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공간과 시간에서 단순 위치라는 오명을 씻어냈으니, 우리는 '포괄(prehension)'이라는 어색한 용어를 부분적으로 버릴 수도 있다. 이 용어는 사건의 본질적 통일성, 즉 단순한 부분이나 성분들의 집합이 아닌 하나의 실체로서의 사건을 나타내기 위해 도입되었다. 시공간이란 집합체들을 통일체로 끌어모으는 체계에 다름 아니라는 점을 이해해야 한다. 그러나 '사건(event)'이라는 단어는 이러한 시공간적 통일체 중 하나를 의미할 뿐이다. 따라서 그 단어는 포괄된 대상을 의미하는 용어로서 '포괄' 대신 사용될 수 있다.
사건에는 동시대의 것들이 존재한다. 이는 사건이 그 자체 내부에 동시대 것들의 양태들을 즉각적인 성취의 전시로서 반영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건에는 과거가 있다. 이는 사건이 그 자체 내부에 이전 것들의 양태들을, 그 자체의 내용으로 융합된 기억으로서 반영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건에는 미래가 있다. 이는 사건이 그 자체 내부에 미래가 현재에 투영하는 측면들을, 다시 말해 현재가 미래에 관하여 결정한 바를 반영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사건은 예견을 가진다.
"다가올 일들을 꿈꾸는, 드넓은 세상의 예언적 영혼." [cvii]
이러한 결론들은 어떤 형태의 실재론에서든 필수적이다. 왜냐하면 우리의 인식 대상으로서의 세계에는 과거에 대한 기억, 실현의 즉각성, 그리고 다가올 일들에 대한 징후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과학적 사고 체계보다 더 구체적인 이 분석의 밑그림에서, 나는 우리 인식 앞에 놓인 우리 자신의 심리적 영역으로부터 출발했다. 나는 그것이 주장하는 바대로, 즉 우리 신체적 사건에 대한 자기 지식으로서 그것을 받아들인다. 여기서 내가 의미하는 것은 신체 세부 사항에 대한 관찰이 아니라 전체 사건이다. 이러한 자기 지식은 그 자체를 넘어선 실체들의 양태적 현존에 대한 포괄적 통일성을 드러낸다. 나는 이 전체 신체적 사건이 내재적 패턴의 비범한 복잡성과 안정성이라는 점을 제외하면 다른 모든 사건과 동일한 층위에 있다는 원리를 사용하여 일반화한다. 유물론적 기계론 이론의 강점은 설명의 붕괴를 메우기 위해 자연에 자의적인 단절을 도입해서는 안 된다는 요구에 있었다. 나는 이 원리를 받아들인다. 그러나 경험주의자라면 마땅히 그래야 하듯이 우리 심리적 경험의 직접적인 사실들로부터 출발한다면, 여러분은 이번 강의에서 기술을 시작한 자연에 대한 유기체적 개념으로 곧장 이끌리게 될 것이다.
인류의 직접적인 심리적 경험을 구성하는 그 어떤 요소도 제공하지 못한다는 것이 18세기 과학 체계의 결함이다. 또한 그 체계는 전자, 양성자, 분자, 그리고 살아있는 신체의 유기적 통일성이 출현할 수 있는 전체의 유기적 통일성에 대한 기초적인 흔적조차 제공하지 못한다. 그 체계에 따르면, 물질의 일부가 서로 물리적 관계를 맺어야 할 이유가 사물의 본성상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 자연법칙이 필연적임을 우리가 식별할 수 있으리라고 기대할 수는 없다는 점을 인정하자. 하지만 우리는 자연 질서가 존재해야만 한다는 것이 필연적임을 알게 되기를 기대할 수는 있다. 자연 질서라는 개념은 발달 과정에 있는 유기체들의 장소로서의 자연이라는 개념과 결부되어 있다.
각주: 이 장의 후반부와 관련하여 데카르트의 『성찰에 대한 반론에 대한 답변』에 나오는 한 문장은 흥미롭다. "따라서 태양이라는 관념은 정신 속에 존재하는 태양 그 자체가 될 것이다. 물론 하늘에 존재하는 것처럼 형식적으로 존재하는 것은 아니지만, 객관적으로, 즉 대상들이 정신 속에 존재하곤 하는 방식으로 존재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존재 방식은 사물들이 정신 밖에 존재하는 방식보다 확실히 훨씬 덜 완벽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미 내가 말했듯이 그것이 단순한 무(無)인 것은 아니다." [성찰에 대한 반론 I, 홀데인과 로스 번역, 제2권, 10쪽.] 나는 (내가 동의하는) 이 관념론을 데카르트 철학의 다른 부분들과 조화시키는 데 어려움을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