겐지님이 공주를 안고 나왔다. 소나곤과 고레미쓰, 그리고 밖의 여관들이,
"아, 어찌하시렵니까."
라고 동시에 말했다.
"이곳에는 자주 올 수가 없기에 편안한 곳으로 옮겨드리겠다고 했는데, 그것엔 동의하지 않으시고 다른 곳으로 옮기시게 되었다니 그쪽으로 가시면 여러모로 귀찮은 일이 생길까 봐 그러는 것이오. 누구 한 사람 따라오시오."
겐지의 말을 듣고 소나곤은 허둥거렸다.
"오늘은 매우 곤란하옵니다. 친왕님께서 마중 나오셨을 때 뭐라 아뢰면 좋겠습니까. 시간이 지난 후에 함께할 인연이 있다면 자연스레 그렇게 되지 않겠습니까. 아직 너무 어리시옵니다. 지금 그런 일은 저희 모두의 책임이 됩니다."
라고 말하자,
"그럼 됐소. 지금 당장 따라올 수 없다면, 사람은 나중에 오도록 하시오."
이렇게 말하고는 겐지는 수레를 앞으로 바짝 대게 했다. 공주도 이상한 낌새를 느꼈는지 울음을 터뜨렸다. 소나곤은 막을 도리가 없어, 어젯밤에 꿰매어 둔 공주의 옷가지를 손에 들고 자신도 옷을 갈아입은 뒤 수레에 올랐다.
니조인은 가까웠기에 날이 채 밝기 전에 도착하여, 서쪽 대에 수레를 대고 내렸다. 겐지는 공주를 가볍게 안아 내려놓았다.
"꿈만 같은 기분으로 여기까지 왔습니다만, 저는 어찌해야 합니까."
소나곤은 수레에서 내리기를 주저했다.
"아무래도 좋다. 이제 여왕님이 이곳으로 와버리셨으니, 너만 돌아가고 싶다면 보내주마."
겐지가 강권했다. 어쩔 수 없이 소나곤도 내리고 말았다. 갑작스러운 변동에 아까부터 가슴이 계속 두근거렸다. 친왕께서 자신을 어떻게 꾸짖으실까 생각하는 것도 근심거리 중 하나였다. 그렇다 해도 공주가 앞으로 어떤 운명이 될 것인가 생각하니, 어쨌든 어머니나 할머니와 일찍 이별하는 사람은 틀림없는 불행한 사람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어 눈물이 멈추지 않을 것 같았으나, 이것이 공주가 시가로 옮겨가는 첫날이라 생각하니 상서롭지 못하게 우는 것은 삼가야 한다고 애써 참고 있었다.
이곳은 평소에 그리 자주 쓰지 않는 저택이라 장대나 가구 같은 것도 놓여 있지 않았다. 겐지는 고레미쓰를 불러 장대와 병풍 등을 곳곳에 배치하게 했다. 평소 위로 걷어 올려두었던 휘장의 늘어뜨린 비단은 내리기만 하면 되었고, 다다미 자리 등도 조금 위치를 바로잡는 정도로 충분했다. 동쪽 대저택으로 이불 따위를 가져오게 하여 잠자리에 들었다. 공주는 두려운 마음에 앞으로 자신을 어떻게 할 것인가 생각하니 몸이 떨려왔으나, 차마 소리 내어 울지는 못했다.
"소나곤 곁에서 잘래요."
어린아이 같은 목소리로 말한다.
"이제 너는 유모랑 함께 자는 게 아니란다."
겐지가 그렇게 가르쳐 주자, 슬픔을 이기지 못한 채 울다가 잠들어 버렸다. 유모는 잠들 수도 없어 그저 하염없이 눈물만 흘렸다.
날이 밝아오는 아침 빛을 내다보니, 건물이나 실내 장식은 말할 것도 없이 훌륭했고 정원에 깔린 모래 등도 구슬을 쌓아놓은 것처럼 아름다웠다. 소나곤은 자신이 초라하게 느껴져 겸연쩍었으나, 이 저택에는 여관이 없었다. 그리 친하지 않은 손님 등을 맞이하기 위한 방으로 되어 있었기에, 남자 시종들만이 툇마루 밖에서 명령을 기다릴 뿐이었다. 그들은 새로이 겐지가 맞이한 여성이 있다는 소문을 듣고,
"누굴까, 꽤나 마음에 드는 분인가 보군."
하며 수군거렸다. 겐지의 세숫물과 아침 식사도 이곳으로 운반되었다. 늦게까지 잠자다 일어난 겐지는 소나곤에게,
"여관들이 없으면 불편할 테니, 저쪽에 있던 이들 중 몇 명을 저녁쯤에 데려오도록 하시오."
라고 말하고는, 특히 어린 아이들만 데려오라고 동쪽 대저택 쪽으로 동녀를 불러 보냈다. 잠시 후 사랑스러운 아이들 네 명이 왔다. 공주가 옷에 싸인 채 아직 누워 있자 겐지는 억지로 깨우며,
"나한테 심술부려서는 안 된단다. 박정한 남자란 결코 이런 모습이 아니야. 여자는 마음씨가 부드러운 것이 좋은 법이지."
벌써부터 이런 식으로 가르치기 시작했다. 공주의 얼굴은 조금 멀리서 보았을 때보다 훨씬 아름다웠다. 마음에 들어 할 만한 이야기를 나누고, 재미있는 그림이나 놀잇감을 동쪽 대저택에서 가져오게 하는 등 겐지는 공주의 기분을 풀어주느라 애를 썼다. 겨우 일어나 상복으로 입던 다소 짙은 쥐색 옷이 낡아 부드러워진 것을 걸친 공주의 얼굴에 미소가 번지자, 겐지의 얼굴에도 자연스레 미소가 떠올랐다. 겐지가 동쪽 대저택으로 간 뒤 공주는 침실을 나와 나무가 아름다운 축산과 연못 쪽을 발 너머로 내다보았다. 서리 내린 정원의 수풀이 꼭 잘 그린 그림처럼 훌륭했고, 평소 보기 힘든 검은 정장을 한 사위나 붉은 옷을 입은 오위 관인들이 섞여 드나들고 있었다. 겐지가 말했던 것처럼 정말 이곳은 좋은 집이라고 공주는 생각했다. 병풍에 그려진 재미있는 그림들을 보러 다니며, 공주는 의지할 곳 없는 오늘 하루의 마음을 달래는 듯했다.
겐지는 이삼 일 동안 궁궐에도 나가지 않고 이 아이와 친해지는 데 온 힘을 쏟았다. 본보기 책으로 삼으라며 글씨와 그림을 여러 가지로 그려 보여 주기도 했다. 모두 아름다웠다. '모르지만 무사시노라고 하니 탓할 수 없구려, 보랏빛의 인연이기에'라는 노래가 적힌 보랏빛 종이에 쓴, 아주 잘된 한 장을 손에 들고 공주는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었다. 또 조금 작은 글씨로,
뿌리는 보지 못했으나 애처롭다 생각하오, 무사시노의 이슬을 헤치며 고생하는 풀의 연분을.
라고도 적혀 있었다.
"너도 한번 써 보렴."
겐지가 이렇게 말하자,
"아직 잘 쓰지 못해요."
올려다보며 말하는 공주의 얼굴이 무구하고 귀여워서 겐지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서툴더라도 쓰지 않는 것은 좋지 않아요. 가르쳐 드릴게요."
몸을 웅크린 채 글씨를 쓰려는 모습이나 붓을 쥔 아이 같은 손길이 그저 귀엽게만 느껴지는 것을, 겐지는 자신의 마음이면서도 신기하게 여겼다.
"잘못 썼어요."
라고 말하며 부끄러워 숨기는 것을 억지로 읽어보았다.
원망해야 할 까닭도 모르는 채 답답하구나, 어떤 풀의 연분이기에 이리 되었을까.
아이 같은 글씨였지만, 장래의 발전을 예감케 하는 통통한 모양새였다. 죽은 니기미의 글씨와도 닮아 있었다. 현대의 모범을 따라 배우게 하면 더 좋아질 것이라고 겐지는 생각했다. 인형이나 지붕이 있는 집 등도 잔뜩 만들게 하여 와카무라사키의 공주와 노는 것은 겐지의 잡념을 잊게 하는 가장 좋은 방법인 듯했다.
다이나곤 집에 남아 있던 여관들은 친왕께서 행차하셨을 때 인사드릴 방법이 없어 곤란해했다. 당분간은 세상에 알리지 말자고 겐지도 말했고 소나곤도 같은 생각이었기에, 비밀로 할 것을 거듭 당부하며 소나곤이 공주를 어딘가에 숨긴 것처럼 아뢰게 했다. 친왕은 크게 낙담하셨다. 비구니 역시 공주가 친왕의 저택으로 옮겨가는 것을 몹시 싫어했기에, 유모의 지나친 생각으로 정면에서 거절하지 않은 채 몰래 공주를 데리고 나간 것이라고 생각하시고 친왕은 눈물을 흘리며 돌아가셨다.
"혹시 거처를 알게 되면 기별을 넣도록 하라."
친왕의 이 말씀을 여관들은 괴로운 마음으로 듣고 있었다. 친왕은 승도에게도 찾아보게 하셨으나 공주의 행방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알 수 없었다. 아름다웠던 어린 공주의 얼굴을 떠올리며 친왕은 슬퍼하셨다. 부인은 한때 그 어머니를 질투했던 마음도 긴 세월 속에 잊고, 자신의 아이로 기르는 것을 즐거워하던 마음이 수포로 돌아간 것을 애석하게 여겼다.
그사이 니조인 서쪽 대저택에 여관들이 모여들었다. 와카무라사키의 말동무가 된 아이들은 다이나곤 가에서 온 어린 겐지의 군, 동쪽 대저택의 예쁜 공주와 함께 놀 수 있다는 사실을 기뻐했다. 와카무라사키는 겐지가 자리를 비우는 저녁 무렵이면 니기미를 그리워하며 울기도 했지만, 친부인 친왕을 떠올리는 기색은 없었다. 처음부터 가끔씩밖에 보지 못했던 친부였기에, 지금은 제2의 아버지라 생각하는 겐지에게만 점점 익숙해져 갔다. 밖에서 겐지가 돌아올 때면 스스로 누구보다 먼저 마중 나가 귀여운 모습으로 여러 이야기를 나누고는, 품속에 안겨서도 조금도 겸연쩍거나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이런 색다른 정이 이곳에서만 보여지고 있었다.
어른 연인과의 관계에는 미묘하고 성가신 일들이 있어, 이런저런 장애 때문에 사랑까지 망치지 않을까 스스로 불안해질 때도 있고, 여자 쪽은 또 일 년 내내 원망하며 지내게 되어 그 사이에 다른 사랑이 싹트기도 한다. 하지만 이 아이와의 관계에는 그런 두려움이 조금도 없었다. 그저 마음을 아름답게 달래주는 존재일 뿐이었다. 딸이라는 존재도 이만큼 자라면 아버지가 이토록 가까이서 돌볼 수 없고, 밤에 같은 침실에 드는 것도 허용되지 않는 법이니, 이토록 재미있는 사이는 다시없다고 겐지는 생각하는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