 사람이 되었는가. 선교 태자는 스스로 석가의 자식임을 깨달았다고 하는데, 나도 그러한 지혜를 얻고 싶구나.'
라고 혼잣말을 할 때도 있었다.
알 수가 없구나, 누구에게 물어보리까. 어찌하여 시작도 끝도 알지 못하는 내 몸이 되었는지.
대답해 주는 이는 아무도 없다. 자신의 건강조차 이런 일로 해치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어 중장은 한탄하는 것이었다. 궁께서 한창 젊은 나이에 비구니가 되신 것도 도대체 얼마나 깊은 신앙심이 있었기에 갑작스레 출가를 단행하셨는지, 자신이 태어난 일이 상서롭지 못했기에 염세적인 마음을 가지게 되신 것이 아닐까, 사람들이 그 비밀을 깨닫지 못하고 있을 리는 없으며 어둠 속에 묻어두어야 할 문제이기에 나에게는 말해주지 않는 것이리라 중장은 생각했다. 아침저녁으로 불공을 드리고는 있는 듯하지만, 확고한 신념이 있다고는 생각되지 않는 여자의 깨달음만으로는 부처님의 구원의 손길도 미덥지 않고, 오계조차 완전히 지켜나갈 수 있을지도 의문이기에 자신이 그 정신만이라도 보충하여 저세상에서만큼은 편안히 지내시게 해드리고 싶었다. 이분은 돌아가신 원께서도 나라는 존재 때문에 불쾌한 마음으로 괴로워하셨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다음 세상에서라도 다시 한번 뵙고 싶다는 바람이 생겨 겐푸쿠를 하고 사회로 나가는 것을 꺼렸으나, 의지를 관철할 수도 없어 관직에 나가는 몸이 된 이후로는 사방의 화려한 세력이 이 사람을 치장하게 되어도 기쁘다고는 생각지 않았고, 그저 조용하고 차분한 사람이 되어 있었다. 제께서도 모친의 연고로 이 중장에게 깊은 애정을 품으셨고, 중궁은 말할 것도 없이 같은 원내에서 자신의 궁들과 함께 자라며 함께 놀던 시절의 대우를 그대로 해주셨다.
"끝에 태어나 가엾은 아이구나. 혼자 앞가림을 할 때까지 내가 지켜봐 줄 수도 없겠지."
원께서 하신 말씀을 생각하며 깊은 애정을 쏟고 계셨다. 유기리 우다이진 또한 자신의 아들들보다 이 사람을 더 아끼고 정성껏 대했다. 옛 히카루 겐지는 제왕의 더할 나위 없는 사랑을 받는 아들이었으나, 질투하는 반대파가 있고 어머니 쪽의 보호자도 없었기에 총명한 자질에도 불구하고 세상을 향해 신중하게 처신했으며, 한 시대를 뒤흔들만한 일이 벌어졌을 때도 깨끗하게 스스로 분란의 중심에서 물러나 종교에 귀의하여 냉정하게 앞날을 도모했다. 이 주조는 어린 시절부터 이미 모든 조건을 갖춘 축복받은 환경에 있었다. 그리고 그에 걸맞은 우수한 남자이기도 했다. 부처가 잠시 사람의 모습으로 현신했나 싶을 정도의 점이 이 사람에게 있었다. 용모도 딱히 어느 부분이 가장 아름답다고 할 곳은 없고 눈을 의심케 할 정도는 아니었으나, 그저 요염하고 귀티가 나며 현명해 보이는 점이 남들과 달랐다. 이 세상의 것 같지 않은 고상한 향기를 몸에 지니고 있다는 점이 가장 특이한 점이었다. 멀리 있어도 이 사람이 지나가는 바람은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이 정도 신분의 사람이 겉모습을 꾸미지 않고 있는 그대로 사람들 앞에 나설 리 없으니 남보다 조금이라도 더 뛰어난 인상을 주려는 준비는 할 법도 하건만, 기이할 정도로 퍼져 나가는 향기 때문에 몰래 다니기도 불편하여 귀찮게 여겨 향을 피우는 일은 삼갔다. 그럼에도 이 사람의 집에 보관된 향들이 특별하고 고아한 향취를 더하게 되었고, 정원의 화초들도 이 사람의 소매가 닿기만 하면 봄비 내리는 날 나뭇가지의 물방울조차 몸에 사무치는 향기를 내뿜게 되었다. 가을 들판의 누구의 것도 아닌 등골나물조차 이 사람이 지나가면 본래의 향은 사라지고 그리운 향기로 바뀌곤 했다. 이렇게 신비로운 맑은 향기를 지닌 점을 효부쿄노미야는 다른 무엇보다 부러워하며 경쟁심을 불태우게 되었다. 궁은 인위적으로 뛰어난 향을 옷에 배게 하는 것을 아침저녁으로 즐기셨고, 저택의 정원에도 봄꽃은 매화를 중심으로 삼고 가을에는 사람들이 좋아하는 마타리나 쇠별꽃의 짝이 되는 싸리꽃 등은 거들떠보지도 않은 채, 불로초인 국화나 시들어가는 등골나물, 볼품없는 마타리처럼 향기가 있는 것들을 서리 내릴 때까지 사랑하는 풍류를 즐기고 계셨다. 옛 히카루 겐지는 이처럼 편향된 취향은 갖지 않았었다.
미나모토 주조는 시종 니조인으로 효부쿄노미야를 찾아뵈었으며, 음악을 연주할 때도 서로 우열을 다투는 듯한 피리 소리를 주고받으며 서로를 호적수로 인정하는 젊은 사이였다. 세상도 잠자코 있지 않았다. 향기 나는 효부쿄, 향기 나는 주조라며 시끄럽게 떠들었고, 훌륭한 딸을 둔 귀족들은 이 귀공자들을 사위로 삼으려 호기심을 자극하는 이들도 있었는데, 궁은 상대 여인의 가치가 상당하다고 판단되는 이에게는 편지를 보내어 더욱 세밀하게 상대를 관찰하려 하셨다. 하지만 간절히 누구를 꼭 얻어야겠다고 생각하는 여인은 없었다. 레이제이인의 뇨이치노미야와 결혼한다면 기쁘겠다고 니오노미야가 생각하는 것은, 그분의 어머니인 뇨고 또한 인격이 훌륭하고 존경할 만한 재녀이며, 공주님 또한 그에 걸맞게 뛰어난 평판을 얻고 계신 분이기 때문이었다. 멀리서 들려오는 평판뿐만 아니라 니오노미야는 공주 곁의 여방에게서 자세한 사정까지 듣고 계셨기에, 이제는 참기 힘든 연정으로까지 변해 있었다.
주조는 인생이 허무하다는 것을 깨닫고 있었기에, 외롭다고 해서 연애 같은 것을 하면 도리어 이 세상을 버릴 때 방해가 될 것임을 알고 있어, 보호자와의 관계가 번거로운 여성에게 구혼하는 것은 삼가고 있었다. 자신은 영원히 이러한 냉정한 태도를 유지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겠지만, 그것은 그저 현재의 카오루 주조가 열정을 다해 사랑하는 이가 없기 때문일 것이라 생각된다. 부모 형제의 동의 없는 연애 결혼 따위는 더더욱 이룰 수 없는 카오루였다. 열아홉 살이 되던 해에 산미노산기가 되었고, 주조도 겸하고 있었다. 제와 황후도 각별한 애정을 쏟는 인물로서 신하로서 이보다 더 행복한 존재는 없으리라 보이는 카오루였지만, 마음속에는 순수한 로쿠조인의 아들이라고 생각되지 않는 불행한 인식이 잠겨 있어 낙천적일 수 없는 사람이었고, 귀공자들에게 흔한 방탕한 생활을 하는 것도 좋아하지 않았다. 조용하고 차분하게 세상을 바라보는 노성한 느낌의 남자로 사람들에게 비치고 있었다. 효부쿄노미야의 연정이 해가 갈수록 깊어가는 원의 잇폰노히메미야(一品姫宮)도, 같은 원 안에 머무는 카오루에게는 특별한 계기로 소식을 알 수 있었고, 소문대로 우수한 자질을 갖춘 귀녀라는 것을 알고서는 이런 분을 아내로 맞이할 수 있다면 살아갈 보람을 느낄 것이라 생각했지만, 원께서 친자식과 다름없는 대우를 카오루에게 해 주시면서도 공주와의 사이만큼은 엄격히 거리를 두게 하시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억지로 교제를 구할 마음은 들지 않았다. 예기치 않게 사랑의 첫 길에 발을 들이는 일이 혹시라도 생긴다면, 공주를 위해서도 자신을 위해서도 좋지 않으리라 여겨 친해지려 마음먹지는 않았다.
사람들에게 사랑받을 만한 풍채를 지닌 카오루였기에, 가볍게 유혹의 말을 건넸을 뿐인 여인들에게도 모두 호의를 샀다. 마지못해 연인 관계가 된 듯 진지한 애인으로 인정하지 않는 상대도 많아졌으나, 여인들을 위해 비밀로 하는 편이 낫다 여겨 모두 은밀히 묻어두었다. 무정하다 생각되지 않을 정도로 누구의 처소든 남들의 눈을 피해 찾아다녔는데, 여인들 쪽에서는 오히려 숨이 막힐 듯 괴로워하며 카오루가 이끄는 대로 산조의 어머니 궁 처소로 여방 노릇을 하러 모여드는 이가 많아졌다. 냉담한 태도를 늘 대해야 하는 것도 고통이었지만, 절연당하는 것보다는 낫다며 불안한 연인들은 생각했고, 여방 노릇을 할 신분이 아닌 이들도 이렇게 카오루와 덧없는 관계를 지속하며 위안을 삼았다. 과연 그립고 바라보기만 해도 감정이 고조되는 사람이었기에, 어떤 여인도 억지로 자신을 속여가며 이 처지에 만족하고 있었다.
"궁님께서 살아 계시는 동안에는 매일 찾아뵙는 일을 게을리하지 않을 생각이니까."
라고 카오루 주조는 말했었다. 이런 사람이었기에 유기리 우다이진도 여럿 있는 딸 중 한 명은 니오노미야에게, 한 명은 이 사람의 아내로 삼고 싶다는 희망은 가지고 있었으나 입 밖으로 내기를 주저했다. 아무래도 친인척 사이의 일이라 세간의 평판도 좋지 않으리라는 것을 대신도 알고 있었지만, 이 두 명의 빼어난 귀공자에 비견할 만한 사람이 없는 세상이라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구모이노카리 부인이 낳은 딸들보다 도노나이시(藤典侍)가 낳은 여섯째 딸이 훨씬 아름답고 성품 또한 흠잡을 데 없는 영애였다. 신분이 낮은 어머니에게서 태어난 아이로 세간이 경멸하며 보는 것을 안타깝게 여긴 대신은, 온나니노미야(女二宮)께서 아이를 갖지 못해 쓸쓸해하시는 기색이라 로쿠노키미를 나이시의 처소에서 데려와 궁의 양녀로 올렸다. 좋은 기회에 두 공자에게 공주의 기색을 은연중에 내비친다면 반드시 열성적인 구혼자로 만들 수 있을 것이며, 뛰어난 여인의 가치를 아는 것은 뛰어난 남자가 아니면 불가능할 것이라고 대신은 생각했다. 그리하여 로쿠노키미를 황후 후보라는 식으로 거창하게 대우하지 않고, 화려하고 눈길을 끄는 파격적인 대우를 하여 귀공자들의 마음을 많이 사로잡으려 했다.
어소에서 정월 궁술 대회 뒤에 좌대장인 유기리 우다이진의 저택에서 열리는 연회를, 대신은 로쿠조인에서 하기로 하고 니오노미야께도 참석을 청했다. 가케유미(賭弓) 자리에는 겐푸쿠를 올린 황자들은 모두 나와 계셨다. 황후 소생의 궁들은 모두 고귀하고 아름다웠으나, 그중에서도 풍류남이라 이름난 효부쿄노미야께서는 역시나 유난히 풍채가 훌륭해 보였다. 제4황자는 히타치의 태수이신데, 이분은 고이 소생이라 그런지 생각 탓인지 한참 뒤떨어져 보였다. 늘 있는 일이지만 승부는 왼쪽(좌근위)이 계속 이겼다. 예년보다 일찍 경기가 끝나 좌우의 대장이 퇴장하려 할 때, 대신인 대장은 니오노미야와 히타치노미야, 황후 소생의 고노미야를 자신의 수레에 함께 태워 돌아가려 했다. 카오루는 진 편인 우중장이어서 조용히 퇴장하려던 차에, 대신은 그 수레를 붙잡으며,
"궁님들께서 가시는 길을 배웅하러 가지 않겠나?"
라며 만류하고는 아들인 에몬노카미, 곤주나곤, 우다이벤 및 그 밖의 고관들을 섞어 태우고 로쿠조인으로 향했다.
다소 먼 길을 오는 동안 눈도 조금씩 내리기 시작해 운치 있는 황혼 무렵이 되었다. 피리 소리 등을 흥겹게 울리며 들어갔다. 로쿠조인은 이 외에는 그 어떤 부처의 나라라도 이토록 낮의 유흥 장소로 적합한 곳은 없으리라 생각되었다. 침전 남쪽 처마 밑 끝자리에 예년대로 주조가 남쪽을 향해 자리를 잡고, 북쪽을 향한 주인의 자리를 맞은편으로 하여 손님인 친왕들과 고관들의 자리가 마련되어 있었다. 술잔이 돌고 밤이 무르익을 무렵 '모토메코'가 연주되었다. 왼손으로 누르고 오른손으로 누르며 몇 번이나 소매를 비스듬히 하는 이때의 몸짓에 정원의 매화 향기가 훅하고 집 안으로 들어와, 미나모토 주조가 몸에 지닌 향기를 자아내는 것도 운치 있는 일이었다. 살짝 틈새로 엿보던 여방들도,
"어둠은 속절없어(매화꽃 빛깔은 보이지 않아도 향기야 어찌 숨길 수 있으리오)라고 말하는 시간에도 그분의 향기만큼은 누구든 알아챌 수 있습니다."
라며 카오루를 칭찬했다. 대신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용모도 풍채도 평소보다 더욱 뛰어나 보이는 카오루가 예의 바르게 앉아 있는 것을 보고,
"우코노에노주조도 한 소절 거하게. 너무 손님처럼만 있는 게 아니오?"
라고 말하자, 듣기 좋을 정도의 중음으로 "카미노마스" 등 모토메코의 한 구절을 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