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고모가 말을 이었다. "이 아이가 아주 대단한 일을 저질렀어요. 집에서 도망쳐 나왔답니다. 아! 그 아이의 여동생, 벳시 트로트우드라면 절대 도망치지 않았을 거예요." 고모는 세상에 태어나지도 않은 그 소녀의 성품과 행동을 확신하며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오! 그 아이는 도망치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하시는군요?" 딕 씨가 말했다.
"세상에, 저 사람 좀 봐." 고모가 날카롭게 외쳤다. "말하는 것 좀 보게! 그 아이가 그러지 않았을 거라는 걸 내가 모를 줄 알아? 그 아이는 대모님과 함께 살았을 테고, 우리는 서로에게 헌신하며 지냈을 거야. 도대체 세상에, 그 아이의 여동생인 벳시 트로트우드가 어디서, 또 어디로 도망쳤어야 했다는 말이야?"
"어디로도 안 갔겠지." 딕 씨가 말했다.
"그럼 됐어." 고모가 그 대답에 누그러져 대꾸했다. "그런데 딕, 당신은 외과의사의 메스처럼 날카로우면서 어떻게 멍하니 넋을 놓고 있는 척할 수가 있지? 자, 여기 어린 데이비드 코퍼필드가 있네. 당신에게 묻겠는데, 이 아이를 어떻게 하면 좋겠어?"
"이 아이를 어떻게 하느냐고요?" 딕 씨가 머리를 긁적이며 힘없이 말했다. "아! 이 아이를요?"
"그래." 고모가 엄숙한 표정으로 검지를 치켜들며 말했다. "자! 아주 현명한 조언이 필요해."
"글쎄요, 제가 당신이라면." 딕 씨가 곰곰이 생각하다가 멍하니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저는……." 나를 지켜보던 것이 갑자기 어떤 생각을 떠오르게 했는지 그가 재빨리 덧붙였다. "저는 이 아이를 씻기겠어요!"
"재닛." 고모가 돌아서며 말했다. 그때는 이해하지 못했던 조용한 승리감이 묻어나는 어조였다. "딕 씨가 답을 주었네. 목욕물을 준비하게!"
나는 이 대화에 깊이 빠져들면서도 대화가 오가는 동안 고모와 딕 씨, 그리고 재닛을 관찰하지 않을 수 없었고, 이미 시작했던 방 안 구석구석을 살피는 일도 마무리했다.
고모는 키가 크고 인상이 딱딱한 분이었지만, 결코 미인은 아니라고 할 수는 없었다. 얼굴과 목소리, 걸음걸이와 태도에는 내 어머니처럼 부드러운 사람에게 그렇게 강렬한 인상을 남긴 이유를 충분히 설명해 줄 만한 완고함이 서려 있었다. 하지만 그 이목구비는 굽힘 없고 엄격할지언정 오히려 잘생긴 편이었다. 특히 고모의 눈은 아주 빠르고 영롱했다. 회색 머리카락은 두 갈래로 단정하게 빗어 넘겼는데, 그 아래에는 소위 '몹 캡'이라고 부르는, 지금보다는 그때 더 흔했던 턱 아래로 끈을 묶는 모자를 쓰고 있었다. 고모의 드레스는 라벤더색이었고 매우 단정했지만, 몸을 최대한 가볍게 하려는 듯 간소하게 만들어져 있었다. 지금도 기억하기에 그 옷은 얼핏 보기에 불필요한 치마 자락을 잘라낸 승마복과 더 비슷해 보였다. 고모는 옆구리에 크기와 모양으로 보아 신사용 금시계가 분명한 물건을 적절한 체인과 인장 장식과 함께 차고 있었고, 목에는 셔츠 깃과 다를 바 없는 린넨을 두르고 손목에는 작은 셔츠 커프스 같은 것을 하고 있었다.
앞서 말했듯이 딕 씨는 머리가 희끗희끗하고 혈색이 좋았다. 사실 그것만으로도 그에 대한 설명은 다 한 셈이었겠지만, 그의 머리가 기묘하게 숙여져 있었다는 점이 걸렸다. 나이 때문은 아니었다. 그 모습은 마치 크리클 선생님의 학생 중 하나가 매를 맞은 뒤의 머리 모양을 연상시켰다. 딕 씨의 회색 눈은 크고 튀어나와 있었는데, 그 눈에 깃든 기묘한 물기 어린 광채가 그의 멍한 태도, 고모에게 순종하는 모습, 그리고 고모가 칭찬할 때 보이는 어린애 같은 기쁨과 어우러져 나는 그가 약간 미친 게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들었다. 하지만 그가 정말 미쳤다면 어떻게 이곳에 있게 되었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그는 다른 평범한 신사들처럼 헐렁한 회색 아침용 외투와 조끼, 흰색 바지 차림이었고, 시계는 주머니에 넣고 다녔으며, 주머니 속의 동전을 흔들며 아주 자랑스러워하는 듯했다.
재닛은 열아홉이나 스무 살쯤 된 예쁘고 혈색 좋은 처녀였으며, 깔끔함 그 자체를 보여주는 사람이었다. 그때는 그 이상 관찰하지 못했지만, 나중에야 알게 된 사실을 여기서 언급하자면 그녀는 고모가 남자를 멀리하도록 가르치겠다는 명목으로 고용해서 돌보던 일련의 보호생 중 한 명이었고, 대개는 제빵사와 결혼함으로써 그 가르침을 저버리고 집을 나가는 것으로 마무리가 되곤 했다.
그 방은 재닛이나 고모만큼이나 단정했다. 방금 글을 쓰다 말고 그 방 생각을 하니 바닷바람이 꽃향기와 섞여 다시 불어 들어오는 듯했다. 나는 밝게 닦여 반짝이는 구식 가구들, 보 윈도우의 둥근 녹색 부채 옆에 놓인 고모의 성역 같은 의자와 탁자, 깔개가 덮인 카펫, 고양이, 냄비 받침, 카나리아 두 마리, 오래된 도자기, 말린 장미 잎이 가득 담긴 펀치 볼, 온갖 병과 항아리를 지키고 있는 높은 찬장, 그리고 그 모든 것과 어울리지 않게 먼지투성이인 채로 소파에 앉아 이 모든 것을 관찰하고 있는 내 모습을 보았다.
재닛이 목욕물을 준비하러 떠난 직후, 내가 깜짝 놀랄 일이 벌어졌다. 고모가 순식간에 분노로 몸을 꼿꼿하게 굳히더니 거의 쥐어짜는 듯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재닛! 당나귀들이야!"
그러자 재닛은 마치 집에 불이라도 난 것처럼 계단을 뛰어 올라가 앞마당의 작은 잔디밭으로 달려 나갔고, 감히 그곳에 발을 들여놓은 두 마리의 당나귀를 쫓아냈다. 한편 고모는 집 밖으로 달려 나가 아이를 태운 세 번째 당나귀의 고삐를 낚아채더니, 홱 돌려 그 신성한 구역 밖으로 끌어냈고, 감히 그 거룩한 땅을 더럽힌 당나귀 몰이꾼 아이의 뺨을 후려쳤다.
지금 이 순간까지도 나는 고모가 그 잔디밭에 대해 법적인 통행권을 가지고 있었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고모는 스스로 그렇게 믿었고, 고모에게는 그게 곧 진실이었다. 고모의 평생에 걸친 가장 큰 분노이자 끊임없이 복수해야 할 대상은 그 티 하나 없는 땅 위로 당나귀가 지나가는 것이었다. 고모가 무슨 일을 하고 있든, 얼마나 흥미로운 대화에 참여하고 있든, 당나귀만 나타나면 고모의 생각은 순식간에 바뀌었고 곧바로 그놈을 향해 달려들었다. 물 주전자와 물뿌리개는 당나귀를 모는 아이들에게 퍼부으려고 은밀한 곳에 숨겨두었고, 막대기는 문 뒤에 매복해 두었으며, 수시로 밖으로 뛰쳐나가는 통에 전쟁이 끊일 날이 없었다. 어쩌면 이것이 당나귀 몰이꾼 아이들에게는 즐거운 자극이었을지도 모른다. 혹은 상황을 파악한 당나귀들 중 더 영리한 놈들이 그 타고난 고집으로 일부러 그 길로 오는 것을 즐겼는지도 모를 일이다. 내가 아는 건 목욕물이 준비되기 전까지 세 번이나 비상이 걸렸다는 것, 그리고 마지막이자 가장 격렬했던 소동 때는 고모가 열다섯 살쯤 된 모래색 머리의 소년과 혼자 맞붙어 그 소년의 머리를 대문짝에 들이박는 것을 보았는데, 소년은 상황 파악조차 못한 것 같았다. 이런 방해들은 내게 더욱 우스꽝스럽게 느껴졌는데, 왜냐하면 그때 고모는 내게 숟가락으로 국물을 떠먹이고 있었기 때문이다(고모는 내가 굶주려 죽기 일보 직전이며 처음에는 아주 조금씩 영양분을 섭취해야 한다고 굳게 믿고 있었다). 입을 벌리고 숟가락을 기다리고 있으면, 고모는 숟가락을 다시 그릇에 넣고는 "재닛! 당나귀들이야!"라고 외치고는 밖으로 나가 싸움을 벌이곤 했다.
목욕은 큰 위안이 되었다. 들판에서 자느라 사지에 심한 통증을 느끼기 시작했고, 너무 지치고 기운이 없어서 5분도 깨어 있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목욕을 마치자 그들(고모와 재닛을 말한다)은 내게 딕 씨의 셔츠와 바지를 입히고 서너 개의 커다란 숄로 나를 꽁꽁 동여매었다. 내가 어떤 보따리처럼 보였을지는 모르겠지만, 아주 뜨거운 보따리가 된 기분이었다. 기운이 빠지고 졸음이 쏟아져 나는 곧 소파에 다시 누워 잠이 들었다.
그건 오랫동안 내 마음을 사로잡았던 상상 속의 꿈이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고모가 다가와 내 위로 몸을 숙이고는, 내 얼굴에서 머리카락을 치워주고 머리를 더 편하게 해주며, 잠시 서서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는 인상을 받으며 잠에서 깨어났다. '귀여운 녀석' 혹은 '가련한 녀석'이라는 말이 내 귓가에 맴도는 것 같기도 했다. 하지만 깨어났을 때, 보 윈도우에서 회전식 틀에 고정된 녹색 부채 뒤에 앉아 바다를 바라보고 있던 고모가 그 말을 했다고 믿게 할 만한 다른 증거는 전혀 없었다.
내가 깨어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는 구운 닭고기와 푸딩으로 식사를 했다. 나는 마치 다리가 묶인 새처럼 식탁에 앉아 있었고 팔을 움직이는 것조차 꽤 힘들었다. 하지만 고모가 나를 꽁꽁 싸매어 두었기에 나는 불편하다는 불평 한마디 하지 않았다. 그동안 나는 고모가 나를 어떻게 할지 몹시 궁금했지만, 고모는 간혹 맞은편에 앉은 내게 시선을 고정하고 "세상에나!"라고 말할 때를 제외하고는 깊은 침묵 속에 식사를 했다. 그 말은 내 불안을 덜어주기는커녕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식탁보를 걷어내고 셰리주를 식탁에 올리자(나는 한 잔 마셨다) 고모는 다시 딕 씨를 불렀다. 딕 씨가 우리에게 합류했고, 고모가 질문을 던져 내 이야기를 서서히 끌어내기 시작했을 때 그는 최대한 지적인 표정을 지으려 애썼다. 내가 이야기를 하는 동안 고모는 딕 씨를 계속 지켜보았는데, 아마 그렇지 않았다면 그는 잠들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가 웃음을 터뜨리려 할 때마다 고모는 찌푸린 얼굴로 그를 제지했다.
"그 가련하고 불행한 애기가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또 결혼을 하겠다고 나섰는지," 내 이야기가 끝나자 고모가 말했다.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구나."
"아마 두 번째 남편과 사랑에 빠졌던 모양이죠." 딕 씨가 조심스레 의견을 냈다.
"사랑에 빠져?" 고모가 말을 받았다. "그게 무슨 소리예요? 그 애가 그럴 이유가 뭐가 있었다고 그래요?"
"아마도," 딕 씨가 잠시 생각하더니 방긋 웃으며 말했다. "즐거우려고 그랬겠죠."
"즐거움이라니!" 고모가 대꾸했다. "그 가련한 애기가 어떻게든 자기를 학대할 게 뻔한 개 같은 남자에게 순진한 믿음을 쏟는 게 무슨 큰 즐거움이라고. 도대체 무슨 생각을 했던 건지 알 수가 없구나! 남편이 이미 한 명 있었잖니. 그 데이비드 코퍼필드라는 사람은 요람에서부터 인형이나 쫓아다니다가 저세상으로 떠났지. 아이도 낳았고 말이야. 오, 그 금요일 밤에 이 아이를 낳았을 때는 정말 애기 엄마가 애기를 낳은 격이었지! 그런데 뭐가 더 필요했단 말이니?"
딕 씨는 마치 이 일은 어찌할 도리가 없다고 생각하는 듯 나를 향해 몰래 고개를 저었다.
"그 애는 아이 하나 낳는 것도 남들처럼 하지 못했어." 고모가 말했다. "이 아이의 누나인 벳시 트로트우드는 어디 있었니? 나타나지도 않았지. 말도 마라!"
딕 씨는 꽤 겁먹은 것 같았다.
"고개를 한쪽으로 기울이고 다니는 그 작은 의사 양반 말이다." 고모가 말했다. "젤립스인가 뭔가 하는 그 인간은 도대체 뭘 한 거지? 그 인간이 할 줄 아는 거라곤 그저 울새처럼 짹짹대며 나한테 '아들입니다.'라고 말하는 것뿐이었어. 아들이라니! 에휴, 그 작자들은 하나같이 왜 그렇게 멍청한 거야!"
그토록 격앙된 외침에 딕 씨는 화들짝 놀랐고, 사실대로 말하자면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그것도 모자라서, 이 아이의 누나인 벳시 트로트우드의 앞길을 제대로 가로막지 못했다는 듯이," 고모가 말을 이었다. "이번에는 재혼을 하더구나. 가서 살인자―혹은 그와 비슷한 이름을 가진 남자―와 결혼을 하더니 이 아이의 앞길까지 가로막았어! 그 자연스러운 결과는, 갓난아기가 아니면 누구나 예견했을 테지만, 이 아이가 정처 없이 떠돌게 된 것이지. 이 아이는 커가기 전의 카인과 아주 판박이야."
딕 씨는 마치 내가 바로 그 인물인지 확인하려는 듯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게다가 이교도 같은 이름을 가진 그 여자도 있지." 고모가 말했다. "그 페고티 말이다. 그다음에는 그 여자가 결혼을 하더구나. 그런 결혼이 가져오는 불행을 충분히 보지 못했는지, 이 아이의 말처럼 그 여자도 뒤이어 결혼을 했어. 내가 바라는 건," 고모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 여자 남편이 신문마다 흔히 나오는 부지깽이 남편 같은 작자라서, 부지깽이로 그 여자를 실컷 두들겨 패주었으면 좋겠다는 거야."
나의 오랜 유모가 그렇게 폄하되고 그런 저주 섞인 말을 듣는 것을 나는 차마 견딜 수 없었다. 나는 고모에게 분명히 잘못 알고 계신 것이라고 말씀드렸다. 페고티는 이 세상에서 가장 선하고, 진실하며, 가장 충직하고 헌신적이며, 가장 사심 없는 친구이자 하인이라고 했다. 그녀는 언제나 나를 깊이 사랑해주었고, 내 어머니를 깊이 사랑해주었으며, 어머니가 돌아가실 때 어머니의 머리를 자신의 팔로 받쳐주었고, 어머니는 그녀의 얼굴에 마지막 감사한 입맞춤을 남기셨다고 했다. 두 사람에 대한 기억이 떠올라 목이 메어왔고, 그녀의 집이 곧 나의 집이며 그녀가 가진 모든 것이 나의 것이라고, 그리고 그녀를 찾아가 몸을 의탁하고 싶었지만 그녀의 비천한 신분 때문에 오히려 그녀에게 누를 끼칠까 두려웠다는 말을 하려던 중 나는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울음을 터뜨린 채, 나는 테이블 위에 얼굴을 묻었다.
"그래, 그래!" 고모가 말했다. "자기를 지켜준 사람을 두둔하는 건 아이로서 옳은 일이지. 재닛! 당나귀들이야!"
저 불운한 당나귀들만 없었더라면 우리는 분명 원만한 합의에 이르렀을 것이라고 나는 확신한다. 고모가 내 어깨에 손을 얹어주었을 때 나는 용기를 얻어 고모를 껴안고 보호해 달라고 간청하려던 참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밖에서 벌어진 소동으로 인한 방해와 그로 인해 고모가 휩싸인 혼란은 당장 부드러운 감정을 모두 몰아냈고, 차를 마실 시간까지 고모는 도버의 모든 당나귀 주인들을 상대로 침입죄 소송을 제기하고 국가 법률에 호소하겠다며 딕 씨에게 분개한 어조로 쏟아내게 만들었다.
차를 마신 후 우리는 창가에 앉았다. 고모의 날카로운 표정으로 보아 또 다른 침입자들을 감시하는 것이라고 나는 짐작했다. 땅거미가 질 무렵 재닛이 테이블 위에 촛불과 백개먼 판을 올려놓고 블라인드를 내렸다.
"자, 딕 씨." 고모가 전처럼 엄숙한 표정으로 검지를 치켜들며 말했다. "다른 질문을 하나 하죠. 이 아이를 보세요."
"데이비드의 아들이요?" 딕 씨가 주의 깊으면서도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물었다.
"맞아요." 고모가 대답했다. "이제 이 아이를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데이비드의 아들을 어떻게 하느냐고요?" 딕 씨가 말했다.
"그래요." 고모가 대꾸했다. "데이비드의 아들 말이예요."
"오!" 딕 씨가 말했다. "네. 어떻게 하느냐니…… 잠자리에 들게 하겠어요."
"재닛!" 고모가 전에도 느꼈던 자기만족적인 승리감에 찬 목소리로 외쳤다. "딕 씨가 우리 모두의 고민을 해결해주었어. 침대가 준비됐으면, 아이를 데리고 올라가자."
재닛이 침대가 준비되었다고 보고하자 나는 그곳으로 이끌려 갔다. 친절하긴 했지만, 어쩐지 죄수가 된 기분이었다. 고모가 앞서고 재닛이 뒤를 따랐다. 내게 한 가지 새로운 희망을 준 건 계단에서 고모가 타는 냄새가 난다며 무슨 냄새인지 물었을 때, 재닛이 주방에서 내 낡은 셔츠로 부싯깃을 만들고 있었다고 대답한 일이었다. 하지만 내 방에는 내가 입고 있는 이상한 옷가지들뿐이었다. 고모가 딱 5분간 탈 것이라고 미리 알려준 작은 양초 하나와 함께 방에 남겨졌을 때, 나는 그들이 밖에서 내 방 문을 잠그는 소리를 들었다. 이런 일들을 머릿속으로 떠올려 보니 나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고모가 내가 가출할 버릇이 있다고 의심해서 나를 안전하게 가두어 두려고 대비책을 세운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방은 집 꼭대기에 있어 바다가 내려다보였고, 달빛이 바다 위를 환하게 비추고 있었다. 나는 기도를 마치고 촛불이 꺼진 뒤에도 여전히 달빛 비치는 물결을 바라보고 있었다. 마치 빛나는 책 속에서 내 운명을 읽을 수 있을 것만 같았고, 혹은 어머니가 아이를 안고 하늘에서 내려와 그 빛나는 길을 따라 걸어와 내가 마지막으로 보았던 그 다정한 얼굴로 나를 내려다봐 주시길 바라는 마음이었던 것 같다. 마침내 눈을 돌렸을 때 느꼈던 엄숙한 기분이 흰 커튼이 드리워진 침대를 본 순간, 아니 그 위에 부드럽게 누워 눈처럼 하얀 시트 속에 파고들었을 때 느꼈던 감사함과 안도감으로 바뀌었던 기억이 난다. 밤하늘 아래 내가 잠들었던 모든 외로운 장소들을 떠올리며, 다시는 집 없이 떠도는 신세가 되지 않기를, 그리고 집 없는 이들을 결코 잊지 않기를 기도했던 기억도 난다. 그러고는 바다 위의 그 애잔한 달빛 길을 따라 꿈의 세계로 흘러가는 듯했던 기억이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