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마는 분명 존재합니다. 하지만 그들에 대한 이해는 사람마다 매우 다를 수 있지요."
"당신이 방금 또 눈을 내리깐 건," 스타브로긴이 짜증 섞인 조롱으로 말을 가로챘다. "내가 악마를 믿는다는 사실 때문에 나를 창피하게 여기기 때문이겠지요. 믿지 않는 척하면서 사실은 그놈이 정말 있는지 없는지 교묘하게 질문을 던지니까요."
티혼은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당신, 눈을 내리깔고 있는 건 전혀 어울리지 않아요. 부자연스럽고 우스꽝스럽고 가식적이죠. 당신의 그 건방진 태도를 만족시켜 주기 위해 진지하고도 뻔뻔하게 말하죠. 난 악마를 믿소. 그것도 우화적인 존재가 아니라 인격적인 실체로서 정통파적으로 믿는단 말이오. 그러니 당신에게서 뭐든 캐낼 필요는 없소. 이제 됐소? 당신은 아주 기뻐해야 할 거요……."
그는 신경질적이고 부자연스럽게 웃음을 터뜨렸다. 티혼은 호기심 어린 눈으로, 부드러우면서도 다소 겁먹은 듯한 눈길로 그를 바라보았다.
"하느님을 믿으시오?" 스타브로긴이 갑자기 툭 내뱉었다.
"믿습니다."
"믿음을 가지고 산을 옮기라고 명령하면 산도 움직일 것이라 하지 않았소…… 뭐, 헛소리지만. 어쨌든 궁금한 게 있는데, 당신은 산을 옮길 수 있겠소, 없겠소?"
"하느님께서 명하시면 옮기겠지요." 티혼이 조용하고 절제된 어조로 말하며 다시 눈을 내리깔기 시작했다.
"그럼 그건 하느님께서 직접 옮기시는 것과 다를 바 없지 않소. 아니, 당신, 당신 자신의 힘으로, 하느님에 대한 믿음의 대가로 할 수 있겠느냐는 말이오?"
"아마도 옮기지 못할지도 모릅니다."
"아마도? 이거 괜찮군. 그런데 왜 의심하는 거요?"
"완전하게 믿지는 못하기 때문입니다."
"뭐라고? 완전하게? 온전히가 아니라고?"
"네…… 아마도 완벽하게는 아닐지도 모르겠습니다."
"허! 최소한 하느님의 도움으로라도 옮길 수 있다고 믿긴 하는군. 그것만 해도 적은 게 아니야. 칼 아래서 '아주 조금(très peu)'이라던 어느 대주교보다는 나은 셈이지. 당신, 물론 기독교인이겠지?"
"주여, 당신의 십자가를 부끄러워하지 않게 하소서." 티혼이 거의 속삭이듯 열정적인 목소리로 말하며 고개를 더욱 숙였다. 그의 입가 근육이 갑자기 신경질적이고 빠르게 떨렸다.
"하느님을 전혀 믿지 않고도 악마를 믿을 수 있겠소?" 스타브로긴이 웃음을 터뜨렸다.
"오, 충분히 가능하고말고요. 흔하디흔한 일입니다." 티혼이 고개를 들어 올리며 함께 미소 지었다.
"그리고 당신은 그런 신앙을 완전한 불신보다는 그래도 더 존경할 만하다고 생각하겠지…… 오, 이 신부님!" 스타브로긴이 크게 웃었다. 티혼은 다시 그를 향해 미소 지었다.
"그 반대입니다. 세속적인 무관심보다는 완전한 무신론이 훨씬 더 존경할 만한 것이죠." 그가 명랑하고 순진하게 덧붙였다.
"허허, 그렇단 말이지."
"완전한 무신론자는 가장 완벽한 신앙에 이르기 직전의 마지막 단계에 서 있는 셈입니다. 그 단계를 넘어설지 말지는 별개로 하고요. 반면 무관심한 자는 사악한 공포 외에는 아무런 신앙도 가지고 있지 않지요."
"그런데 당신…… 요한묵시록을 읽어보았소?"
"읽었습니다."
"기억하시오? '라오디게아 교회의 천사에게 쓰라……' 하는 구절 말이오."
"기억합니다. 참으로 아름다운 말씀이죠."
"아름답다니? 주교가 쓰기에는 이상한 표현이군. 당신은 정말 괴짜야…… 책이 어디 있소?" 스타브로긴은 기묘할 정도로 서두르며 불안한 기색으로 책상 위를 눈으로 훑었다. "당신에게 읽어주고 싶은데…… 러시아어 번역본이 있소?"
"어디인지 압니다. 아주 잘 기억하고 있지요." 티혼이 말했다.
"외우고 있단 말이오? 한번 읽어보시오……!"
그는 서둘러 눈을 내리깔고는 양 손바닥을 무릎 위에 얹은 채 안달이 난 듯 들을 준비를 했다. 티혼은 한 글자 한 글자 기억을 더듬으며 읽어 내려갔다. '라오디게아 교회의 천사에게 쓰라. 아멘이시요 충성되고 참된 증인이시요 하나님의 창조의 근본이신 이가 이르시되,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뜨겁지도 아니하도다. 네가 차든지 뜨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뜨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버리리라.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
"그만하시오." 스타브로긴이 말을 끊었다. "그건 어중간한 사람들, 무관심한 자들을 위한 말 아니오? 그런데 당신, 나는 당신을 무척 좋아하오."
"저도 그렇습니다." 티혼이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스타브로긴은 입을 다물고는 다시 예의 그 사색에 잠겼다. 마치 발작처럼 벌써 세 번째였다. 티혼에게 '좋아한다'고 말한 것도 거의 발작적인 상태에서, 적어도 스스로 예상치 못하게 튀어나온 말이었다. 1분이 넘게 흘렀다.
"화내지 마시오." 티혼이 마치 스스로가 조심스러운 듯 그의 팔꿈치를 손가락으로 살짝 건드리며 속삭였다. 스타브로긴은 움찔하며 분노로 눈썹을 찌푸렸다.
"내가 화가 났다는 걸 어떻게 알았소?" 스타브로긴이 빠르게 말했다. 티혼이 무언가 대답하려 했지만, 그는 설명할 수 없는 불안감에 휩싸여 말을 가로챘다.
"왜 하필 내가 반드시 화를 냈을 거라 단정했소? 그래, 내가 화가 났던 건 당신 말이 맞소. 바로 당신에게 '좋아한다'고 말했기 때문이지. 당신 말이 맞지만, 당신은 거친 냉소주의자요. 인간의 본성에 대해 모욕적인 생각을 하고 있단 말이오. 상대가 당신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었다면 화는 나지 않았을지도 모르지……. 뭐, 인간의 문제가 아니라 내 문제이긴 하지만. 어쨌든 당신은 괴짜에다 바보 같은 사람이야……."
그는 갈수록 더 신경질을 냈고, 이상할 정도로 말을 가리지 않았다.
"이보시오, 나는 첩자나 심리학자를 싫어하오. 특히 내 영혼을 파헤치려는 사람들은 더더욱 그렇고. 나는 누구도 내 영혼 속으로 부른 적이 없으며, 누구의 도움도 필요하지 않소. 나 혼자서도 충분하다고. 내가 당신을 무서워하는 줄 아시오?" 그는 목소리를 높이며 도전적인 눈빛으로 고개를 쳐들었다. "당신은 내가 당신에게 '끔찍한' 비밀 하나를 털어놓으러 왔다고 굳게 믿고, 당신이 가진 온갖 수도사다운 호기심으로 그걸 기다리고 있겠지? 좋아, 확실히 알아두시오. 당신에게는 아무것도 털어놓지 않을 거요. 어떤 비밀도 말이오. 당신 같은 사람은 전혀 필요 없으니까."
티혼은 그를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어린 양께서 미지근한 자보다 차라리 차가운 자를 사랑하신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으셨군요." 티혼이 말했다. "당신은 미지근한 채로 있고 싶지 않으신 겁니다. 당신이 무척 비상하고 어쩌면 끔찍할지도 모를 결심으로 괴로워하고 있다는 예감이 듭니다. 만약 그렇다면, 제발 스스로를 고문하지 마시고 당신이 이곳에 온 목적을 전부 말씀해 주십시오."
"그럼 당신은 내가 무언가 목적을 가지고 왔다는 걸 이미 알고 있었단 말이오?"
"그저…… 얼굴을 보고 짐작했을 뿐입니다." 티혼이 눈을 내리깔며 속삭였다.
니콜라이 프세볼로도비치는 약간 창백해 보였고, 그의 손은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그는 몇 초 동안 말없이 부동자세로 티혼을 응시했는데, 마치 마지막 결심을 내리려는 듯 보였다. 마침내 그는 윗옷 옆 주머니에서 인쇄된 종이뭉치를 꺼내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여기 배포할 예정인 유인물들이 있소." 그가 다소 갈라지는 목소리로 말했다. "단 한 사람이라도 이것을 읽게 된다면, 내가 더는 숨기지 않을 것임을 알아두시오. 결국 모든 사람이 읽게 될 테니까. 그렇게 결정했소. 나는 당신이 전혀 필요 없소. 이미 모든 결정을 내렸으니까. 하지만 읽어보시오…… 읽는 동안에는 아무 말도 하지 말고, 다 읽고 나면…… 모든 것을 말해주시오……."
"읽을까요?" 티혼이 망설이며 물었다.
"읽으시오. 나는 진작부터 마음이 편안하오."
"아니오, 안경 없이는 읽을 수가 없군요. 활자가 너무 작고 외국에서 인쇄된 것이라……."
"여기 안경이 있소." 스타브로긴은 탁자에서 안경을 집어 건네주고는 소파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 티혼은 독서에 몰입했다.
I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