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판사님."
"그럼 피고인이라고 하세요."
"피고인이 승선했을 때, 제 아버지께서(그녀는 곁에 서 계신 아버지를 사랑스럽게 바라보며 말했다) 몹시 피로하고 건강이 아주 쇠약한 상태라는 걸 눈치채셨어요. 아버지께서 너무나 기력이 없으셔서 차마 밖으로 모시고 나갈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선실 계단 근처 갑판에 잠자리를 마련해 드리고, 저도 곁에서 간호하려고 갑판에 앉아 있었죠. 그날 밤 우리 네 사람 말고는 다른 승객이 없었습니다. 피고인께서는 친절하게도 제가 아버지께 비바람을 더 잘 막아드릴 방법을 알려주겠다고 하셨습니다. 저는 항구를 떠나면 바람이 어느 쪽에서 불지 몰라 제대로 할 줄을 몰랐거든요. 그분이 저 대신 해주셨습니다. 아버지의 상태에 대해 대단한 온정과 친절을 보여주셨고, 진심으로 걱정해주셨다고 확신합니다. 그렇게 우리는 대화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잠시 말을 끊겠습니다. 그가 혼자 승선했습니까?"
"아니요."
"몇 명이 함께 있었습니까?"
"프랑스 신사 두 분이었습니다."
"그들끼리 상의하던가요?"
"프랑스 신사분들이 보트를 타고 내릴 때까지 마지막 순간까지 상의를 나누었습니다."
"그들 사이에 이런 목록과 비슷한 서류가 오갔습니까?"
"서류 몇 장이 오간 건 맞지만, 무슨 서류인지는 모르겠습니다."
"이것들과 모양이나 크기가 비슷했습니까?"
"그럴지도 모르지만 사실 잘 모르겠습니다. 그분들이 제 아주 가까이서 속삭이기는 했지만요. 그분들은 그곳에 매달린 등불 빛을 보려고 선실 계단 꼭대기에 서 있었습니다. 등이 침침했고 그들은 아주 작게 말했기에 무슨 내용을 말하는지 듣지는 못했고, 그저 서류를 들여다보는 것만 보았습니다."
"이제 피고인과의 대화에 대해 말씀해주십시오, 마네트 양."
"피고인께서는 저의 무력한 상황을 보고 제게 마음을 열어주셨고, 아버지께도 친절하고 선량하게 도움을 주셨습니다. 부디……(그녀가 울음을 터뜨리며) 오늘 제 증언이 그분께 해가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파리 떼가 웅웅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마네트 양, 피고인이 당신이 하는 증언이 의무이고, 반드시 해야 하며, 피할 수 없는 증언이라는 사실을 완벽히 이해하지 못한다면, 그건 이 자리에 있는 사람 중 피고인뿐일 겁니다. 계속하세요."
"그분은 제게 자신은 미묘하고 까다로운 성격의 업무 때문에 여행 중이며, 자칫하면 사람들이 곤란에 처할 수도 있어 가명을 쓰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또 며칠 내로 그 업무 때문에 프랑스에 다녀와야 했고, 앞으로도 한동안 프랑스와 영국 사이를 오가야 할지도 모른다고 했습니다."
"미국에 관해서는 뭐라고 말하던가요, 마네트 양? 자세히 말씀해 주십시오."
"그분은 제게 그 분쟁이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설명하려고 애썼고, 자기 판단으로는 영국의 잘못이자 어리석은 짓이었다고 말했습니다. 농담조로 조지 워싱턴이 조지 3세만큼이나 역사에 위대한 이름을 남길지도 모른다고 덧붙이기도 했고요. 하지만 그 말에 악의는 없었습니다. 그저 시간을 보내려고 웃으며 한 이야기였으니까요."
많은 이의 시선이 집중되는 중요한 장면의 주인공이 얼굴에 강렬한 표정을 드러내면, 구경꾼들은 자신도 모르게 그 표정을 따라 하게 된다. 그녀는 증언하는 내내 고통스러울 정도로 불안하고 긴장된 표정이었으며, 판사가 증언을 기록하느라 잠시 멈출 때면 변호인단과 검찰 측의 반응을 살폈다. 방청객들도 법정 구석구석에서 똑같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판사가 기록을 멈추고 조지 워싱턴에 관한 그 엄청난 이단을 쏘아보았을 때, 방청석의 대다수 이마는 마치 증인을 비추는 거울처럼 보일 정도였다.
검찰 총장은 이제 재판장에게 예방 조치이자 절차상, 젊은 아가씨의 아버지인 마네트 박사를 증인으로 소환할 필요가 있다고 알렸다. 그에 따라 박사가 소환되었다.
"마네트 박사님, 피고인을 보십시오. 전에 본 적이 있습니까?"
"한 번 있습니다. 런던의 제 숙소를 찾아왔을 때였지요. 3년 혹은 3년 반쯤 전이었습니다."
"그가 정기 여객선에서 함께 탄 승객이었음을 확인해 줄 수 있습니까, 아니면 당신 딸과 나눈 대화에 대해 증언해 줄 수 있습니까?"
"판사님, 둘 다 할 수 없습니다."
"그 둘 중 어느 것도 할 수 없는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까?"
그가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있습니다."
"마네트 박사님, 고국에서 재판도, 기소도 없이 긴 수감 생활을 겪는 불행을 당하신 적이 있습니까?"
모든 이의 가슴을 울리는 어조로 그가 대답했다. "긴 수감 생활이었습니다."
"그 사건 당시에 막 석방되셨던 건가요?"
"그렇다고들 하더군요."
"그 일에 대한 기억이 전혀 없으십니까?"
"없습니다. 제 기억은 공백 상태입니다. 감옥에 갇혀 구두를 만들던 어느 때부터――정확히 언제인지조차 말할 수 없군요――이곳 런던에서 사랑하는 딸과 함께 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때까지 말입니다. 자비로운 신께서 제 능력을 되찾아 주셨을 때 그 아이는 이미 제게 익숙한 존재가 되어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아이가 어떻게 제게 익숙해졌는지조차 전혀 설명할 수 없습니다. 그 과정에 대한 기억이 전혀 없으니까요."
검찰 총장이 자리에 앉았고, 아버지와 딸도 함께 앉았다.
그때 사건에 특이한 상황이 발생했다. 재판의 목적은 피고인이 5년 전 11월의 어느 금요일 밤, 추적되지 않은 공범과 함께 도버행 우편마차를 타고 내려갔으며, 위장 목적으로 밤중에 어느 장소에서 내렸으나 그곳에 머물지 않고 다시 10여 마일 이상 떨어진 주둔지 겸 조선소로 돌아가 정보를 수집했다는 사실을 밝히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피고인이 바로 그 시간에 그 주둔지 겸 조선소 마을의 호텔 커피룸에서 다른 사람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점을 확인해 줄 증인이 소환되었다. 피고인의 변호인은 피고인을 다른 기회에 본 적이 없다는 답변 외에는 아무런 성과 없이 증인을 반대 신문하고 있었는데, 그때까지 줄곧 법정 천장만 바라보던 가발을 쓴 신사가 작은 종이에 한두 마디를 적어 뭉친 뒤 변호인에게 던졌다. 다음 휴정 시간에 그 종이를 펼쳐 본 변호사는 매우 주의 깊고 호기심 어린 눈길로 피고인을 바라보았다.
"피고인이 틀림없다고 다시 한번 확인해 주시겠습니까?"
증인은 매우 확신했다.
"피고인과 매우 닮은 사람을 본 적은 없습니까?"
착각할 정도로 닮지는 않았다고 증인은 대답했다.
"저기 있는 제 법률 동료를 잘 보십시오." (그는 종이를 던졌던 사람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리고 나서 피고인을 다시 보십시오. 어떻습니까? 두 사람이 아주 닮지 않았습니까?"
나의 법률 동료가 방탕하지는 않더라도 흐트러지고 단정치 못한 외모라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두 사람이 나란히 서자 증인뿐만 아니라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사람이 놀랄 만큼 충분히 닮아 있었다. 재판장에게 나의 법률 동료가 가발을 벗게 해달라고 요청했고, 재판장은 그리 유쾌하지 않은 승낙을 했으며, 그 결과 두 사람의 닮은 점은 훨씬 더 두드러졌다. 재판장은 피고인 측 변호인인 스트라이버 씨에게 다음번에는 나의 법률 동료인 카튼 씨를 반역죄로 재판할 셈이냐고 물었다. 하지만 스트라이버 씨는 재판장에게 아니라고 답하면서, 다만 증인에게 한 번 일어난 일이 두 번도 일어날 수 있지 않겠느냐고, 만약 자신의 경솔함을 보여주는 이 사례를 더 빨리 보았더라면 그렇게 확신할 수 있었겠느냐고, 지금 이 상황을 보고도 여전히 그렇게 확신할 수 있겠느냐고 물을 뿐이라고 대답했다. 그 결과 이 증인은 도자기 그릇처럼 박살 났고, 사건에서 그가 차지하던 비중은 쓸모없는 고물처럼 산산조각이 나고 말았다.
크런치 씨는 지금까지 증언을 지켜보며 손가락에 묻은 녹으로 꽤나 점심을 때운 셈이었다. 이제 그는 스트라이버 씨가 마치 몸에 꼭 맞는 옷을 입히듯 피고인의 사건을 배심원단에게 짜 맞추는 과정을 지켜봐야 했다. 스트라이버 씨는 배심원들에게 애국자라고 자칭하는 바사드가 사실은 돈을 받고 고용된 간첩이자 배신자이며, 저주받은 유다 이래로 세상에서 가장 사악한 악당 중 하나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바사드는 딱 그렇게 생기기도 했다. 또한 고결한 하인 클라이가 그의 친구이자 동업자로서 그럴만한 자격이 충분하다는 점, 그리고 그 위조꾼들과 위증자들의 감시 어린 눈길이 피고인을 희생양으로 삼았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 이유는 피고인이 프랑스 혈통이라 프랑스의 집안일 때문에 영국 해협을 건너야 했기 때문이었는데, 그 일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피고인 자신이 사랑하고 소중히 여기는 사람들을 고려하여 목숨을 걸고서라도 밝힐 수 없다고 했다. 젊은 숙녀에게서 왜곡하고 짜낸 증언은, 비록 그녀가 증언하며 괴로워하는 모습을 모두가 지켜보았지만, 결국 아무것도 아니라고 치부했다. 그저 그렇게 함께 있게 된 젊은 신사와 숙녀 사이에 오갈 법한 무고하고 사소한 친절과 예의에 불과했다는 것이다. 단, 조지 워싱턴에 대한 언급은 너무나 터무니없고 불가능해서 끔찍한 농담 외에는 달리 볼 방법이 없다고 했다. 정부가 국가의 저급한 반감과 공포를 이용해 인기를 얻으려는 시도에서 실패한다면 나약함을 드러내는 꼴이기에 검찰 총장이 이를 최대한 이용하고는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재판은 그런 사건들을 흔히 망치곤 하는, 이 나라의 국사 재판에서 넘쳐나는 저열하고 악명 높은 증거 외에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그때 재판장이 (마치 그 말이 사실이 아닌 것처럼 엄숙한 얼굴로) 개입하며, 법정에 앉아 그런 암시들을 용납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이어 스트라이버 씨는 몇 명의 증인을 불렀고, 크런치 씨는 검찰 총장이 스트라이버 씨가 배심원들에게 입혀놓은 옷을 완전히 뒤집어버리는 과정을 지켜봐야 했다. 검찰 총장은 바사드와 클라이가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백배는 더 좋은 사람들이며, 피고인은 백배는 더 나쁜 사람임을 보여주었다. 마지막으로 재판장 자신이 나서서 그 옷을 이리저리 뒤집고 다시 겉으로 돌려놓더니, 결국 피고인을 위한 수의로 그럴듯하게 재단하고 다듬어 놓았다.
이제 배심원단은 평결을 위해 돌아섰고, 거대한 파리 떼가 다시 들끓기 시작했다.
법정 천장을 오랫동안 바라보고 앉아 있던 카튼 씨는 이런 소동 속에서도 자리를 옮기거나 자세를 바꾸지 않았다. 그의 법률 동료인 스트라이버 씨가 서류를 정리하며 옆 사람들과 속삭이고 때때로 초조하게 배심원단을 힐끗거리는 동안, 관객들이 모두 이리저리 움직이며 다시 자리를 잡는 동안, 심지어 재판장조차 자리에서 일어나 단상을 천천히 서성이는 동안에도――그가 열이 있는 것이 아니냐는 의심을 관객들에게 사기도 했지만――이 한 사람만은 의자에 깊숙이 몸을 기댄 채 앉아 있었다. 찢어진 법복은 반쯤 흘러내렸고, 엉망이 된 가발은 벗었다가 대충 다시 쓴 모양새였으며, 손은 주머니에 찔러 넣은 채 눈길은 하루 종일 그랬듯 천장에 고정되어 있었다. 그의 태도에 깃든 유난히 무모한 기색은 그에게 평판이 좋지 않은 인상을 주었을 뿐만 아니라, 그가 피고인과 닮았던 강렬한 인상(두 사람이 비교되었을 때 잠깐 보였던 진지함으로 인해 더욱 두드러졌던)을 완전히 희석해 버렸다. 그래서 지금 그를 눈여겨보던 많은 관객은 서로에게 두 사람이 그렇게 닮았다고는 생각하기 힘들겠다고 말했다. 크런치 씨는 옆 사람에게 그 의견을 말하고는 덧붙였다. "저 친구한테는 법률 일이 하나도 안 들어올 거라고 50펜스를 걸겠소. 일을 맡을 만한 사람으로 보이진 않지, 안 그래?"
하지만 이 카튼 씨는 겉보기보다 훨씬 더 상황을 예리하게 파악하고 있었다. 지금 마네트 양의 머리가 아버지의 가슴에 툭 떨어지는 것을 가장 먼저 발견한 것도 그였고, 그는 곧바로 큰 소리로 말했다. "경관! 저 숙녀분을 보시오. 저분이 밖으로 나갈 수 있게 부축해 드려요. 쓰러지려는 게 안 보이시오!"
마네트 양이 실려 나갈 때 많은 이들이 그녀를 가엾게 여겼고, 그녀의 아버지에게도 많은 동정심을 보냈다. 수감 생활의 나날들이 다시 떠올랐다는 사실이 그에게 큰 고통이었음이 분명했다. 그는 심문을 받을 때 내면의 강한 동요를 드러냈고, 그를 늙어 보이게 했던 그 사색적이고 우울한 표정은 그 이후로 줄곧 무거운 구름처럼 그를 뒤덮고 있었다. 그가 밖으로 나갈 때, 뒤돌아 서서 잠시 멈췄던 배심원단이 배심장(陪審長)을 통해 입을 열었다.
배심원단은 의견이 일치하지 않아 퇴정을 원했다. 재판장은 (아마도 조지 워싱턴을 떠올렸기 때문인지) 그들의 의견이 일치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다소 놀란 기색이었으나, 감시와 보호 아래 퇴정하도록 허락한다는 뜻을 밝히고는 자신도 퇴정했다. 재판은 하루 종일 이어졌고 법정의 등불이 하나둘 켜지고 있었다. 배심원단의 평결이 나오기까지 오래 걸릴 것이라는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관객들은 요기를 하러 빠져나갔고, 피고인은 피고석 뒤편으로 물러나 앉았다.
젊은 숙녀와 그녀의 아버지가 나갈 때 함께 나갔던 로리 씨가 다시 나타나 제리에게 손짓했다. 사람들의 관심이 시들해진 틈을 타 제리는 쉽게 그에게 다가갈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