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고 말한 뒤,
"마실 물을 드리도록 하시오."
라고 여관에게 명했다. 병든 아내에게 남편다운 이런 배려를 하는 겐지에게 여관들은 동정했다. 지독한 미인인 부인이, 쇠약해질 대로 쇠약해져서 숨만 겨우 붙어 있는 듯 누워 있는 모습은 가엾고 애처로웠다. 조금의 흐트러짐도 없이 살며시 베개 위로 흘러내린 머리카락의 아름다움은 남자의 혼을 빼앗을 만한 매력이 있었다. 어찌하여 나는 오랫동안 이 사람을 만족하지 못할 감정을 품고 바라보고 있었던 것일까 하며, 신기할 정도로 오래도록 겐지는 아내를 지켜보고 있었다.
"원의 어소 등에 들러서 곧 돌아오겠소. 이렇게 시시때때로 만날 수 있다면 기쁘겠지만, 궁님께서 늘 곁에 계시니 무례하지 않을까 싶어 삼가며 뒤에서 끙끙 앓았던 나에게도 동정해주겠지요. 그러니 당신 스스로도 빨리 나으려고 노력해주오. 예전처럼 우리 둘이서만 함께 있을 수 있게 말이오. 너무 어머니께 어리광을 부리니까, 저쪽에서도 언제까지나 어린아이처럼 대하는 것이오."
등등의 말을 남기고 훌륭하게 차려입은 겐지가 나가는 모습을, 병상의 부인은 평소보다 열심인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가을철 관직 임명자가 결정되는 날이라 대신도 입궐했기에, 아들들도 각자 바라는 바가 있어 요즘은 대신 곁을 떠나지 않으려던 참이라 다들 그 뒤를 따라 나갔다. 남은 사람이 적어져 저택 안이 조용해질 무렵, 아오이 부인은 갑자기 가슴이 치밀어 오르는 듯 고통스러워했다. 어소로 사람을 보낼 틈도 없이 부인은 숨을 거두고 말았다. 좌대신과 겐지도 서둘러 퇴궐했기에 제목의 밤이었음에도 이 일로 관직 임명은 결정되지 못한 채 끝나고 말았다. 젊은 부인의 돌연한 죽음에 좌대신 저택은 혼란에 빠질 뿐이었고, 한밤중이라 에이잔의 좌주를 비롯한 다른 승려들을 부를 틈도 없었다. 이미 위독한 상태에서 벗어난 줄 알고 다들 방심하던 틈에 죽음이 스며들었기에 모두가 망연자실할 뿐이었다. 곳곳에서 조문 사절이 찾아와도 인사를 대신 전할 사람조차 없이 저택 안은 통곡 소리로 가득 찼다. 대신 부부와 고인의 남편인 겐지의 슬픔은 극에 달했다. 지금까지 원령 때문에 일시적인 가사 상태가 된 적이 여러 번 있었던 것을 생각하여, 죽은 사람이라며 머리맡을 정리하지도 않고 며칠이고 병든 부인처럼 눕혀두고 소생하기를 기다렸지만, 시간은 이미 시신임을 증명할 뿐이었다. 이제 죽음을 부정할 이유가 없다는 것을 모두가 인정했다. 겐지는 아내의 죽음을 슬퍼함과 동시에 인생의 무상함을 깊이 느꼈고, 곳곳에서 전해지는 조문의 말들도 하나같이 반갑게 들리지 않았다. 원께서도 슬퍼하시며 사자를 보내셨다. 대신은 딸이 죽은 뒤 얻은 영광에 감격하며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사람들의 충고에 따라 소생술로써 시신에게는 차마 눈뜨고 볼 수 없는 잔혹한 방법까지 동원해 딸이 숨을 쉬기를 기다렸지만 모두 허사였다. 어느덧 며칠이 흘렀다. 드디어 부인을 토리베노 화장터로 보내게 되었다. 이렇게 또 사람들은 슬퍼했다. 좌대신의 사랑하는 딸이자 겐지의 부인으로서 장례식에 참석한 사람들, 염불을 위해 모인 사찰의 승려들로 토리베노가 메워졌다. 원은 말할 것도 없고, 왕비와 동궁에서 보낸 사자들이 차례로 장례식장에 도착해 조사를 읽었다. 슬픔에 잠긴 대신은 일어설 힘조차 잃고 있었다.
"이렇게 늙은 나이가 되어서야 한창 나이인 딸을 먼저 보내고 무력하게 울고만 있는 꼴이라니."
부끄러워하며 이렇게 말하고는 울음을 터뜨리는 대신을 보고 슬퍼하지 않는 이가 없었다. 밤새도록 걸릴 만큼 성대한 의식이었으나, 결국 유해를 넓은 들판에 남겨둔 채 연기로 사라지게 해야만 하는 쓸쓸한 결말에 다들 새벽녘에야 돌아갔다. 죽음이란 본래 그런 것이라지만, 앞서 사랑하는 이를 한 명 떠나보낸 경험밖에 없는 겐지는 지금 또다시 이루 말할 수 없는 애통함을 느꼈다. 8월 스무날이 지난 뒤라 새벽달이 비치는 무렵이었고, 하늘빛조차 몸에 사무쳤다. 떠나간 자식을 생각하며 울부짖는 대신의 비탄에 동정하면서도 차마 지켜볼 수 없어, 겐지는 수레 안에서 하늘만 바라보고 있었다.
피어오르는 저 연기가 누구의 것인지 알 수는 없어도, 하늘 전체가 슬픔에 잠겨 있는 듯하구나.
겐지는 이렇게 생각했다. 집에 돌아와도 잠을 전혀 이룰 수 없었다. 고인과 함께한 오랜 부부 생활을 떠올리며, 왜 나는 아내에게 충분한 사랑을 보여주지 못했는가, 믿어만 준다면 이성에 대한 내 사랑은 아내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다고 태평하게 생각하며, 한순간의 충동으로 아내를 원망하게 만드는 죄를 왜 저질렀는가. 그런 일들 때문에 아내는 평생 마음을 완전히 열어주지 않았던 것이라며 겐지는 후회했지만, 지금은 이미 아무런 소용도 없었다. 옅은 연기색 상복을 입는 것도 꿈만 같았다. 만약 내가 먼저 죽었다면 아내는 이보다 더 짙은 색 상복을 입고 슬퍼하고 있었을 것이라 생각하니 겐지의 슬픔은 또다시 솟구쳐 올랐다.
기한이 있어 입은 옅은 잿빛 상복이라지만, 흐르는 눈물은 소매를 깊은 연못으로 만드는구려.
라고 읊은 뒤 염불을 외는 겐지의 모습은 한없이 아름다웠다. 경전을 나지막이 읽으며 '법계삼매 보현대사'를 외는 겐지는, 불공을 일삼는 승려보다 도리어 더 고귀해 보였다. 젊은 군을 보아도 '맺어둔 유품인 아이조차 없었다면, 그 무엇을 그리워하는 풀이라 뜯으리오' 하는 옛 노래가 떠올라 더욱 슬퍼졌지만, 이 유품이라도 남겨두고 떠난 것에 위안을 삼아야겠다고 겐지는 생각했다. 좌대신의 부인이자 궁님은 슬픔에 잠겨 자리에 누운 채였다. 목숨조차 위태로워 보여 집안 사람들은 허둥지둥 기도 등을 올리게 했다. 적적한 날들이 계속 흘러가 사십구재 법회 준비를 하려 해도, 궁님께서는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라 슬픔이 크셨다. 허물이 많은 딸이라 해도 죽은 뒤 부모의 슬픔은 얼마나 깊을지 헤아릴 수 없는데, 하물며 어머니가 잃으신 분은 귀족 여인으로서 완벽에 가까운 공주였으니, 이 슬픔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하나뿐인 공주였기에 더욱 적적해하셨던 궁님이었으니, 그 유일한 공주를 잃은 마음은 소매 위에 둔 구슬이 깨진 것보다 훨씬 아깝고 비통하셨음이 분명했다.
겐지는 니조의 저택조차 전혀 가지 않았다. 오로지 불공을 드리며 지내고 있었다. 연인들에게 편지만은 보내고 있었다. 로쿠조노 미야스도코로는 사이구가 사에몬의 관청에 들어갔기에 더욱 엄격해진 결재 생활을 하게 되었고, 상중인 사람과의 교제를 삼간다는 의미를 빌려 그 사람에게만은 소식을 전하지 않았다. 일찍부터 비관적으로 보던 인생이 요즈음 들어 더욱 싫어지고, 장래까지 생각해 줘야 할 몇몇 정인들만 아니었다면 승려가 되어버릴 텐데 하고 생각할 때 겐지의 눈에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서쪽의 다이(對)에 있는 히메기미의 외로운 모습이었다. 밤에는 조다이(帳臺) 안에서 혼자 잤다. 시녀들이 밤 숙직을 하느라 많이 모여 주위를 둘러싸고 앉아 있어도 부인 곁에 없는 것은 한없이 외로운 일이었다. "하필이면 가을에 이별을 해야 하는가, 살아있는 모습만 보아도 그리운데." 이런 생각으로 겐지는 잠을 설치곤 했다. 목소리 좋은 승려를 뽑아 염불을 시켜두었는데, 이런 밤 새벽녘의 심정은 견디기 힘들었다. 가을이 깊어가는 요즘 바람 소리가 몸에 사무치게 느껴지던 어느 새벽, 흰 국화가 옅은 색을 띠며 피어난 꽃가지에 푸르스름한 회색 종이에 쓴 편지를 매달아 두고 간 사자가 있었다.
"폼을 잡는 건 대체 누굴까."
겐지는 그렇게 말하고는, 편지를 뜯어보니 미야스도코로의 글씨였다.
"지금까지 삼가며 찾아뵙지도 않았던 제 마음을 알아주고 계시는지요.
사람 사는 세상 슬프다 듣는 것만으로도 이슬 맺히는데, 먼저 떠난 이 뒤에 남은 이슬을 생각하니 마음이 아프구려.
너무나 몸에 사무치는 오늘 아침 하늘 색을 보고 있자니, 그만 쓰고 싶어져 버렸답니다."
평소보다 한층 더 훌륭하게 쓰인 글씨라 겐지는 차마 곧바로 내려놓지 못하고 바라보면서도, 아무것도 모르는 척하는 위문 편지라고 생각하니 원망스러웠다. 설령 그런 일이 있었다고 해도 절교하는 것은 잔혹한 일이며, 또 상대의 명예를 손상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며 겐지는 고민했다. 죽은 사람은 어쨌든 거기까지가 수명이었음이 틀림없다. 왜 자신의 눈에는 그토록 명확한 미야스도코로의 생령이 보였던 것일까 하고 겐지는 생각했다. 겐지의 사랑이 다시 돌아가기 어렵다는 사실이 짐작된다. 사이구의 결재 중에 방해가 되지 않을까 오래도록 생각했지만, 일부러 보내온 편지에 답장하지 않는 것은 너무나 무정하다는 생각에 보랏빛이 감도는 회색 종이에 이렇게 썼다.
"꽤 오랫동안 뵙지 못했지만, 마음속으로 늘 생각하고 있습니다. 근신 중인 저에게 동정해주실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남아 있는 몸이나 사라진 이나 같은 이슬 같은 세상인데, 덧없는 마음으로 거리를 두시는군요.
그러니 밉다는 생각 같은 것은 일절 잊어버리십시오. 상중인 사람의 편지는 보지 않으려나 싶어 저 또한 소식을 끊고 있었습니다.
미야스도코로는 자신의 집에 머물던 때였기에, 겐지의 편지를 조용히 읽고는 글귀에 담긴 암시를, 마음에 걸리지 않는 것은 아니었던 미야스도코로는 즉시 깨달았다. 이 또한 모두 자신의 박명 때문이라며 슬퍼했다. 이런 생령의 소문이 퍼져 나갔을 때 인(院)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실까. 전 황태제와는 동포라고 해도 유달리 사이가 좋았고, 사이구의 장래 일도 인께 부탁드리고 도구는 세상을 떠났기에, 그 시절에는 제2의 아버지가 되어주겠다는 말씀이 자주 있었고, 그대로 또 어소에서 후궁 생활을 하도록 하라고까지 말씀하셨을 때도, 있어서는 안 될 일이라며 직접 사양했었다. 그러함에도 젊은 겐지와 사랑을 나누어, 끝내 악명을 얻게 되는 것인가 하며 미야스도코로는 무거운 고민을 마음에 품고 건강 또한 좋지 않았다. 이 사람은 예로부터 교양이 있고 식견이 높으며 취미가 세련된 귀부인으로 명성이 자자했던 터라, 사이구가 노노미야에 마침내 들어가게 되자 그곳을 풍류를 즐기는 장소로 삼아, 덴조 관인 등 문학을 좋아하는 청년들이 멀리 사가까지 방문하는 것을 요즈음의 일과로 삼고 있다는 소문이 겐지의 귀에 들어오자, 당연한 일이라 생각했다. 뛰어난 예술적 존재라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는 사람이다. 비관한 나머지 이세로라도 떠난다면 무척 적적할 것이라고 겐지는 내심 생각했던 것이다.
날을 넘긴 법회는 이미 끝났지만, 정확히 사십구재까지는 이 집에서 지내겠다고 겐지는 생각하고 있었다. 과거에 경험 없는 홀로 지내는 겐지를 동정하여 현재의 산미 주장이 끊임없이 찾아와 이런저런 세상 이야기를 많이 전해주었다. 진지한 문제도 있고 연애 사건도 있었다. 우스꽝스러운 화제에는 종종 겐 나이시노스케가 거론되었다. 겐지는,
"불쌍하게도, 할머님을 함부로 말해서는 안 되지."
라고 말하면서도, 나이시노스케에 관한 일은 자신에게도 우스워 견딜 수 없는 모양이었다. 히타치노미야의 봄 달이 어둡던 밤의 이야기나, 그 밖의 서로의 정사에 관한 폭로도 늘어놓았다. 오랫동안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그런 이야기들은 모두 자취를 감추고, 인생의 적적함을 말하는 겐지는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갑작스러운 소나기가 지나간 뒤 만물이 애처롭게 느껴지는 저녁 무렵, 주장은 짙은 잿빛 상복인 노시와 사시누키를 평소보다 옅은 색으로 갈아입고, 힘찬 젊음이 넘치는 귀공자다운 풍채로 나타났다. 겐지는 서쪽 처마 아래의 난간에 몸을 기대고 서리가 내려앉은 뜰을 바라보고 있을 때였다. 거친 바람이 불고 겨울비마저 흩뿌리는 것을 보니, 겐지는 자신의 눈물과 겨루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서로 만나고 잃어버림이 둘 다 꿈과 같으니, 비가 될지 구름이 될지 이제 알 수 없구나'라고 읊조리며 턱을 괴고 있는 겐지를 보며, 여인의 마음이라면 앞서 죽었을 때 영혼이 곁을 떠나지 않았을 것이라는 호색한 마음으로 주장은 그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다 다가와 인사를 하고 앉았다. 겐지는 편안한 차림이었으나, 손님에게 예의를 갖추기 위해 노시의 끈만은 묶었다. 겐지는 주장보다 조금 더 짙은 잿빛 위에 아름다운 빛깔의 붉은 홑옷을 겹쳐 입고 있었다. 이러한 상복 차림은 더없이 아름다웠다. 주장도 슬픈 눈빛으로 뜰을 바라보고 있었다.
비가 되어 내리는 가랑비 하늘의 뜬구름을, 어느 쪽이라 가려 바라보리요.
어디인지 알 수가 없구나.
라고 혼잣말처럼 말하는 데 겐지가 대답하여,
그리운 이 비가 되어 떠난 하늘마저, 가랑비에 더욱 흐려지는 시절이구려.
라고 읊는 데에서 고인을 그리워하는 마음의 깊이가 엿보였다. 주장은 그동안 원의 뜻과 아버지 대신의 호의, 어머니 궁의 숙모라는 관계 등이 겐지를 이곳에 머물게 할 뿐, 여동생을 진심으로 사랑한다고는 보지 않았었다. 자신도 그에 대해 동정을 표해 왔다고 생각했으나, 겉모습과는 달리 변치 않는 사랑을 아내에게 품고 있던 겐지였다는 사실을 이때 처음 깨달았다. 그로 인해 여동생의 죽음이 더욱 애석했다. 사람 한 명 떠났을 뿐인데, 집 안의 빛을 모두 잃어버린 듯 다들 요즘 그렇게 느끼고 있었다. 겐지는 말라버린 풀 덤불 속에 용담과 패랭이꽃이 피어 있는 것을 보고 꺾게 하여, 주장이 돌아간 뒤에 젊은 군의 유모인 사이쇼노기미를 사자로 보내 궁의 거처로 전달하게 했다.
풀 시든 울타리에 남겨진 나데시코를, 이별하던 가을의 유품이라 생각하오.
이 꽃은 비교할 수 없는 것이라 당신의 눈에는 비치겠지요.
라고 답하게 했다. 나데시코에 비유된 어린아이는 정말로 꽃과 같았다. 궁님의 눈물은 바람 소리에도 나뭇잎보다 먼저 떨어질 때이니, 하물며 겐지의 노래는 마음을 움직였다.
지금도 보면 오히려 소매만 적시게 되누나, 울타리마저 시들어버린 야마토 나데시코여.
라는 답장이 있었다.
겐지는 여전히 적적함을 달래지 못해 아사가오의 여왕에게, 정취를 아는 사람이라면 오늘의 자신을 가엽게 여겨줄 것이라는 기대로 편지를 썼다. 이미 어두워졌지만 사자를 보냈다. 친밀한 교제는 없었으나, 이렇게 가끔 편지가 오는 일은 예부터 있어 온 일이라 익숙해진 여관들이 즉시 여왕에게 보여주었다. 가을 저녁 하늘 빛과 같은 당지에,
유독 오늘 저녁에 소매가 이슬로 젖는구나, 번민의 가을을 많이 보냈건만.
'십월이면 늘 겨울비는 내렸건만'이라는 말처럼.
라고 적혀 있었다. 정성을 들여 쓴 듯 겐지의 필치는 아름다웠다. 이것을 두고 여관들이 이런저런 말을 하고, 조왕 자신도 그렇게 생각했기에 답장을 써서 보내기로 했다.
요즘의 외로운 일상을 상상하면서도, 감히 찾아뵙는 것을 삼가고 있었습니다.
가을 안개에 뒤처지지 않았단 소식 듣고부터, 가랑비 내리는 하늘마저 어떠할까 생각하오.
라고만 적혀 있었다. 은근한 필치로 심오한 정취가 느껴지는 편지였다. 결혼한 뒤에 연인이었을 때보다 상대가 더 좋게 보이는 경우는 드문 법이지만, 겐지의 성벽 탓인지 아직 얻지 못한 연인이 하는 일은 무엇 하나 마음을 끌지 않는 것이 없었다. 냉정하다면 냉정하나 매 순간 동정을 아끼지 않는 아사가오의 여왕과는 영원히 우애를 나누어 갈 가능성도 있다고 겐지는 생각했다. 너무 비범한 여인은 스스로 가진 재주와 식견이 오히려 화근이 될 수도 있기에, 서쪽 대의 공주를 그렇게 교육하고 싶지는 않다고도 생각하고 있었다. 자신이 돌아가지 않아 얼마나 적적해하고 있을까 싶어 무라사키노키미의 거처가 그리웠지만, 그것은 마치 어머니를 잃은 딸을 집에 두고 온 아버지와 유사한 감정으로 생각하는 것이어서, 원망받지는 않을까, 의심하고 있지는 않을까 하는 불안감은 없었다.
완전히 밤이 되었기에, 겐지는 등불을 가까이 두게 하고 마음이 맞는 여관들만을 모두 거실로 불러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카쓰카사노키미라고 불리는 여인은 아주 예전부터 정인 관계에 있던 사람이었으나, 이 상중에는 도리어 그런 사람으로 겐지가 대우하지 않는 것을, 나카쓰카사노키미는 부인에 대한 겐지의 마음으로 알고 기쁘게 생각했다. 그저 주종 관계로서 이 여인과도 지극히 다정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요즘은 누구와도 매일 이렇게 함께 지내고 있으니, 이 생활에 완전히 익숙해진 내가 모두와 함께 있을 수 없게 된다면 외롭지 않을까. 부인이 세상을 떠난 일은 차치하고라도, 잠시 생각해보아도 인생에는 이래저래 슬픈 일이 많구나."
겐지가 이렇게 말하자, 처음부터 울고 있던 여관들도 모두 울음을 터뜨리며,
"부인 생각만 하면 세상이 어두워질 정도로 슬프옵니다만, 이번에 또 당신께서 이곳을 떠나시어 완전히 남이 되시는 것을 생각하면"
말끝을 잇지 못했다. 겐지는 모두에게 동정 어린 시선을 보내며,
"완전히 남이 되는 일이 어찌 있을 수 있겠느냐. 나를 그리 경박한 사람으로 보고 있구나. 느긋하게 지켜봐 주는 사람이 있다면 알게 되겠지만 말이다. 하지만 또 내 목숨이 어찌 될지, 그 자신은 없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