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핀 씨, 곁에서 걷는 것을 허락해 주신다면 말씀드리겠습니다. 저기, 클리퍼드 인이라고 하는 곳으로 잠시 들어가 주시겠습니까? 이렇게 시끄러운 거리보다는 서로 이야기를 나누기가 훨씬 나을 겁니다."
('자,' 보핀 씨는 속으로 생각했다. '만약 이 녀석이 스키틀즈 게임을 제안하거나, 갓 유산을 상속받은 시골 신사를 만나는 척하거나, 주운 보석 같은 걸 내놓는다면, 당장 때려눕혀야지!' 이런 신중한 다짐을 하며, 마치 펀치 인형이 지팡이를 들고 다니듯 지팡이를 품에 안고 보핀 씨는 앞서 말한 클리퍼드 인으로 들어섰다.)
"보핀 씨, 오늘 아침 찬서리 레인을 지나다가 앞서 걸어가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실례를 무릅쓰고 뒤따라가며 말을 걸어 볼까 고민하다가, 변호사 사무실로 들어가시는 걸 보았지요. 그러고 나서 나오실 때까지 밖에서 기다렸습니다."
('스키틀즈 얘기도 아니고, 시골 신사 얘기도 아니고, 보석 얘기도 아니군.' 보핀 씨는 속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모를 일이지.')
"제 목적이 대담한 것 같아 두렵고, 현실 세상과는 거리가 먼 것 같아 걱정스럽지만 용기를 내어 봅니다. 제가 무엇 때문에 이토록 대담하게 구는지 제게 물으신다면, 혹은 아마 그럴 리는 없겠지만 스스로 생각해 보신다면, 저는 이렇게 답하겠습니다. 저는 당신이 정직하고 솔직한 성품에 가장 올바른 마음을 지닌 분이며, 똑같이 훌륭한 아내를 두신 분이라고 확신한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적어도 보핀 부인에 대한 정보는 사실이군." 보핀 씨는 새로운 친구를 다시 훑어보며 대답했다. 낯선 사내의 태도에는 무언가 억눌린 기색이 있었고, 그는 바닥에 눈을 둔 채 걸었지만, 그러면서도 보핀 씨가 자신을 관찰하고 있다는 사실을 의식하고 있었다. 사내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을 이어갔다. 하지만 말투는 자연스러웠고, 비록 억제된 듯했으나 목소리 톤은 들을 만했다.
"덧붙여 말씀드리자면, 세상 사람들이 당신에 대해 하는 말, 즉 당신이 부를 거머쥐고도 전혀 변하지 않았고 우쭐대지도 않는다는 것을 저도 익히 알고 있습니다. 흉금을 터놓는 성격의 소유자이신 만큼 제가 아첨하려는 것이 아니라, 그저 제 행동을 변명하려는 것뿐임을 믿어 주시리라 믿습니다. 지금 제가 이렇게 갑자기 찾아온 것에 대한 유일한 변명입니다."
('얼마를 요구하려는 거지?' 보핀 씨는 속으로 생각했다. '분명 돈 이야기로 넘어갈 거야. 얼마를 달라고 할까?')
"바뀐 형편에 따라 아마 생활 방식도 바꾸시겠지요, 보핀 씨. 아마 더 큰 집을 얻으실 테고, 처리할 일도 많아질 것이며, 수많은 서신을 주고받느라 바빠지실 겁니다. 저를 비서로 써 보시는 건 어떨는지요――"
"뭐라고?" 보핀 씨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소리쳤다.
"비서 말씀입니다."
"허," 보핀 씨가 나직이 중얼거렸다. "참 희한한 일이군!"
"아니면," 낯선 이는 보핀 씨의 반응을 의아해하며 말을 이었다. "어떤 직함으로든 당신의 업무를 돕는 사람으로 저를 써 보신다면, 성실하고 감사한 마음으로 일할 것을 약속드립니다. 제게 도움이 되는 사람이길 바랍니다. 당연히 당장 돈이 목적이라고 생각하실 수도 있겠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저는 기꺼이 1년, 2년, 혹은 당신이 정하는 기간 동안은 돈 생각은 접어 두고 당신을 모실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자네는 어디서 왔나?" 보핀 씨가 물었다.
"저는," 상대가 그의 눈을 마주하며 대답했다. "여러 나라를 거쳐 왔습니다."
보핀 씨는 외국 땅의 지명과 위치에 관한 지식이 한정적이고 다소 혼란스러웠기에, 다음 질문을 융통성 있게 던졌다.
"어느…… 특별한 곳에서 왔나?"
"여러 곳을 거쳐 왔습니다."
"무슨 일을 했나?" 보핀 씨가 물었다.
여기서도 큰 진전은 없었다. 상대의 대답은 이러했다. "학생이었고, 여행자였습니다."
"실례가 아니라면 툭 터놓고 묻겠네." 보핀 씨가 말했다. "생계는 어떻게 꾸려가나?"
"아까 말씀드렸듯," 상대는 그를 다시 한번 바라보며 미소 지었다. "저는 제가 하고 싶은 일을 말씀드린 겁니다. 제게 있던 사소한 계획들은 무산되었으니, 이제야 인생을 시작해야 한다고 말씀드릴 수 있겠군요."
이 지원자를 어떻게 떨쳐내야 할지 몰랐던 데다, 상대의 태도와 모습에서 느껴지는 세련됨에 훌륭한 보핀 씨 스스로가 부족함을 느꼈기에 그는 더욱 당혹스러웠다. 보핀 씨는 해결책을 찾으려는 듯 그날의 클리퍼드 인, 그 곰팡이 핀 작은 숲이자 고양이 보호구역 같은 곳을 힐끔거렸다. 참새들도 있었고, 고양이들도 있었고, 마른 썩은 나무와 젖은 썩은 나무도 있었지만, 그 외에는 딱히 영감을 주는 장소는 아니었다.
"그러고 보니," 낯선 이가 작은 수첩을 꺼내 명함을 건네며 말했다. "제 이름을 아직 말씀드리지 않았군요. 제 이름은 로크스미스입니다. 할로웨이에 있는 윌퍼 씨라는 분 댁에 머물고 있습니다."
보핀 씨는 다시 멍하니 바라보았다.
"벨라 윌퍼 양의 아버지인가?" 그가 물었다.
"제 집주인에게 벨라라는 딸이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틀림없겠지요."
그런데 이 이름은 내내 보핀 씨의 머릿속을 떠나지 않던 터였다. 며칠 전부터 쭉 그랬기에, 그는 이렇게 말했다.
"이거 참 기묘하군!" 명함을 든 채 예의도 잊은 채 무의식적으로 다시 그를 빤히 바라보며 말했다. "그런데 말이야, 혹시 나를 지목한 사람이 그 가족 중 하나였나?"
"아닙니다. 그들 중 누구와도 거리에서 함께 다닌 적은 없습니다."
"그래도 그들 사이에서 내 얘기가 나오는 걸 들었나?"
"아니요. 저는 제 방을 따로 쓰고 있고, 그들과는 거의 교류가 없습니다."
"점점 더 이상해지는군!" 보핀 씨가 말했다. "허허, 이보게. 사실대로 말하자면, 자네에게 뭐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군."
"아무 말씀 마십시오." 로크스미스가 대답했다. "며칠 뒤에 다시 찾아뵙도록 해주십시오. 첫눈에 저를 믿고 거리에서 데려가시리라고 생각할 만큼 양심 없는 사람은 아닙니다. 여유가 생기실 때 다시 찾아뵙고 더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그건 공평하고, 나도 반대하지 않네." 보핀 씨가 말했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히 해둘 조건이 있네. 내가 비서로서 어떤 신사가 필요할지 어떨지는 도무지 알 수 없다는 사실 말일세. 비서라고 했나? 그렇지?"
"그렇습니다."
보핀 씨는 다시 눈을 크게 뜨고 지원자를 머리부터 발끝까지 빤히 바라보며 되뇌었다. "희한하군! 비서라고 한 게 확실한가? 정말인가?"
"그렇게 말씀드린 게 확실합니다."
"비서라." 보핀 씨가 그 단어를 곱씹으며 반복했다. "내가 앞으로 비서나 그 비슷한 게 필요할지 어떨지는, 달나라 사람을 찾게 될지 어떨지를 아는 것만큼이나 알 수가 없단 말이지. 아내와 나도 아직 생활 방식을 바꿀지 결정조차 안 했네. 아내는 분명히 유행을 쫓고 싶어 하지만, 이미 보워에서 유행에 맞춰 자리를 잡았으니 더 이상의 변화는 주지 않을지도 모르지. 어쨌든 이보게, 자네가 굳이 나를 재촉하는 건 아니니, 정 원한다면 보워에 한번 들러보게나. 한두 주 안에 말이야. 아울러, 이미 말한 것 외에 한 가지 더 밝혀두자면, 내 밑에 문학을 아는 친구가 하나 있네. 나무 다리를 한 친구인데, 난 그 친구를 내보낼 생각이 전혀 없네."
"어느 정도 선객이 있다는 사실을 듣게 되어 유감입니다." 로크스미스가 대답했다. 놀란 기색이 역력했다. "하지만 혹시 다른 업무가 생길 수도 있지 않을까요?"
"보게나." 보핀 씨가 은밀한 위엄을 띠며 대답했다. "내 문학 친구의 업무는 아주 분명해. 직업적으로는 쇠퇴하고 몰락하는 게 일이고, 친구로서는 시를 읊조리는 게 일이지."
이런 업무가 로크스미스의 놀란 이해력으로는 결코 명확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눈치채지 못한 채, 보핀 씨가 말을 이었다.
"자, 이제 이만 가보게. 한두 주 안에 언제든 보워로 찾아오게나. 자네 있는 곳에서 1마일 정도밖에 안 되니 집주인에게 물어보면 길을 알려줄 걸세. 다만 그 사람이 '보핀의 보워'라는 새 이름을 모를 수도 있으니, 물어볼 때는 '하몬 씨네'라고 하게나. 알겠나?"
"하문스요?" 로크스미스가 소리를 제대로 알아듣지 못한 듯 되물었다. "하만스인가요? 어떻게 철자를 쓰나요?"
"음, 철자가 뭐든 간에." 보핀 씨가 기지를 발휘해 대답했다. "그건 자네가 알아서 할 일이지. 그 사람에겐 그냥 '하몬 씨네'라고만 하면 돼. 그럼 가보게, 가보게, 가보게!" 그러고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