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에서 왔어요." 내가 말했다.
"무슨 일을 하냐?" 땜장이가 물었다. "도둑놈이냐?"
"아, 아니에요." 내가 더듬거렸다.
"아니라고? 제기랄, 정말이야? 나한테 정직한 척하며 으스대기만 해 봐라. 네 놈 머리통을 박살 내 줄 테니까."
그는 남은 한 손으로 나를 때릴 듯 위협하더니, 머리부터 발끝까지 나를 훑어보았다.
"맥주 한 잔 마실 돈 있냐?" 땜장이가 말했다. "있으면 당장 내놔, 뺏기기 싫으면!"
분명히 돈을 꺼냈을 테지만, 마침 여자의 눈길이 마주쳤고 나는 그녀가 아주 살짝 고개를 저으며 입술 모양으로 ‘안 돼!’라고 하는 것을 보았다.
"전 아주 가난해서요," 나는 웃음을 지어 보이며 말했다. "돈이 하나도 없어요."
"뭐라고, 무슨 소리야?" 땜장이가 나를 험악하게 쳐다보며 말했다. 주머니 속의 돈을 들킨 게 아닐까 겁이 덜컥 났다.
"저, 선생님!" 나는 더듬거렸다.
"내 동생의 실크 손수건을 두르고 있다니 이게 무슨 소리야! 당장 이리 내놔!" 그가 순식간에 내 목에서 손수건을 낚아채 여자에게 던져 주었다.
여자는 마치 재미있는 농담이라도 되는 듯 깔깔 웃음을 터뜨리며 손수건을 내게 다시 던져 주었고, 전과 같이 아주 살짝 고개를 끄덕이며 입술 모양으로 ‘가!’라고 했다. 하지만 내가 그러기도 전에 땜장이는 깃털처럼 가벼운 나를 거칠게 내동댕이치며 손에서 손수건을 낚아챘다. 그는 손수건을 제 목에 대충 걸치더니 욕을 퍼부으며 여자에게 돌아서서 그녀를 때려눕혔다. 딱딱한 길바닥 위로 여자가 뒤로 넘어지던 모습, 보닛이 벗겨진 채 머리카락이 먼지로 하얗게 뒤덮여 쓰러져 있던 모습은 절대 잊을 수 없을 것이다. 멀리서 뒤돌아 보았을 때 그녀가 길가 둑길에 앉아 숄 끝으로 얼굴에 흐르는 피를 닦아내던 모습도, 그 남자가 앞서 걸어가던 모습도 마찬가지였다.
이 사건은 나를 너무나 겁나게 해서, 그 뒤로는 그런 사람들을 보면 그들이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숨을 곳을 찾아 되돌아갔다. 그런 일이 워낙 자주 일어나서 나는 여행이 심각하게 지체되었다. 하지만 이런 어려움 속에서도, 그리고 여행길의 다른 모든 어려움 속에서도, 나는 내가 세상에 나오기 전 어머니의 젊은 시절을 떠올리는 상상 속의 그림에 의지해 이끌려가는 듯했다. 그 그림은 언제나 나와 함께였다. 잠자리에 들 때 홉밭 사이에도, 아침에 눈을 떴을 때도, 그리고 온종일 길을 갈 때도 그 그림은 앞서 갔다. 그 이후로 나는 그 그림을 뜨거운 햇살 아래 졸고 있는 듯한 캔터베리의 햇살 가득한 거리와, 그곳의 오래된 집들과 관문, 그리고 탑 주변을 나는 갈까마귀들이 있는 장엄하고 회색빛인 대성당의 모습과 연관 짓게 되었다. 마침내 도버 근처의 황량하고 넓은 언덕에 다다랐을 때, 그 그림은 그 외로운 풍경에 희망을 불어넣어 주었다. 그리고 가출한 지 엿새째 되던 날, 여행의 첫 번째 거대한 목표였던 도버에 도착해 실제로 발을 들여놓을 때까지는 그 그림이 나를 떠나지 않았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낡은 신발에 먼지투성이가 되고 햇볕에 그을린, 옷도 제대로 갖춰 입지 못한 몰골로 그렇게 오래도록 꿈꾸던 곳에 서 있자니, 그 그림은 꿈처럼 사라져 버리고 나를 무력하고 의기소침하게 내버려 두는 것 같았다.
나는 가장 먼저 뱃사공들에게 고모에 관해 물어보았지만, 가지각색의 대답만 돌아왔다. 한 명은 고모가 사우스 포어랜드 등대에 사는데 그 때문에 수염이 그을렸다고 했고, 다른 한 명은 고모가 항구 밖의 큰 부표에 묶여 있어서 썰물 때만 찾아갈 수 있다고 했으며, 또 다른 한 명은 고모가 아이 유괴죄로 메이드스톤 감옥에 갇혀 있다고 했고, 네 번째는 지난번 강풍이 불 때 빗자루를 타고 칼레로 곧장 날아가는 것을 봤다고 했다. 그다음으로 물어본 마차 운전사들도 똑같이 농담조로 무례하게 굴었고, 가게 주인들은 내 행색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내 말은 듣지도 않고 자기들에겐 줄 게 없다고만 대답했다. 나는 가출한 이래 그 어느 때보다 비참하고 빈털터리가 된 기분이었다. 돈은 다 떨어졌고 처분할 물건도 남지 않았으며, 굶주리고 목마르고 기진맥진한 상태였다. 목적지는 런던에 그대로 머물러 있었던 때만큼이나 멀게만 느껴졌다.
이런저런 질문을 하며 오전 시간을 다 보내고, 나는 시장 근처 길모퉁이에 있는 빈 가게 계단에 앉아 언급되었던 다른 곳들로 가볼까 고민하고 있었다. 그때 마차를 끄는 마부가 지나가다 말 덮개를 떨어뜨렸다. 그에게 덮개를 건네줄 때 보인 그의 얼굴에 선량함이 묻어 있어, 나는 혹시 트로트우드 양이 어디에 사는지 아느냐고 물어볼 용기가 났다. 비록 그 질문을 너무 많이 해서 입술 위에서 거의 맴돌다 사라질 지경이었지만 말이다.
"트로트우드라고요." 그가 말했다. "어디 보자. 나도 아는 이름인데. 연세가 좀 있는 분인가?"
"네, 좀 그러세요." 내가 대답했다.
"허리가 좀 꼿꼿한가?" 그가 몸을 곧게 펴며 물었다.
"네." 나는 대답했다. "그럴 가능성이 커요."
"가방을 들고 다녀?" 그가 물었다. "꽤 넉넉한 가방 말이야. 좀 무뚝뚝하고, 갑자기 호되게 나무라기도 해?"
그 묘사가 틀림없이 정확하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내 가슴은 철렁 내려앉았다.
"그럼 이보게, 내가 알려주지." 그가 말했다. "저기 언덕 위로 올라가서." 그가 채찍으로 언덕 쪽을 가리켰다. "바다를 마주한 집들이 나올 때까지 쭉 가면 그분 소식을 들을 수 있을 거야. 내 생각엔 그분이 참아줄 것 같지 않으니, 여기 1페니 받게."
나는 감사히 그 돈을 받아 빵 한 덩어리를 샀다. 가는 길에 그 요깃거리를 먹어 치우고는, 그 친구가 알려준 방향으로 향했다. 한참을 걸어갔지만 그가 말한 집들은 나타나지 않았다. 마침내 눈앞에 몇 채의 집이 보였고, 나는 그곳으로 다가가 작은 가게(고향에선 잡화점이라 부르던 곳이었다)에 들어가 트로트우드 양이 어디 사는지 알려줄 수 있느냐고 물었다. 나는 젊은 여성에게 쌀을 달아주고 있던 계산대 뒤의 남자에게 말을 걸었지만, 질문을 자신에게 하는 것으로 받아들인 그 여자가 재빨리 몸을 돌렸다.
"우리 주인님 말인가요?" 그녀가 말했다. "얘야, 그분한테 무슨 볼일이지?"
"그분과." 나는 대답했다. "말씀 좀 드리고 싶어서요."
"구걸이라도 하겠다는 거겠지." 처녀가 쏘아붙였다.
"아뇨, 정말 아니에요." 나는 대답했다. 하지만 사실 그 목적 말고는 딱히 올 이유가 없었다는 것이 갑자기 떠올라 나는 당황하며 입을 다물었고, 얼굴이 화끈거림을 느꼈다.
아까 한 말로 미루어 보아 고모의 하녀라고 짐작되는 그 여자는 쌀을 작은 바구니에 담고 가게 밖으로 걸어 나갔다. 그러면서 트로트우드 양이 어디 사는지 알고 싶으면 따라오라고 했다. 나는 두 번 말할 것도 없이 따라나섰다. 하지만 이때 나는 너무나 당황하고 동요한 상태여서 다리가 후들거렸다. 나는 그 여자를 따라갔고, 곧 밝은 분위기의 돌출창이 달린 아주 깔끔한 작은 오두막에 도착했다. 오두막 앞에는 작고 네모난 자갈 마당 혹은 정원이 있었는데, 꽃이 가득했고 정성스럽게 가꾸어져 향기가 아주 좋았다.
"여기가 트로트우드 양 댁이야." 그 젊은 여자가 말했다. "이제 알았지? 내가 할 말은 그게 다야." 그 말을 남기고 그녀는 마치 내 존재에 대한 책임을 떨쳐버리려는 듯 서둘러 집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나는 정원 대문에 남겨진 채 낙담한 심정으로 그 너머를 내다보며 응접실 창문을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한가운데가 살짝 걷힌 무슬린 커튼과 창턱에 고정된 크고 둥근 녹색 가리개 혹은 부채, 작은 탁자, 그리고 커다란 의자가 보였는데, 나는 그 모습에서 고모가 지금 저 안에서 위엄 있는 모습으로 앉아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그때쯤 내 신발은 처참한 꼴이었다. 밑창은 조금씩 떨어져 나갔고, 가죽 윗부분은 다 찢어지고 터져서 원래 신발의 형태와 모양은 찾아볼 수도 없었다. 밤에는 잠잘 때 머리에 쓰기도 했던 내 모자는 너무 짓눌리고 구겨져서 쓰레기 더미 위의 낡고 찌그러진 손잡이 없는 냄비라도 그보다 낫다고 할 정도였다. 열기와 이슬, 풀, 그리고 내가 잠을 잤던 켄트의 흙먼지로 얼룩진 데다 여기저기 찢어지기까지 한 내 셔츠와 바지는, 내가 대문 앞에 서 있을 때 고모의 정원에서 새들을 쫓아낼 만한 몰골이었다. 내 머리카락은 런던을 떠난 이후 빗질 한 번 하지 못한 상태였다. 평소 익숙지 않던 공기와 햇볕에 노출된 탓에 얼굴과 목, 손은 베리처럼 검게 그을려 있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석회 가마에서 막 나온 사람처럼 석회 가루와 먼지가 하얗게 뒤덮여 있었다. 이런 꼴로, 그리고 스스로도 그 사실을 뼈저리게 의식하며, 나는 내 무시무시한 고모에게 나 자신을 소개하고 첫인상을 남길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응접실 창문이 미동도 없이 고요한 것으로 보아 고모가 그곳에 없다고 짐작한 나는 이내 위층 창문을 올려다보았다. 거기서 얼굴이 불그스름하고 인상이 좋은 백발의 신사 한 분을 보았는데, 그분은 기괴한 표정으로 한쪽 눈을 찡긋하더니 나를 향해 몇 번 고개를 끄덕이고는, 다시 고개를 내저으며 웃고는 사라져 버렸다.
그 전에도 충분히 마음이 어지러웠지만, 이런 예상치 못한 행동 때문에 더욱 당황스러워 어찌할 바를 고민하며 슬그머니 자리를 뜰까 생각하던 참이었다. 그때 집에서 한 부인이 나왔는데, 모자 위로 손수건을 두르고 양손에는 원예용 장갑을 꼈으며, 통행료 징수원의 앞치마 같은 원예용 주머니를 차고 커다란 칼을 들고 있었다. 나는 그녀가 벳시 고모임을 즉시 알아챘다. 돌아가신 어머니께서 블런더스톤 루커리의 우리 정원을 성큼성큼 걸어 들어오시던 벳시 고모의 모습을 여러 번 묘사해주셨던 바로 그 걸음걸이로 집에서 나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저리 가!" 벳시 고모가 고개를 저으며 칼로 허공을 휙 내저으며 말했다. "가 버려! 여기엔 사내아이는 없어!"
나는 가슴이 입 밖으로 튀어나올 것 같은 심정으로 그녀가 정원 구석으로 걸어가 허리를 숙여 작은 뿌리 하나를 캐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그러고는 용기라고는 눈곱만큼도 없었지만, 절박한 심정으로 살며시 다가가 그녀 곁에 서서 손가락으로 그녀를 툭 건드렸다.
"부탁드릴 게……." 나는 말을 꺼냈다.
그녀는 깜짝 놀라 고개를 들었다.
"부탁드릴 게, 고모." 라고 말했다.
"뭐라고?" 벳시 고모가 내가 생전 들어본 적 없는 놀라운 어조로 외쳤다.
"고모, 부탁드릴 게, 저는 조카예요."
"세상에!" 고모가 말했다. 그리고는 정원 길에 털썩 주저앉았다.
"저는 서퍽의 블런더스톤에서 온 데이비드 코퍼필드예요. 고모께서 제가 태어난 날 밤에 오셔서 사랑하는 어머니를 만나셨던 그곳 말이에요.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로 저는 무척 불행했어요. 무시당하고, 아무것도 배우지 못하고, 세상에 내던져져 제게 맞지도 않는 일을 해야 했죠. 그래서 고모를 찾아 도망쳐 온 거예요. 처음 출발할 때 노상강도를 당해 걸어서 여기까지 왔고, 여행을 시작한 뒤로 침대에서 잠을 잔 적도 없어요." 여기까지 말하자 내 버팀목이 한꺼번에 무너져 내렸다. 나는 내 남루한 행색을 보여주며 내가 그동안 겪은 고통을 증명하려는 듯 손을 흔들다가, 일주일 내내 마음속에 쌓여 있었을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고모는 경이로움 외의 모든 표정을 얼굴에서 완전히 지운 채 자갈밭에 앉아 나를 빤히 바라보다가, 내가 울음을 터뜨리자 서둘러 일어나 내 멱살을 잡고 응접실로 데려갔다. 고모는 그곳에서 첫 번째로 높은 찬장을 열어 병 몇 개를 꺼내더니, 그 내용물들을 조금씩 내 입에 쏟아부었다. 아마 무작위로 꺼낸 것이 분명했다. 아니스 향이 나는 물과 멸치 소스, 그리고 샐러드 드레싱 맛이 났기 때문이다. 그런 강장제를 먹인 뒤에도 내가 여전히 히스테리를 부리며 울음을 멈추지 못하자, 고모는 소파 커버를 더럽힐까 봐 내 머리 아래에는 숄을, 발 아래에는 자신의 머리에서 벗은 손수건을 받쳐주었다. 그러고는 앞서 언급했던 녹색 부채 혹은 가리개 뒤에 앉아 내 얼굴이 보이지 않게 한 다음, 간헐적으로 '세상에!'라고 외쳐대며 마치 분 단위로 대포를 쏘는 것처럼 그 탄성을 내뱉었다.
한참 뒤 고모는 종을 울렸다. 하녀가 들어오자 고모가 말했다. "재닛, 위층에 가서 딕 씨에게 내 안부를 전하고 할 말이 있다고 전해라."
재닛은 내가 소파에 뻣뻣하게 누워 있는 것을 보고 약간 놀란 듯했으나(나는 고모의 심기를 거스를까 봐 움직일 엄두도 내지 못했다) 이내 심부름을 하러 갔다. 고모는 뒷짐을 진 채 위층 창문에서 나를 힐끔거리던 신사가 웃으며 들어올 때까지 방 안을 왔다 갔다 했다.
"딕 씨," 고모가 말했다. "바보 같은 짓 하지 마세요. 마음만 먹으면 당신만큼 신중한 사람도 없다는 거 우리 모두 알고 있으니까요. 그러니 무슨 생각을 하든 바보처럼 굴지 마세요."
그 신사는 즉시 진지해졌고, 창문에 관해서는 아무 말도 하지 말아 달라고 간청하는 듯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딕 씨," 고모가 말했다. "내게 데이비드 코퍼필드라는 이름을 들어본 적 있죠? 기억 안 나는 척하지 마세요. 당신과 나, 우리 둘 다 잘 알고 있잖아요."
"데이비드 코퍼필드요?" 딕 씨가 말했다. 그는 별로 기억이 나지 않는 듯했다. "데이비드 코퍼필드? 아, 네. 물론이죠. 데이비드, 암 그렇고말고요."
"그래요," 고모가 말했다. "이 아이가 그 사람의 아이, 아들이에요. 어머니를 너무 닮지 않았다면 아버지와 똑 닮았을 텐데 말이죠."
"그의 아들이요?" 딕 씨가 말했다. "데이비드의 아들? 그렇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