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대체 무슨 일이냐. 큰일이구나."
이런저런 방법으로 비위를 맞추려 해도, 무라사키노키미는 마음속으로 겐지를 원망하는 기색을 보이며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나는 이제 당신에게는 오지 않겠어요. 이렇게 부끄러운 꼴을 당하게 했으니까."
겐지는 원망을 들으면서 벼루 상자를 열어 보았으나 노래는 들어 있지 않았다. 너무나 소녀다운 사람이라 가련하게 여기며 온종일 곁에 머물러 위로했으나, 마음을 열려 하지 않는 모습이 더욱 이 사람을 사랑스럽게 느끼게 했다.
그날 밤은 이노코 떡을 먹는 날이었다. 불행이 잇따른 뒤라 겐지에게 조심스러워 성대하게 치르지는 않았으나, 서쪽 대에만 아름답게 포장된 히와리고즈메(檜破子詰) 음식을 여러 가지 만들어 가져다 놓았다. 그것을 본 겐지가 남쪽 방으로 와서 코레미쓰를 불러 명하였다.
"떡을 말일세, 오늘 밤처럼 성대하게 하지 말고 내일 해 질 무렵에 가져다주게. 오늘은 길일이 아니니까."
미소를 지으며 말하는 태도에서 영리한 코레미쓰는 모든 것을 알아차렸다.
"당연히 그러해야지요. 경사스러운 첫 의식에 길일을 가리지 않을 수 없지요. 그러하오나, 오늘 밤의 이노코 떡이 아닌 내일 밤의 네노코 떡은 어느 정도나 준비해 올까요?"
진지한 얼굴로 묻는다.
"오늘 밤의 3분의 1 정도면 된다."
라고 겐지는 대답했다. 알아들었다는 듯 코레미쓰는 물러갔다. 무안하지 않게 대처하는 세상 물정 밝은 태도를 보며 겐지는 감탄했다.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고 코레미쓰는 거의 손수 하다시피 하여 주인의 혼인 사흘째 밤 떡을 집에서 준비했다. 겐지는 새 부인의 기분을 풀어주느라 애를 먹으며, 이번에야말로 처음 훔쳐온 사람을 다루는 듯한 고심이 필요하다고 느끼면서도 한편으로는 흥미를 금할 수 없었다. 인간이란 참으로 미련한 것이어서, 이제 자신은 하룻밤이라도 이 사람과 떨어져 있을 수 없겠다고 생각했다. 명받은 떡을 코레미쓰는 일부러 밤이 깊기를 기다려 가져왔다. 쇼나곤 같은 나이 든 사람에게 부탁하면 무안해할까 배려하여, 코레미쓰는 쇼나곤의 딸인 벤이라는 여관을 불러내었다.
"이것은 틀림없이 침실 머리맡에 올리지 않으면 안 되는 물건이오. 부탁하겠소. 확실히 말이오."
벤은 조금 의아하게 생각했으나,
"저는 아직 그런 적당히 얼버무릴 필요가 있는 일 같은 건 누구와도 해본 적이 없는걸요."
라고 말하며 받아들었다.
"그렇지요. 오늘은 그런 불성실하다거나 하는 말은 삼가야 했답니다. 저 역시 길한 말만 골라서 쓰도록 하지요."
라고 코레미쓰는 말했다. 젊은 벤은 영문도 모르는 채 주인의 침실 머리맡 기초 밑으로 사흘째 밤 떡이 담긴 그릇을 밀어 넣었다. 이 떡에 관한 설명도 겐지가 직접 새 부인에게 했을 것이 분명했다.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으나, 이튿날 아침 그 떡 상자가 침실에서 나올 때 곁을 지키던 여관들만은 고개를 끄덕였다. 접시 등도 언제 준비했는지 모를 정도로 훌륭한 화족(華足)이 달려 있었다. 떡도 유난히 곱게 만들어져 있었다. 쇼나곤은 감격하여 울고 있었다. 혼인 형식을 올바르게 갖춘 겐지의 호의가 기뻤던 것이다.
"그나저나 저희에게 살짝 말씀해 주시면 좋을 것을. 그분이 의아하게 생각하지는 않았을까요."
라며 속삭였다.
와카무라사키와 신혼을 보낸 후 궁중에 나가거나 인의 처소에 들 때에도 겐지는 끊임없이 사랑스러운 아내의 모습을 마음에 떠올렸다. 그립고 또 그리웠다. 자신의 마음에 신기한 변화가 일어났다고 생각했다. 연인들에게서는 긴 소식 두절을 원망하는 편지가 오기도 했지만, 무관심할 수 없는 상대가 그들 중에 섞여 있다 해도 신혼의 달콤한 취기에 젖어 있는 겐지에게 미치는 힘은 극히 미약했음에 틀림없다. 염세적인 태도를 겐지는 겉으로 꾸며 보였다. 언제까지 이런 마음이 지속될지는 모르겠지만, 지금과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될 수 있을 때 만나고 싶다고 생각하며 겐지는 연인들에게 그런 답변만 보내고 있었다.
황태후는 동생인 로쿠노키미가 요즈음도 여전히 히카루 겐지를 사모하고 있다는 사실에, 아버지인 우다이진이
"그것도 좋은 인연인 듯하오. 정부인이 세상을 떠났으니, 그분을 다시 아내로 맞아들이는 것은 집안의 불명예가 결코 아니오."
라고 말하는 것에 분개하고 있었다.
"궁궐 일도 차츰 지위가 올라가면 나쁠 것이 조금도 없답니다."
이렇게 말하며 궁궐에 들어갈 것을 줄곧 재촉하고 있었다. 그 소문을 듣게 된 겐지는 그 사람에게 남다른 연정을 품고 있었기에 아쉬운 마음도 들었지만, 지금은 무라사키노 기미 외에 다른 마음을 줄 여력이 없는 겐지였기에 로쿠노키미가 운명에 따르는 것도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짧은 인생이니 가장 사랑하는 한 사람을 아내로 정하고 만족해야 한다. 원망을 살 만한 원인을 조금도 만들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다. 로쿠조노 미야스도코로와 전 부인 사이의 갈등이 겐지를 질리게 만들었다고 할 수 있었다. 미야스도코로의 처지에는 동정심이 가지만, 동거하면서 정신적인 융화를 이룰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지금까지와 같은 관계에 만족해 준다면, 수준 높은 취미를 공유하는 친구로서 자신은 사랑할 수 있을 것이라고 겐지는 생각하고 있었다. 이대로 아주 헤어져 버릴 마음은 차마 없었다.
니조노인의 히메기미가 누구인지 세간이 아직 모르는 것은 실질적인 면을 의심케 하는 일이기에, 아버지인 친왕에게 알리는 것을 서둘러야겠다고 겐지는 생각하여 모기(裳着) 의식 준비를 자신의 휘하에 있는 관리들에게 명하여 시키고 있었다. 이런 호의도 무라사키노 기미는 기쁘지 않았다. 순수한 신뢰를 저버린 것은 자신의 인식 부족이었다고 후회하고 있었다. 눈조차 마주치지 않으려 하며 겐지를 피했다. 농담을 건네는 것조차 괴로운 듯한 태도였다. 늘 우울한 기색으로 생각에 잠겨 예전과는 완전히 달라진 부인의 모습을 겐지는 아름답게도, 가련하게도 여기고 있었다.
"오랫동안 내가 당신을 얼마나 사랑해 왔는지 모르겠지만, 당신은 이제 내가 싫어졌다는 듯이 대하는군요. 그러면 내가 너무 가엽지 않습니까."
라며 원망스럽게 말해 보기도 했다.
이렇게 올해가 저물고 새로운 봄이 왔다. 원일에는 인의 어소에 먼저 알현한 뒤 입궐하였고, 도구의 어전에도 참하하러 들렀다. 그리고 어소에서 곧장 사다이진의 저택으로 겐지는 향했다. 대신은 원일에도 집에 틀어박혀 가족들과 고인의 이야기를 꺼내며 적적해할 뿐이었으나, 겐지의 방문을 받고는 애써 슬픔을 억누르려 하는 모습이 차마 보기 안쓰러웠다. 한 살 더 먹은 나이는 겐지의 아름다움에 중후함을 더했다고 대신가의 사람들은 보았다. 예전보다 더 아름답기도 했다. 대신 앞을 물러나 옛 거처 쪽으로 가자, 여관들은 반가워하며 모두 겐지를 보러 모여들었으나, 모두들 그만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젊은 군을 보니 짧은 사이 놀랄 만큼 자라 있었고, 자주 웃는 모습도 애처로웠다. 눈매와 입매가 도구와 꼭 닮았기에, 사람들이 이를 수상히 여기지는 않을까 겐지는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부인이 있던 시절과 똑같이 초봄의 방이 장식되어 있었다. 의복 걸이에 신조된 겐지의 봄옷이 걸려 있었으나, 여자의 옷이 나란히 걸려 있지 않은 것은 겉모습만으로도 적적했다.
미야사마의 인사를 여관이 전해 왔다.
"오늘만은 어떻게든 옛일을 잊어야겠다고 참고 있습니다만, 방문해 주신 덕분에 오히려 그 노력이 수포로 돌아가 버렸습니다."
그러고는 다시,
"예전부터 이곳에서 지어 올리던 의복도, 그 일이 있은 뒤로는 눈물 때문에 제 시력마저 흐려져서 서툴게만 되었습니다만, 오늘만은 이런 것이라도 갈아입어 주십시오."
라고 말하며, 걸려 있는 것 외에도 매우 정교하고 아름다운 의상 한 벌을 선물했다. 당연히 오늘 입어야 할 옷으로 지으신 시타가사네는 색깔도 직조 방식도 평범한 물건이 아니었다. 입지 않으면 기운을 잃으실까 싶어 겐지는 즉시 시타가사네를 그것으로 바꾸어 입었다. 만약 자신이 오지 않았다면 실망하셨을 것을 생각하니 마음이 아파 견딜 수 없었다. 답례 인사는,
"봄이 찾아왔다는 표시로 마땅히 찾아봬야 할 제가 문안을 드립니다만, 너무나 많은 일이 떠올라 차마 직접 찾아뵙고 말씀을 올릴 수가 없군요."
수많은 세월 오늘 새롭게 갈아입은 옷을 입으니, 눈물이 내리는 듯한 기분이 드는구나.
제 자신을 추스를 힘조차 없습니다."
라고 전하게 했다. 궁으로부터,
새해라 할 것 없이 하염없이 내리는 것은, 늙어가는 이의 눈물이로구나.
라는 답가(御返歌)가 있었다. 얼마나 슬프셨을까.
(역주) 겐지 22세부터 23세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