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 도노 주조가 잊지 못하겠다며 이야기하던 도코나쓰의 여인이 아닐까 생각한 겐지의, 좀 더 자세히 캐고 싶어 하는 듯한 얼굴색을 본 고레미쓰는,
"우리 동료와의 연애인 것처럼 꾸며놓고는 사실 그 위에 주인께서 계시다는 것도 저희는 알고 있습니다만, 시녀를 상대로 한 가벼운 연애를 하는 척하고 있습니다. 저쪽에서는 감쪽같이 속이고 있다고 생각해서, 제가 찾아갔을 때 꼬마 시녀들이 실수로 말을 흘리면 갖가지로 둘러대며 자기들끼리만 있는 것처럼 꾸미려 하더군요."
하고 말하며 웃었다.
"자네 집에 있는 비구니 스님을 문병하러 갈 때 옆집을 엿볼 수 있게 해주게."
라고 겐지는 말했다. 설령 임시 거처라 해도 저 고조 집 근처에 있는 사람이니 신분이 낮을지라도 그 속에서 흥미로운 여인을 발견할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겐지의 비위를 맞추려 애쓰던 고레미쓰였고, 그 자신 또한 호색가라 남의 연애에도 흥미가 많았던 터라, 갖은 노력 끝에 겐지가 옆집 여인에게 드나들 수 있도록 했다.
여인이 누구인지 기필코 알아내려 하지 않으면서도, 겐지는 자신의 신분도 밝히지 않은 채 지극히 검소한 차림으로 대부분 수레도 타지 않고 다녔다. 깊이 사랑하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일이라고 고레미쓰는 해석하여, 자신이 타는 말에 겐지를 태우고 자신은 걸어서 뒤를 따랐다.
"저에게 구애를 받았던 저 집 여인은 이 모습을 보면 놀라겠지요."
라며 푸념하기도 했지만, 그 외에는 처음 유가오 꽃을 꺾으러 갔던 수행원과 겐지의 심부름꾼인지도 얼굴이 잘 알려지지 않은 어린 시종만을 대동하고 갔다. 그 뒤로 정체가 탄로 날까 염려되어 옆집으로 들르는 일도 없었다. 여인 쪽에서도 기이하게 생각했다. 편지 심부름꾼이 오면 몰래 뒤를 밟게 하거나 남자가 새벽에 돌아가는 길을 엿보게 해도 상대는 눈치가 빨라 매번 따돌려 버렸다. 게다가 겐지의 마음은 이미 깊이 사로잡혀 일시적인 관계로 끝낼 생각은 없었다. 이를 불명예스럽게 여기는 자존심 때문에 고민하면서도 자주 고조를 드나들었다. 연애 문제에 있어서는 진지한 사람도 과오를 저지르기 쉬운 법이라지만, 이 사람만큼은 그동안 여자 문제로 세상의 비난을 사는 일은 없었음에도 유가오 꽃에 기울어진 마음만은 예외였다. 헤어질 때도 낮에도 그 사람이 곁에 없다는 고통을 절실히 느꼈다. 겐지는 스스로 미친 짓이라며, 그 정도의 가치가 있는 연인인가 하고 반성도 해보았다. 놀라울 정도로 유연하고 대범한 성격이며 깊이가 있는 사람도 아니다. 젊은 여인이긴 하나 처녀도 아니었다. 귀부인도 아닌 듯했다. 대체 무엇이 자신을 이토록 끌어당기는 것인지 이상할 뿐이었다. 겐지는 평소에는 입을 일이 없는 사냥복 등을 입고 변장한 채 얼굴조차 제대로 보여주지 않았다. 한밤중 사람이 잠든 뒤에 찾아가거나 밤중에 돌아오니, 여인 쪽에서는 옛 미와 신화처럼 느껴져 꺼림칙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어떤 사람인지는 손의 감촉으로도 알 수 있는 법이라, 젊은 풍류남이 아니면 누구인지 겐지를 관찰하지 않았다. 역시 호색한인 옆집 고이(五位)가 데려온 사람이 틀림없다고 고레미쓰를 의심하고는 있었으나, 그 사람은 전혀 눈치채지 못한 듯 여전히 시녀에게 편지를 보내거나 찾아오곤 했기에, 어찌 된 일인지 여인 쪽에서도 평범한 연애의 고민과는 다른 번민을 하고 있었다. 겐지 또한 이렇게 끝까지 진실을 숨기면 자신도 여인이 누구인지 알 길이 없을 터였다. 지금 집이 임시 거처라는 것은 틀림없어 보이니, 어딘가로 이사를 가버리면 자신은 그저 망연자실할 뿐이리라. 행방을 잃어도 금방 포기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건 결단코 불가능한 일이었다. 세상의 눈을 피해 만남을 건너뛰는 밤이면 견딜 수 없는 고통을 느끼는 터라 겐지는 생각했다. 세상에는 아무도 알리지 말고 니조의 원으로 데려오자, 비난을 듣더라도 자신은 그렇게 되리라는 전생의 인연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스스로도 이토록 여인에게 마음을 빼앗긴 경험이 과거에 없다는 것을 생각하면 아무래도 숙명이라 해석하는 것이 옳으리라, 겐지는 그렇게 생각하며,
"그대도 마음을 먹어주구려. 나는 편안한 집으로 그대를 데려가 부부 생활을 하고 싶소."
"하지만 아직 당신은 저를 평범하게 대하시는 분이 아니니 불안해서요."
젊은 유가오가 말하자, 겐지는 미소 지었다.
"그래, 둘 중 하나가 여우인가 보구려. 하지만 속아 넘어가 있으면 그만 아니겠소?"
겐지가 그리운 듯 말하자 여인은 그 분위기에 젖어 들었다. 어떤 결점이 있다 한들 이토록 순수한 여인을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싶었을 때, 겐지는 처음부터 의심하던 대로 도노 주조의 '도코나쓰' 여인이 바로 이 사람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떠올랐다. 하지만 숨기는 데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으리라 여겨 억지로 물어볼 생각은 들지 않았다. 기분이 상했을 때 갑자기 등을 돌리고 떠날 성격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자신이 발길을 끊게 되면 혹여 그런 태도를 보일지도 모르겠지만,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지금의 열정이 조금 식을 때 오히려 여인의 진가를 알게 되지 않을까 싶었다. 그것을 바라면서도 그럴 수 없는 상황이니 관계가 끊어질 일은 없을 터였고, 따라서 여인의 마음을 불안해할 필요는 없음을 알고 있었다.
8월 15일 밤이었다. 밝은 달빛이 판자 지붕의 틈새투성이인 집 안으로 쏟아져 들어와, 좁은 집 안의 물건들이 겐지의 눈에 낯설게 보였다. 이제 날이 밝을 무렵인 모양이다. 이웃집들에서 가난한 사내들이 잠에서 깨어나 큰소리로 떠드는 것이 들렸다.
"아, 춥다. 올해는 장사가 잘될 거라는 자신조차 없어졌어. 지방을 돌 수도 없으니 참으로 앞날이 막막하군. 북쪽 이웃, 자 좀 들어보게."
등등의 말을 하고 있었다. 가련하게도 그날그날 벌어먹기 위해 일어난 사내들이 노동을 시작하는 소리가 가까운 곳에서 들려오자 여인은 부끄러워했다. 젠체하는 여인이었다면 죽고 싶을 만큼 거북했을 장소임이 분명했다. 하지만 유가오는 대범했다. 사람을 원망하는 마음도, 자신의 슬픔도, 체면을 차릴 수 없는 거북함도 최대한 겉으로 드러내지 않으려 했고, 귀족의 자제답고 아가씨다웠으며, 형편없는 이웃들의 대화 내용조차 알아듣지 못하는 듯한 모습이 부끄러워하는 것보다 훨씬 좋게 느껴졌다. 쿵쿵대며 천둥보다 무서운 소리를 내는 절구질 소리도 바로 머리맡에서 나는 듯 들렸다. 겐지조차 시끄럽다고 생각했지만, 이 귀공자는 무엇에서 나는 소리인지도 알지 못했다. 그저 엄청난 굉음을 내는 무엇이라고만 생각했다. 그 밖에도 많은 소란스러운 잡음이 들려왔다. 흰 베를 치는 다듬이질 소리도 여기저기서 났다. 하늘을 지나는 기러기 소리도 들렸다. 가을의 비애가 사무치게 느껴졌다. 정원과 가까운 방이었기에 옆의 미닫이문을 열고 둘이서 밖을 내다보았다. 작은 정원에는 멋스러운 대나무가 서 있었고, 풀잎 위의 이슬은 이런 곳의 것이라도 니조의 원 앞 정원과 다를 바 없이 반짝이며 빛나고 있었다. 벌레들도 많이 울고 있었다. 벽 속에서 운다 하여 사람의 거처에 가장 가까이 우는 귀뚜라미조차 겐지는 멀리서 나는 소리로만 들어왔지만, 이곳에서는 어느 벌레나 귓가에 머물러 우는 듯한 색다른 정취라고 겐지가 느끼는 것도 유가오를 깊이 사랑하는 마음이 모든 것을 좋게만 보이게 해서일 터였다. 흰 겹옷에 부드러운 연보랏빛 옷을 겹쳐 입은 화려한 모습은 아니었다. 가냘픈 사람으로 어디 하나 특별히 빼어난 곳은 없으나 섬세한 느낌의 미인이었고, 말하는 모습에 나약하고 가련한 기색이 역력했다. 재치 같은 것을 조금만 더 갖추었더라면 하고 겐지가 비평적으로 보면서도, 더 깊이 이 사람을 알고 싶어져서,
"자, 나가십시다. 이 근처의 어느 집으로 가서 편안하게 내일까지 이야기 나눕시다. 이런 식으로 매번 어두울 때 헤어져야만 하는 건 괴로우니까요."
라고 말하자,
"어찌하여 그렇게 급한 말씀을 하시는지요."
대범하게 유가오는 말했다. 변치 않는 사랑을 저승까지 이어가겠노라는 겐지의 맹세를 듣고는 아무런 의심도 없이 믿고 기뻐하는 모습의 천진함은 한 번 결혼한 경험이 있는 여인이라고는 믿기 어려울 정도로 가련했다. 겐지는 이제 누구의 시선도 꺼릴 마음이 없어져 우콘에게 수행원을 부르게 하여 차를 정원으로 들일 것을 명했다. 유가오의 시녀들도 이 남자가 주인을 깊이 사랑하고 있음을 알았기에 누구인지 모르는 상태에서도 꽤 신뢰하고 있었다.
날이 꽤 밝아왔다. 이 집에는 닭 울음소리는 들리지 않고, 현세 이익을 바라는 미타케 신앙 때문인지 노인네 목소리로 일어나 앉았다 하며 매우 바쁘고 고통스럽게 기도하는 소리가 들렸다. 겐지는 몸에 사무치듯 느껴져, 아침 이슬처럼 짧은 목숨을 가진 인간이 이 세상에 무슨 욕심이 있어 기도 따위를 하는 것일까 생각하며 듣고 있는데,
"나무 당래의 도사여."
하고 아미다여래를 불렀다.
"저것 좀 들어보게나. 현세 이익만이 목적은 아니었군."
하고 칭찬하며,
재가 신자가 걷는 수행의 길을 길잡이 삼아 내생에도 깊은 인연 어기지 마오.
하고 말했다. 현종과 양귀비가 칠월 칠석날 장생전에서 나눈 맹세는 실현되지 못한 환상이었으나, 겐지는 56억 7천만 년 후 미륵보살이 나타나는 세상까지 변치 않을 맹세를 한 것이다.
전생의 인연 알아버린 이 몸의 괴로움, 앞날을 기약하기도 어려워라.
하고 여인은 말했다. 시를 짓는 재주가 풍부할 것 같지는 않았다. 달밤에 나가면 달의 유혹에 이끌려가 돌아오지 못하는 일이 있다는 생각에 외출을 주저하는 유가오에게 겐지는 이런저런 말로 동행을 권하던 차에 달도 자취를 감추고 동쪽 하늘이 하얗게 밝아오는 가을 새벽녘이 시작되었다.
사람들 눈에 띄기 전에 서둘러야겠다고 생각한 겐지는 출발을 재촉했다. 겐지가 여인의 몸을 가볍게 안아 차에 태우고 우콘이 함께 탔다. 고조 인근에 있는 황실의 후원인 모 원에 도착했다. 불러낸 원의 관리인이 나올 때까지 멈춰 서 있는 차 안에서, 시노부풀이 무성하게 우거진 문 처마를 올려다보았다. 수많은 큰 나무가 그늘을 만들고 있었다. 안개도 짙게 내려 공기가 습한데 차의 발을 걷어 올리게 했던 겐지의 소매는 금세 흠뻑 젖어 버렸다.
"나에겐 처음 겪는 일인데 묘하게 불안하군.
예전 사람들도 이토록 헤매었을까, 내 아직 알지 못하는 새벽길을.
예전에 이런 일이 있었소?"
그렇게 묻자 여인은 부끄러운 듯했다.
산마루 너머 마음도 모른 채 가는 달, 하늘 위에서 그 자취나 사라질까.
불안하옵니다, 저는."
으스스한 분위기에 여인이 겁먹은 듯 보이는 것을, 겐지는 그 작은 집에 여럿이 살던 사람이니 당연한 일이라 여기며 재미있어했다.
문 안으로 수레를 들이고 서쪽 대청에 준비를 시키는 동안, 겐지 일행은 난간에 수레채를 걸쳐 두고 정원에 있었다. 우콘은 고즈넉한 정취를 맛보며 여주인의 과거 연애 시절 한 장면이 떠오르는 듯했다. 관리인이 직접 나와 손님을 대하는 태도가 지극히 정중했기에 우콘은 이 풍류남이 누구인지 눈치챌 수 있었다. 사물이 어렴풋이 보일 무렵 집 안으로 들어갔다. 급히 마련한 자리였지만 제법 그럴듯하게 방이 꾸며져 있었다.
"그리 대단한 분이 수행원도 없이 오시다니, 이거 참 도무지 원."
라며 관리인은 늘 겐지의 저택을 드나들던 하급 가신이었기에 방 근처로 와서 우콘에게,
"수행원이라도 한 분 불러올까요?"
라고 전하게 했다.
"일부러 아무도 모르는 이곳을 택한 것이니, 너 말고는 누구에게도 철저히 비밀로 해두어라."
라고 겐지는 입단속을 시켰다. 곧바로 차려진 죽 등이 나왔다. 시중드는 이도 식기도 임시변통으로 해결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경험이 없는 겐지는 모든 것을 다 잊고 신경 쓰지 않기로 한 채, 연인과 거리낌 없이 속삭이는 즐거움에 취하려 했다.
겐지는 낮 무렵에 일어나 스스로 격자문을 올렸다. 매우 황량하여 사람 그림자 하나 보이지 않고 아득히 먼 곳까지 내다보였다. 건너편 나무숲은 기분 나쁘게 모두 오래된 큰 나무들이었다. 가까운 곳의 풀이나 관목 등은 아름다운 모습이라곤 없었다. 가을날 황야의 풍경이었다. 연못도 수초로 뒤덮여 으스스했다. 떨어진 건물 쪽 방에 관리인이 사는 듯했는데, 그곳과는 꽤 멀었다.
"기분 나쁜 집이 되었군. 하지만 귀신 따위가 있다 한들 나만은 어쩌지 못할 게야."
라고 겐지는 말했다. 아직 이때까지는 얼굴을 숨기고 있었지만, 이런 태도를 여인이 원망한다는 것을 알고는, 무슨 착오인가, 불경스러운 것은 자신이며 이토록 사랑하면서 왜 그랬을까 하고 깨달았다.
저녁 이슬에 피어나는 꽃, 타마보코의 인연으로 맺어진 인연이로구나.
"당신이 '짐작건대 그 꽃이련가'라고 말했을 때, 사람의 얼굴을 가까이서 보고 환멸을 느끼지 않으셨나요?"
라고 말하는 겐지를 곁눈질하며 여인은 올려다보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