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이폴리타가 그날 밤 에르도사인에게 내뱉었던 말이 다시금 입 밖으로 터져 나왔다.
'어머, 당신도……? 정말 큰 고통이네요…… 그럼 우리는 똑같네요…… 나도 어떤 남자와도…… 한 번도 아무런 감정을 느끼지 못했거든요…… 당신이…… 유일한 남자예요. 이런 인생이라니!'
그녀는 입을 다물고 사색에 잠긴 채 드높은 유칼립투스 나무의 부채꼴 잎사귀들을 바라보았다.햇살을 받아 다이아몬드처럼 빛나는 나뭇잎들이 그보다 낮은 식물들의 굽은 능선 위로 펼쳐졌다. 낮은 숲은 그늘에 가려져 바다의 동굴보다도 더 서글퍼 보였다.
점성가는 울타리를 들이받으려는 황소처럼 머리를 숙였다.그러고는 나무 높이로 시선을 던지며 머리를 긁적이고는 말했다.
"사실 나, 그, 당신, 우리 모두는 삶의 저편에 있어.도둑, 미치광이, 살인자, 매춘부들.우린 모두 똑같지.나도, 에르도사인도, 황금을 찾는 자도, 우울한 악당도, 바르수트도 모두가 똑같아.우린 똑같은 진실을 알지. 고통받는 인간들은 결국 똑같은 진실에 도달하게 된다는 건 하나의 법칙이야.심지어 똑같은 신체적 질병을 앓는 사람들이 글을 아느냐 모르느냐와 상관없이 병이 일정 단계에 이르면 똑같은 말로 묘사할 수 있듯이, 고통받는 자들도 거의 똑같은 단어로 진실을 말할 수 있지."
"그렇지만 당신은 무언가를 믿잖아요…… 신이라도 모시는 건가요."
"글쎄…… 방금 전까지 난 내 안에 그리스도의 자애로움이 깃들어 있다고 느꼈어.당신이 나에게 몸을 주겠다고 했을 때 당신에게 '그때 예수님이 오실 거요'라고 말하고 싶었지……." 점성가가 웃음을 터뜨렸다.이폴리타는 겁이 났지만, 그가 어깨에 손을 얹으며 달래듯 말을 이었다."예수님이 다시 우리에게 오시지 않는다면, 인간들은 지칠 때까지 서로를 고문할 뿐이라는 에르도사의 말은 옳아."
"네……? 그럼 당신처럼 똑똑한 분이 에르도사인을 믿는다는 건가요……?"
"그리고 난 그를 깊이 존경해.난 에르도사인의 감수성을 믿거든.그는 동시에 여러 사람의 삶을 살고 있다고 믿지.당신이 그를 사랑해보는 건 어때?"
이폴리타는 웃음을 터뜨렸다.
"아니…… 난 마치 아무렇게나 만져도 되는 보잘것없는 물건이 된 기분이야……."
점성가가 고개를 저었다.
"당신은 완전히 잘못 생각하고 있어. 에르도사인은 굴욕감을 즐기는 불행한 사내지. 그가 어디까지 타락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그는 무슨 짓이든 할 수 있는 인간이야……."
"광장에서 있었던 그 아이 일도 알고 계시죠……." 그녀는 결례가 될까 두려워 말을 멈추었다.
그들은 농장 끝자락에 거의 다다랐다.철조망 너머로 은빛 안개가 움직이며 덮고 있는 텅 빈 구멍들이 보였다.외따로 떨어진 둔덕 위로 먹물 같은 잎사귀들 사이사이에 파릇파릇한 낫 모양의 잎들이 떨리는 나무 한 그루가 보였고, 점성가는 발뒤꿈치를 돌려 귀를 긁적이며 중얼거렸다.
"난 다 알아. 아마도 성인들이 에르도사인이 저지른 죄보다 훨씬 더 큰 죄를 지었을지도 모르지. 악마를 몸에 품은 남자가 끔찍한 죄를 통해 신을 찾으려 한다면, 그만큼 그의 후회 또한 더욱 강렬하고 공포스러울 테니까…… 그런데 다른 이야기 좀 하지. 당신 남편은 아직 병원에 있나?"
"네……."
"당신 나를 협박하려고 왔던 거지?"
"네……."
"그럼 이제 어떻게 할 생각이지?"
"아무것도요. 그냥 갈 거예요."
그녀는 슬픈 목소리로 말했다.그녀의 의지는 꺾여 있었다.공기 중에 추락하는 비행기보다 더 빠르게 갑자기 빛이 한 단계 어두워졌다.하늘의 푸른색은 유리 빛깔의 회색으로 변해갔다.붉은 구름은 길모퉁이에 있는 포플러 나무의 단출한 윤곽을 더욱 검게 물들였다.심해 같은 명료함이 세상 만물을 뒤덮었다.이폴리타는 발이 얼어붙는 것 같았다. 비록 그 남자 곁에 있었지만, 그의 거세라는 신비함은 두 사람 사이에 극지방 같은 거리를 만들고 있었다. 마치 굽어 있는 극지의 표면 위에서 서로 반대 방향으로 걷다가 만난 것만 같았고, 희망 없는 위도 위에서 손을 한번 흔드는 단순한 몸짓이 곧 작별 인사의 전부인 듯했다.
점성가는 그녀의 생각을 짐작한 듯, 혼잣말하듯 말했다.
"채광창에 발을 디뎠는데 유리가 깨지는 바람에 계단 난간 위로 떨어졌지……."
이폴리타는 겁에 질려 귀를 막았다.
"……그러고는 고환이 수류탄처럼 터져버렸어……."
그는 신경질적으로 목을 긁적이고 담배를 한 모금 빨며 말했다.
"내 친구여, 이건 전혀 심각한 일이 아니야.베네수엘라에서는 공산주의자들을 고환을 매달아 죽이지.밧줄로 묶어서 천장까지 끌어올리는 거야.그곳에선 그런 고문을 '토르톨'이라고 부르지.여기 우리 감옥에서도 심문할 때 가끔 고환을 때리기도 해.난 죽음의 문턱까지 가봤어…… 죽음의 바로 그 가장자리에 선다는 게 어떤 건지 잘 알지.그러니 당신은 내게 행복을 제안했다고 부끄러워할 필요 없어.바르수트는 내 불행을 알았을 때 내 손에 입을 맞췄지.그는 후회하며 울었어.뭐, 그는 살면서 아직 울어야 할 일이 많이 남았지만 말이야.그래서 그는 살아남은 거야.그를 만나보고 싶나?"
"뭐라고요! 죽이지 않았다고요?"
"그래.불러서 소개해 줄까?"
"아니요, 믿어요…… 맹세코 믿어요……."
"알고 있어.사랑이 인류를 구원하겠지만, 우리 시대의 사람들을 구원하지는 못할 거라는 것도 알지.지금은 증오와 절멸, 파괴와 폭력을 설파해야 할 때야.사랑과 존중을 말하는 자는 그 이후에 오겠지.우리는 비밀을 알고 있지만, 마치 모르는 것처럼 행동해야 해.그분이 우리의 업적을 보고 말씀하시겠지. 이렇게 행동한 자들은 괴물들이었다고.이렇게 설파한 자들은 괴물들이었다고 말이야…… 하지만 그분은 우리가 스스로 괴물이 되기로 자처했다는 걸 모르실 거야. 그분이…… 당신의 천사 같은 진실을 터뜨릴 수 있도록 말이지."
"정말 대단하시네요!말씀 좀 해주세요…… 당신은 점성술을 믿나요?"
"아니, 다 거짓말이지.아! 당신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이런 계획이 떠오르더군. 당신 침묵의 대가로 5천 페소를 제안하고, 당신 이폴리타가 내 범죄를 고발하지 않는 대가로 그 돈을 받았다는 영수증에 서명하게 만드는 거지. 그리고 나에겐 무해하지만 당신에겐 치명적인 그 문서를 바르수트에게 보여주면, 그걸로 당신을 감옥에 보내거나 내 노예로 만들 수 있었어. 하지만 당신은 내 친구라는 느낌을 주더군…… 말해봐, 날 도와주겠나?"
잔디를 내려다보며 걷던 그녀가 고개를 들었다.
"그럼 당신은 나를 믿을 건가요?"
"내가 유일하게 믿는 건 잃을 게 아무것도 없는 사람들뿐이지." 그들은 이제 종려나무들로 장식된 계단 앞에 도착해 있었다.점성가가 말을 이었다."들어가 볼까?"
이폴리타가 계단을 올라갔다.점성가가 어두운 방에서 불을 켜자, 그녀는 호기심 어린 눈으로 고풍스러운 장롱과 쿠 클럭스 클랜이 장악한 지역마다 깃발이 꽂힌 미국 지도, 녹색 벨벳을 씌운 안락의자, 콤파스가 널려 있는 책상, 높다란 천장에 매달린 거미줄을 둘러보았다.나무 바닥은 왁스 칠을 한 지 오래되어 보였다.점성가는 오래된 연감을 펼치고 선반에서 럼주 한 병과 잔 두 개를 꺼내 술을 따르며 말했다.
"마셔봐…… 럼주야…… 럼주 안 좋아하나?…… 난 항상 마시지.누구 노래인지는 모르겠지만 이걸 마시면 어떤 노래가 떠올라. 가사가 이렇지."
망자의 보물 상자를 노리는 건 열세 명.
열세 명이라네, 오, 럼주여 만세…….
악마와 술이 나머지를 다 해치웠지…….
"악마여, 오, 오, 럼주여 만세……."
이폴리타는 의구심 어린 눈으로 그를 지켜보았다.점성가의 얼굴이 진지해졌다.
"이 노래가 생뚱맞게 들리겠지?" 그가 물었다."나는 하루 종일 이 노래를 부르던 꼬마에게서 배웠어.녀석은 우리 방과 벽을 마주한 집 다락방에 살았거든.그 아이는 매일 오후 노래를 불렀지. 난 끔찍한 불행을 겪고 회복 중이었고…….어느 날 오후부터 아이는 더 이상 노래를 부르지 않았어……. 음식을 가져다주는 남자에게 들으니, 그 아이는 시험을 망쳐서 자살했다고 하더군.독일인 부부의 아들이었고, 아버지는 엄격한 사람이었지.그 아이 얼굴은 본 적 없지만, 왜인지 거의 매일 그 가엾은 영혼이 생각나."라고 말했다.
참다못한 이폴리타가 외쳤다.
"그래, 인생이란 고작해야 추억일 뿐이지……."
"난 인생이 미래이길 바라.벽돌 도시가 아니라 푸른 들판에서의 미래 말이야.모든 사람이 푸른 들판 한 조각씩을 가지고, 하늘과 땅의 창조주이신 신을 기쁘게 경배하는 그런 세상……."그는 눈을 감았다. 이폴리타는 그의 얼굴이 창백해지는 것을 보았다. 그러더니 그가 일어나 허리띠로 손을 가져가며 쉰 목소리로 말했다. "이걸 봐."
그가 갑자기 바지를 풀어헤쳤다.이폴리타는 어깨를 잔뜩 움츠린 채 그의 하복부를 곁눈질로 보았다. 그곳에는 끔찍한 붉은 흉터가 있었다.그는 조심스럽게 옷을 추스르며 말했다.
"죽으려고 했었지. 밤낮으로 내 뇌 속에서 수많은 괴물이 날 괴롭혔어. 그러다 어둠이 지나가고 끝없는 길로 들어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