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장 카인
나의 고통으로부터의 구원은 전혀 예상치 못한 곳에서 찾아왔고, 그와 동시에 오늘날까지도 내 삶에 지속적인 영향을 미치는 새로운 무언가가 내 삶으로 들어왔다.
얼마 전 우리 라틴어 학교에 새 학생이 전학을 왔다. 그는 우리 시로 이사 온 부유한 미망인의 아들이었는데, 소매에는 검은 상장을 두르고 있었다. 그는 나보다 더 높은 학년에 나이도 몇 살 더 많았지만, 모두가 그랬듯 나 역시 곧 그에게 눈길이 갔다. 이 묘한 학생은 실제 나이보다 훨씬 들어 보였고, 누구에게도 소년 같은 인상을 주지는 않았다. 철없는 우리 소년들 사이에서 그는 낯설고 성숙한 어른, 아니 오히려 신사처럼 행동했다. 그가 인기가 많았던 것은 아니었다. 놀이에도, 싸움판에도 참여하지 않았으니까. 다만 교사들을 대하는 그의 자신감 넘치고 단호한 말투만이 다른 아이들의 마음에 들었을 뿐이다. 그의 이름은 막스 데미안이었다.
어느 날, 우리 학교에서는 흔히 있는 일이지만 어떤 이유로 다른 학급 하나가 우리네 아주 큰 교실에 함께 들어오게 되었다. 바로 데미안의 학급이었다. 우리 어린아이들은 성경 역사를 배웠고, 형들은 작문을 해야 했다. 우리가 카인과 아벨의 이야기를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듣는 동안, 나는 자꾸만 데미안 쪽을 쳐다보았다. 그의 얼굴은 기묘하게 나를 매혹했다. 그 총명하고 밝으며 한없이 단단해 보이는 얼굴이 주의 깊고 영리하게 자신의 과제에 숙여져 있는 것을 보았다. 그는 과제를 하는 학생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자신만의 문제를 탐구하는 연구자처럼 보였다. 사실 그가 유쾌하게 느껴지진 않았다. 오히려 반대였다. 나는 그에게 무언가 반감을 느꼈는데, 그는 나보다 너무 우월하고 차가웠으며, 그의 존재는 너무나 도발적일 만큼 자신감이 넘쳤다. 그의 눈은 아이들이 결코 좋아하지 않는 어른들의 표정을 담고 있었는데, 조금 슬프면서도 비웃음이 번뜩이는 눈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가 좋든 싫든 자꾸만 그를 쳐다봐야 했다. 그러다 그가 나를 한 번이라도 쳐다볼라치면 나는 깜짝 놀라 시선을 거두곤 했다. 오늘날 돌이켜 보면, 당시 학생이었던 그를 이렇게 표현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는 모든 면에서 다른 이들과 달랐고, 아주 독특하고 개성적인 인장을 찍은 듯하여 눈에 띄었다. 동시에 그는 눈에 띄지 않으려고 부단히 애를 썼는데, 마치 농부의 아이들 틈에 섞여 자신도 그들과 같아 보이려고 안간힘을 쓰는 변장한 왕자처럼 옷을 입고 행동했다.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그가 내 뒤를 따라왔다. 다른 아이들이 뿔뿔이 흩어지자 그가 나를 앞질러 가며 인사했다. 그 인사는 학교 아이들의 말투를 흉내 낸 것이었음에도 매우 어른스럽고 예의가 발랐다.
"우리 같이 좀 걸을까?" 그가 다정하게 물었다. 나는 우쭐한 기분이 들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그에게 내가 사는 곳을 알려주었다.
"아, 거기?" 그가 미소 지으며 말했다. "그 집은 벌써 알고 있어. 대문 위에 묘한 것이 달려 있던데, 그게 금방 눈에 띄더라고."
나는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 바로 알 수 없었고, 그가 나보다 우리 집을 더 잘 아는 것 같아 놀랐다. 아치형 대문 위에는 쐐기돌처럼 일종의 문장이 새겨져 있었지만, 세월이 흐르며 마모되고 페인트칠도 여러 번 덧칠해져서 내가 알기로는 우리 가족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잘 모르겠어." 나는 수줍게 대답했다. "새인지 비슷한 무언가인데, 아주 오래된 것 같아. 이 집이 옛날에는 수도원 건물이었다고 하더라고."
"그럴지도 모르지."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한번 자세히 봐 봐! 그런 것들이 의외로 아주 흥미롭거든. 난 그게 새매인 것 같아."
우리는 계속 걸었고, 나는 매우 긴장되었다. 갑자기 데미안이 무언가 재미있는 일이 생각난 듯 웃음을 터뜨렸다.
"맞다, 아까 너희 수업 시간에 같이 있었잖아." 그가 활기차게 말했다. "이마에 표식을 가졌던 카인 이야기 말이야, 그렇지? 그 이야기 마음에 들어?"
아니, 우리가 배워야 하는 모든 것 중에서 마음에 드는 건 거의 없었다. 하지만 나는 차마 그렇게 말할 수 없었다. 마치 어른과 대화하는 기분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그 이야기가 꽤 괜찮다고 대답했다.
데미안이 내 어깨를 툭 쳤다.
"나한테 거짓말할 필요 없어, 친구. 하지만 그 이야기는 참으로 기묘해. 수업 시간에 배우는 다른 이야기들보다 훨씬 더 기묘하다고 생각해. 선생님은 신과 죄 같은 뻔한 이야기만 늘어놓으셨지만 말이야. 하지만 내 생각엔……." 그는 말을 멈추고 미소 지으며 물었다. "그런데 너도 관심 있어?"
"그래, 그러니까 내 생각에는," 그가 말을 이었다. "카인 이야기를 아주 다르게 해석할 수도 있어. 학교에서 가르치는 대부분의 것들은 분명히 진실이고 옳겠지만, 선생님들이 하는 방식과는 다르게 바라볼 수도 있거든. 그러면 훨씬 더 나은 의미가 드러날 때가 많아. 예를 들어, 이 카인 이야기나 그의 이마에 새겨진 표식 같은 경우, 지금 우리가 배우는 방식으로는 도저히 납득이 안 되잖아. 너도 그렇지 않니? 싸우다가 형제를 죽이는 일은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고, 나중에 겁을 먹고 위축되는 것도 가능한 일이야. 하지만 비겁한 짓을 저지르고도 오히려 특별한 훈장을 받아 보호를 받고, 다른 사람들에게 공포심까지 심어준다는 건 정말 이상한 일 아니겠어?"
"물론 그렇지." 나는 흥미를 느끼며 말했다. 그 이야기가 나를 사로잡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 이야기를 어떻게 다르게 해석해야 한다는 거야?"
그가 내 어깨를 툭 쳤다.
"아주 간단해! 실제로 존재했고 이야기가 시작된 근거는 바로 그 '표식'이었어. 어떤 사내가 있었는데, 얼굴에 다른 사람들을 겁먹게 만드는 무언가가 있었던 거지. 사람들은 그나 그의 자손들을 감히 건드리지 못했고, 그들에게 압도당했어. 아마도, 아니 거의 확실히, 그 표식은 이마에 찍힌 도장 같은 게 아니었을 거야. 인생살이가 그렇게 투박하게 흘러가지는 않으니까. 오히려 그건 눈에 거의 띄지 않는 기묘한 분위기, 사람들이 익숙한 것보다 조금 더 지적이고 대담한 눈빛 같은 것이었을 거야. 그 사내는 힘이 있었고, 사람들은 그를 두려워했어. 그는 '표식'을 가지고 있었던 거지. 사람들은 그 표식을 자기들 마음대로 해석했어. 원래 '사람들'이란 자신들에게 편하고 정당화하기 쉬운 쪽으로 생각하고 싶어 하거든. 그들은 카인의 자손들을 두려워했고, 그들에게는 '표식'이 있었어. 그래서 그 표식을 본래 의미인 '훈장'이 아니라 정반대의 것으로 설명해 버린 거야. 그 표식을 가진 녀석들은 불길하다고 떠들었는데, 실제로도 그들은 기묘한 존재들이었으니까. 용기와 개성을 가진 사람들은 언제나 보통 사람들에게 불길하게 비치거든. 대담하고 기묘한 종족이 돌아다니는 것은 매우 불편한 일이었고, 그래서 사람들은 그들에 대한 복수심과 그간 겪은 공포에 대한 보상 심리로 그들에게 나쁜 별명과 꾸며낸 이야기를 덧씌운 거야. 이해가 돼?"
"응, 그러니까…… 그렇다면 카인은 사실 악한 사람이 아니었다는 거네? 그럼 성경에 나오는 그 이야기 전체가 실제로는 사실이 아니라는 거야?"
"그래,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해. 그렇게 아주 오래된 옛날이야기들은 언제나 사실이지만, 항상 기록된 그대로이거나 제대로 설명되는 건 아니거든. 요컨대 내 생각에는 카인은 훌륭한 사내였는데, 단지 사람들이 그를 두려워했기 때문에 이런 이야기를 덧씌운 거야. 그 이야기는 그냥 소문에 불과해. 사람들이 수군거리는 그런 종류의 것 말이야. 하지만 카인과 그의 자손들이 실제로 일종의 '표식'을 지니고 있었고 대부분의 사람들과는 달랐다는 점에서는 아주 사실이지."
나는 매우 놀랐다.
"그럼 너는 사람을 죽인 그 일도 사실이 아니라고 믿는 거야?" 나는 감격하여 물었다.
"아니, 그건 확실히 사실이지. 강한 자가 약한 자를 죽인 거야. 그게 정말 그의 형제였는지는 의심해 볼 수 있겠지. 하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아. 어차피 모든 인간은 형제니까. 그러니까 강한 자가 약한 자를 죽였다는 거야. 어쩌면 영웅적인 행동이었을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지. 하지만 어쨌든 다른 약한 사람들은 이제 공포에 떨었고, 그들은 몹시 불평했어. 누군가 '왜 그냥 그 사람도 죽여버리지 그래?'라고 물으면 그들은 '우리가 겁쟁이라서 그래'라고 말하는 대신 '그럴 수는 없어. 그는 표식을 가졌거든. 신이 그에게 표식을 새겼단 말이야!'라고 말했지. 그런 식으로 사기가 생겨난 게 틀림없어. 그럼, 너를 붙잡아 뒀네. 잘 가!"
그는 구시가지 골목으로 들어섰고, 나는 그에게 남겨졌다. 나는 그 어느 때보다 더 어리둥절했다. 그가 가고 나니 그가 했던 모든 말이 정말 믿을 수 없게 느껴졌다! 카인이 고귀한 사람이고, 아벨이 겁쟁이라고? 카인의 표식이 훈장이라니! 터무니없고, 신성모독적이며, 끔찍한 소리였다. 그렇다면 하느님은 어디에 계셨던 거지? 하느님은 아벨의 제물을 받지 않으셨던가, 아벨을 사랑하지 않으셨던가? 아니, 바보 같은 소리! 나는 데미안이 나를 놀리려고 나를 함정에 빠뜨리려 했던 것이라고 짐작했다. 그는 지독할 정도로 영리한 녀석이었고 말솜씨도 좋았지만, 이런 건…… 아니, 도저히…….
어쨌든 나는 성경 이야기든 다른 이야기든 그 무엇에 대해서도 이렇게까지 깊이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리고 오랫동안 프란츠 크로머를 이토록 완전히 잊어버린 적도 없었다. 한 시간 동안, 아니 한 저녁 내내 그랬다. 나는 집에 돌아와 성경에 적힌 그 이야기를 다시 읽어 보았다. 내용은 짧고 명확했으며, 거기서 특별하고 비밀스러운 해석을 찾으려 한다는 건 정말 터무니없는 짓이었다. 그렇다면 살인자라면 누구나 자신을 하느님의 총애를 받는 자라고 주장할 수 있을 테니까! 아니, 그건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다만 데미안이 그런 이야기를 할 때의 방식이 좋았을 뿐이다. 모든 것이 당연하다는 듯이 쉽고도 멋지게 이야기하는 그 방식, 그리고 그 눈빛까지 더해져서 말이다.
물론 나 자신에게 무언가 잘못된 점이, 아니 매우 심하게 엉망인 점이 있었다. 나는 밝고 깨끗한 세상에서 살았고, 나 스스로 일종의 아벨과 같은 존재였다. 그런데 지금 나는 '다른 쪽'에 너무 깊숙이 빠져 있었고, 너무나 많이 타락하고 추락해 버렸다. 하지만 근본적으로는 내가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던 측면도 있었다!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 그렇다, 바로 지금 문득 떠오른 기억 하나가 잠시 내 숨을 멎게 했다. 나의 지금 이 불행이 시작되었던 그 끔찍한 날 저녁, 아버지와 관련된 일이 있었다. 그때 나는 한순간, 아버지와 그의 밝은 세상, 그리고 그의 지혜를 단번에 꿰뚫어 보고는 경멸했던 것이다! 그래, 카인이며 그 표식을 지닌 바로 나 자신이, 이 표식은 수치가 아니라 훈장이며 내가 저지른 악행과 불행 덕분에 내가 아버지보다, 선하고 경건한 사람들보다 더 높은 곳에 있다고 상상했던 것이다.
내가 당시 이 일을 겪었을 때는 이런 명료한 생각의 형태는 아니었으나, 이 모든 것이 그 안에 담겨 있었다. 그것은 아픔을 주면서도 나를 자부심으로 채워주던 묘한 감정과 충동들이 그저 불꽃처럼 튀어 올랐던 것이었다.
내가 그 생각을 해 보았을 때…… 데미안이 겁 없는 사람들과 겁쟁이들에 대해 말했던 방식은 얼마나 기묘했는가! 그가 카인의 이마에 새겨진 표식을 해석했던 방식은 얼마나 낯설었는가! 그때 그의 눈, 어른의 눈이라기엔 너무도 기이했던 그의 눈이 얼마나 신기하게 빛났던가! 그러고는 머릿속에 불분명하게 이런 생각이 스쳤다. '저 데미안 자신도 일종의 카인이 아닐까? 자기가 카인과 비슷하다고 느끼지 않는다면 왜 그를 변호하는 거지? 왜 그의 눈빛에는 그런 힘이 있는 걸까? 왜 그는 정작 경건하고 하느님이 기뻐하실 만한 존재들인 '다른' 사람들에 대해 그렇게 비웃듯 말하는 걸까?'
나는 이 생각들을 도무지 정리할 수 없었다. 내 어린 영혼이라는 우물 속으로 돌 하나가 떨어진 꼴이었다. 그리고 아주 오랜 시간 동안, 카인과 살인, 그리고 그 표식에 관한 이 문제는 내 인식과 의심, 비판의 시도들이 시작되는 출발점이 되었다.
* * * * *
나는 다른 학생들도 데미안에게 관심이 많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카인에 관한 이야기는 누구에게도 하지 않았지만, 그는 다른 아이들에게도 흥미로운 존재인 듯했다. 적어도 그 '전학생'에 대한 소문이 많이 돌았다. 그 소문들을 하나하나 다 기억할 수만 있다면 그 각각이 그를 비추는 빛이 되어, 하나하나 해석할 수 있었을 텐데. 내가 기억하는 것은 우선 데미안의 어머니가 아주 부자라는 소문이 돌았다는 점이다. 또 그들은 교회에 절대 나가지 않으며, 아들 역시 마찬가지라고 했다. 한 아이는 그들이 유대인일 것이라고 장담했지만, 비밀리에 무함마드교를 믿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말도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막스 데미안의 괴력에 대한 이야기들도 전설처럼 퍼졌다. 확실한 것은 그가 학급에서 가장 힘센 아이를 처참하게 굴복시켰다는 사실이다. 그 아이가 데미안에게 싸움을 걸고, 데미안이 거절하자 겁쟁이라고 불렀을 때였다. 목격자들의 말에 따르면, 데미안은 그저 한 손으로 그 아이의 목덜미를 잡아 꽉 눌렀을 뿐인데, 그 아이는 얼굴이 창백해졌고 그 후 며칠 동안 팔을 제대로 쓰지 못하고 슬금슬금 피해 다녔다고 했다. 어느 날 저녁에는 그 아이가 죽었다는 소문까지 돌았다. 잠시 동안 모든 것이 주장되었고, 모든 것이 믿어졌으며, 모든 것이 흥미진진하고 신비스러웠다. 그러다 한동안 사람들의 관심이 사그라들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 학생들 사이에서 새로운 소문이 돌기 시작했는데, 데미안이 여자아이들과 밀접하게 지내며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그동안 프란츠 크로머와 관련된 나의 일은 필연적인 경로를 따라 계속되었다. 나는 그에게서 벗어날 수 없었다. 그가 가끔 며칠씩 나를 내버려 두긴 했지만, 나는 여전히 그에게 얽매여 있었다. 꿈속에서도 그는 내 그림자처럼 따라다녔고, 현실에서 그가 내게 하지 않은 짓조차 상상력을 통해 꿈속에서 행하게 만들었다. 그 꿈속에서 나는 완전히 그의 노예가 되었다. 나는 현실보다 그 꿈속에서 더 많이 살았다. 원래 꿈을 강렬하게 꾸는 편이기도 했지만, 나는 이 그림자들에게 힘과 생명력을 빼앗기고 있었다. 여러 꿈 중에서도 나는 크로머가 나를 학대하거나 내게 침을 뱉고 내 위에 올라타는 꿈을 자주 꾸었다. 더 끔찍한 것은 그가 나를 무거운 범죄로 유혹한다는 점이었다. 아니, 유혹한다기보다는 강력한 영향력으로 나를 강제로 시키는 것에 가까웠다. 반쯤 미친 채로 깨어났던 그 가장 두려운 꿈에는 아버지에 대한 살인 시도가 포함되어 있었다. 크로머는 칼을 갈아 내 손에 쥐여 주었고, 우리는 가로수 뒤에 서서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누군지는 몰랐지만, 어떤 사람이 다가왔을 때 크로머가 내 팔을 누르며 저 사람을 찌르라고 말했고, 그 사람은 바로 아버지였다. 그때 나는 잠에서 깨어났다.
이런 일들을 겪으면서 나는 여전히 카인과 아벨을 생각했지만, 데미안에 대해서는 거의 생각하지 않았다. 그가 다시 내 앞에 처음으로 나타난 것은 이상하게도 꿈속에서였다. 나는 또다시 학대와 강요를 당하는 꿈을 꾸었는데, 이번에는 크로머 대신 데미안이 내 위에 무릎을 꿇고 있었다. 그리고 아주 새롭고 깊은 인상을 남긴 점은, 크로머에게 당할 때는 고통스럽고 저항하고 싶었던 모든 일을 데미안에게 당할 때는 기꺼이 받아들였다는 것이다. 그 느낌은 공포만큼이나 큰 희열을 동반하고 있었다. 이 꿈을 두 번 꾸었고, 그 후에는 다시 크로머가 그 자리를 대신했다.
이 꿈속에서 내가 겪은 일과 현실에서 일어난 일을 이제는 더 이상 정확히 구분할 수 없다. 어쨌든 크로머와의 악연은 계속되었고, 내가 그 아이에게 빚진 돈을 자잘한 절도 행각을 벌여가며 다 갚았다고 해서 끝난 것이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그가 그 도둑질들에 대해 알게 되면서 나는 이전보다 더 깊이 그의 손아귀에 붙잡히고 말았다. 그는 틈만 나면 아버지께 모든 것을 말하겠다고 협박했고, 그럴 때면 나는 두려움만큼이나 왜 처음부터 내가 직접 사실대로 말씀드리지 않았을까 하는 깊은 후회에 시달렸다. 한편, 그렇게 비참한 처지였음에도 나는 모든 것을 후회한 것은 아니었다. 적어도 항상 그렇지는 않았다. 때로는 모든 것이 이런 식으로 흘러가야만 하는 운명임을 느끼기도 했다. 내 위에 어떤 불행한 운명이 드리워져 있었고, 그것을 깨뜨리려 해 봐야 소용없는 일이었다.
아마도 부모님께서는 이런 내 상태 때문에 적지 않게 고통받으셨을 것이다. 낯선 영혼이 내게 깃들었고, 나는 그렇게도 다정했던 우리 가족의 공동체에 더 이상 어울리지 못하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잃어버린 낙원을 그리워하듯 강렬한 향수에 자주 사로잡혔다. 나는, 특히 어머니에게 악당이라기보다는 차라리 환자처럼 대우받았다. 그러나 내 상황이 실제 어떠했는지는 두 여동생들의 태도를 통해 가장 잘 알 수 있었다. 아주 조심스러우면서도 나를 끝없이 비참하게 만드는 그들의 태도에는, 내가 어떤 악령에 사로잡힌 존재이며, 꾸짖음보다는 동정이 필요한 상태이지만 동시에 그 내면에 악이 자리 잡고 있다는 사실이 분명하게 드러나 있었다. 가족들이 평소와는 다르게 나를 위해 기도하고 있다는 것을 느꼈고, 나는 그 기도가 헛되다는 것 또한 느꼈다. 마음의 짐을 덜어내고 싶다는 갈망, 진심으로 고해하고 싶다는 욕구는 종종 불타오르듯 간절했지만, 나는 아버지나 어머니 그 누구에게도 이 모든 일을 제대로 설명할 수 없으리라는 것을 미리 알고 있었다. 그들은 내 이야기를 친절하게 들어주고, 나를 배려하며, 가엽게 여길 테지만, 결코 나를 온전히 이해하지는 못할 것이다. 그리고 이 모든 일은 그저 일시적인 일탈로 치부되겠지만, 사실 그것은 나의 운명이었다.
열한 살도 안 된 어린아이가 그런 감정을 느낄 수 있을 거라고는 믿지 못할 사람이 많으리라는 것을 안다. 그런 이들에게는 내 사정을 이야기하지 않겠다. 나는 사람을 더 잘 아는 이들에게 이야기하려 한다. 자신의 감정 일부를 생각으로 바꾸는 법을 배운 어른들은 아이에게서 그런 생각이 없다고 보고, 경험조차 없다고 여긴다. 하지만 나는 내 인생에서 그때만큼 깊이 경험하고 고통받았던 적이 거의 없다.
* * * * *
비가 내리던 날이었다. 나는 나를 괴롭히는 그 애에게 성곽 광장으로 나오라는 호출을 받았고, 검게 젖은 나무에서 끊임없이 떨어지는 젖은 밤나무 잎사귀를 발로 뒤적이며 그곳에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돈은 없었지만, 크로머에게 뭐라도 주기 위해 케이크 두 조각을 따로 챙겨 가지고 있었다. 나는 어디 구석에 서서 그를 기다리는 일에 이미 익숙해진 터였다. 때로는 아주 오랜 시간을 기다려야 했지만, 나는 인간이 어쩔 수 없는 일을 받아들이듯 그저 순응했다.
드디어 크로머가 왔다. 오늘은 오래 머물지 않았다. 그는 내 갈비뼈를 몇 번 쿡 찌르고 웃더니 케이크를 뺏어 갔다. 심지어 축축한 담배 한 개비를 권하기도 했지만 나는 받지 않았고, 그는 평소보다 훨씬 친절했다.
"참," 그가 떠나면서 말했다. "잊을 뻔했네. 다음번에 네 여동생을 데려와 봐, 언니 쪽으로. 이름이 뭐더라?"
나는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 못해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 그저 놀란 눈으로 그를 바라볼 뿐이었다.
"말귀를 못 알아들어? 네 여동생을 데려오라고."
"응, 크로머, 하지만 그건 안 돼. 안 된다고 하실 거야. 그리고 걔도 절대 안 나올 거야."
나는 이것도 또 하나의 괴롭힘이자 핑계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흔히들 그랬다. 불가능한 일을 요구하여 나를 겁주고 모욕한 다음, 조금씩 거래를 하려 드는 식이었다. 그러면 나는 돈이나 다른 선물을 바쳐서 그 상황을 면해야 했다.
이번에는 전혀 달랐다. 내 거절에도 그는 거의 화를 내지 않았다.
"뭐 좋아," 그가 무심하게 말했다. "잘 생각해 봐. 난 네 여동생이랑 알고 지내고 싶어. 어떻게든 방법은 있을 거야. 그냥 걔를 산책하러 데리고 나와. 그럼 내가 합류할 테니까. 내일 내가 휘파람 불 테니 그때 다시 이야기하자."
그가 떠나고 나자, 나는 그가 요구한 것의 의미를 어렴풋이 깨달았다. 나는 아직 완전히 어린애였지만, 소년과 소녀가 조금 더 자라면 알 수 없는 기묘하고 불쾌하며 금지된 짓을 함께 할 수 있다는 소문을 주워들은 적이 있었다. 그런데 이제 내가 그걸 해야 한다니, 그것이 얼마나 끔찍한 일인지 문득 분명하게 깨달아졌다! 나는 절대 그러지 않겠다고 즉시 결심했다. 하지만 그러고 나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크로머가 어떻게 내게 복수할지 생각하면 감히 엄두가 나지 않았다. 내게 새로운 고문이 시작되었고, 이것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았다.
나는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은 채 텅 빈 광장을 터덜터덜 걸었다. 새로운 고통, 새로운 노예살이였다!
그때 싱그럽고 낮은 목소리가 나를 불렀다. 나는 깜짝 놀라 달아나기 시작했다. 누군가 내 뒤를 쫓아왔고, 한 손이 뒤에서 부드럽게 나를 붙잡았다. 막스 데미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