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대를 맞이하며 사이구도 바뀌어, 로쿠조노 미야스도코로는 이세에서 돌아왔다. 그 이후로 겐지는 여러모로 예전 이상의 호의를 표하고 있었지만, 젊은 시절에도 원망스러운 점이 있었던 겐지의 마음, 말하자면 그 여열(餘熱) 정도의 사랑을 받고 싶지는 않았으며, 이제 두 사람 사이에 연인 이상의 관계가 있어서는 안 된다고 미야스도코로는 마음먹고 있었기에 겐지도 스스로 찾아가지는 않았다. 억지로 옛정을 되살리려 해도, 자신도 모르게 또다시 여인을 원망하게 만들지 않을 거라 장담할 수 없다고 겐지는 생각했고, 여인의 집에 드나드는 것도 이제는 세간의 이목을 끄는 일이 많아졌기에, 기다린다는 말을 하지 않는 사람을 억지로 찾아가지는 않았다. 사이구가 얼마나 훌륭한 귀녀로 자라났을지, 그 모습을 보고 싶기는 했다. 미야스도코로는 로쿠조의 옛 저택을 잘 수리하여 끝까지 고아한 모습으로 살고 있었다. 세련된 취미는 여전하여, 좋은 여방들이 많은 곳이라 풍류남들의 방문이 끊이지 않았다. 쓸쓸해 보이지만 자존심 높은 귀녀에게 어울리는 생활로 보였으나, 갑작스럽게 중병에 걸려 심약해진 미야스도코로는 이세라는 신의 영역에 머물며 불교와 멀어졌던 지난 세월이 두려워져 비구니가 되었다. 이 소식을 들은 겐지는 연인으로 생각하기보다 수긍할 만한 의견을 가진 좋은 상담 상대로 믿었던 그 사람의 목숨이 아까워 놀란 마음으로 로쿠조 저택을 찾아갔다. 겐지는 진심으로 미야스도코로를 돌보며 위로하는 말을 건넸다. 병상 가까이 겐지의 자리가 마련되었고, 미야스도코로는 협궤에 기대어 이야기하고 있었다. 매우 쇠약해진 옛 연인을 보며 겐지는 눈물을 흘렸다. 얼마나 사랑했는지 이 사람에게 증명해 보이지 못한 채 사별해야 하는가 싶어 아쉽기 그지없었다. 이러한 겐지의 마음이 미야스도코로에게 전해진 듯, 성의가 인정되는 옛 연인에게 미야스도코로는 사이구를 부탁했다.
"고아가 될 터이니, 무슨 일이 생기면 자식 하나라 생각하고 돌봐 주십시오. 달리 부탁할 사람 하나 없는 외로운 처지입니다. 저 같은 사람이라도 조금 더 인생을 알 만한 나이가 될 때까지는 곁에 있어 주고 싶었습니다."
이렇게 말한 뒤에 그대로 기절하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오미야코도코로는 울음을 그치지 않았다.
"당신의 부탁이 없어도 물론 저는 아버지와 다름없는 마음으로 사이구를 생각하고 있습니다. 하물며 당신께서 병중에도 이렇게 걱정하시며 제게 말씀하시는 일이라면, 끝까지 책임을 지고 받아들이겠습니다. 조금도 걱정하지 마십시오."
등등 겐지가 말하자,
"하지만 무척이나 고생스러운 일이 될 것입니다. 뒷일을 부탁받은 사람이 친아버지라 해도 어머니 없는 딸은 의지할 곳이 없어 불안할 것이라 생각됩니다. 하물며 연인의 대열에라도 넣으신다면 생각지도 못한 고생을 하게 될 것이고, 또 다른 분들을 불쾌하게 만들기도 하겠지요. 나쁜 상상이지만 결코 그런 식으로 대하지 마세요. 저 자신의 경험으로 미루어 볼 때, 그 아이는 연애도 하지 않고 평생 처녀로 지내게 하고 싶습니다."
미야스도코로는 이렇게 말했다. 뜻밖의 짐작까지 하는구나 싶었지만 겐지는 다시,
"최근의 제가 얼마나 진지한 사람이 되었는지 아실 것입니다. 예전의 방종한 생활의 잔재가 남아 있는 것처럼 말씀하시니 안타깝습니다. 자연히 알게 되시겠지만요."
라고 말했다. 어느덧 밖은 어두워져 있었다. 희미한 등불 그림자가 병상의 휘장을 통과해 비치고 있었기에 혹여 보일까 하여 조용히 다가가 휘장의 틈으로 엿보니, 밝지 않은 빛 속에 옛 연인의 모습이 있었다. 아름답고 화사해 보일 정도로 잘라 남긴 머리카락이 등에 드리워져 있고, 협궤에 기댄 모습은 그림 같았다. 겐지는 애처로워 견딜 수 없는 기분이 되었다. 대(臺)의 동쪽 편에 몸을 누이고 있는 사람은 전 사이구인 듯싶었다. 휘장의 드리운 비단이 흐트러진 사이로 가만히 눈길을 보내니, 궁은 턱을 괴고 슬픈 듯이 지내고 계셨다. 조금밖에 보이지 않았지만 미인임이 느껴졌다. 머리카락이 드리워진 모양, 머리 형태 등에서 고고한 아름다움이 느껴지면서도 현대적인 화려한 애교가 있는 모습도 알 수 있었다. 미야스도코로가 그토록 저지하듯 말하고 있었기에 겐지는 흔들리는 마음을 다잡았다.
"저는 또다시 너무 괴로워졌습니다. 결례가 되겠지만 이제 돌아가 주세요."
하고 오미야코도코로는 말하고는 여방의 손을 빌려 누웠다.
"제가 찾아뵈어 기분이 조금이라도 나아지셨다면 좋았을 텐데 안타깝군요. 어떤 점이 괴로우신가요?"
라고 말하면서 겐지가 자리를 들여다보려 하자, 오미야코도코로는 여방을 시켜 마지막 인사를 전하게 했다.
"오래 머무시면 악령이 오고 가는 곳이라 위험합니다. 병세가 이토록 악화되었을 때 찾아와 주신 것도 깊은 인연이라 생각되어 기쁩니다. 평소 생각하던 바를 조금이라도 말씀드릴 수 있었기에, 당신께서 유족에게 힘을 빌려주시리라 믿으며 든든하게 생각합니다."
"중요한 유언을 제게 해 주신 것을 기쁘게 생각합니다. 원(院)의 황녀들은 많이 계시지만 저와 친밀하게 지내주시는 분은 거의 없기에, 사이구를 원께서 당신의 친황녀와 같이 생각하시는 대로 저 또한 생각하여 남매처럼 다정하게 지내도록 합시다. 게다가 저에게는 이미 몇 명의 자식이 있어 좋은 나이가 되었으니, 저의 부족함을 사이구가 채워주시겠지요."
이렇게 말하고 겐지는 돌아갔다. 그 뒤로는 겐지가 보낸 문병 사자가 이전보다 더 잦게 오갔다. 그리고 칠팔 일 뒤에 미야스도코로는 세상을 떠났다. 덧없는 인생이 슬퍼 견딜 수 없게 된 겐지는 입궐도 하지 않은 채 틀어박혀 미야스도코로의 장례에 관한 지시를 내리고 있었다. 전 사이구의 관원 등으로 평소 가깝게 지내던 이들이 겨우 찾아와 장례 준비를 서두를 뿐인 로쿠조 저택이었다. 시신을 보낸 뒤 겐지 본인도 장례식장에 도착했다. 사이구에게 조문을 전달하게 하니,
"지금은 슬픔 때문에 아무것도 생각할 수 없으니."
여별당을 내보내 그리 말하게 했다.
"제게 남기신 유언도 있으니, 이제부터는 저를 친근한 사람으로 여겨 주신다면 다행이겠습니다."
겐지는 말하고 나서 궁가의 사람들을 불러 여러 일을 명했다. 워낙 든든한 태도였기에 예전에는 다소 원망스러워했던 일가 사람들의 감정도 풀려가는 듯했다. 겐지 쪽에서 장례 인원을 보내고 수많은 사용인이 찾아와 미야스도코로의 장례는 화려하게 치러졌다.
겐지는 쓸쓸한 마음을 안고 옛일을 추억하며 거실의 발을 내린 채 정진하며 불공을 드리고 있었다. 전 사이구에게는 줄곧 문병 편지를 보냈다. 궁의 슬픔이 조금 잦아든 무렵부터는 직접 답장을 쓰게 되었다. 그것을 부끄러워했지만 유모 등이,
"황송한 일이오니."
라고 말하며 친필로 쓰기를 권하는 것이었다. 눈이 진눈깨비가 되었다가 다시 하얀 눈으로 변하는 궂은 날씨에, 궁께서 얼마나 적적해하실까 상상하며 겐지는 사자를 보냈다. 이런 날씨에 어떤 마음으로 계십니까.
어지러이 흩날리며 끊임없이 내리는 하늘에, 떠난 이가 거닐고 있을 저곳은 슬프구려.
라는 편지를 보냈다. 종이는 흐린 하늘색을 사용했다. 젊은이의 눈에 좋은 인상을 남기려 애써 쓴 겐지의 글씨는 눈부실 만큼 훌륭했다. 궁은 답장을 쓰기 어려워했지만,
"저희가 인사를 드리는 것은 실례이오니."
라고 여방들이 재촉하기에, 훈향 냄새가 밴 매혹적인 회색 종이에 눈에 띄지 않게 적어,
사라지기도 어렵게 내리는 눈이 슬프구려, 하늘을 어둡게 하여 내 몸조차 누구인지 알 수 없는 이 세상에서.
라고 적었다. 차분하고 시원시원한 서체였으며, 빼어난 글씨는 아니나 품격이 있었다. 사이구가 되어 이세로 떠났을 때부터 겐지는 이분에게 흥미를 품고 있었다. 이제는 금기의 울타리 안에 있는 사람도 아니고, 보호자에게서도 해방된 한 여성으로 보아도 좋으니, 연인으로서 품은 마음을 속삭여도 좋을 때가 되었다고 생각하는 동시에, 그래서는 안 되며 가엾은 일이라 여겼다. 미야스도코로가 그 점을 걱정하기도 했고, 세간에서도 그런 의구심을 가지고 바라볼 것이기에, 자신은 이분에게 전혀 다른 맑은 대우를 하리라, 폐하께서 조금 더 어른스럽게 세상을 인식할 때를 기다려 전 사이구를 후궁에 들이고, 아이가 적어 적적한 자신은 양녀를 돌보는 일에서 즐거움을 찾으리라 겐지는 마음먹었다. 친절하게 계속해서 안부를 묻는 편지를 보냈고, 때로는 직접 로쿠조 저택을 찾기도 했다.
"실례지만, 어머니를 대신한다고 생각하시고 거리낌 없이 대해 주신다면 제 진심을 알아주신다는 생각이 들 것 같습니다."
라며 말하곤 했지만, 궁은 매우 내성적이고 수줍음이 많아 이성에게 희미한 목소리조차 들려주는 것은 생각지도 못한 일이라 여기셨기에 여방들도 권하기 어려워하여 궁의 조신함을 안타까워했다. 여별당, 나이시, 그 밖의 친척 관계인 왕가의 딸들도 곁을 모시고 있었다. 마음속에 잠재된 소망이 실현된다 하더라도, 다른 연인들 사이에 섞여도 뒤지지 않을 듯한 이분의 얼굴을 보고 싶다는 생각도 하고 있었던 겐지였기에, 양부로서 마음을 터놓지 못하는 상대가 총명하였던 모양이다. 자신의 마음도 아직 어떻게 될지 모르니 전 사이구를 입내시키려는 희망 같은 것은 남에게 말하지 않는 편이 좋다고 겐지는 생각했다. 고인의 불사 등에 특별히 힘써 주는 겐지에게 로쿠조 저택 사람들은 감사하고 있었다.
로쿠조 저택은 날이 갈수록 쓸쓸해지고 적막함이 더해가는 데다 미야스도코로의 여방들도 차츰 떠나가는 이들이 많아졌다. 교토에서도 아주 아래쪽인 로쿠조라 동쪽에 치우친 교고쿠 거리와 가까우니 교외만큼이나 쓸쓸함이 감돌아, 산사의 저녁 종소리에도 사이구의 눈물은 자아내지기 일쑤였다. 같은 어머니라 해도 궁과 미야스도코로는 부모 자식 단둘이서 한시도 떨어지지 않은 십몇 년의 세월을 보냈다. 사이구가 어머니와 함께 가는 것은 좀처럼 보기 드문 일이었으나, 억지로라도 함께 가길 청했던 어머니가 죽음의 길만은 홀로 떠나셨다고 생각하는 것이 사이구의 끝없는 슬픔이었다. 여방들을 중개하여 구혼하는 남자는 각 계급에 많았으나, 겐지는 유모들에게,
"제멋대로 행동하여 문제를 일으킬 만한 일을 궁님께 해서는 안 된다."
라고 부모다운 주의를 주었기에, 겐지를 불쾌하게 만들 만한 일은 삼가야 한다고 저마다 생각하며 서로 타이르고 있었다. 그래서 정분 때문에 어떻게 하겠다는 따위의 일은 아무도 하지 않았다. 원은 궁이 사이구로서 내려가시던 날의 장엄했던 다이고쿠덴 의식에서 이 세상 사람이라고는 생각되지 않는 미모를 보신 때부터 그리워하고 계셨던 터라, 귀경 후에,
"원의 어소로 와서 나의 자매인 궁들과 똑같이 지내지 않겠느냐."
라고 궁에 관하여, 고인이 된 미야스도코로에게 청한 적도 있는 것이다. 미야스도코로 측에서는 원(院)에 총희가 여럿 시중드는 와중에, 후원자라 할 만한 이도 없이 가는 것은 비참한 일이며, 원이 늘 병약하신 것 또한 어머니인 자신과 같은 미망인의 슬픔을 되풀이하는 결과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원을 찾아뵙는 것을 주저했었다. 그러나 지금에 와서는 더더욱 누가 궁을 돌보고 원의 후궁으로 모실 수 있겠느냐고 여방들은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원께서는 지금도 열렬히 그와 같은 말씀을 하신다. 겐지는 이 이야기를 듣고, 원께서 바라는 분을 가로채듯 궁중에 모시는 것은 도리가 아니라고 생각했으나, 궁의 모습이 너무나 아름답고 가련하여 이를 온전히 다른 곳으로 보내버리는 것이 아까운 마음이 들어, 입도의 궁께 아뢰었다. 이처럼 숨겨진 사실이 있어 결단을 내릴 수 없다는 사정을 이야기하였다.
"어머니이신 미야스도코로는 매우 총명하신 분이었으나, 저의 혈기 어린 잘못으로 세간에 구설을 남기게 되었고, 평생토록 원망스러운 사람으로 여겨지게 되었습니다만, 저는 그 점을 마음 아프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저는 용서받지 못한 채 그분을 떠나보냈으나, 돌아가시기 조금 전에 사이구의 일을 당부하셨습니다. 저로서는 말씀을 들은 이상 유언을 실행할 성의를 가진 사람으로 의지하시는 것이라 생각되어 기쁘기도 하였고, 무관한 사람이라도 고아가 된 처지의 사람에게는 동정심이 생기기 마련인데, 하물며 예전의 인연이 있었으니 돌아가신 뒤라도 옛 원망을 잊어주실 만큼의 일을 하고 싶어 사이구의 장래를 여러모로 생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폐하께서도 무척 어른스러워지셨지만 연령으로 따지면 아직 어리시니, 조금 연상의 뇨고가 모실 필요가 있을까 생각되기도 합니다. 그 또한 당신께서 이렇게 하라고 말씀하시는 대로 따르겠습니다."
라고 말하자,
"매우 잘 생각하셨습니다. 원께서 그렇게 열렬하신 것은 안타까운 일이라 미안할지도 모르지만, 어머니의 유언이었다는 셈 치고 아무것도 모르는 척 궁으로 들이시면 될 것입니다. 요즈음 원께서는 사실 그런 일에 담백해지셔서 불공에만 마음을 쓰고 계신다는 이야기도 들으니, 그렇게 하신다 해도 노여워하시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당신의 분부가 내린 것으로 하고, 저는 그에 찬성할 뜻을 표했다는 정도로 해두지요. 저는 이토록 원을 존경하며 감정을 상하지 않게 하려고 백방으로 신경 쓰고 있는데, 세상 사람들은 무어라 평할지 모르겠습니다."
등등 겐지가 말하고 있었다. 훗날 다시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니조인으로 사이구를 맞이하여, 입내(入內)는 저택에서 하게 하겠다는 생각도 겐지는 하게 되었다. 부인에게 그 생각을 말하고,
"당신의 좋은 친구가 될 거요. 사이좋게 지내기에 알맞은 두 사람이라 생각하오."
라고 말했기에 뇨오도 기뻐하며 사이구가 니조인으로 옮겨올 준비를 하였다. 뉴도의 미야는 효부쿄노미야가 후궁 입궁을 목적으로 공주를 교육하고 있음을 알고 있었기에, 겐지와 미야가 불화하게 된 오늘날 그 공주에게 겐지가 어떤 태도를 취하려 할 것인지 마음 졸이고 계셨다. 주나곤의 공주는 고키덴의 뇨고라 불렸다. 다이조다이진의 유자가 되어 그 일족이 훌륭한 배경을 만들어 주는 화려한 후궁인이었다. 폐하께서도 좋은 말동무처럼 여기셨다.
"효부쿄노미야의 나카히메기미도 고키덴의 뇨고와 비슷한 연배이니, 그러면 인형 놀이하는 무리만 늘어날 뿐이라 조금 나이 든 뇨고가 곁을 지키며 폐하를 보필해 드리는 것은 기쁜 일이지요."
라고 뉴도의 미야는 사람들에게 말씀하시고, 전 사이구의 입내 건을 자신의 뜻이라며 미야가에 청하였다. 겐지가 당대의 제를 위해 지극정성으로 후견인 역할을 하는 성의를 신뢰하시어, 몸이 약하신 뉴도의 미야께서도 궁으로 들어가시는 일은 있어도 오래 머무실 수는 없어 금세 물러나오시곤 했기에, 그런 점에서도 조금 성숙한 뇨고가 곁에 있어야 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