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말하고는 하나치루사토가 슬퍼하는 모습이 너무나 가련하여, 겐지 쪽에서 달래주지 않을 수 없었다.
"돌고 돌아 결국 살게 될 달빛이 잠시 흐려질 하늘을 너무 슬퍼하지 마오."
덧없는 일이오. 나는 희망을 품고 있지만, 도리어 눈물이 흘러 마음을 어둡게 하구려."
라고 겐지는 말하고는, 새벽 동트기 전 사방이 어둑할 무렵 길을 떠났다.
겐지는 드디어 떠날 채비를 서둘렀다. 겐지에게 성의를 다해 충성하며, 현재의 권세에 아부할 줄 모르는 이들을 골라 가시(家司)로 삼아, 집을 비운 동안의 살림을 맡을 이들을 상하 구분 없이 정해 두었다. 수행할 인원 또한 그중에서 특별히 선발된 지극한 충신들이었다. 은거를 위해 가져갈 물건은 일상생활에 꼭 필요한 것뿐이었으며, 그마저도 장식 없는 검소한 것으로 골랐다. 그 외에는 서적과 시집 등을 넣은 상자, 그리고 거문고 한 대를 챙겨 가기로 했다. 흔하디흔한 가재도구와 화려한 공예품은 하나도 가져가지 않으려 했다. 한 평민의 검소한 은둔자가 되려는 것이었다. 겐지는 지금까지 부리던 남녀 종들을 비롯해 집안 대소사를 서쪽 대(對)의 부인에게 맡기기로 했다. 사유지인 장원, 목장, 그 밖에 소유권이 있는 재산의 증권도 모두 부인의 손에 맡기고 떠나기로 했다. 그뿐만 아니라 물자가 보관된 몇 개의 창고나 납전(納殿) 등도, 신임하는 쇼나곤 유모를 우두머리로 삼고 여러 가시를 붙여 부인의 재산 관리를 맡기도록 배려했다.
지금까지 히가시노 다이의 여관으로서 겐지의 총애를 받던 여인들 중 나카쓰카사, 주조와 같은 겐지의 연인들은, 겐지의 냉담함에 원망스러운 마음이 없지는 않았으나 곁에서 모시고 사는 행복에 만족하던 이들이었다. 앞으로 무엇을 낙으로 여관 생활을 하겠는가 싶었으나,
"장수하여 다시 교토로 돌아올지도 모를 내 곁에 있고 싶은 사람은 니시노 다이에서 계속 일하는 게 좋겠소."
라고 겐지는 말하고는, 상하 막론하고 모든 여관을 니시노 다이로 오게 했다. 그리고 여인의 생활에 필요한 비단류를 풍족하게 나누어 주었다. 사다이진 저택에 있는 와카기미의 유모들에게도, 그리고 하나치루사토에게도 그렇게 했다. 화려한 물건도 있었으나 몇 년간 필요한 실용적인 물건들도 많이 갖추어 선물했다. 겐지는 또 도중의 시선을 의식하며 나이시노카미에게도 이별의 편지를 보냈다.
그대께서 아무런 말씀도 해주시지 않는 것 또한 도리에 맞는 일이라 생각되오만, 막상 교토를 떠날 때가 되어보니 슬픈 마음도, 원망스러운 마음도 절실하게 느껴지오.
만남 없는 눈물의 강에 잠긴 것은, 떠도는 몸이 된 시작이었던가.
이토록 사람에 대한 집착이 강해서는 부처님의 구원을 바랄 희망도 없습니다.
중간에 훔쳐볼 것이 염려되어 자세히는 쓰지 못하였다. 편지를 읽은 나이시노카미는 몹시 슬퍼하였다. 흘러나오는 눈물은 끝이 없었다.
눈물의 강에 뜬 물거품도 곧 사라지겠지, 이별 뒤의 여울을 기다리지도 못하고.
울며불며 어지러운 마음으로 써 내려간 글씨의 아름다움을 보아도 겐지의 마음은 더욱 깊이 흔들려, 이 사람과 마지막으로 회견하지 않고 떠나도 괜찮을까 싶었으나 여러 가지 사정이 겐지로 하여금 반성하게 했다. 그리운 이의 일족이 겐지의 배척을 꾀했음을 생각하고, 또 그 사람 입장의 고충도 헤아려 편지를 보내는 이상의 행동은 하지 않았다.
출발 전날 밤, 겐지는 원(院)의 묘소를 알현하기 위해 기타야마로 향했다. 새벽녘 달이 뜰 무렵이었기에, 그 남은 시간에 겐지는 뉴도노미야를 찾아가 하직 인사를 올렸다. 거처의 발 앞에 겐지의 자리가 마련되었고, 미야께서 친히 말씀을 건네셨다. 미야께서는 도구(東宮)를 한없이 불안해하시는 기색이었다. 총명한 남녀가 열기를 내면에 감춘 채 이별의 말을 나누었으나, 그에는 세련된 비애 같은 것이 있었다. 예나 지금이나 조금도 변함없는 그리운 아름다움을 느낀 겐지는, 지난 십수 년에 걸친 사모의 정에 대해 차가운 이지(理智)의 일면만 보여주셨던 원망도 말해보고 싶었으나, 지금은 비구니가 되어 더욱 도의적이 되신 분께 우스꽝스럽게 보이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다. 스스로도 그 말문을 열어버리면 어디까지 마음이 혼란해질지 알 수 없는 두려움도 있어 마음을 억눌렀다.
"이토록 의외의 죄를 묻게 되더라도, 저는 양심에 걸리는 것이 한 가지 있어 두려울 뿐입니다. 저는 어떻게 되더라도 도구(東宮)께서 무사히 즉위하신다면 더는 바랄 것이 없습니다."
라고만 말했다. 그것은 진실한 고백이었다. 미야께서도 모두 알고 계신 일이었기에 겐지의 이 말에 큰 충격을 받으셨을 뿐,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으셨다. 첫사랑에 대한 원한과 부성애, 이별의 슬픔이 하나가 되어 눈물 흘리는 겐지의 모습은 더할 나위 없이 우아하였다.
"이제 어릉(御陵)으로 가려 하는데, 전하실 말씀은 없으신지요?"
겐지가 이렇게 말했으나, 미야의 대답은 한동안 없었다. 주저하고 계시는 기색이다.
보았던 이는 없고 남은 이는 슬픈, 이 세상의 끝을 등질 보람도 없이 그저 눈물로 세월을 보내노라.
미야께서는 슬픈 심정이 북받쳐 올라, 노래로 완벽하게 읊어내지 못하셨다.
"헤어질 때의 슬픔도 다하지 않았건만, 또다시 이 세상의 근심이 더해지는구나."
이는 겐지의 즉흥시다. 마침내 달이 뜨자 겐지는 산조노 미야를 나와 어릉(御陵)으로 향했다. 수행원은 겨우 대여섯 명을 데리고 갈 뿐이었다. 하인들도 친한 자들만으로 한정하여 말을 타고 갔다. 뒷북치는 소리 같지만, 예전 겐지의 외출에 비하면 얼마나 쓸쓸한 행렬인가. 가신들도 모두 슬퍼했는데, 그중 과거 사이인의 미소기 날 대장의 임시 수진(隨身)이 되어 따라 나섰던 구로도를 겸한 우코노에쇼소는 당연히 올해 올라야 할 위계도 오르지 못하고, 구로도소의 출사도 금지되었으며, 관직마저 빼앗기고 말았다. 이 자도 자원하여 스마로 가는 일행 중 한 명인데, 이 남자가 시모가모 신사가 멀리 내려다보이는 곳에 이르자 문득 옛일이 떠올라 말에서 뛰어내리더니 즉시 겐지의 말 고삐를 잡고 노래했다.
함께 어울려 아오이를 머리에 꽂았던 그 시절을 생각하면 괴롭구려, 가모 신사의 신성한 울타리여.
이 남자의 마음이 얼마나 비통할까, 그 시절에는 누구보다 뛰어난 화려한 청년이었는데, 하는 생각에 겐지는 괴로웠다. 자신 또한 말에서 내려 가모 신사를 향해 멀리서 절하고 신께 하직 인사를 올렸다.
괴로운 세상을 이제야 떠나려니, 남겨질 이름은 타다스의 신께 맡기노라.
라고 노래하는 겐지의 우아함에 문학적인 이 청년은 감격하고 있었다.
부친인 제(帝)의 어릉(御陵) 앞에 선 겐지는, 마치 과거가 현재가 된 듯한 기분이 들어 생전의 모습이 눈앞에 선하게 보이는 듯했다. 그러나 존귀한 군왕께서도 이미 고인이 되셨으니, 가장 사랑하는 아들 앞에 모습을 드러내실 수 없다는 사실이 서글펐다. 겐지는 눈물을 흘리며 이런저런 사정을 아뢰었으나, 아무런 대답도 들을 수 없었다. 자신을 위해 남기신 수많은 유언은 모두 어디로 사라져 버렸단 말인가, 그런 생각에 겐지는 또다시 비통해했다. 묘지가 있는 곳은 잡초가 무성하여, 헤치고 들어가는 이의 온몸이 이슬에 젖어 들었다. 마침 달도 구름 속으로 숨어 버려, 앞쪽에 길게 이어진 숲이 더욱 칠흑같이 어둡고 음산했다. 이대로 돌아가지 않아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겐지가 일심으로 기도하던 중, 생전의 모습 그대로인 환영이 보였다. 소름이 돋을 만큼 선명한 환영이었다.
돌아가신 그림자를 어찌 보게 되었을까, 먼 곳에서 바라보던 달마저 구름 속으로 숨어버리는구나.
날이 밝아올 무렵 겐지는 니조의 저택으로 돌아왔다. 겐지는 도구(東宮)에게도 작별 인사를 건넸다. 중궁은 오묘부(王命婦)를 직접 도구의 곁에 머물게 하고 계셨기에, 겐지는 그 방으로 편지를 전하게 했다.
"드디어 오늘 교토를 떠납니다. 다시 한 번 찾아뵙고 직접 얼굴을 뵙지 못하는 것이 그 어떤 슬픔보다도 크게 느껴집니다. 모쪼록 저의 마음을 헤아리시어, 잘 말씀드려 주십시오."
언제 다시 봄의 도읍 꽃을 보게 될까, 잃어버린 채 산속에 사는 사람이 되어.
이 편지는 벚꽃이 대부분 진 나뭇가지에 매달려 있었다. 오묘부는 겐지가 오늘 떠난다는 사실을 알리고 편지를 도구에게 올리자, 어린 나이임에도 진지한 표정으로 읽어 내려갔다.
"답장은 어떻게 쓰는 것이 좋을까요?"
"잠시 만나지 못해도 그립거늘, 멀리 떠나 버리면 얼마나 괴로울지 모르겠구나, 라고 쓰렴."
미야께서 말씀하셨다. 오묘부는 참으로 철없는 모습이라 생각하며 안타까운 심정으로 미야를 바라보았다. 괴로운 사랑에 빠져 있던 옛 겐지의 어느 날, 어느 밤을 떠올리며, 그 연애만 없었더라면 두 사람에게 그런 긴 고생은 시키지 않아도 좋았을 텐데 싶어, 스스로에게 책임이 있는 것만 같아 괴로웠다. 답장은 이렇게 적혔다.
"뭐라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미야께는 이미 말씀드렸습니다. 마음 쓸쓸해하시는 모습을 뵙자니 저 또한 무척이나 슬픕니다."
라고 쓴 뒤로는, 슬픔을 이기지 못해 글씨가 흐트러져 알아보기 힘든 부분이 있었다.
피자마자 빨리 지는 것은 서글프지만, 가는 봄은 꽃 피는 도읍을 뒤돌아보며 떠나가라.
다시 운이 트일 날이 분명 올 것입니다.
라고 쓰고는 내보냈지만, 그 후로도 다른 뇨보들과 함께 슬픈 이야기를 계속 나누었기에 도구의 거처는 흐느끼는 소리로 가득 찼다. 하루라도 겐지를 보았던 자들은 모두 그의 불행한 길 떠남을 슬퍼하지 않는 이가 없었다. 하물며 늘 겐지가 드나들던 곳에서는 겐지에게 알려지지 않았던 장녀 오사메나 미카와야우도 같은 하급 뇨보들조차 겐지의 자애를 입었기에, 설령 짧은 기간에 악몽이 끝난다 해도 그동안 겐지를 볼 수 없다는 사실을 한탄하고 있었다. 세상 사람들 중 지금의 당국자 처분을 지당하다고 여기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일곱 살 때부터 밤낮으로 아버지 제의 곁에 있었기에 겐지의 말은 하나하나 다 통했고, 겐지의 추천이 헛된 적도 없었다. 관원들 중에 겐지의 은혜를 입지 않은 자가 없었다. 겐지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품지 않은 자는 없었다. 대관 중에도 변관 중에도 그런 이는 많았다. 그 이하는 부지기수였다. 모두가 은혜를 잊은 것은 아니겠지만, 보복에 수단을 가리지 않는 무서운 정부를 두려워하여 현재의 겐지에게 호의를 표시하러 오는 이는 없었다. 사회 전체가 겐지를 안타까워하며, 남몰래 정부를 헐뜯고 원망하는 자는 있어도 자기 자신을 희생하면서까지 겐지에게 동정해 보았자 겐지를 위해 별다른 도움이 되지 않으리라 생각하는 듯했다. 원망 같은 것을 하는 것은 신사답지 못하다고 생각하면서도 겐지의 마음에는 끝내 원망스러운 마음을 품게 되는 이들 또한 과연 많아서, 세상사는 참으로 얄궂은 것이라고 매사에 생각되었다.
당일은 종일 부인과 이야기를 나누었고, 그 무렵의 관례대로 새벽녘에 겐지는 길을 떠났다. 사리가누 등을 입고 간편한 여행 차림이었다.
"달이 떴나 보오. 조금 더 가장자리로 나와서 배웅이라도 해 주구려. 당신에게 하고 싶은 말이 쌓여 있다고 매일매일 생각해야 할 테니 말이오. 하루 이틀 떨어져 있어도 할 말이 너무 많이 쌓여 괴로운 나인데 말이오."
겐지가 말하며 미스를 걷어 올리고 툇마루 가까이 뇨오를 불렀다. 울다 지친 부인은 주저하며 무릎으로 기어 나왔다. 달빛이 비치는 곳에 뇨오가 더없이 아름답게 앉아 있었다. 자신이 유배지에서 죽게 된다면 이 사람은 어떻게 될까 생각하니, 남겨두고 떠나는 것이 걱정되고 서글펐지만, 그런 생각을 하면 이 사람을 더욱 슬프게 만들 뿐이라 여겨,
"살아있는 이 세상 이별을 모르고 약속하며, 목숨을 당신에게만 바치기로 했건만.
덧없는 일이었구려."
"참으로 덧없는 일이었소."
라고만 말했다. 비통한 마음속은 보여주지 않으려 하고 있었다.
"아깝지 않은 목숨과 바꾸어서라도, 눈앞의 이별을 잠시만이라도 멈출 수 있다면."
라고 부인은 말한다. 그것이 진심 어린 마음의 절규라고 생각하니 차마 발길이 떨어지지 않는 겐지였으나, 날이 밝은 뒤에 집을 나서는 것은 보기 좋지 않다 여겨 작별하고 떠났다.
도중에도 부인의 모습이 눈에 선하여, 겐지는 비탄에 가슴을 채운 채 배에 올랐다. 해가 긴 철이었고 순풍이 불어 오후 네 시경 겐지의 일행은 스마에 도착했다. 여행이라곤 해본 적 없는 겐지에게, 외로움과 흥미로움은 모두 처음 겪는 경험이었다. 오에덴이라 불리는 곳은 황폐해져 있었고 소나무만이 옛 잔영인 양 서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