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고만 말씀하시고는 나머지는 다른 이야기로 돌려버리셨다. 이제 앞으로는 편지를 주고받는 일조차 더욱 어려워지겠구나 생각하니 와카기미의 마음은 어두워져 갔다. 저녁상이 나와도 거의 먹지 않고 일찍 잠든 척하면서도, 어떻게든 연인을 만나야겠다는 생각에 사로잡힌 와카기미는 모두가 잠든 틈을 타 공주의 거처와 이어진 문을 열려 했으나, 평소에는 따로 자물쇠를 채우는 일도 없던 칸막이가 오늘 밤은 단단히 빗장이 걸려 있었고, 저쪽에서 사람 기척도 들리지 않았다. 와카기미는 불안해져 문에 기대고 있는데, 공주도 잠에서 깨어 있었고, 바람 소리가 정원의 대나무에 머물며 스산하게 울리고 하늘을 지나는 기러기 울음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오자, 천진난만한 사람도 가슴에 사무치는 것이 있는지 "구름 속 기러기도 나처럼인가(짙은 안개 속 구름 위의 기러기도 나처럼 맑게 개지 못한 채 이토록 처량한가)"라고 읊조리고 있었다. 그 모습이 소녀답고 매우 가련했다. 와카기미의 불안함은 더해져,
"여기를 열어주세요. 고지주는 없나요?"
라고 말했다. 저쪽에서는 아무도 대답하는 이가 없다. 고지주는 공주 유모의 딸이다. 혼잣말을 들킨 것도 부끄러워 공주는 요를 얼굴까지 뒤집어쓰고 말았지만, 마음속으로는 연인을 가엽게 여기고 있었다, 어른처럼. 유모 등이 가까운 곳에서 자고 있어 움직임조차 쉽지 않은 것이다. 그 후로 두 사람 모두 침묵했다.
한밤중에 벗을 불러 날아가는 기러기 소리에, 야속하게도 더해져 부는 억새 위의 바람.
몸에 사무치는구나 생각하며 와카기미는 미야의 거처 쪽으로 돌아갔으나, 한숨 섞인 탄식을 혹여 미야께서 잠에서 깨어 들으실까 염려되어 몸을 뒤척이며 잠을 청했다.
와카기미는 이유 없이 부끄러워 서둘러 일어나 자신의 거처로 가서 편지를 썼지만, 두 사람의 아군인 고지주도 만날 수 없었고 공주의 거처로 갈 엄두도 내지 못한 채 번민하고 있었다. 여인 쪽도 아버지에게 꾸지람을 듣고 모두의 입에 오르내리는 것만이 부끄러워, 자신이 어떻게 될지, 그이가 어떻게 될지는 깊이 생각하지 않고 있었다. 아름답게 두 사람이 기대어 앉아 사랑을 속삭이는 것이 나쁘거나 추한 일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그런 시절이 그리웠다. 이토록 모두에게 소란을 피울 일인가 싶었지만, 유모 등에게 심한 잔소리를 들은 뒤라 편지를 써서 보낼 수도 없었다. 어른이라면 그런 와중에도 틈을 탈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상대인 와카기미도 소년이라 그저 안타깝게 여기기만 할 뿐이었다.
내대신은 그 뒤로 찾아오지 않으면서도 미야를 몹시 원망하고 있었다. 부인에게는 구모이노카리 공주의 이번 사건에 관해 이야기하지 않았으나, 그저 까다롭게 굴며 불쾌한 기색을 보였다.
"중궁께서 화려한 의식으로 입후 후 궁중에 들어가신 이 시점에, 뇨고가 같은 처소에서 울적한 마음으로 지내고 있다고 생각하면 나는 참을 수가 없으니, 퇴출시켜서 마음 편히 집에서 쉬게 해주고 싶소. 과연 폐하께서 곁을 떠나지 못하게 하시어 밤낮으로 위의 어전으로 올라가고 있으니, 여방들도 긴장만 하고 있어야 하는 것이 힘들어 보여서 말이오."
이렇게 부인에게 말한 대신은 갑자기 뇨고를 퇴출시킬 휴가를 제에게 청했다. 총애가 깊은 사람이었기에 휴가를 허락하기 어렵게 여기신 제였으나, 대신이 여러 이유를 들어 뜻을 굽히지 않으려 하자 제는 마지못해 허락하셨다. 자택으로 돌아온 뇨고에게 대신은,
"따분할 터이니 저쪽의 공주를 불러 함께 지내도록 하거라. 미야께 맡겨두는 것이 안심은 되겠다만, 연로한 여방이 저쪽에는 너무 많아서 동화되어 젊은 사람의 조심성이 사라질까 걱정이니, 이제 그런 것도 생각해야 할 나이가 되었기 때문이다."
이런 말을 하며 서둘러 구모이노카리를 데려오기로 했다. 오미야는 힘을 잃고,
"딸아이 하나를 잃고 나서 마음이 허전해 외로워하던 차에, 당신이 공주를 데려다주었기에 나는 평생 바라보며 즐거워할 보물처럼 여겨 돌보고 있었는데, 이 나이가 되어 당신에게 신용을 잃었다고 생각하니 원망스럽구려."
라고 말씀하시자, 대신은 삼가며 말했다.
"유감스럽게 생각한 점은 그 자리에서 있는 그대로 말씀드린 것뿐입니다. 어찌 당신님을 신용하지 못할 일이 있겠습니까. 궁에 있는 딸이 여러모로 밝지 못한 모습으로 이번에 저택으로 돌아와 있으니, 따분해하는 것이 가여워 함께 지내면 좋을 듯하여 잠시 데려가려는 것입니다."
또,
"오늘날까지 정성껏 길러주신 은혜는 결코 잊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라고 말했다. 이처럼 결정한 것은 멈추려 해도 뜻을 굽힐 성격이 아님을 알고 계신 미야께서는 그저 안타깝게 여기실 뿐이었다.
"사람이란 어떤가, 아무리 사랑하는 사람이라도 이쪽을 그만큼 생각해 주지는 않는 법이지. 젊은 두 사람이 그렇지 않은가, 나에게 숨기고 큰 사건을 저질러 버렸잖아. 그것은 그렇다 치고 대신은 훌륭하고 성숙한 사람이면서 나를 원망하여, 이런 식으로 공주를 데려가 버리는구나. 저쪽으로 가서 이곳에 있는 것보다 평화로운 날이 있을 것 같지는 않군."
눈물을 흘리며 미야는 여방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마침 그때 와카기미가 찾아왔다. 조금이라도 틈이 있을까 싶어 요즘 자주 찾아오는 터였다. 내대신의 수레가 멈춰 서 있는 것을 보고 찔리는 마음이 있어 겸연쩍음을 느낀 와카기미는 살며시 들어와 자신의 거처로 숨었다. 내대신의 아들들인 사쇼쇼, 쇼나곤, 효에노스케, 지주, 다이부 같은 이들도 이 저택에 오지만 어렴 안으로 들어오는 것은 허락되지 않았다. 사에몬노카미, 곤주나곤 같은 내대신의 형제들은 다른 어머니에게서 태어난 이들이었으나, 고인이 된 태정대신이 미야께 친자식의 예를 갖추게 했던 관계상 지금도 경의를 표하러 오고 그 자녀들도 출입하지만, 누구도 겐지의 와카기미만큼 아름다운 얼굴을 한 이는 없었다. 미야께서 비할 데 없이 사랑하는 손주였지만, 그 외에는 구모이노카리만이 손수 길러 깊은 애정을 쏟던 손주였는데, 갑자기 이렇게 떠나버리게 되어 외로워질 것을 미야는 한탄하셨다. 대신은,
"잠시 궁에 들렀다가 저녁에 데리러 오겠습니다."
라고 말하고 떠났다. 사실에 살을 붙여 결혼을 시켜도 좋겠다고 대신의 마음에도 생각되었지만, 역시나 아쉬운 마음이 앞서 적어도 상당한 관력을 갖추게 될 무렵, 딸에 대한 사랑의 깊고 얕음을 보아 허락하더라도 형식을 갖춘 결혼을 시키고 싶었다. 엄중히 감독하더라도 남자의 집이기도 한 곳에 두면 젊은 것들은 방종한 짓을 할 것이 틀림없다. 미야도 억지로 막으려 하지는 않을 것이라 생각하며 뇨고의 무료함을 핑계 삼아 자신의 집으로도 관저로도 가벼운 행차인 양 꾸며 데려가려는 대신이었다. 미야는 구모이노카리에게 편지를 쓰셨다.
대신은 나를 원망하고 있을지 모르나, 너는 내가 얼마나 너를 사랑하는지 알고 있겠지. 이곳으로 만나러 오려무나.
미야의 말씀에 따라 예쁘게 치장한 공주가 나왔다. 나이는 열네 살이다. 아직 완전히 어른은 아니지만, 아이답고 조신한 아름다움이 있는 사람이다.
"늘 네 곁을 지키며 바라보는 것이 나에게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위안이었는데, 떠나버리면 쓸쓸해서 어찌할꼬. 나는 노인이니 너의 앞날을 지켜보지 못할까 싶어 죽음이 다가오는 것을 불안해하곤 했건만. 나와 헤어져 네가 가는 곳이 어디인가 생각하면 가엾어 견딜 수가 없구나."
라고 말씀하시며 미야는 눈물을 흘리셨다. 구모이노카리는 할머니인 미야가 탄식하는 원인이 자신의 연애 문제 때문이라는 사실을 깨닫자, 부끄러움을 참을 수 없어 얼굴도 들지 못한 채 그저 울기만 했다.
와카기미의 유모인 사이쇼노키미가 나와서,
"와카기미님과 함께하실 주인님이라고 지금까지 생각하고 있었는데, 떠나버리시다니 안타깝기 그지없습니다. 주인어른께서 다른 분과 혼인시키려 하셔도 결코 따르지 마십시오."
라고 나직이 말하자, 구모이노카리는 더욱 부끄러워져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런 번거로운 이야기는 하지 않는 편이 좋겠군. 인연이란 것은 누구든 전생부터 정해져 있는 것이니 알 수 없는 법이지."
하고 미야가 말씀하셨다.
"하지만 주인어른께서는 보잘것없다고 여기시어 와카기미님을 경멸하실 테니까요. 마님, 한번 지켜보십시오. 제 쪽의 와카기미님이 남들에게 뒤처질 분인지 어떤지."
분해하는 유모는 이런 말도 덧붙였다. 와카기미는 기초 뒤로 들어와 연인을 바라보고 있었으나, 남의 눈을 의식하는 것은 여유로울 때의 일일 뿐, 지금은 그런 생각조차 들지 않은 채 울고 있는 두 사람을 유모는 가엾게 여겨 미야께는 그럴듯하게 둘러대고는 저녁 어스름을 틈타 두 사람을 다른 방에서 만나게 해주었다. 어색함과 부끄러움에 두 사람은 말도 못한 채 울음을 터뜨렸다.
"숙부님의 태도가 원망스러워서, 그리워도 당신을 잊어버리려 생각하지만, 만나지 못하고 있으면 얼마나 괴로울지 벌써부터 걱정이 되어 견딜 수 없소. 만날 수 있었던 시절에 왜 나는 그리 자주 찾아오지 않았던가."
그렇게 말하는 남자의 모습에는 앳되면서도 마음을 사로잡는 무언가가 있다.
"저도 분명 괴로울 거예요."
"그리울 것이라 생각하는 거요?"
라고 남자가 묻자 구모이노카리는 아이처럼 고개를 끄덕였다. 방에는 등불이 켜졌고, 문밖에서는 대신의 전구자가 요란하게 사람들을 물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여방들이,
"자, 어서, 어서."
라고 소란을 피우기 시작하자 구모이노카리는 겁이 나서 몸을 떨기 시작했다. 남자는 이제 어떻게 되든 상관없다는 마음이 되어 공주를 돌려보내려 하지 않았다. 공주의 유모가 찾아와서야 비로소 두 사람의 만남을 알게 되었다. 이 무슨 불길한 일인가, 역시 미야는 모르고 계셨던 것이 아닌가 생각하니 유모는 원망스럽기 그지없었다.
"정말이지 슬픈 일입니다. 주인어른께서 화가 나셔서 무슨 말씀을 하실지 모를 일이고, 다이나곤 댁에서도 이 사실을 알게 되시면 어떻게 생각하실지요. 아무리 귀공자라 해도 첫 번째 주인어른이 아사기 옷을 입은 육위의 분이라니."
하는 소리도 들려왔다. 유모는 두 사람이 있는 병풍 뒤까지 다가와 투덜대고 있었다. 와카기미는 자신의 낮은 신분을 꼬집어 모욕하고 있다고 생각하니 갑자기 삶이 싫어지고 사랑조차 조금씩 식어가는 기분이 들었다.
"거봐, 저런 소리를 하고 있군.
홍화(紅花)의 눈물에 짙게 물든 소매 빛깔을, 옅은 푸른 빛이라 말하며 찢어버릴 셈인가.
부끄러워 견딜 수가 없소."
라고 말하자,
가슴에 사무치는 이 마음이 어찌 이리도 선명하게 느껴지는지, 무엇으로 물들인 속옷인가.
라고 구모이노카리가 채 말하기도 전에 대신이 이미 집 안으로 들어왔기에, 구모이노카리는 그 자리에서 일어났다. 홀로 남겨진 초라함 또한 부끄러워 슬픔으로 가슴이 먹먹해진 채, 와카기미는 자신의 거처로 들어가 잠을 청하려 했다. 세 대 정도의 수레에 나누어 타고 공주 일행이 저택을 조용히 떠나는 듯한 소리를 듣는 것조차 와카기미에게는 고통스럽고 슬펐기에, 미야께서 계신 방에서 오라는 전갈을 여방을 통해 보내셨을 때도 자는 척하며 몸을 뒤척이지도 않았다. 눈물은 그치지 않았고 한숨도 자지 못한 채 새벽이 밝아왔다. 서리가 하얗게 내린 때에 와카기미는 서둘러 길을 떠났다. 퉁퉁 부은 눈을 남에게 보이는 것이 부끄러운데, 미야께서는 분명 곁으로 부르시려 할 터이니 마음 편한 곳으로 가버리고 싶어진 것이었다. 수레 안에서도 와카기미는 깨어진 사랑의 슬픔을 절실히 느꼈으나, 하늘은 잔뜩 흐려 있었고 아직 어둡고 쓸쓸한 새벽이었다.
서리와 얼음 야속하게 맺히는 새벽녘 하늘, 어둡게 눈앞을 가리며 흐르는 눈물이라.
이런 노래를 떠올렸다.
올해 겐지는 고세치의 무희를 한 명 내보내게 되었다. 대단한 채비라고 할 것까지는 없지만, 시중드는 동녀의 의상 등을 날이 다가옴에 따라 준비시키고 있었다. 동원의 하나치루사토 부인은 무희가 궁중에 들어가는 밤, 시중드는 여방들의 복장을 도맡아 수하들에게 만들게 하였다. 니조인에서는 전체적인 의상이 일체 제작되고 있었다. 중궁께서도 동녀와 하급 여방 몇몇의 의복을 화려하게 지어 보내주셨다. 작년은 국상(諒闇)으로 고세치가 없었던 탓도 있어, 누구나 다가오는 고세치에 마음 설레는 해였기에, 다섯 명의 무희를 각자 맡아 내보내는 곳곳마다 화려함이 경쟁되고 있다는 평판이 자자했다. 아제치 다이나곤의 딸, 사에몬노카미의 딸 등이 출전하게 되어 있었다. 그리고 전상 관인 중에서 한 명 내보내는 무희로는, 지금은 오미노카미이자 좌중변을 겸하고 있는 요시키요 아손의 딸이 뽑히게 되었다. 올해의 무희는 그대로 이어서 여관으로 채용될 예정이었기에, 다들 애지중지하는 딸을 아끼지 않고 내보내는 것이라고들 했다. 겐지는 자신이 내보내는 무희로, 셋쓰노카미 겸 사쿄노다이부인 고레미쓰의 딸로 미인이라 알려진 아이를 뽑았다. 고레미쓰는 난처해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