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부 고장 이름: 이름
불면의 밤마다 내가 가장 자주 떠올리곤 했던 방들 중에서, 콩브레의 방들과 가장 닮지 않은 곳은 발베크의 그랑 호텔 드 라 플라주에 있는 방이었다. 콩브레의 방들이 알갱이처럼 씹히는 듯하고, 꽃가루가 날리며, 먹을 것 같고, 경건한 분위기로 뒤덮여 있었다면, 리폴린 페인트가 칠해진 발베크 방의 벽은 물이 푸르게 비치는 수영장의 매끄러운 벽면처럼 맑고 푸르며 짭조름한 공기를 담고 있었다. 이 호텔의 실내 장식을 맡았던 바이에른 출신의 도배업자는 방마다 장식을 다르게 꾸며놓았는데, 내가 머물게 된 방에는 세 면의 벽을 따라 낮은 책장들이 이어져 있었고 유리 장식장이 달려 있었다. 그 장식장들은 위치에 따라, 그가 미처 의도하지 않았던 효과를 내며 변하는 바다 풍경의 이 부분을 투영해, 마치 마호가니 판으로만 끊어질 뿐인 밝은 바다의 띠를 펼쳐놓은 듯했다. 그래서 방 전체가 마치 가구 전시회의 '모던 스타일' 섹션에 나오는 모범적인 기숙사처럼 보였는데, 그곳은 그곳에서 잠들 사람의 눈을 즐겁게 해줄 것으로 예상되는 예술 작품들로 꾸며져 있었고, 그 작품들은 숙소가 위치한 장소의 성격에 어울리는 주제들로 채워져 있었다.
하지만 실제의 발베크는 폭풍우가 치는 날 내가 그토록 꿈꿔왔던 발베크와는 전혀 달랐다. 폭풍우 치는 날이면 바람이 어찌나 거세게 불던지, 프랑수아즈는 나를 데리고 샹젤리제로 갈 때마다 머리 위로 기와가 떨어지지 않도록 벽에서 멀리 떨어져 걸으라고 당부하곤 했으며, 신문에 실린 대형 참사와 난파 사고 소식을 읊조리며 탄식하곤 했다. 나에게는 바다 위의 폭풍우를 보고 싶다는 간절한 소망이 있었다. 그것은 아름다운 구경거리로서가 아니라 자연의 실제 삶이 드러나는 순간을 보고 싶어서였다. 아니, 나에게는 내 즐거움을 위해 인위적으로 꾸며진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고 변치 않는 것, 즉 풍경이나 위대한 예술의 아름다움만이 진정한 볼거리였다. 나는 나 자신보다 더 진실하다고 믿는 것, 위대한 천재의 사상을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게 해주거나 인간의 간섭 없이 스스로를 드러내는 자연의 힘과 은총을 보여주는 것 외에는 호기심도 갈망도 없었다. 축음기가 재생하는 아름다운 어머니의 목소리만으로는 어머니를 잃은 슬픔을 위로받을 수 없듯이, 기계적으로 흉내 낸 폭풍우는 박람회의 화려한 분수처럼 나에게 그저 무관심만을 남겼을 것이다. 또한 나는 폭풍우가 완전히 진실하기를 바랐기에, 해안 자체도 지자체가 최근에 만든 방파제가 아닌 자연 그대로의 해안이기를 원했다. 게다가 자연은 그것이 내 마음속에 불러일으키는 모든 감정을 통해 인간의 기계적인 창조물과는 가장 거리가 먼 것으로 느껴졌다. 자연에 인간의 흔적이 덜할수록 내 마음이 펼쳐질 공간은 더 넓어졌다. 나는 르그랑댕이 언급했던 발베크라는 지명을 기억하고 있었는데, 그는 그곳을 "일 년의 반은 안개라는 수의와 파도의 물거품으로 뒤덮여 있고 수많은 난파 사고로 악명 높은 비극적인 해안"과 아주 가까운 해변이라고 묘사했기 때문이다.
"그곳에 발을 들이면", 그가 말했다. "피니스테르보다도 훨씬 더, 비록 지금은 그 위에 호텔들이 들어서서 땅의 가장 오래된 뼈대마저 바꾸지 못할지언정, 프랑스 땅, 유럽 땅, 그리고 고대 대지의 진정한 끝자락을 느낄 수 있지. 그곳은 세상이 시작된 이래 살아온 모든 어부들과 다를 바 없는 어부들이, 바다 안개와 그림자가 지배하는 영원한 왕국을 마주하고 마지막으로 진을 친 곳이야." 어느 날 콩브레에서 나는 스완 씨에게 발베크 해변에 대해 이야기하며 그곳이 거센 폭풍우를 구경하기에 가장 적합한 장소인지 물어보았는데,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발베크라, 잘 알지! 12세기와 13세기에 지어진 발베크 성당은 아직 반쯤은 로마네스크 양식이 남아 있는데, 노르만 고딕 양식의 가장 기묘한 표본이자 아주 독특한 건축물이지! 마치 페르시아 예술처럼 보이기도 하고." 그때까지는 그저 태곳적 자연이자 거대한 지질학적 현상과 동시대에 머물러 있는 것으로만 보였던, 그리고 고래들과 마찬가지로 중세라는 시간을 겪지 않았을 것 같은 야만적인 어부들이 사는, 대양이나 큰곰자리만큼이나 인간의 역사와는 무관한 장소였던 그곳들이, 갑자기 로마네스크 시대를 거쳐 역사의 흐름 속으로 들어왔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내게 커다란 매력이었다. 또한 봄이 오면 극지방의 눈 위를 여기저기 별처럼 수놓는 가냘프지만 끈질긴 식물들처럼, 고딕 양식의 세 잎 무늬가 적절한 시기에 이 척박한 바위들에도 그 맥을 그어 놓았다는 사실을 아는 것 또한 그랬다. 고딕 양식이 이 장소와 사람들에게 결여되었던 어떤 성격을 부여했다면, 그들 또한 반대로 고딕 양식에 고유한 특성을 부여하고 있었다. 나는 그 어부들이 어떻게 살아왔는지, 중세 시대 지옥의 해안이라 불리는 곳의 한 귀퉁이, 죽음의 절벽 아래 모여 그들이 시도했던 수줍고도 예상치 못한 사회적 관계의 흔적을 상상해보려 했다. 이제 고딕 양식은 내가 늘 상상해왔던 도시에서 벗어나, 척박한 바위 위에서 어떻게 싹을 틔우고 섬세한 종탑으로 꽃피웠는지 그 특별한 사례를 볼 수 있게 됨으로써 한층 더 생생하게 다가왔다. 사람들은 나를 데리고 발베크의 가장 유명한 조각상들인 뭉툭하고 코가 낮은 사도들과 현관의 성모상 복제품을 보여주었는데, 그것들이 영원한 소금기 섞인 안개를 배경으로 입체적으로 떠오르는 모습을 볼 수 있으리라 생각하니 기쁨으로 가슴이 벅차올랐다. 그러니 폭풍우가 치면서도 포근한 2월의 저녁이면 ― 방 안의 굴뚝만큼이나 내 마음도 세차게 뒤흔들며 불어오는 바람 속에서 ― 발베크 여행 계획은 내 안에서 고딕 건축에 대한 열망과 바다의 폭풍우에 대한 갈망을 하나로 뒤섞어놓았다.
나는 당장 다음 날이라도 오후 1시 22분에 출발하는, 그 관대하고 멋진 열차를 타고 싶었다. 철도 회사의 광고나 순회 여행 안내서에서 그 출발 시간을 읽을 때면 나는 언제나 심장이 뛰곤 했다. 그 시간은 오후의 특정 지점에 달콤한 흠집을, 신비로운 표식을 새겨 넣는 것만 같았다. 그 표식 이후로 이어지는 시간들은 비록 저녁이나 다음 날 아침으로 향하긴 하겠지만, 그곳에서 우리가 보게 될 곳은 파리가 아니라 열차가 지나가며 우리에게 선택권을 주는 도시 중 하나일 것이기 때문이었다. 열차는 바유, 쿠탕스, 비트레, 케스탕베르, 퐁토르송, 발베크, 라니옹, 랑발, 베노데, 퐁타방, 캥페를레에 정차했고, 그 이름들을 가득 싣고 당당하게 나아갔다. 나는 그중 어느 하나도 포기할 수 없었기에 어떤 곳을 더 좋아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열차를 기다릴 필요도 없이, 부모님께서 허락만 해주셨다면 그날 저녁이라도 서둘러 옷을 입고 떠나 성난 바다 위로 동이 트기 시작할 무렵 발베크에 도착해, 휘날리는 물거품을 피해 페르시아 양식의 성당으로 숨어들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부활절 방학이 다가오고 부모님께서 이번에는 북이탈리아에서 방학을 보내게 해주겠다고 약속하시자, 온통 폭풍우의 꿈으로 가득 차 가장 거친 해안으로 밀려드는 거대한 파도만을 보고 싶어 하던 내 마음속에는 변화가 일어났다. 절벽처럼 가파르고 거친 성당들과 그 탑 위에서 바닷새들이 울어대는 풍경을 꿈꾸던 그 열망을 순식간에 지워버리고, 그 어떤 매력도 앗아가 버린 채, 그와는 정반대이며 오히려 그 열망을 약화시켰을 뿐인 또 다른 꿈이 내 안을 채우기 시작했다. 그것은 가장 다채로운 봄의 꿈이었다. 서릿발의 바늘로 여전히 날카롭게 찌르던 콩브레의 봄이 아니라, 피에졸레의 들판을 백합과 아네모네로 뒤덮고 안젤리코의 그림 속 황금빛 배경처럼 피렌체를 눈부시게 하던 그런 봄의 꿈 말이다. 그때부터는 오직 햇살과 향기, 색채만이 가치 있게 느껴졌다. 이미지들의 교체는 내 욕망의 방향을 바꾸어 놓았고, 음악에서 때때로 일어나는 변화처럼 내 감수성의 톤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그러고 나니 계절이 바뀔 때까지 기다릴 필요도 없이, 단순히 대기의 변화만으로도 내 안에서 그런 감정의 변조를 일으키기에 충분해졌다. 종종 우리는 한 계절 안에서 다른 계절의 하루를 뜻밖에도 발견하곤 하는데, 그날은 우리를 그곳에서 살게 하고 즉시 그 계절을 떠올리게 하며 그 계절 특유의 즐거움을 갈망하게 만든다. 또한 우리가 꾸고 있던 꿈을 중단시키고, 행복의 보간된 달력 속에 다른 장에서 떨어진 이 낱장을 제 차례보다 이르거나 늦게 끼워 넣는다. 하지만 머지않아, 과학이 그것들을 장악하여 마음대로 만들어냄으로써 우연의 통제에서 벗어나 우리 손에 직접 나타나게 할 수 있게 되기 전까지는 우리의 안락함이나 건강이 오직 우연하고도 미미한 혜택만을 얻을 수 있을 뿐이었던 자연 현상들처럼, 발베크와 베네치아, 피렌체에 대한 꿈을 만들어내는 일도 계절과 시간의 변화에만 의존하는 것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그 꿈들을 되살리기 위해 나는 발베크, 베네치아, 피렌체라는 이름들을 나지막이 읊조리기만 하면 되었는데, 그 이름들 속에는 그 이름이 가리키는 장소들이 내게 불어넣어 준 갈망이 결국 차곡차곡 쌓여 있었기 때문이다. 봄철에도 책 속에서 발베크라는 이름을 발견하는 것만으로도 내 안에서는 폭풍우와 노르만 고딕 양식에 대한 갈망이 다시 깨어나곤 했고, 폭풍우 치는 날조차도 피렌체나 베네치아라는 이름은 내게 햇살과 백합, 두칼레 궁전과 산타 마리아 델 피오레에 대한 열망을 불러일으켰다.
하지만 이 이름들이 내가 그 도시들에 대해 품었던 이미지를 영원히 흡수해 버렸다면, 그것은 그 이미지를 변형시키고 내 안에서 그것이 다시 나타나는 방식을 그 이름들 고유의 법칙에 복종시킴으로써 이루어진 것이었다. 결과적으로 그 이름들은 도시의 이미지를 더 아름답게 만들었지만, 노르망디나 토스카나의 도시들이 실제로 그럴 수 있었던 모습과는 더 다르게 만들어 버렸고, 내 상상력의 자의적인 즐거움을 증폭시킴으로써 훗날 내가 겪을 여행의 실망감을 더욱 가중시켰다. 그 이름들은 내가 지구상의 특정 장소들에 대해 가지고 있던 관념을 드높였고, 그것들을 더 특별하게, 결과적으로 더 실재하게 만들었다. 그때 나는 도시나 풍경, 유적들을 똑같은 재료에서 여기저기 잘라낸 다소 즐거운 그림들로 상상하지 않았고, 각각을 내 영혼이 갈망하고 알아두면 유익할, 다른 것들과는 본질적으로 다른 낯선 존재로 그려보았다. 이름들로 불리게 됨으로써, 즉 그들만을 위한, 사람들처럼 고유한 이름을 가지게 됨으로써 그 장소들은 얼마나 더 개별적인 무언가를 띠게 되었던가. 단어들은 우리에게 사물에 대한 작고 명료하며 흔한 이미지를 보여준다. 마치 학교 벽에 걸어놓은, 아이들에게 작업대나 새, 개미집이 어떤 것인지 알려주기 위한 그림들처럼, 같은 종류의 모든 사물과 똑같다고 상상되는 사물들 말이다. 하지만 이름은 사람들, 그리고 우리가 사람들처럼 개별적이고 유일하다고 믿게 된 도시들에 대해 혼란스러운 이미지를 제시한다. 그 이미지는 이름 자체, 그 이름의 밝거나 어두운 소리에서 색깔을 끌어오는데, 그 색깔은 마치 특정 제작 방식의 한계 때문이거나 장식가의 변덕으로 인해 하늘과 바다뿐만 아니라 배, 교회, 행인까지도 온통 파랗거나 빨갛게 칠해진 포스터처럼 획일적으로 채색된다. 『파르마 수도원』을 읽은 뒤 내가 가장 가고 싶어 했던 도시 중 하나인 파르마라는 이름은 내게 묵직하고 매끄러우며 연보랏빛의 부드러운 느낌으로 다가왔다. 그래서 누가 내가 머물게 될 파르마의 어느 집 이야기를 꺼내기라도 하면, 나는 이탈리아의 어떤 도시의 주거지와도 연관되지 않는 매끄럽고 묵직하며 연보랏빛의 부드러운 거처에 살게 되리라는 생각에 기쁨을 느꼈다. 왜냐하면 나는 그 이름의 무거운 음절 속에 공기가 전혀 순환하지 않는 파르마라는 이름으로만, 그리고 내가 그 이름 속에 흡수시킨 스탕달적 감미로움과 제비꽃의 반영으로만 그곳을 상상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피렌체를 생각할 때면 그곳은 백합의 도시라 불리고 성당 이름은 산타 마리아 델 피오레였기에 기적처럼 향기롭고 꽃부리와 닮은 도시로 떠올랐다. 발베크라는 이름은, 마치 빚어낸 흙의 색깔을 그대로 간직한 노르망디의 낡은 도자기처럼, 폐지된 관습이나 봉건 시대의 권리, 옛 지형의 상태, 그 이질적인 음절을 형성했을 시대에 뒤떨어진 발음 방식들이 여전히 그려져 있는 이름들 중 하나였다. 나는 그 모습을 도착하자마자 나에게 카페오레를 내어줄 여관 주인에게서도 분명히 발견할 수 있으리라 믿었는데, 그는 나를 교회 앞의 거친 바다로 안내해 줄 것이며 나는 그에게 파블리오에 등장하는 인물 같은 논쟁적이고 장중한 중세적 풍모를 입혀놓고 있었다.
내 건강이 회복되어 부모님께서 발베크에 머물러 갈 수는 없더라도, 노르망디나 브르타뉴의 건축과 풍경을 익히기 위해 상상 속에서 수없이 탔던 그 1시 22분 열차를 한 번쯤 타게 해주신다면, 나는 가장 아름다운 도시들에서 내리고 싶었다. 하지만 그 도시들을 아무리 비교해본들, 서로 대체할 수 없는 개별적인 존재들 사이에서 어떻게 선택할 수 있겠는가. 고귀하고 붉은빛이 감도는 레이스처럼 드높고 그 정상은 마지막 음절의 오래된 황금빛으로 빛나던 바유, 악상 텍쥐가 검은 나무로 옛 유리창에 마름모꼴 무늬를 새기던 비트레, 달걀 껍데기의 노란색에서 진주 회색까지 하얀색을 띠는 부드러운 랑발, 기름지고 노랗게 변해가는 마지막 이중모음이 버터 탑으로 왕관처럼 씌워진 노르만 양식의 성당 쿠탕스, 마을의 정적 속에서 마차와 그 뒤를 따르는 파리 소리가 들려오던 라니옹, 강물이 흐르는 이 시적인 장소들의 길가에 흩어진 하얀 깃털과 노란 부리처럼 우스꽝스럽고 순진해 보이던 케스탕베르와 퐁토르송, 강물이 해초 속으로 끌고 가려는 듯 이름조차 채 정박하지 못한 베노데, 운하의 푸른 물속에 떨며 비치는 가벼운 머리쓰개의 하얗고 분홍빛 날갯짓이던 퐁타방, 그리고 중세부터 그가 지저귀는 시냇물 사이에서 거미줄 쳐진 유리창 너머로 변한 햇살이 무딘 잿빛 은색 끝으로 그려내듯 잿빛으로 진주처럼 맺혀 더 단단히 묶여 있던 캥페를레 중에서 말이다.
이러한 이미지들이 거짓인 데에는 또 다른 이유가 있었다. 그것들은 필연적으로 매우 단순화되어 있었다. 의심할 여지 없이 내 상상력이 갈구하던 것, 그리고 내 감각이 현재로서는 불완전하게나마 즐거움 없이 인식하던 것을 나는 이름이라는 피난처 안에 가두어 두었다. 아마도 내가 그 속에 꿈을 쌓아 두었기 때문에 그것들은 이제 내 욕망을 끌어당기는 것이었으리라. 그러나 이름이란 그리 방대한 것이 아니다. 많아야 도시의 주요한 '볼거리' 두세 가지 정도를 그 안에 집어넣을 수 있었을 뿐이며, 그것들은 중간 과정 없이 나란히 놓여 있을 뿐이었다. 발베크라는 이름 안에는, 해수욕장에서 사는 펜대 끝에 달린 확대경을 들여다볼 때처럼 페르시아 양식의 성당 주위로 솟구치는 파도들이 보였다. 어쩌면 그 이미지들의 단순함이야말로 그것들이 나를 지배하게 된 원인 중 하나였을지도 모른다. 아버지가 어느 해 부활절 방학을 피렌체와 베네치아에서 보내기로 결정했을 때, 피렌체라는 이름 안에 도시를 구성하는 일반적인 요소들을 다 집어넣을 자리가 없었던 나는, 몇 가지 봄의 향기를 통해 내가 본질적으로 조토의 천재성이라 믿었던 것으로부터 초자연적인 도시를 끄집어낼 수밖에 없었다. 기껏해야 ― 그리고 이름 안에는 공간보다 많은 시간을 담을 수 없기에 ― 마치 조토의 그림들 중 일부가 같은 인물을 두 개의 다른 행동 순간으로 보여주어, 한쪽에서는 침대에 누워 있고 다른 한쪽에서는 말에 오르려 하는 것처럼, 피렌체라는 이름은 두 구역으로 나누어져 있었다. 한 구역에서는 건축적인 닫집 아래에서 아침 햇살의 장막이 부분적으로 겹쳐져 가루처럼 흩어지며 비스듬히 나아가는 프레스코화를 바라보고 있었고, 다른 구역에서는 (나는 이름을 가닿을 수 없는 이상향이 아니라 내가 그 안으로 뛰어들게 될 실제적인 분위기, 즉 아직 살아보지 않은 삶, 그 안에 가두어 두었던 온전하고 순수한 삶으로 생각했기에, 그것은 가장 물질적인 쾌락과 가장 단순한 장면에도 원시 시대의 작품들이 가진 매력을 부여했다) 점심 식사로 기다리고 있던 과일과 키안티 와인을 더 빨리 만나기 위해 수선화, 나르시스, 아네모네로 가득 찬 베키오 다리를 빠르게 건너고 있었다. (파리에 있었지만) 내가 보고 있던 것은 바로 이것이었고 내 주위에 있던 것은 아니었다. 단순한 현실적인 관점에서 보더라도, 우리가 갈망하는 나라들은 우리가 실제로 머무는 나라보다 매 순간 우리의 진정한 삶에서 훨씬 더 큰 비중을 차지한다. 의심할 여지 없이, 내가 '피렌체, 파르마, 피사, 베네치아에 간다'는 말을 내뱉을 때 내 생각 속에 무엇이 있었는지 스스로 조금 더 주의를 기울였더라면, 내가 보던 것이 도시가 아니라 내가 알고 있던 모든 것들과는 다르게, 그리고 겨울 오후의 끝자락에서 늘 시간을 보냈던 인류에게 이 미지의 경이로움, 즉 봄날의 아침이 그러할 수 있듯이 그토록 감미로운 무언가라는 것을 깨달았을 것이다. 비현실적이고 고정되어 있으며 늘 똑같은 이 이미지들이 내 밤과 낮을 가득 채우면서, 내 삶의 이 시기를 이전의 시기들과 구별 짓게 되었다(겉모습만 보는, 즉 아무것도 보지 못하는 관찰자의 눈에는 이 시기와 혼동될 수도 있었겠지만). 마치 오페라에서 선율의 모티프가 대본만 읽거나 극장 밖에 서서 흐르는 시간을 세기만 해서는 짐작할 수 없는 새로움을 도입하는 것과 같았다. 그리고 설령 단순한 양의 관점에서 보더라도, 우리 삶에서 하루하루는 결코 평등하지 않다. 나처럼 다소 신경질적인 성격은 나날을 통과하기 위해 자동차처럼 서로 다른 '속도'를 사용한다. 끝없이 오르느라 시간이 걸리는 험난한 오르막길 같은 날도 있고, 노래를 부르며 전속력으로 내려갈 수 있는 내리막길 같은 날도 있다. 내가 피렌체, 베네치아, 피사의 이미지들을 선율처럼 되새기며 질릴 줄도 모르고 갈망했던 그 한 달 동안(그 이미지들이 내 안에서 불러일으키는 욕망은 마치 사랑, 즉 어떤 사람에 대한 사랑인 것처럼 깊이 개인적인 무언가를 간직하고 있었다), 나는 그 이미지들이 나로부터 독립된 현실에 대응한다고 굳게 믿었으며, 그것들은 초기 기독교인이 천국에 들어가기 전날 느꼈을 법한 아름다운 희망을 내게 알게 해주었다. 그래서 몽상에 의해 다듬어졌고 감각 기관으로는 인식되지 않았던 것을 감각 기관으로 보고 만지려 하는 모순을 신경 쓰지 않았기에(그것들은 내 감각이 알고 있는 것들과는 다를수록 더욱 유혹적이었다), 그 이미지들의 실재를 상기시켜 주는 무언가가 내 욕망을 가장 불타오르게 했으며, 마치 욕망이 충족될 것이라는 약속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의 고양된 기분은 예술적 쾌락에 대한 욕망에서 비롯되었지만, 여행 안내서들은 심미학 책들보다 더더욱 그 욕망을 부추겼고, 안내서들보다 더 심했던 것은 철도 시간표였다. 나를 감동하게 한 것은, 상상 속에서 가깝지만 가닿을 수 없다고 여겼던 이 피렌체를 내 안에서 그것과 나를 갈라놓는 거리가 도저히 가볼 수 없는 곳이라 하더라도, '육로'를 통해 샛길로, 우회로로 도달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었다. 분명 내가 갈 곳에 대해 그토록 큰 가치를 부여하며 베네치아가 '조르조네의 학파이자 티치아노의 거처이며 중세 가사 건축의 가장 완벽한 박물관'이라고 되뇔 때면 나는 행복을 느꼈다. 그러나 며칠간의 이른 봄날이 지나고 평소 콩브레에서 흔히 맞이하던 성주간처럼 다시 겨울 날씨로 돌아간 탓에 서둘러 외출했다가 돌아올 때면 더욱 행복했다. 차가운 물과 같은 얼음장처럼 차가운 공기에 잠긴 채로도 예외 없이, 이미 단장을 마치고 기가 꺾이지도 않은 채 꽁꽁 언 덩어리 속에서 굴복하지 않는 푸르름을 둥글게 깎고 조각해 나가는, 추위의 낙태적인 힘이 방해는 해도 멈추게 하지는 못하는 점진적인 싹을 틔우기 시작하던 대로변의 마로니에 나무들을 바라보며, 나는 이미 베키오 다리가 히아신스와 아네모네로 가득 뒤덮여 있고 봄 햇살이 대운하의 물결을 너무도 어두운 쪽빛과 고귀한 에메랄드빛으로 물들여 티치아노의 그림 끝에 부딪히며 그 풍부한 색채와 견줄 만하리라고 생각했다. 아버지가 기압계를 살피며 추위를 한탄하면서도 최선의 열차 편을 찾기 시작했을 때, 그리고 점심 식사 후 석탄 냄새 나는 실험실, 주위의 모든 것을 변화시키는 마법의 방으로 들어가면 다음 날 아침 '벽옥으로 장식되고 에메랄드로 포장된' 대리석과 황금의 도시에서 눈을 뜰 수 있으리라는 것을 깨달았을 때, 나는 기쁨을 감출 수 없었다. 그렇게 그 도시와 백합의 도시는 상상력 속에 마음대로 꺼내 놓을 수 있는 가상의 그림일 뿐만이 아니라, 직접 가보고 싶다면 반드시 건너가야 하는 파리로부터 일정 거리에, 그리고 지구상의 정해진 특정 장소에 존재하는, 한마디로 정말로 실재하는 곳이었다. 아버지가 '결국 너는 4월 20일부터 29일까지 베네치아에 머물다가 부활절 아침에 피렌체에 도착할 수 있겠구나'라고 말했을 때 그 도시들은 내게 더욱 현실적으로 다가왔다. 아버지는 그 도시들을 추상적인 공간에서뿐만 아니라, 우리가 한 번에 하나의 여행만을 계획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여행을 동시에 꿈꾸되 실현 가능성만을 가진 탓에 감정이 별로 실리지 않는 그런 상상의 시간에서 끄집어내어 주었다. 한 도시에서 보낸 뒤 다른 도시에서도 보낼 수 있을 만큼 마음대로 다시 만들어지는 그런 시간에서 말이다. 아버지는 그 도시들에 특별한 날들을 할애했는데, 그날들은 그날들을 사용하는 대상들의 진품 증명서와도 같다. 왜냐하면 그런 유일한 날들은 사용함으로써 소모되고 다시 돌아오지 않으며, 한 곳에서 보내고 나면 다른 곳에서 다시 살 수 없기 때문이다. 나는 세탁부에게 돌려줘야 할 잉크 얼룩진 흰 조끼를 빨래를 보내기로 한 월요일에 시작되는 그 주간을 향해, 내 삶의 계획 속에 스스로 기하학적인 방식으로 돔과 탑을 새겨 넣어야 할 두 여왕의 도시가 아직 존재하지 않던 이상적인 시간에서 벗어나 나에게 흡수되려 하고 있음을 느꼈다. 하지만 나는 아직 환희의 정점에 이르는 길 위에 있을 뿐이었다. (조르조네의 프레스코화가 반사되어 붉게 물든, 물결치는 거리를 다음 주 부활절 전날 베네치아에서 거닐게 될 존재는, 내가 그토록 많은 경고에도 불구하고 상상해 왔던 '바다처럼 장엄하고 두려우며 피 묻은 망토 아래로 청동 빛 갑옷을 입은' 그런 거대한 인물들이 아니라, 누군가 빌려준 성 마르코 광장의 큰 사진 속에서 일러스트레이터가 현관 앞에 중산모를 쓰고 그려 넣은 작은 인물인 바로 나일지도 모른다는 계시를 그때 처음 받았다) 마침내 나는 아버지가 '대운하 쪽은 여전히 추울 테니, 만약을 대비해서 겨울 외투와 두꺼운 재킷을 짐에 넣는 게 좋을 거다'라고 말하는 것을 듣고 그 정점에 도달했다. 그 말에 나는 일종의 황홀경에 빠져들었다. 이전까지는 불가능하다고 믿었던 것을, 나는 '인도양의 암초와 같은 자수정 바위' 사이로 진정으로 파고드는 기분을 느꼈다. 더할 나위 없는 최고의 몸짓으로, 나를 감싸고 있던 방 안의 공기라는 무의미한 껍데기를 벗어던지듯, 나는 그것을 베네치아의 공기, 즉 내 상상력이 베네치아라는 이름 속에 가두어 두었던 꿈의 분위기처럼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독특한 바다의 공기로 채워 넣었고, 내 안에서 기적 같은 탈육화가 이루어지는 것을 느꼈다. 그와 동시에 심한 인후염을 앓았을 때 느끼는 구역질이 밀려왔고, 나는 의사가 지금 당장 피렌체나 베네치아로 떠나는 것을 포기해야 할 뿐만 아니라, 완전히 회복된 후에도 최소 1년 동안은 어떤 여행 계획이나 소란스러운 일도 피해야 한다고 선언할 만큼 지독한 열병에 시달리며 침대에 누워야 했다.
아아, 슬프게도 그는 내가 극장에 가서 베르마의 연기를 보는 것조차 절대적으로 금지했다. 베르고트가 천재적이라고 평한 그 숭고한 예술가는, 내게 어쩌면 피렌체나 베네치아에 가보지 못한 것, 발베크에 가지 못하는 것을 보상해 줄 만큼 중요하고 아름다운 무언가를 알게 해 주었을 것이다. 나는 그저 매일 샹젤리제에 가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는데, 내가 지치지 않도록 감시하는 사람의 동행이 필요했고, 레오니 고모가 돌아가신 뒤 우리 집에 들어온 프랑수아즈가 그 역할을 맡았다. 샹젤리제에 가는 것은 내게 참을 수 없는 일이었다. 만약 베르고트가 그의 책 중 하나에서 그곳을 묘사했더라면, 분명 나는 이미 내 상상 속에 그 '분신'을 심어놓기 시작한 다른 모든 것들처럼 그곳을 알고 싶어 했을 것이다. 상상력은 그것들을 따스하게 하고 살아 숨 쉬게 하며 고유한 인격을 부여했기에, 나는 현실에서 그것들을 다시 발견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 공공 정원에는 내 꿈과 연결되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어느 날, 회전목마 옆의 익숙한 우리 자리에 앉아 지루해하고 있을 때, 프랑수아즈는 나를 데리고 소풍을 나갔다. 보리사탕 장수들의 작은 가게들이 일정한 간격으로 지키고 있는 경계선을 지나, 낯선 얼굴들이 있고 염소 마차가 지나다니는 가깝지만 낯선 구역으로 말이다. 그러고 나서 그녀는 월계수 덤불에 기대어 놓은 의자에서 자신의 짐을 챙기러 돌아왔다. 그녀를 기다리는 동안 나는 햇볕에 그을려 보잘것없고 짧게 깎인 큰 잔디밭을 밟고 있었는데, 그 잔디밭 끝에 있는 연못가에서는 한 동상이 우뚝 서 있었다. 그때 산책로에서 연못 앞 셔틀콕 놀이를 하던 붉은 머리의 소녀에게 코트를 입고 라켓을 챙기던 또 다른 소녀가 짧은 목소리로 외쳤다. "안녕, 질베르트. 난 먼저 갈게. 오늘 저녁 먹고 너희 집에 놀러 가기로 한 거 잊지 마." 질베르트라는 이 이름은 내 곁을 스쳐 지나갔는데, 단지 이야기 속의 부재하는 대상을 언급하는 것이 아니라 직접 그 대상을 부르는 소리였기에 그 이름을 가진 존재를 한층 더 강렬하게 떠올리게 했다. 그 이름은 마치 비행하는 궤적을 그리며 목표를 향해 다가가듯, 나름의 역동적인 힘을 머금고 내 곁을 지나갔다. 내가 느끼기에 그 이름은 자신을 향해 발화된 대상에 대한 지식과 정보를 담고 있었다. 나에게가 아니라 그 이름을 부르는 친구에게, 그 소녀가 이름을 발음하는 순간 눈앞에 다시 그려지거나 적어도 기억 속에 소중히 간직하고 있던 그들의 일상적인 친밀함, 서로의 집을 드나들며 나누었던 시간, 그 모든 미지의 세계를 담고 있었다. 내게는 여전히 닿을 수 없고 고통스러운 그 미지의 세계가, 정작 그것을 스쳐 지나가며 소리쳐 공중에 던지는 행복한 소녀에게는 그토록 친숙하고 다루기 쉬운 것이라는 사실이 사무쳤다. 그 이름은 쥘베르트 양의 삶에서 보이지 않던 몇몇 지점들을 정확히 건드리며, 저녁 식사 후 그녀의 집에서 보낼 저녁 시간처럼 그곳에서만 풍겨 나오는 감미로운 향기를 공중에 흩뿌리고 있었다. 아이들과 유모들 사이를 지나가는 천상의 나그네처럼, 그 이름은 푸생의 아름다운 정원 위에 떠 있는 구름처럼 작고 귀한 빛깔의 구름을 형성했는데, 마치 말과 전차가 가득한 오페라 무대의 구름처럼 신들의 삶의 한 단면을 세밀하게 비추고 있었다. 마침내 그 이름은 셔틀콕을 던지고 받아내기를 멈추지 않다가 푸른 깃털 장식을 단 가정교사가 부르고 나서야 멈춘 금발 소녀의 오후 한순간이자 시든 잔디밭의 일부인 바로 그 깎인 잔디 위로, 헬리오트로프 빛깔의 경이로운 작은 띠를 드리웠다. 그것은 마치 반사광처럼 형체도 없고 양탄자처럼 겹쳐져 있었는데, 나는 그 위를 걷는 나의 지체되고 향수에 젖은 신성모독적인 발걸음을 멈출 수가 없었다. 그때 프랑수아즈가 나에게 소리쳤다. "자, 외투 단추 좀 채우고 어서 가자." 나는 처음으로 그녀가 속된 말투를 쓰고, 아아, 그녀의 모자에는 푸른 깃털 장식도 없다는 사실을 짜증스럽게 깨달았다.
그녀가 과연 샹젤리제로 다시 돌아올 것인가? 다음 날 그녀는 그곳에 없었지만, 나는 그다지 멀지 않은 날들에 그녀를 보았다. 나는 그녀가 친구들과 놀고 있는 장소 주변을 계속 서성였으며, 마침내 그들의 편싸움 놀이에 인원이 모자라게 되자 그녀는 내게 그들의 진영에 들어와 함께 놀겠냐고 물어왔고, 그 이후로 그녀가 그곳에 있을 때마다 나는 그녀와 함께 놀았다. 하지만 그녀가 매일 나오는 것은 아니었다. 수업이나 교리 문답, 간식 시간 때문에 오지 못하는 날들이 있었는데, 질베르트라는 이름으로 응축되어 콩브레의 가파른 길가와 샹젤리제의 잔디밭에서 내가 두 번이나 너무도 아프게 스쳐 지나가는 것을 느꼈던, 내 삶과 분리된 그 모든 삶이 그녀를 가로막았다. 그런 날이면 그녀는 오지 못할 것이라고 미리 알리곤 했다. 공부 때문일 때면 그녀는 "정말 지루해, 내일은 갈 수가 없어. 너희들 모두 나 없이 재미있게 놀아"라며, 나를 조금은 위로해 주는 안타까운 표정으로 말하곤 했다. 하지만 반대로 어떤 마티네 모임에 초대받았는데 내가 그것도 모르고 와서 놀겠냐고 물어보면 그녀는 "그랬으면 정말 좋겠네! 엄마가 내 친구 집에 가는 걸 허락해 주셨으면 좋겠어"라고 대답했다. 적어도 그런 날에는 그녀를 볼 수 없으리라는 것을 알았지만, 어떤 때는 어머니가 엉뚱하게도 그녀를 데리고 볼일을 보러 나가는 바람에 다음 날 그녀가 "아! 맞아, 엄마랑 외출했었어"라고 마치 자연스러운 일인 양, 그리고 그것이 누군가에게는 가능한 가장 큰 불행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듯이 말하기도 했다. 또한 날씨가 나쁜 날이면 자신도 비를 무서워하는 가정교사가 그녀를 샹젤리제로 데려가지 않으려 했다.
그래서 하늘이 수상쩍으면 나는 아침부터 하늘을 끊임없이 살피며 온갖 징조를 따져보곤 했다. 창가에서 모자를 쓰고 있는 맞은편 집 부인을 보면 나는 생각했다. '저 부인이 외출을 하려나 보군. 그러니 외출하기 괜찮은 날씨인 게 분명해. 질베르트라고 왜 저 부인처럼 하지 못하겠어?' 하지만 날씨는 점점 흐려졌고 어머니는 날이 다시 갤 수도 있으며 햇살 한 줄기면 충분할 거라고 말씀하셨지만, 비가 올 확률이 더 높다고 덧붙이셨다. 비가 온다면 샹젤리제에 가서 무엇하겠는가? 그래서 점심 무렵부터 나의 불안한 시선은 구름 낀 불확실한 하늘을 떠나지 못했다. 하늘은 계속 어두컴컴했다. 창밖의 발코니는 잿빛이었다. 그러다 갑자기 칙칙한 돌 위로 덜 칙칙한 색이 나타나는 것까지는 아니었지만, 나는 빛을 발산하려는 주저하는 햇살의 맥동처럼 덜 칙칙한 색으로 나아가려는 노력을 느꼈다. 잠시 후 발코니는 아침 물처럼 창백하고 반짝였으며, 발코니의 철제 난간에서 쏟아진 수천 개의 반사가 그 위에 내려앉았다. 바람이 불어와 그것들을 흩뜨리면 돌은 다시 어두워졌지만, 그것들은 길들여진 듯 다시 돌아왔고 발코니는 조금씩 다시 하얗게 변해가기 시작했다. 음악의 서곡 끝에서 하나의 음을 모든 중간 단계를 빠르게 거쳐 최고 포르티시모까지 이끄는 연속적인 크레셴도처럼, 나는 그것이 맑은 날의 변치 않는 고정된 황금빛에 도달하는 것을 보았다. 그 황금빛 위로 정교하게 세공된 난간의 그림자가 변덕스러운 식물처럼 검게 도드라졌는데, 아주 작은 디테일 하나하나를 묘사한 섬세함은 마치 성실한 의식과 예술가의 만족감을 드러내는 듯했다. 또한 어둡고 행복한 그림자의 덩어리들이 쉬고 있는 모습은 어찌나 입체적이고 벨벳처럼 부드러운지, 햇살의 호수 위에 머물러 있는 이 넓고 잎이 무성한 반사광들은 정말이지 그것들이 평온과 행복의 담보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 것만 같았다.
순식간에 피어나는 담쟁이덩굴, 벽에 붙어사는 덧없는 꽃! 많은 이들이 담벼락을 기어오르거나 창가를 장식할 수 있는 식물 중 가장 색깔 없고 가장 슬픈 것이라고들 하지만, 내게는 우리 집 발코니에 처음 나타난 날부터 모든 꽃 중 가장 소중한 존재가 되었다. 마치 이미 샹젤리제에 가 있을지도 모를 질베르트의 그림자처럼, 내가 그곳에 도착하기만 하면 내게 "어서 술래잡기 놀이 시작하자, 넌 내 팀이야."라고 말해줄 것만 같은 존재였다. 숨결 한 번에도 날아갈 듯 연약하지만, 계절이 아닌 시간과 교감하는 꽃. 하루가 거부하거나 이루어줄 즉각적인 행복의 약속, 따라서 그 무엇보다 즉각적인 행복이자 사랑의 행복 그 자체. 돌 위에서 이끼보다 더 부드럽고 따스하며, 햇살 한 줄기면 한겨울의 심장부에서도 피어나 기쁨을 꽃피울 만큼 생명력 넘치는 꽃.
다른 모든 식물이 사라지고 늙은 나무들의 몸통을 감싸던 아름다운 녹색 껍질마저 눈 속에 파묻힌 날들조차도, 눈이 그쳤지만 쥘베르트가 나올 희망을 품기엔 날씨가 너무 흐릴 때면 어머니는 문득 이렇게 말씀하시곤 했다. "어머, 마침 날이 개는구나. 그래도 한번 샹젤리제에 가보는 게 어떻겠니." 그러면 발코니를 덮은 눈 위로 햇살이 나타나 황금빛 실을 엮고 검은 반사광을 수놓았다. 그런 날이면 우리는 아무도 만나지 못하거나, 떠날 채비를 하던 어린 소녀 한 명으로부터 쥘베르트가 오지 않을 거라는 말만 듣곤 했다. 위엄 있으면서도 추위를 많이 타는 가정교사들의 무리가 떠나버린 의자들은 텅 비어 있었다. 오직 잔디밭 근처에는 늘 똑같고 화려하며 수수한 옷차림을 한, 날씨에 상관없이 찾아오던 어떤 나이 든 부인이 앉아 있었는데, 당시의 나라면 교환이 허락되기만 했다면 내 인생의 모든 미래를 희생해서라도 그녀와 알고 지내고 싶었을 정도였다. 쥘베르트는 매일 그녀에게 인사하러 갔고, 그녀는 쥘베르트에게 "네 사랑하는 어머니"의 안부를 묻곤 했다. 만약 내가 그녀와 아는 사이였다면, 쥘베르트에게 나는 그녀 부모의 지인들을 아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었을 것만 같았다. 그녀의 손주들이 저 멀리서 놀고 있는 동안, 그녀는 늘 자신이 "나의 오래된 데바"라고 부르던 ≪데바≫를 읽곤 했고, 귀족적인 태도로 순경이나 의자 대여업자에 대해 말할 때는 "내 오랜 친구인 순경", "의자 대여업자와 나는 오래된 친구 사이"라고 말하곤 했다.
프랑수아즈는 가만히 서 있기에 너무 추워했고, 우리는 꽁꽁 얼어붙은 센강을 보러 콩코르드 다리까지 걸어갔다. 사람들은 아이들조차 무서워하지 않고 마치 금방이라도 해체될 것 같은, 방어 능력을 잃고 해안가에 밀려온 거대한 고래에게 다가가듯 강물에 다가갔다. 우리는 다시 샹젤리제로 돌아왔다. 나는 멈춰 선 회전목마와 눈을 치워 검은 산책로 그물망에 갇힌 하얀 잔디밭 사이에서 고통에 시달렸고, 그 잔디밭 위 동상은 손에 들린 고드름이 마치 그 동상의 제스처를 설명해 주는 듯했다. 낡은 ≪데바≫를 접어 든 노부인은 지나가던 보모에게 시간을 물어보고는 "정말 친절하시군요!"라고 인사했다. 그러고는 도로 관리원에게 손주들에게 돌아오라고 전해달라고 부탁하며, 자신이 춥다며 "천 번은 고마울 거예요. 나 때문에 번거롭게 해서 미안해요!"라고 덧붙였다. 바로 그때 공기가 찢어지는 듯했다. 인형 극장과 서커스 천막 사이, 아름답게 단장된 지평선 위로 살짝 열린 하늘에서 나는 신화적인 징조처럼 아가씨의 푸른 깃털 장식을 보았다. 질베르트는 이미 추위와 늦은 시간, 놀이에 대한 열망으로 들떠 네모난 모피 모자 아래에서 반짝이는 붉은 얼굴을 한 채 전속력으로 달려오고 있었다. 내게 다다르기 직전, 그녀는 빙판 위를 미끄러지듯 나아갔는데, 균형을 잡기 위해서였는지 아니면 그 모습이 더 우아해 보여서였는지, 혹은 스케이트 타는 사람의 자세를 흉내 내는 것인지, 마치 나를 안으려는 듯 두 팔을 활짝 벌리고 미소 지으며 다가왔다. "브라바! 브라바! 정말 잘했어. 내가 만약 앙시앵 레짐 시대 같은 다른 시대 사람이 아니었다면, 너처럼 멋지고 훌륭하다고 말했을 텐데." 노부인은 날씨에 굴하지 않고 와준 질베르트에게 고마움을 표하며, 침묵에 잠긴 샹젤리제를 대신해 큰 소리로 외쳤다. "너는 나처럼 우리의 오래된 샹젤리제에 여전히 충실하구나. 우리 둘은 정말 용감해. 내가 이 모습 그대로 이곳을 사랑한다고 말하면 너는 웃겠지. 이 눈을 보고 있자니, 비웃을지 모르겠지만, 나는 자꾸 담비 가죽이 생각나는구나!" 그러고는 노부인이 웃음을 터뜨렸다.
질베르트를 보지 못하게 할지도 모를 힘의 상징인 눈이 내려, 마치 이별의 날처럼 슬프고 떠나는 날 같은 풍경을 자아낸 그 첫날은 ― 그곳은 우리만의 만남의 장소였는데 덮개가 씌워져 모습이 바뀌어 평소처럼 지낼 수 없게 되었다 ― 그럼에도 내 사랑을 한 걸음 진전시켜 주었는데, 그것은 그녀가 나와 함께 나눈 첫 번째 슬픔과도 같았기 때문이다. 우리 무리 중에서 그녀와 나 둘뿐이었고, 그렇게 그녀와 단둘이 함께 있다는 것은 단순한 친밀함의 시작일 뿐만 아니라, 마치 이런 날씨에도 오직 나를 보기 위해 와준 것처럼 보여서, 그녀가 마티네 초대를 거절하고 샹젤리제로 달려와 준 것처럼 감동적으로 느껴졌다. 나는 주변의 모든 것이 무기력하고 고독하며 황폐해진 와중에도 끈질기게 이어지는 우리 우정의 생명력과 미래에 더욱 확신을 갖게 되었다. 그녀가 내 목덜미에 눈뭉치를 집어넣을 때 나는 빙그레 웃음 지었는데, 이 겨울의 새로운 나라에서 나를 여행 동반자로 허락해 준 그녀의 애정과 불행 속에서도 나를 저버리지 않은 그녀의 일종의 의리가 동시에 느껴져 가슴이 뭉클했기 때문이다. 곧이어 참새들처럼 머뭇거리며 그녀의 친구들이 눈 위에 검은 점들처럼 하나둘 나타났다. 우리는 놀기 시작했고, 그렇게 슬프게 시작된 날이 기쁨으로 끝나려던 참에, 술래잡기를 하러 가기 전 첫날 쥘베르트의 이름을 크게 외치던 짧은 목소리의 친구에게 다가가자 그녀가 내게 말했다. "아니, 아니, 당신이 질베르트 팀에 있고 싶어 하는 거 다 아니까 됐어. 게다가 저기 봐, 그녀가 손짓하잖아." 그녀는 정말로 나를 불렀는데, 눈 덮인 잔디밭 위 그녀의 팀으로 오라는 것이었다. 태양이 비추어 분홍빛 반사광을 띠고 옛 비단처럼 금속성 광택이 닳아가는 그곳은, 그야말로 금빛 휘장으로 만든 진영 같았다.
그토록 두려워했던 그날은 오히려 내가 그다지 불행하지 않았던 몇 안 되는 날 중 하나였다.
왜냐하면 질베르트를 보지 않고는 하루도 견딜 수 없을 만큼 그녀만 생각하던 나였기에(한번은 할머니가 저녁 식사 시간까지 돌아오지 않으시자, 만약 할머니가 차에 치어 돌아가시기라도 했다면 한동안 샹젤리제에 가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을 즉시 떠올렸을 정도였다. 일단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면 다른 사람은 더 이상 사랑할 수 없게 되는 법이다), 내가 곁에 있을 때면 그토록 간절히 기다리고, 떨며 갈망하고, 다른 모든 것을 희생해서라도 얻고 싶었던 그 순간들은 결코 행복한 시간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나는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왜냐하면 그 시간들은 내가 인생에서 유일하게 꼼꼼하고 집요하게 주의를 집중하던 순간들이었음에도, 그 안에서 단 한 줌의 즐거움도 발견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질베르트와 떨어져 있는 동안 나는 그녀를 볼 필요를 느꼈는데, 끊임없이 그녀의 모습을 떠올리려 애쓰다 보면 결국 성공하지 못하고 내 사랑이 정확히 무엇을 향한 것인지 알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녀는 아직 나를 사랑한다는 말을 한 번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녀는 종종 나보다 더 좋아하는 친구들이 있다고, 나는 그저 함께 놀기는 좋지만 너무 산만해서 게임에는 집중하지 못하는 좋은 동무일 뿐이라고 말하곤 했다. 어쨌든 그녀는 겉으로 차가운 태도를 보이곤 했는데, 만약 내 믿음이 질베르트가 나를 사랑한다는 사실에 근거했다면 그런 태도는 내가 그녀에게 특별한 존재라는 내 믿음을 흔들어 놓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실제로는 내 사랑이 질베르트를 향한 것이었기에, 그런 태도는 오히려 그녀를 더 견고하게 만들었다. 그것은 그녀를 오직 내면의 필연성에 따라 내가 질베르트를 생각할 수밖에 없는 방식에 종속시켰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 역시 그녀에 대한 내 감정을 아직 그녀에게 고백하지는 못했다. 물론 내 공책의 모든 페이지에는 끊임없이 그녀의 이름과 주소를 적어 내려갔지만, 그녀는 생각지도 못할 이 모호한 줄들을 긋다 보면 내 주변에 그녀가 차지하는 비중은 겉보기엔 그토록 커 보였음에도 실제 내 삶과는 별로 섞이지 않았음을 깨닫고는 좌절감에 빠지곤 했다. 이 글들은 그녀에게 보일 리조차 없었기에 질베르트에 대해 말해주지 않았고, 오직 내 개인적인 욕망만이 순수하게 개인적이고 비현실적이며 지루하고 무력한 무언가로 드러나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가장 시급한 것은 질베르트와 내가 서로 만나, 그때까지는 시작조차 되지 않았다고 할 수 있는 우리 사랑을 서로 고백하는 일이었다. 물론 내가 그녀를 그토록 보고 싶어 했던 여러 이유들은 성숙한 어른에게는 그다지 절실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나중에 우리는 즐거움을 가꾸는 데 능숙해지면, 내가 질베르트를 생각했듯이 한 여성을 생각하는 즐거움만으로 만족하게 되고, 그 이미지가 현실과 일치하는지 걱정하지 않으며, 그녀가 우리를 사랑한다는 확신 없이도 사랑하는 것만으로 만족하게 된다. 아니면 더 아름다운 꽃을 피우기 위해 여러 송이를 희생하는 일본 정원사들처럼, 그녀가 우리에게 품은 마음을 더 생생하게 유지하려고 그녀에게 사랑을 고백하는 즐거움을 포기하게 되기도 하는 것이다. 하지만 내가 질베르트를 사랑하던 시절, 나는 사랑이 우리 외부에서 실제로 존재한다고, 기껏해야 우리가 장애물을 치우는 것을 허용할 뿐 사랑은 우리가 마음대로 바꿀 수 없는 순서에 따라 행복을 제공한다고 여전히 믿었다. 만약 내가 스스로 고백의 달콤함 대신 무관심한 척하기를 택했다면, 내가 가장 꿈꿔왔던 기쁨 중 하나를 스스로 박탈했을 뿐만 아니라, 진실한 사랑과는 소통할 수 없는, 가짜이고 가치 없는 사랑을 내 마음대로 만들어내어 그 신비롭고 미리 정해진 길을 따라가는 것을 포기하는 꼴이 되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샹젤리제에 도착하여, 내 사랑을 나 자신과는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살아 있는 원인과 대조하고 필요한 수정을 가할 수 있게 되었을 때 ― 내 지친 기억 속에서 더 이상 찾을 수 없던 이미지들을 되살리기 위해 그 모습을 보길 고대했던 바로 그 쥘베르트 스완, 어제 함께 놀았고 우리가 걷는 동안 생각할 겨를도 없이 발을 내딛게 하는 본능처럼 맹목적인 본능이 나로 하여금 인사하고 알아보게 했던 바로 그 쥘베르트 스완을 마주하는 순간, 마치 그녀와 내 꿈의 대상이었던 소녀가 전혀 다른 두 존재였던 것처럼 모든 일이 벌어졌다. 예를 들어 전날부터 내 기억 속에 가득했던 통통하고 빛나는 볼에 박힌 불타는 듯한 두 눈은, 이제 쥘베르트의 얼굴에서 내가 미처 기억해내지 못했던 어떤 점을 강렬하게 드러내고 있었다. 그것은 코끝이 뾰족하게 날렵한 모습이었는데, 이 특징이 다른 이목구비와 순식간에 결합하자 자연사에서 종을 정의할 때 쓰이는 형질처럼 중요한 의미를 띠게 되었고, 그녀를 마치 주둥이가 뾰족한 종류의 소녀로 변모시켜 버렸다. 이 소중한 순간을 틈타 오기 전에 마음속으로 준비했지만 머릿속에서는 더 이상 찾을 수 없게 된 쥘베르트의 이미지를 재조정하려던 참이었다. 그렇게 해야 혼자 있는 긴 시간 동안 내가 떠올리는 사람이 정말 그녀라는 것, 그리고 내가 작곡하듯 조금씩 키워나가던 사랑이 분명 그녀를 향한 것이라는 점을 확신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때 그녀가 공을 내게 던졌다. 자신의 지성은 외부 세계의 실재를 믿지 않으면서도 신체는 외부 세계를 고려해야 하는 관념론자 철학자처럼, 그녀를 확인하기도 전에 나를 인사하게 만들었던 그 '나'라는 존재는 그녀가 건네는 공을 서둘러 잡게 만들었다. 마치 내가 만나러 온 영혼의 단짝이 아니라 함께 놀러 온 동무인 것처럼 말이다. 그녀는 떠날 시간까지 예의상 사소하고 다정한 온갖 이야기를 나누게 했고, 덕분에 나는 잃어버린 그 절박한 이미지를 다시 붙잡을 수 있는 침묵의 시간을 가질 수도, 우리 사랑을 결정적으로 진전시킬 수 있는 말을 건넬 기회조차 얻지 못한 채 다음 오후로 기대를 미룰 수밖에 없게 되었다. 그럼에도 우리 사랑은 조금씩 진전하고 있었다. 어느 날 우리가 질베르트와 함께 우리에게 유독 친절했던 사탕 장수 할머니의 가게에 갔을 때였다. 사실 스완 씨는 습진과 선지자들의 변비로 고생하고 있어 건강을 위해 생강 과자를 즐겨 먹었고, 그래서 늘 그 할머니에게서 과자를 사게 했다. 쥘베르트는 웃으면서 동화책에 나오는 어린 색채 화가나 작은 박물관 학자 같은 어린 소년 둘을 가리켰다. 한 아이는 보라색 사탕을 좋아해서 빨간 보리사탕을 거부했고, 다른 아이는 유모가 사주려는 자두를 눈물을 글썽이며 거부했는데 결국 열정적인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기 때문이다. "나는 저 다른 자두가 더 좋아, 왜냐하면 저건 벌레가 들어 있거든!" 나는 1수짜리 구슬 두 개를 샀다. 나는 외로운 사발 속에 갇혀 빛나는 아게이트 구슬들을 경탄하며 바라보았는데, 그것들은 처녀처럼 웃고 있고 금발이라 소중해 보였고 개당 50상팀이나 했기 때문이다. 나보다 돈을 훨씬 더 많이 받던 질베르트는 어떤 구슬이 가장 예쁘냐고 내게 물었다. 구슬들은 투명했고 살아있는 듯 부드러운 빛을 띠고 있었다. 나는 어느 것 하나 희생시키고 싶지 않았고, 질베르트가 그것들을 다 사서 구해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는 그중에서 그녀의 눈 색깔과 같은 구슬 하나를 가리켰다. 질베르트는 그 구슬을 집어 황금빛 광택을 찾고 어루만지더니 값을 치르고는, 곧바로 나에게 그 포로를 건네며 말했다. "자, 이거 가져요. 당신 줄게요. 기념으로 간직해요."
또 한 번은 베르마의 고전극을 보고 싶다는 열망에 사로잡혀, 나는 그녀에게 베르고트가 라신에 대해 쓴, 이제는 시중에서 구할 수 없는 소책자를 가지고 있는지 물어본 적이 있었다. 그녀는 내게 정확한 제목을 다시 알려달라고 부탁했고, 나는 그날 저녁 내 공책에 수없이 많이 써 내려갔던 쥘베르트 스완이라는 이름을 봉투에 적어 작은 전보를 보냈다. 다음 날 그녀는 연보라색 리본으로 묶고 하얀 밀랍으로 봉인한 소책자를 가져왔는데, 그녀가 직접 구하도록 시킨 것이었다. "이거 당신이 부탁한 거 맞죠?" 그녀는 내 전보를 소매에서 꺼내며 말했다. 하지만 이 기송 전보의 주소에는―어제까지만 해도 아무것도 아니었던, 내가 쓴 사소한 파란색 종잇조각에 불과했지만, 전신 기사가 쥘베르트의 관리인에게 전달하고 하인이 그녀의 방까지 가져다준 이후로는 그녀가 그날 받은 귀중한 파란색 종잇조각 중 하나가 되어버린―우체국에서 찍힌 인쇄된 동그라미들과 집배원이 연필로 더한 기입들, 즉 실현의 증거이자 외부 세계의 낙인, 삶의 상징적인 보랏빛 띠 아래서 내 헛되고 외로운 글씨체를 알아보기 힘들 정도였다. 그것들은 처음으로 내 꿈과 결합하고, 그것을 지탱하고, 북돋우며 기쁘게 해 주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가 나에게 이렇게 말한 날도 있었다. "당신, 내 이름을 쥘베르트라고 불러도 돼요. 어쨌든 나는 당신을 이름으로 부를게요. 그편이 훨씬 덜 어색하잖아요." 하지만 그녀는 그 뒤로도 한동안 나를 계속 '당신'이라고 불렀고, 내가 그 점을 지적하자 그녀는 미소 지으며, 외국어 문법책에서 새로운 단어를 사용하게 하려는 목적 외에는 아무런 의미 없는 문장들을 만들고 구성하듯, 내 이름을 넣어 문장을 끝맺었다. 나중에 그때 내가 느꼈던 감정을 떠올려 보면, 나는 순간적으로 그녀의 입안에 붙잡혀 있었던 것 같은 인상을 받았는데, 그곳은 나체였고 사회적인 형식 따위는 전혀 없었다. 그런 형식들은 그녀의 다른 친구들에게 속한 것이기도 했고, 그녀가 내 성을 부를 때면 나의 부모님에게 속한 것이기도 했으며, 그녀가 강조하고 싶은 단어를 발음하려고 아버지와 조금 비슷하게 애를 쓸 때면 그녀의 입술이 나에게서 벗겨내고, 옷을 벗기고, 알맹이만 삼킬 수 있는 과일의 껍질을 벗기듯 내게서 떼어내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반면 그녀의 시선은 그녀의 말이 취하는 새로운 친밀함의 정도와 같아지며 나에게 더욱 직접적으로 닿았는데, 그것은 미소와 함께였기에 그에 대한 인식과 즐거움, 심지어는 감사함까지도 드러내고 있었다.
하지만 그 순간에는 이런 새로운 즐거움의 가치를 제대로 음미할 수 없었다. 그것들은 내가 사랑하는 소녀가 그를 사랑하는 나에게 준 것이 아니라, 다른 아이, 즉 내가 함께 놀던 그 아이가 나라는 또 다른 존재에게 준 것이었다. 이 또 다른 나는 진정한 쥘베르트에 대한 기억도, 오직 간절히 바랐던 마음만이 알 수 있는 행복의 대가를 이해할 수 있는 여유 없는 마음도 지니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집으로 돌아온 뒤에도 나는 그 즐거움을 느낄 수 없었는데, 내일이면 쥘베르트의 모습을 정확하고 차분하며 행복하게 마주할 수 있으리라는 희망, 그리고 그녀가 지금까지 왜 내게 자신의 마음을 숨겨야 했는지 설명하며 드디어 사랑을 고백해주리라는 희망을 품게 하는 그 필연성 때문이었다. 바로 그 필연성이 나로 하여금 과거를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치부하고 오직 앞만 보게 했으며, 그녀가 준 작은 호의들을 그 자체로 충분한 것으로 보지 않고, 내가 한 걸음 더 나아가 아직 만나보지 못한 행복에 마침내 도달할 수 있게 해 줄 새로운 디딤돌로만 여기게 만들었다.
그녀가 가끔 내게 그런 우정의 표시를 보여줄 때면, 그녀는 나를 만나는 것이 즐겁지 않은 듯한 태도로 내게 상처를 주기도 했다. 그런 일은 내가 희망을 이루리라 가장 기대했던 바로 그날들에 종종 일어나곤 했다. 나는 질베르트가 샹젤리제에 올 것이라고 확신했고 큰 행복의 막연한 예감으로만 여겨지는 환희를 맛보곤 했다. 아침 일찍 거실에 들어가 이미 외출 준비를 마치고 검은 머리카락을 탑처럼 정갈하게 올린 어머니의 뺨에 입을 맞추고, 비누 냄새가 여전히 배어 있는 어머니의 아름답고 하얀 통통한 손을 잡을 때면, 피아노 위로 먼지 기둥이 홀로 곧게 서 있는 것을 보거나 창밖에서 거리의 악사가 「사열을 마치고 돌아오며」를 연주하는 소리를 들으며, 겨울이 저녁까지 봄날의 예기치 못한 찬란한 방문을 받고 있음을 깨닫곤 했기 때문이다. 우리가 점심을 먹는 동안, 맞은편 집 부인이 창문을 열자 내 의자 곁에서 낮잠을 즐기며 우리 식당 전체를 단숨에 가로질렀던 햇살 한 줄기가 눈 깜짝할 사이에 쫓겨나더니, 곧바로 다시 돌아와 낮잠을 이어가곤 했다. 중학교 한 시 수업 시간에 햇살은 내 책상 위까지 황금빛 잔상을 길게 드리우며 나를 초조함과 지루함으로 애타게 했는데, 이는 세 시가 되기 전에는 도착할 수 없는 축제로의 초대와도 같았다. 그러다 프랑수아즈가 수업이 끝날 때 나를 데리러 오고, 우리는 빛으로 장식되고 인파로 붐비는 거리를 지나 샹젤리제로 향하곤 했다. 그때 햇살을 받아 떼어내진 듯 아른거리는 발코니들은 집들 앞을 황금 구름처럼 떠다녔다. 아아! 샹젤리제에 도착해도 질베르트는 없었고, 그녀는 아직 오지 않은 상태였다. 곳곳에서 풀잎 끝을 불타오르게 하는 보이지 않는 태양의 기운을 머금은 잔디밭에 멈춰 서서, 그 위에 내려앉은 비둘기들이 마치 정원사의 곡괭이가 숭고한 땅의 표면으로 끌어올린 고대 조각상처럼 보이는 것을 바라보며 나는 지평선을 응시했다. 나는 안고 있는 아이를 내미는 듯하고 햇살의 축복을 받아 빛줄기가 흘러내리는 동상 뒤로, 가정교사를 따라 나타날 질베르트의 모습을 매 순간 기대하며 기다렸다. 낡은 ≪데바≫를 읽던 노부인은 항상 같은 자리의 의자에 앉아 있었고, 지나가는 경비원을 불러 손을 흔들며 외쳤다. "정말 좋은 날씨네요!" 의자 대여업자가 의자 값을 받으러 그녀에게 다가오자, 그녀는 마치 10상팀짜리 입장권이 꽃다발이라도 되는 양 장갑 틈새에 끼워 넣으며 온갖 내숭을 떨었는데, 기부자에게 잘 보이기 위해 그 꽃을 가장 돋보이는 곳에 꽂으려는 듯했다. 자리를 찾자 그녀는 목을 한 바퀴 돌리고 보아를 바로잡은 뒤, 의자 대여업자에게 손목 위로 삐져나온 노란 종이 끝을 보여주며 여인이 젊은 남자에게 자기 코르사주를 가리키며 짓는 그 아름다운 미소를 지어 보였다. "이 장미들이 당신이 준 거라는 거 알죠!"
나는 프랑수아즈를 데리고 쥘베르트를 만나러 개선문까지 갔지만 그녀를 만나지 못했다. 그녀가 더는 오지 않으리라 확신하며 잔디밭으로 돌아오는데, 회전목마 앞에서 짧은 목소리의 소녀가 내게 달려들며 말했다. "빨리, 빨리! 쥘베르트가 온 지 벌써 15분이나 됐어. 곧 다시 갈 거야. 다들 술래잡기 놀이하려고 너 기다려." 내가 샹젤리제 거리를 올라가는 동안 쥘베르트는 부아시당글라 거리를 거쳐 왔고, 아가씨는 좋은 날씨를 틈타 그녀를 위해 볼일을 보고 있었다. 스완 씨는 딸을 데리러 올 예정이었다. 그래서 내 잘못이었다. 잔디밭에서 멀어지지 말았어야 했다. 쥘베르트가 어느 쪽에서 올지, 얼마나 늦게 올지 도무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런 기다림은 나로 하여금 샹젤리제 전체와 오후 내내의 시간을, 쥘베르트의 모습이 나타날 가능성이 있는 거대한 공간과 시간의 확장처럼 느끼게 했고, 그녀의 모습 자체를 더욱 감동적으로 만들었다. 왜냐하면 그 모습 뒤에는 왜 그녀가 두 시 반이 아닌 네 시에, 놀이용 베레모 대신 방문용 모자를 쓰고, 구경꾼들 사이가 아닌 「앙바사되르」 앞에서 내 심장을 꿰뚫었는지 그 이유가 숨어 있음을 느꼈기 때문이다. 나는 쥘베르트를 따라갈 수 없고 그녀가 외출하거나 집에 머물게 하는 그녀의 어떤 일상을 짐작했으며, 그녀의 미지의 삶이라는 신비와 마주하고 있었다. 술래잡기를 바로 시작하라는 짧은 목소리의 소녀의 명령에 달려가면서 쥘베르트가 우리와 있을 때와는 달리 너무나 활기차고 급하게 ≪데바≫를 읽는 부인에게 인사를 하고(부인이 그녀에게 "정말 멋진 햇살이네, 마치 불길 같아"라고 말하고 있었다), 수줍게 미소 지으며 부모님 댁이나 부모님의 친구들과 함께 있을 때, 혹은 방문 중일 때처럼 내가 알 수 없는 다른 삶을 사는 쥘베르트의 모습을 떠올리게 하는 정중한 태도로 말하는 것을 볼 때도 바로 그 신비가 나를 설레게 했다. 하지만 그 삶에 대해 스완 씨만큼 나에게 강한 인상을 주는 사람은 없었는데, 그는 딸을 데리러 오기 위해 조금 늦게 나타나곤 했다. 그와 스완 부인은 딸이 그들과 함께 살고, 딸의 학업과 놀이, 우정 관계가 그들에게 달려 있었기에, 내게는 질베르트와 마찬가지로, 아니 어쩌면 질베르트보다도 더, 그 아이에게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근원지로서 닿을 수 없는 미지의 영역이자 고통스러운 매력을 지닌 존재였다. 그들에 관한 모든 것은 내게 끊임없는 관심의 대상이었기에, 그처럼 스완 씨(예전에는 부모님과 교류할 때 자주 보았어도 아무런 호기심을 느끼지 못했던 그)가 샹젤리제로 질베르트를 데리러 오는 날이면, 회색 모자와 망토 차림의 그가 나타나 내 심장을 뛰게 했던 가슴 떨림이 진정된 뒤에도, 그의 모습은 마치 우리가 방금 여러 권의 책을 읽어 그 세세한 특징 하나하나에 열광하게 된 역사적 인물처럼 내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콩브레에서 그에 관해 들을 때는 아무런 감흥이 없었던 파리 백작과의 관계도 이제는 내게 경이로운 무언가로 다가왔는데, 마치 다른 누구도 오를레앙 가문을 알지 못했던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이러한 관계 덕분에 그는 샹젤리제의 산책로를 가득 메운 다양한 계층의 평범한 사람들 사이에서 선명하게 두드러져 보였고, 나는 그가 그들로부터 특별한 대우를 요구하지도 않고 그들 또한 아무도 그에게 대우를 해줄 생각조차 하지 않는 상황 속에서도 ― 그가 휩싸인 익명성이 그토록 깊었기에 ― 그가 기꺼이 그들 속에 섞여 있는 모습을 경탄하며 바라보았다.
그는 질베르트의 친구들에게, 비록 우리 집안과 사이가 틀어졌긴 했지만 나에게조차 예의 바르게 인사를 받아주었지만, 나를 아는 기색은 없었다. (그가 시골에서 나를 자주 보았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나는 그 기억을 마음 한구석에 간직하고 있었는데, 질베르트를 다시 만난 이후로 내게 스완은 콩브레의 스완이 아니라 주로 그녀의 아버지였기 때문이다. 이제 그의 이름을 떠올릴 때 연결되는 생각들은 과거 그를 이해하던 생각의 그물과는 달랐고 더 이상 그때의 생각들을 쓰지 않았기에 그는 새로운 인물이 되어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를 인위적이고 부차적이며 횡적인 선으로 우리 집의 옛 손님이었던 그에게 연결했고, 내 사랑이 이용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만 가치가 있었기에, 나는 수치심과 함께 그 기억들을 지울 수 없음을 아쉬워하며 과거의 시절을 떠올렸다. 지금 샹젤리제에서 내 앞에 있는, 그리고 운 좋게도 질베르트가 아직 내 이름을 말하지 않았을지도 모를 그 스완 씨의 눈에, 나는 예전 시골집 정원 식탁에서 그와 아버지, 할머니와 어머니가 커피를 마시는 동안 어머니를 불러 내 방으로 올라와 잘 자라고 인사해달라고 부탁하며 스스로 얼마나 우스꽝스러운 짓을 했는지 모른다.) 그는 질베르트에게 한 판 놀아도 좋다고, 15분 정도는 기다릴 수 있다고 말하곤, 여느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철제 의자에 앉아 필리프 7세가 그토록 자주 자기 손에 쥐었을 바로 그 손으로 의자 대여비를 지불했다. 우리가 잔디밭에서 놀기 시작하자 비둘기들이 날아올랐는데, 하트 모양의 아름답고 무지갯빛 나는 몸을 가진, 마치 새들의 왕국에서 라일락 같은 그 비둘기들은 안식처라도 찾듯 피난처로 모여들었다. 어떤 녀석은 커다란 돌 화분 위에 앉았는데, 그곳으로 부리를 집어넣는 모습은 마치 화분이 비둘기가 쪼아 먹는 과일이나 씨앗을 풍성하게 제공하는 목적을 가진 듯 보였고, 또 다른 녀석은 동상 이마 위에 앉아 마치 고대 유물에서 석조의 단조로움을 다채롭게 변화시키는 법랑 장식물처럼, 혹은 여신이 지니면 특별한 수식어를 얻게 되어 필멸자에게 다른 이름을 부여하듯 새로운 신성으로 만들어주는 속성처럼 동상을 장식하고 있었다.
내 기대를 충족해주지 못한 그런 화창한 날 중 하루에, 나는 질베르트에게 나의 실망감을 숨길 용기가 나지 않았다.
"마침 당신에게 물어볼 게 많았어요." 내가 그녀에게 말했다. "오늘이 우리 우정에 중요한 날이 될 거라 생각했는데. 오자마자 이렇게 가버리다니! 내일은 일찍 와줄 수 있죠? 그래야 당신과 제대로 얘기할 수 있을 테니까요."
그녀의 얼굴이 환하게 빛났고, 기쁨에 방방 뛰며 그녀가 대답했다.
"내일은 기대하지 마, 내 멋진 친구야. 난 못 오거든! 큰 파티가 있거든. 모레도 안 돼. 테오도즈 왕이 들어오는 걸 보러 친구네 집에 가기로 했거든. 창문으로 볼 건데 정말 멋질 거야. 그다음 날은 ≪미셸 스트로고프≫를 보러 갈 거고, 그다음엔 곧 크리스마스에 새해 휴가까지 이어지잖아. 아마 남쪽으로 여행을 갈지도 몰라. 정말 멋질 것 같아! 크리스마스트리를 놓치겠지만 말이야. 어쨌든 파리에 머물게 되더라도 여기는 못 올 거야. 엄마랑 인사를 다녀야 하거든. 그럼 안녕, 아빠가 부르시네."
나는 프랑수아즈와 함께 마치 축제가 끝난 저녁처럼 여전히 햇살이 가득한 거리를 지나 돌아왔다. 나는 발을 질질 끌 수도 없었다.
"그럴 만도 하죠." 프랑수아즈가 말했다. "계절에 안 맞는 날씨예요. 너무 덥거든요. 아유, 세상에. 어디든 가난하고 병든 사람들이 많을 텐데, 하늘도 뭔가 단단히 잘못된 모양이에요."
나는 흐느낌을 억누르며 쥘베르트가 한동안 샹젤리제에 오지 않겠다고 했을 때 내비친 기쁨의 말들을 되새겼다. 하지만 쥘베르트를 생각할 때마다 그저 그 생각만으로도 내 마음을 채우던 그 매력은, 설령 비통할지라도 쥘베르트와의 관계에서 정신적인 습관의 내적 강박이 필연적으로 나를 놓아두었던 그 특별하고 유일무이한 위치는, 심지어 그런 무관심의 표시에도 어떤 낭만적인 빛을 더하기 시작했고, 눈물 속에서도 미소가 피어올랐는데 그것은 키스의 수줍은 예비 동작에 불과했다. 그리고 우편물이 올 시간이 되었을 때, 나는 그날 저녁에도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생각했다. '나는 쥘베르트에게서 편지를 받을 거야. 그녀는 마침내 나를 줄곧 사랑해 왔다고 말할 것이고, 왜 지금까지 그것을 숨길 수밖에 없었는지, 왜 나를 보지 않고도 행복할 수 있는 척해야 했는지, 왜 단순히 친구인 쥘베르트의 모습을 취해야 했는지에 대한 신비로운 이유를 설명해 줄 거야.'
나는 매일 저녁 그 편지를 상상하는 즐거움에 빠지곤 했고, 편지를 읽고 있다고 믿으며 매 문장을 마음속으로 읊조리곤 했다. 그러다 갑자기 나는 겁에 질려 멈춰 섰다. 만약 쥘베르트에게서 편지를 받는다면, 어쨌든 그것은 내가 지금 막 지어낸 그 편지일 수는 없으리라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때부터 나는 그녀가 써주었으면 하고 바라는 말들로부터 생각을 돌리려 애썼는데, 그 말들을 입 밖으로 내뱉음으로써 가장 소중하고 가장 갈망하던 그 말들을 실현 가능한 범위에서 스스로 배제해 버릴까 두려웠기 때문이다. 설령 믿기 어려운 우연으로 쥘베르트가 보낸 편지가 내가 지어낸 편지와 정확히 일치하여 내 작품을 알아본다 한들, 나는 그것이 내 안에서 나오지 않은 무언가, 즉 실재하고 새로운 것이며 내 의지와는 독립적으로 내 정신 바깥에서 사랑이 진정으로 선사한 행복이라는 느낌을 받을 수 없을 것이었다.
그동안 나는 쥘베르트가 직접 써준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그녀에게서 건너온 한 페이지, 라신이 영감을 얻었던 옛 신화들의 아름다움에 관해 베르고트가 쓴 그 페이지를 다시 읽고 있었으며, 그것을 마노 구슬 옆에 두고 늘 곁에 간직했다. 나로 하여금 그것을 찾도록 만들어 준 내 친구의 다정함에 나는 마음이 뭉클해졌고,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열정에 대한 이유를 찾을 필요가 있기 때문에, 자기가 사랑하는 이에게서 문학이나 대화를 통해 사랑을 불러일으킬 만하다고 배운 자질들을 발견하고 기뻐할 때까지, 심지어 그것을 모방을 통해 내면화하여 자기 사랑의 새로운 이유로 삼을 때까지, 비록 그 자질들이 사랑이 자발적이었을 때 추구하던 것들과 가장 대척점에 있는 것들일지라도 ― 예전에 스완이 오데트의 아름다움에서 미학적 성격을 발견했던 것처럼 ―, 콩브레 시절부터 내가 더 이상 아무 의미도 없어진 내 삶을 내던져 버리고 그 속으로 뛰어들어 동화되고 싶었던 쥘베르트 삶의 모든 미지의 것들 때문에 그녀를 처음 사랑하게 되었던 나 역시, 이제는 너무나 잘 알려져 있고 하찮게 여겨지는 이 내 삶의 비천한 하녀이자, 저녁에 내 연구를 도우며 나를 위해 팸플릿을 대조해 줄 편리하고 안락한 협력자가 쥘베르트로 인해 언젠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값으로 매길 수 없는 장점인 것처럼 생각했다. 베르고트에 관해서 말하자면, 내가 비록 그녀를 보기도 전부터 쥘베르트를 사랑하게 만든 원인이었던 그 무한히 지혜롭고 거의 신과 같은 노인도 이제는 무엇보다 쥘베르트 덕분에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되었다. 나는 그가 라신에 관해 쓴 페이지들만큼이나 큰 즐거움으로, 그녀가 그것들을 담아 가져다주었던 커다란 흰색 밀랍 봉인이 닫혀 있고 보랏빛 리본 다발로 묶인 종이를 바라보았다. 나는 마노 구슬에 입을 맞추었는데, 그것은 내 친구 마음의 가장 좋은 부분, 즉 경박하지 않고 충실하며, 비록 쥘베르트의 삶이 지닌 신비로운 매력으로 치장되어 있으면서도 내 곁에 머물며 내 방에 살고 내 침대에 잠드는 그 부분이었다. 하지만 이 돌의 아름다움, 그리고 내가 쥘베르트를 향한 사랑의 관념과 결합시키는 것을 기뻐했던 베르고트의 그 페이지들의 아름다움은, 마치 이 사랑이 무(無)에 불과하게 여겨지는 순간마다 그것들이 사랑에 일종의 실체성을 부여해 주기라도 하는 것처럼, 그것들이 이 사랑보다 선행하며 이 사랑을 닮지 않았고, 그 요소들이 쥘베르트가 나를 알기 전에 재능이나 광물학적 법칙에 의해 고정되었으며, 쥘베르트가 나를 사랑하지 않았더라도 책이나 돌 속의 그 무엇 하나 달라졌을 리가 없고, 결과적으로 그 어떤 것도 내게 그것들 속에서 행복의 메시지를 읽어내도록 허락하지 않는다는 것을 나는 깨달았다. 그리고 내 사랑은 쥘베르트의 사랑을 고백하는 말을 내일이면 내일마다 끊임없이 기다리며 매일 저녁 그날의 서투른 작업을 무효로 만들고 허물었지만, 내면의 그늘 속에서 정체 모를 여직공은 버려진 실들을 내치지 않고, 나를 기쁘게 하거나 내 행복을 위해 일하는 것에는 아랑곳없이 자신이 만드는 모든 작품에 부여하는 또 다른 질서대로 그것들을 배치하고 있었다. 내 사랑에 특별한 관심을 기울이지도 않고 내가 사랑받고 있다고 먼저 단정 짓지도 않으면서, 그녀는 내게 설명할 수 없어 보였던 쥘베르트의 행동들과 내가 변명해 주었던 그녀의 잘못들을 수집했다. 그러자 그 모든 것들이 의미를 갖기 시작했다. 쥘베르트가 샹젤리제에 오는 대신 마티네 모임에 가고, 가정교사와 함께 볼일을 보러 다니고, 연말 휴가를 위한 부재를 준비하는 것을 볼 때, '그녀가 경박하거나 고집이 세서 그렇다'고 생각하고 스스로에게 말한 것은 내가 잘못이었다고 그 새로운 질서는 말해주는 듯했다. 만약 그녀가 나를 사랑했다면 그 둘 중 어느 쪽이 되는 것도 그만두었을 것이고, 억지로 복종해야 했다면 내가 그녀를 보지 못했던 날들 느꼈던 것과 똑같은 절망 속에서 이루어졌을 터이기 때문이다. 그 새로운 질서는 또한, 내가 쥘베르트를 사랑하고 있으므로 사랑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마땅히 알고 있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었으며, 나로 하여금 그녀의 눈에 근사하게 보이려고 내가 늘 애썼던 그 집착을 일깨워주었다. 그리하여 어머니에게 프랑수아즈가 신을 고무신과 푸른 깃털 장식이 달린 모자를 사 달라고 졸랐던 일, 혹은 차라리 내가 부끄러워하던 그 유모와 함께 나를 더 이상 샹젤리제에 보내지 말아 달라고 조르던 일(이에 대해 어머니는 내가 프랑수아즈에게 부당하며, 그녀는 우리에게 헌신하는 훌륭한 여자라고 대답하시곤 했다), 그리고 몇 달 전부터 오직 쥘베르트를 보고 싶다는 그 유일한 욕망 때문에 파리를 떠나는 시기와 머물 곳을 알아내려고 애쓰며, 그녀가 함께 있어 주지 않는다면 가장 멋진 장소조차 유배지로 여겼고 샹젤리제에서 그녀를 볼 수만 있다면 오직 파리에만 계속 머물기를 원했던 그 마음을 돌아보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 질서는 그 어떤 집착이나 욕망도 쥘베르트의 행동들 속에서는 찾아볼 수 없으리라는 것을 내게 어렵지 않게 보여주었다. 도리어 그녀는 내가 어떻게 생각하는지랑 상관없이 자신의 가정교사를 존중했다. 그녀는 마드모아젤과 함께 물건을 사러 가는 것이라면 샹젤리제에 오지 않는 것을 당연하게 여겼고, 엄마와 함께 외출하는 것이라면 즐겁게 여겼다. 그리고 설령 그녀가 나와 같은 장소에서 휴가를 보내도록 허락해 주었다고 가정하더라도, 적어도 그 장소를 고를 때 그녀는 부모님의 바람과 사람들이 들려준 수많은 놀이들을 신경 썼을 뿐 내 가족이 나를 보내려던 곳이라는 점은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가끔 그녀가 내 부주의 때문에 자기 게임을 망치게 했다는 이유로 나를 자신의 어떤 친구보다도, 그리고 어제보다도 더 사랑하지 않는다고 확신시켜 줄 때면, 나는 그녀에게 용서를 빌었고, 그녀가 나를 다시 그만큼 사랑하게 하려면, 다른 이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물었다. 나는 그녀가 이미 그렇게 되었다고 내게 말해 주기를 바랐고, 마치 그녀가 자신의 기분이나 내 기분에 따라, 내 좋거나 나쁜 품행에 맞춰 오직 그녀가 할 말들을 통해 내 기쁘게 해주려고 나를 향한 애정을 마음대로 바꿀 수 있기라도 한 것처럼 그녀에게 애원했다. 내가 그녀를 향해 느끼는 감정이 그녀의 행동에도, 나의 의지에도 좌우되지 않는다는 것을 나는 정녕 몰랐단 말인가?
보이지 않는 일꾼이 그려낸 새로운 질서는 마침내 이렇게 말하는 듯했다. 지금까지 우리를 괴롭혔던 사람의 행동이 진심이 아니었기를 바랄 수는 있겠지만, 그 행동의 연속성 속에는 우리 바람이 어찌할 수 없는 명확함이 존재하며, 내일 그녀가 어떤 행동을 할지는 우리 바람이 아니라 바로 그 명확함에 물어봐야 한다는 것을 말이다.
나의 사랑은 이 새로운 말들을 듣고 있었다. 그것들은 내일도 다른 모든 날과 다르지 않을 것이며, 이미 너무 오래되어 바뀔 수 없는 쥘베르트의 내 감정은 무관심일 뿐이고, 우리 우정 속에서 사랑하는 사람은 오직 나뿐이라는 사실을 내 사랑에게 설득했다. "정말 그래, 이 우정으로는 이제 더 이상 아무것도 할 수 없어. 변하지 않을 거야."라고 나의 사랑은 대답했다. 그래서 나는 바로 다음 날부터(혹은 다가올 축일이나 생일, 어쩌면 새해처럼 과거의 유산을 거부하고 슬픔의 유산을 받아들이지 않으며 시간이 새로운 비용으로 다시 시작되는, 다른 날들과 다른 날들을 기다리며), 쥘베르트에게 우리의 오래된 우정을 포기하고 새로운 우정의 토대를 마련하자고 요구했다.
나는 항상 손이 닿는 곳에 파리 지도를 두고 있었는데, 스완 부부의 집이 있는 거리를 구별할 수 있었기 때문에 마치 보물을 간직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즐거움 때문에, 또한 일종의 기사도적인 충성심 때문에, 나는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그 거리 이름을 말하곤 했고, 그래서 어머니나 할머니처럼 내 사랑을 알지 못했던 아버지는 내게 이렇게 물으셨다.
"그런데 왜 항상 그 거리 이야기만 하니? 특별할 것도 없는 곳인데. 숲 근처라서 살기 아주 좋은 곳이긴 하지만, 그런 곳은 열 군데나 더 있단다."
나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부모님이 스완이라는 이름을 입 밖에 내게 하려고 애썼다. 물론 나는 마음속으로 그 이름을 끊임없이 되뇌었지만, 그 이름의 감미로운 울림을 직접 듣고 싶었고, 침묵 속에서 읽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은 그 음악을 누군가 연주해 주기를 바랐다. 게다가 내가 그토록 오랫동안 알고 지냈던 스완이라는 이름은, 어떤 실어증 환자들이 가장 일상적인 단어를 대할 때 겪는 것처럼 이제 내게는 완전히 새로운 이름이 되었다. 그 이름은 언제나 내 생각 속에 머물러 있었지만, 내 정신은 도무지 그 이름에 익숙해질 수 없었다. 나는 그 이름을 분해하고 철자를 하나하나 짚어보았으며, 그 철자 하나하나가 내게는 놀라움 그 자체였다. 또한 익숙하면서도 그 이름은 더 이상 내게 결백한 것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그 이름을 듣는 것에서 얻는 기쁨이 너무나 죄스럽게 느껴져서, 혹시라도 그 화제로 대화를 끌어들이려 하면 사람들이 내 생각을 꿰뚫어 보고는 화제를 돌리는 것만 같았다. 나는 질베르트와 조금이라도 관련된 주제로 이야기를 돌리고 같은 말을 끝없이 반복하곤 했는데, 그게 단지 말뿐이라는 것, 즉 그녀와 멀리 떨어진 곳에서 그녀가 듣지 못하는 곳에서 내뱉는 말들, 현상을 반복할 뿐 바꿀 힘이 없는 무력한 말들이라는 것을 잘 알면서도, 질베르트 주위에 있는 모든 것을 그렇게 끊임없이 만지작거리고 뒤섞다 보면 어쩌면 행복한 결과가 나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나는 부모님께 질베르트가 가정교사를 정말 좋아한다고 거듭 말했는데, 마치 백 번도 더 한 이 말이 마침내 질베르트가 갑자기 우리와 함께 살러 오게 만드는 효과라도 발휘할 것처럼 굴었다. 나는 ≪데바≫를 읽던 노부인에 대한 칭찬도 다시 시작했다(나는 부모님께 그녀가 대사 부인이나 어쩌면 고귀한 신분의 분일지도 모른다고 넌지시 말하곤 했다). 그러고는 질베르트가 말했던 이름을 근거로 그녀의 이름이 블라탱 부인일 것이라고 말했던 날까지, 나는 그녀의 아름다움과 화려함, 고귀함을 계속해서 찬양했다.
"아! 하지만 나는 그게 누구인지 알겠구나." 어머니가 외치셨다. 나는 부끄러움에 얼굴이 화끈거렸다. "경비원을 불러! 경비원을 불러! 너희 가엾은 할아버지라면 그렇게 말씀하셨을 거야. 네가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여자가 바로 그 여자니! 하지만 그 여자는 끔찍하고 예전부터 항상 그랬어. 어떤 집행관의 미망인이지. 네가 어릴 적에 체육 수업을 받으러 가던 내가, 그 여자를 피하려고 얼마나 애를 썼는지 기억나니? 그 여자는 나를 알지도 못하면서, 네가 '사내아이라기엔 너무 예쁘다'는 말을 하려고 나에게 말을 걸려 들었거든. 그 여자는 항상 사람들을 사귀고 싶어 안달이 났었고, 정말로 스완 부인을 안다면 내가 항상 생각했던 것처럼 어떤 부류의 미친 여자임이 틀림없어. 그 여자가 아주 평범한 환경에서 자랐다 해도 적어도 나로서는 그 여자에 대해 나쁘게 말할 게 하나도 없었지. 하지만 그 여자는 항상 인맥을 만들어야만 했어. 정말 끔찍하고, 지독하게 저속하며, 거기다 사람을 곤란하게 만드는 데 도가 튼 여자야."
스완을 닮고 싶었던 나는 식탁에 앉아 있을 때면 늘 코를 잡아당기고 눈을 비비곤 했다. 아버지는 말씀하셨다. "저 아이는 바보야, 나중에 추해질 게다." 나는 무엇보다 스완처럼 대머리가 되고 싶었다. 그는 내게 너무나 비범한 존재로 보여서, 내가 알고 지내는 사람들이 그를 안다는 사실과 평범한 일상의 우연 속에서 그와 마주칠 수도 있다는 사실이 경이롭게 느껴졌다. 어느 날 저녁, 어머니는 여느 때처럼 저녁 식사 시간에 오후에 다녀온 볼일에 대해 이야기하시다가, 그저 "참, 나 오늘 트루아 카르티에의 우산 매장에서 누굴 만났는지 아니? 스완이야."라고 한마디 던지셨는데, 그 건조하기만 했던 이야기 속에서 신비로운 꽃 한 송이가 피어났다. 그날 오후, 군중 속에서 초현실적인 자태를 드러내며 스완이 우산을 사러 갔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얼마나 우울하고도 황홀한 기쁨이었는지. 크고 작은 사건들 사이에서 똑같이 무관심하게 지나칠 만한 일이었지만, 그 사건은 내 안에서 쥘베르트를 향한 사랑을 끊임없이 흔들어 놓던 그 특별한 전율을 일깨웠다. 아버지는 내가 요즘 프랑스의 손님이며 동맹국이라 알려진 테오도즈 왕의 방문이 가져올 정치적 파장에 관해 이야기할 때 귀를 기울이지 않기에 아무것에도 관심이 없다고 말씀하셨다. 하지만 그와는 반대로, 나는 스완이 망토를 입고 있었는지 정말이지 너무나 알고 싶었다!
"인사는 하셨나요?" 내가 물었다.
"그야 당연하지." 어머니가 대답했다. 어머니는 우리가 스완과 사이가 좋지 않다는 것을 인정하면, 어머니가 만나길 원치 않는 스완 부인 때문에 누군가 우리를 억지로 화해시키려 할까 봐 항상 염려하는 기색이었다. "그쪽에서 먼저 다가와 인사를 건넸어. 나는 그를 보지 못했거든."
"그럼 두 분 사이가 안 좋은 게 아니었어요?"
"안 좋다고? 왜 우리가 사이가 안 좋다고 생각하니?" 그녀는 마치 내가 스완과 여전히 잘 지내고 있다는 거짓말을 방해하고 '화해'를 주선하려 한 것처럼 날카롭게 대꾸했다.
"더 이상 그를 초대하지 않아서 그가 기분 나빠할 수도 있잖아요."
"모든 사람을 초대할 의무는 없단다. 그 사람이 나를 초대하니? 난 그의 아내도 모르는걸."
"그래도 콩브레에는 자주 왔었잖아요."
"그야 당연하지." 어머니가 대답했다. 어머니는 우리가 스완과 사이가 좋지 않다는 것을 인정하면, 어머니가 만나길 원치 않는 스완 부인 때문에 누군가 우리를 억지로 화해시키려 할까 봐 항상 염려하는 기색이었다. "그쪽에서 먼저 다가와 인사를 건넸어. 나는 그를 보지 못했거든." / "그럼 두 분 사이가 안 좋은 게 아니었어요?" / "안 좋다고? 왜 우리가 사이가 안 좋다고 생각하니?" 어머니는 마치 내가 스완과 여전히 잘 지내고 있다는 거짓말을 방해하고 '화해'를 주선하려 한 것처럼 날카롭게 대꾸하셨다. / "더 이상 그를 초대하지 않아서 그가 기분 나빠할 수도 있잖아요." / "모든 사람을 초대할 의무는 없단다. 그 사람이 나를 초대하니? 난 그의 아내도 모르는걸." / "그래도 콩브레에는 자주 왔었잖아요." / "그야 그렇겠지! 콩브레에는 왔었지. 하지만 파리에서는 그도 나도 각자 할 일이 따로 있단다. 하지만 장담하건대 우리는 절대 사이가 나쁜 두 사람의 모습은 아니었어. 그가 주문한 물건이 제때 나오지 않아서 잠시 같이 있었을 뿐이야. 그가 네 안부를 묻더구나. 네가 자기 딸과 어울려 논다고 말이야." 어머니의 그 말씀에 나는 쥘베르트 앞에서 사랑으로 떨던 그 순간 스완의 머릿속에 내가 존재했다는 사실, 게다가 꽤나 구체적으로 존재해서 그가 내 이름을 알고, 내가 누구의 아들이며, 내 조부모와 그 가족들, 우리가 사는 곳, 심지어 나조차 모를 수도 있는 과거의 일들까지 내 친구로서의 신분 주위에 결합해두었다는 경이로움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하지만 어머니는 트루아 카르티에 매장에서 우연히 스완을 마주쳤을 때, 그가 자신을 보고 다가와 인사를 건네게 만든 공통의 추억을 가진 '정의된 인물'로 존재했다는 사실에 특별한 매력을 느끼지는 못한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