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권
I.
다리우스와 파리사티스 사이에는 아들이 둘 있었는데, 큰아들의 이름은 아르타크세르크세스였고 작은아들은 키루스였다. 다리우스는 병석에 누워 죽음이 가까워졌음을 느끼자, 두 아들이 모두 곁에 있기를 바랐다. 큰아들은 마침 이미 곁에 있었지만, 작은아들 키루스는 자신이 사트라프(태수)로 임명하고 카스톨로스 평원에 집결하는 모든 군대의 장군으로도 임명했던 지방에서 불러들여야만 했다. 그리하여 키루스는 티사페르네스를 친구로 데리고 길을 떠났으며, 파라시아인 크세니아스가 지휘하는 300명의 중무장한 헬라스인 부대도 대동했다.
다리우스가 죽고 아르타크세르크세스가 왕위에 오르자, 티사페르네스는 왕인 그의 형에게 키루스가 반역을 꾀하고 있다고 참소했다. 아르타크세르크세스는 티사페르네스의 말을 듣고 키루스를 붙잡아 처형하려 했으나, 어머니가 그를 위해 중재하여 다시 안전하게 자신의 영지로 돌려보냈다. 위험과 불명예를 겪으며 간신히 목숨을 건진 키루스는, 앞으로 다시는 형의 권력 아래 놓이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그리고 가능하면 형을 대신해 왕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어머니 파리사티스는 그의 가장 든든한 지원군이었다. 그녀는 왕위에 오른 아르타크세르크세스보다 키루스를 더 사랑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키루스는 왕궁에서 온 모든 사람을 정중하게 대접했기에, 그들을 돌려보낼 때면 그들은 왕인 형보다 자신을 더 따르는 친구가 되어 있었다. 그는 자신의 군대에 소속된 이방인들도 소홀히 하지 않고, 그들을 유능한 전사인 동시에 자신에게 헌신적인 추종자로 길러냈다. 마지막으로 그는 자신이 최대한 왕을 기습할 수 있도록 극비리에 헬라스인 군대를 모집하기 시작했다.
그가 군대를 모은 방식은 다음과 같다. 우선 그는 자신이 통치하는 도시의 수비대장들에게 명령을 내려, 티사페르네스가 도시들을 상대로 음모를 꾸미고 있다는 구실을 대며 각자 가능한 한 많은 정예 펠로폰네소스군을 모집하게 했다. 사실 이 이오니아의 도시들은 본래 왕이 티사페르네스에게 하사한 땅이었으나, 당시에는 밀레토스를 제외한 모든 도시가 키루스 측으로 돌아선 상태였다. 밀레토스에서 티사페르네스는 비슷한 음모를 눈치채고는 공모자 일부를 처형하고 나머지는 추방하는 방식으로 선수치고 있었다. 키루스는 이 망명자들을 받아들여 군대를 모은 뒤, 망명자들을 복귀시킨다는 명분으로 육지와 바다 양면에서 밀레토스를 포위 공격했으며, 이는 그가 군대를 모을 또 다른 구실이 되었다. 동시에 그는 왕에게 사람을 보내 자신이 왕의 형제라는 점을 들어, 티사페르네스가 계속 통치하게 두기보다 이 도시들을 자신에게 넘겨달라고 요구했다. 어머니인 왕비도 이 일을 도왔기에, 왕은 자신을 겨냥한 음모는 전혀 눈치채지 못한 채 키루스가 티사페르네스와 싸우기 위해 군비로 돈을 쓰고 있다고만 생각했다. 왕은 두 사람이 서로 전쟁을 벌이는 것을 보며 별로 고통스러워하지 않았는데, 키루스가 티사페르네스 소유의 도시들에서 왕에게 바쳐야 할 공물을 꼬박꼬박 보냈기 때문에 더욱 그랬다.
아비도스 맞은편 헤르소네소스에서도 그를 위한 세 번째 군대가 모이고 있었는데, 그 연유는 이러하다. 키루스와 인연을 맺게 된 라케다이몬 출신의 망명자 클레아르코스라는 자가 있었다. 키루스는 그를 높이 평가하여 다레이코스 금화 1만 개를 선물로 주었다. 클레아르코스는 그 금을 받아 군대를 모집했고, 헤르소네소스를 근거지로 삼아 헬라스인들의 이익을 위해 헬레스폰토스 북쪽의 트라키아인들과 싸우기 시작했다. 그 결과가 너무나 좋아 헬레스폰토스의 도시들은 자발적으로 그의 군대를 지원하기 위해 기꺼이 자금을 갹출하려 했다. 이런 방식으로 키루스를 위한 군대가 또다시 은밀히 유지되고 있었던 것이다.
그다음으로 키루스의 친구인 테살리아인 아리스티포스가 있었는데, 그는 고국의 정적들에게 압박을 받자 키루스를 찾아와 2,000명의 용병을 3개월간 유지할 급료를 요청하며, 그 돈이 있으면 정적들을 제압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키루스는 그에게 4,000명의 용병을 6개월간 유지할 급료를 주면서, 단지 아리스티포스가 자신과 최종적으로 상의하지 않고는 정적들과 타협하지 말 것을 조건으로 내걸었다. 이런 방식으로 그는 네 번째 군대를 비밀리에 유지할 수 있게 되었다.
더 나아가 그는 또 다른 친구인 보이오티아인 프로크세노스에게 가능한 한 많은 병력을 모아 자신의 영토를 괴롭히는 피시디아인들을 토벌할 원정에 합류하라고 지시했다. 마찬가지로 다른 두 친구인 스팀팔로스인 소파이네토스와 아카이아인 소크라테스에게도 밀레토스 망명자들과 함께 티사페르네스를 상대로 한 원정을 곧 시작할 테니, 가능한 한 많은 병력을 모아 자신에게 오라는 명령을 내렸다. 이 명령들은 해당 지휘관들에 의해 적절히 이행되었다.
II
이제 내륙으로 진군을 시작할 적절한 시기가 왔다고 판단한 그는, 피시디아인들을 나라 밖으로 완전히 몰아내고 싶다는 구실을 내세웠다. 그리고는 공공연히 그들을 상대로 전쟁을 벌이겠다며 아시아인 부대와 헬라스인 부대를 모두 소집하기 시작했다. 그는 사르디스에서 각지로 명령을 보냈다. 클레아르코스에게는 부대를 모두 이끌고 사르디스로 합류하라고, 아리스티포스에게는 고국의 정적들과 타협하고 자신이 고용한 병력을 보내라고, 도시들의 외국인 부대 총사령관인 아르카디아인 크세니아스에게는 성채 수비에 꼭 필요한 인원을 제외하고는 가용한 모든 병력을 이끌고 직접 나타나라고 명령했다. 이어서 그는 밀레토스 공성전에 투입되어 있던 병력을 불러들이고 망명자들에게도 이번 원정에 합류할 것을 권하며, 원정에 성공하면 그들을 고향으로 복귀시켜 줄 때까지 멈추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이 제안을 들은 그들은 기쁘게 응했다. 그들은 키루스를 신뢰했고, 무장을 갖추고 사르디스로 모여들었다. 크세니아스 또한 도시들에서 차출한 4,000명의 중무장 보병을 이끌고 사르디스에 도착했다. 프로크세노스는 중무장 보병 1,500명과 경무장 병력 500명을, 스팀팔로스인 소파이네토스는 중무장 보병 1,000명을, 아카이아인 소크라테스는 중무장 보병 500명을 이끌고 왔다. 메가라 출신의 파시온은 중무장 보병 300명과 경보병 300명을 이끌고 왔다. 파시온과 소크라테스는 밀레토스 공성전에 가담했던 병력이었다. 이들 모두가 사르디스에서 키루스에게 합류했다.
하지만 티사페르네스는 이러한 움직임을 놓치지 않았다. 그는 이렇게 대규모로 병력을 갖추는 것은 단순히 피시디아 침공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그는 서둘러 기병 500여 명을 대동하고 왕에게 달려갔다. 왕 역시 티사페르네스로부터 키루스의 대군에 관한 소식을 듣자마자 즉시 대응 준비에 착수했다.
이렇게 키루스는 앞서 언급한 군대를 이끌고 사르디스를 출발해 리디아를 통과하는 3개 구간, 총 22파라상가를 행군하여 마이안드로스 강에 이르렀다. 이 강은 폭이 200피트이며 배 7척으로 만든 다리가 놓여 있었다. 강을 건넌 그는 프리기아를 통과하는 1개 구간, 8파라상가를 더 행군하여 사람이 살고 번성하며 규모가 큰 도시인 콜로사이로 들어갔다. 그곳에서 7일간 머무는 동안 테살리아인 메논이 중무장 보병 1,000명과 돌로페스인, 아이아네스인, 올린토스인으로 구성된 경보병 500명을 이끌고 합류했다. 그곳에서 다시 3개 구간, 총 20파라상가를 행군하여 프리기아의 인구가 많고 크며 번성한 도시인 켈라이나이에 도착했다. 이곳에는 키루스의 궁전과 야생 짐승이 가득한 넓은 공원이 있었는데, 그는 자신이나 말을 훈련시키고 싶을 때면 언제든 그곳에서 말을 타고 사냥을 하곤 했다. 공원 한가운데로는 마이안드로스 강이 흐르는데, 이 강의 발원지는 궁전 건물 내부에 있으며 강물은 켈라이나이 도시를 통과해 흘러간다. 대왕 역시 켈라이나이에 궁전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곳은 아크로폴리스 기슭의 마르쉬아스라는 또 다른 강의 발원지 위에 세워진 견고한 요새였다. 이 강 역시 도시를 가로질러 마이안드로스 강으로 흘러드는데, 폭은 25피트였다. 전설에 따르면 이곳은 아폴론이 기술을 겨루는 경연에서 승리한 후 마르쉬아스의 가죽을 벗겼던 장소라고 한다. 그는 패배자의 가죽을 샘물이 솟아나는 동굴에 걸어두었고, 그 때문에 강 이름이 마르쉬아스가 되었다. 전승에 의하면 크세르크세스가 헬라스에서의 유명한 전투에서 패한 뒤 퇴각하며 이 궁전과 켈라이나이 성채를 직접 지었다고 한다. 키루스는 이곳에서 30일간 머물렀으며, 그사이에 라케다이몬인 클레아르코스가 중무장 보병 1,000명, 트라키아인 경보병 800명, 크레타인 궁수 200명을 이끌고 도착했다. 같은 시기에 시라쿠사인 소시스가 중무장 보병 3,000명을, 아르카디아인 소파이네토스가 중무장 보병 1,000명을 이끌고 왔고, 키루스는 이곳 공원에서 헬라스인들을 사열하고 수를 헤아려 본 결과, 중무장 보병 1만 1,000명과 경보병 약 2,000명에 이른다는 것을 확인했다.
이곳에서 그는 행군을 계속하여 2개 구간, 10파라상가를 이동해 인구가 많은 펠타이 시에 도착했고, 그곳에서 3일간 머물렀다. 그동안 아르카디아인 크세니아스는 리카이아 축제를 열어 제물을 바치고 경기를 주최했다. 경기의 상품은 금으로 만든 머리띠였으며, 키루스 자신도 그 경기를 관전했다. 이곳에서 행군을 이어가 2개 구간, 12파라상가를 이동해 무시아 변경의 마지막 도시이자 인구가 많은 케라몬 아고라에 도착했다. 거기서 3개 구간, 30파라상가를 행군하여 인구가 많은 카이스트루 페디온에 다다랐다. 여기서 키루스는 5일간 머물렀는데, 급료가 3개월 이상 체불된 병사들이 궁전 문앞으로 찾아와 밀린 급료를 요구했다. 키루스는 좋은 말과 기대로 그들을 달랬으나, 그는 수단이 있을 때는 결코 급료를 체불하는 법이 없었기에 자신의 불쾌감을 감출 수는 없었다. 이때 킬리키아의 왕 시에네시스의 아내 에피아크사가 키루스를 방문했는데, 키루스가 왕비로부터 상당한 액수의 금을 선물로 받았다는 이야기가 전해졌다. 어쨌든 바로 이때 키루스는 군대에 4개월 치 급료를 지급했다. 왕비는 킬리키아인과 아스펜도스인들로 구성된 호위대를 대동하고 있었는데, 소문이 사실이라면 키루스는 왕비와 내밀한 관계를 맺고 있었다. 이곳에서 그는 2개 구간, 10파라상가를 행군하여 인구가 많은 팀브리움 시에 도착했다. 길가에는 프리기아의 왕 미다스의 샘이라 불리는 곳이 있는데, 전설에 따르면 미다스가 샘물에 포도주를 타서 사티로스를 붙잡았다고 한다. 이곳에서 다시 2개 구간, 10파라상가를 행군하여 인구가 많은 티리아이움 시에 도착했다. 그는 그곳에서 3일간 머물렀는데, 세간의 이야기에 따르면 킬리키아 왕비가 키루스에게 그녀의 즐거움을 위해 군대를 사열하는 모습을 보여달라고 간청했다고 한다. 키루스는 기꺼이 그러한 사열을 보여주기로 하고 들판에서 헬라스인들과 이방인들의 군대를 사열했다. 그는 헬라스인들에게 대열을 갖추고 평소의 전투 대형으로 서라고 명령했으며, 각 장군이 자신의 부대를 정렬하도록 했다. 이에 따라 그들은 4열 종대로 섰다. 오른쪽은 메논과 그의 부대가, 왼쪽은 클레아르코스와 그의 부대가, 중앙은 나머지 장군들과 그들의 부대가 맡았다. 키루스는 먼저 이방인들을 사열했는데, 그들은 기병대와 보병대 단위로 행진하며 지나갔다. 그다음 키루스는 왕비를 태운 마차와 함께 전차를 타고 헬라스인들 앞을 지나며 사열했다. 그들은 모두 청동 투구와 자주색 튜닉, 정강이받이를 착용하고 있었으며 방패는 가리지 않은 상태였다.
이곳에서 그는 행군을 계속하여 2개 구간, 10파라상가를 이동해 인구가 많은 팀브리움 시에 도착했다. 길가에는 프리기아의 왕 미다스의 샘이라 불리는 곳이 있는데, 전설에 따르면 미다스가 샘물에 포도주를 타서 사티로스를 붙잡았다고 한다. 이곳에서 다시 2개 구간, 10파라상가를 행군하여 인구가 많은 티리아이움 시에 도착했다. 그는 그곳에서 3일간 머물렀는데, 세간의 이야기에 따르면 킬리키아 왕비가 키루스에게 그녀의 즐거움을 위해 군대를 사열하는 모습을 보여달라고 간청했다고 한다. 키루스는 기꺼이 그러한 사열을 보여주기로 하고 들판에서 헬라스인들과 이방인들의 군대를 사열했다. 그는 헬라스인들에게 대열을 갖추고 평소의 전투 대형으로 서라고 명령했으며, 각 장군이 자신의 부대를 정렬하도록 했다. 이에 따라 그들은 4열 종대로 섰다. 오른쪽은 메논과 그의 부대가, 왼쪽은 클레아르코스와 그의 부대가, 중앙은 나머지 장군들과 그들의 부대가 맡았다. 키루스는 먼저 이방인들을 사열했는데, 그들은 기병대와 보병대 단위로 행진하며 지나갔다. 그다음 키루스는 왕비를 태운 마차와 함께 전차를 타고 헬라스인들 앞을 지나며 사열했다. 그들은 모두 청동 투구와 자주색 튜닉, 정강이받이를 착용하고 있었으며 방패는 가리지 않은 상태였다.
그는 전군을 지나쳐 행진한 뒤 전투 대열의 중앙 전면에 전차를 세우고, 통역관 피그레스에게 헬라스인 장군들을 보내 무기를 갖추고 대열 전체를 따라 전진하라는 명령을 전달하게 했다. 장군들이 이 명령을 병사들에게 전달하자, 나팔 소리에 맞춰 병사들은 방패를 앞으로 내밀고 창을 겨눈 채 적을 향해 전진했다. 행군 속도가 빨라졌고 병사들은 고함을 지르며 자발적으로 뛰기 시작해 진영 쪽으로 달렸다. 이방인들은 엄청난 공포에 휩싸였다. 킬리키아의 왕비는 마차를 돌려 도망쳤고, 시장에 있던 상인들은 물건을 버리고 줄행랑을 쳤으며, 헬라스인들은 그 모습을 보고 폭소를 터뜨리며 진영으로 들어왔다. 왕비는 헬라스 군의 화려하고 질서 정연한 모습에 놀랐지만, 키루스는 헬라스인들이 이방인들의 마음속에 심어준 공포를 보고 만족해했다.
이곳에서 그는 행군을 계속하여 3개 구간, 20파라상가를 이동해 프리기아의 마지막 도시인 이코니움에 도착했고, 그곳에서 3일간 머물렀다. 거기서 리카오니아를 통과하는 5개 구간, 30파라상가를 행군했다. 그곳은 적대적인 지역이었기에 그는 헬라스인들에게 그곳을 약탈하도록 허용했다. 이때 키루스는 킬리키아 왕비를 가장 빠른 길로 본국에 돌려보냈는데, 호위를 위해 메논의 병사들과 메논 자신을 딸려 보냈다. 나머지 병력을 이끌고 그는 카파도키아를 통과하는 4개 구간, 25파라상가를 더 행군하여 인구가 많고 크며 번성한 도시인 다나에 도착했다. 여기서 그들은 3일간 머물렀는데, 그 사이에 키루스는 왕실 자색 옷을 입는 페르시아 귀족 메가페르네스와 또 다른 고위 지휘관을 반역 혐의로 처형했다.
이곳에서 그들은 킬리키아로 통하는 길을 뚫으려 시도했다. 그 입구는 매우 가파른 수레 길이었는데, 저항하는 병력이 있을 경우 군대가 지나가기에는 불가능한 곳이었다. 들리는 말에 의하면 시에네시스가 길목의 정상에서 접근로를 지키고 있다고 했다. 그들은 평지에서 하루를 머물렀으나, 다음 날 시에네시스가 길목을 떠났다는 소식을 전하는 전령이 왔다. 메논의 군대가 이미 산맥 너머 킬리키아 쪽에 진입했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 분명했다. 게다가 그는 라케다이몬인들과 키루스 본인의 함선들이 타모스를 제독으로 태우고 이오니아에서 킬리키아로 돌아오고 있다는 소식까지 들은 상태였다. 이유가 무엇이든 키루스는 방해 없이 산으로 올라갔고, 킬리키아인들이 경비를 서던 천막들을 발견했다. 그 지점에서 그는 서서히 내려와 물이 풍부하고 온갖 종류의 나무와 포도덩굴로 울창한 크고 아름다운 평원으로 들어섰다. 이 평원에서는 참깨가 많이 생산되었고, 기장과 조, 보리, 밀도 자랐다. 또한 사방이 가파르고 높은 산벽으로 둘러싸여 바다에서 바다까지 이어져 있었다. 이 평원 지대를 지나며 그는 4개 구간, 25파라상가를 행군하여 킬리키아의 크고 번성한 도시인 타르소스에 도착했다. 이곳에는 킬리키아의 왕 시에네시스의 궁전이 있었고, 도시 한가운데로는 폭이 200피트인 키드누스 강이 흘렀다. 그들은 도시가 텅 비어 있음을 발견했는데, 주민들은 시에네시스와 함께 산속의 견고한 요새로 피신한 상태였다. 술집 주인들을 제외하고는 모두 떠났다. 솔리와 잇시의 해안 주민들만 남아 있었다. 한편 시에네시스의 왕비 에피아크사는 키루스보다 5일 앞서 타르소스에 도착해 있었다. 산을 넘어 평원으로 오는 동안 메논의 군대 두 중대가 실종되었다. 약탈 행위를 하다가 킬리키아인들에게 살해당했다는 이들도 있었고, 본대에서 뒤처져 대열을 찾거나 길을 발견하지 못해 헤매다 죽었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어쨌든 그들은 중무장 보병 100명 규모였는데, 나머지 병력이 도착했을 때 동료들을 잃은 분노에 휩싸여 타르소스 시와 궁전을 약탈하며 울분을 풀었다. 키루스는 도시로 행군해 들어온 뒤 시에네시스에게 자신을 찾아오라고 전갈을 보냈다. 그러나 시에네시스는 자신보다 우월한 사람의 손에 몸을 맡긴 적이 결코 없으며 지금 키루스의 제안에도 응할 뜻이 없다고 답했다. 그러다 결국 그의 아내가 설득하자 그는 신의를 보증하는 약속을 받아들였다. 그 후 그들은 만났고, 시에네시스는 키루스에게 군대 지원금으로 거액을 건넸다. 키루스는 그에게 관례적인 왕의 선물, 즉 금 재갈을 물린 말, 금 목걸이, 금 팔찌, 금 단검, 페르시아 의복을 주었고, 마지막으로 그의 영토를 더는 약탈하지 않으며 붙잡혀간 노예들을 어디서 발견하든 되찾아갈 수 있는 특권을 부여했다.
III
타르소스에서 키루스와 그의 군대는 20일간 머물렀다. 병사들은 이번 원정이 사실상 왕을 겨냥한 것이라는 의심이 짙어지자 더 이상의 진군을 거부했고, 자신들은 그런 목적으로 고용된 것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클레아르코스는 부하들을 강제로 진군시키려 했으나, 그가 병사들 앞에 나서자마자 그들은 그와 그의 짐수레 행렬을 향해 돌을 던지기 시작했고, 클레아르코스는 자칫 그 자리에서 돌에 맞아 죽을 뻔했다. 나중에 그는 무력이 소용없음을 깨닫고 자신의 부하들을 소집했다. 그는 오랫동안 서서 눈물을 흘렸고, 병사들은 침묵 속에서 놀라움을 금치 못하며 그를 바라보았다. 마침내 그가 입을 열었다. "병사 여러분, 내가 현재의 곤경으로 인해 몹시 괴로워한다고 해서 이상하게 여기지 마시오. 키루스는 나에게 평범한 친구 이상의 존재였소. 내가 망명 중일 때 그는 여러모로 나를 예우했고, 다레이코스 금화 1만 개를 선물로 주기도 했소. 나는 그것을 받았지만, 나 개인을 위해 쌓아두거나 쾌락을 위해 탕진하려 한 것이 아니라 여러분을 위해 쓰고자 했소. 무엇보다 먼저 나는 트라키아인들과 전쟁을 벌였고, 여러분의 도움으로 헬라스를 대신해 그들에게 복수했소. 그들이 헤르소네소스의 헬라스인들에게서 땅을 빼앗으려 했을 때 그들을 몰아냈던 것이오. 하지만 키루스가 나를 부르자마자 나는 여러분을 데리고 길을 나섰소. 내 은인이 나를 필요로 할 때, 내가 받은 은혜를 그에게 갚기 위함이었소……. 하지만 여러분이 나와 함께 진군하려 하지 않으니, 이제 나에게는 두 가지 길밖에 남지 않았소. 키루스와의 우정을 위해 여러분을 포기하든가, 아니면 그를 속이는 대가를 치르더라도 여러분과 함께하든가 하는 것이오. 내가 옳은 길을 가는 것인지 알 수 없지만, 나는 여러분을 선택하겠소. 어떤 일이 닥치든 여러분의 운명을 함께할 생각이라오. 내가 헬라스인 부대를 이끌고 이방인들과 싸우러 와서는, 헬라스인들을 배신하고 이방인의 우정을 선택했다는 말을 결코 누구에게도 듣지 않겠소. 아니오! 여러분이 내 명령을 따르지 않겠다면, 내가 여러분을 따르겠소. 무슨 일이 있어도 여러분과 운명을 함께할 것이오. 나는 여러분을 나의 조국이자 친구, 동맹으로 여기오. 어디에 있든 여러분과 함께라면 명예로울 것이며, 여러분 없이 어떻게 친구를 돕고 적을 해칠 수 있겠소. 나의 결심은 섰소. 여러분이 어디를 가든 나도 함께 가겠소."
그가 말을 마치자 클레아르코스의 부하들은 물론 다른 병사들까지도 대왕의 궁전으로 향하는 것을 탐탁지 않게 여겼던 그의 의견을 듣고는 지지를 표했다. 그리하여 2,000명이 넘는 병사가 크세니아스와 파시온의 곁을 떠나 무기와 짐수레를 챙겨 클레아르코스에게로 와서 진을 쳤다. 이런 상황에 절망과 분노를 느낀 키루스는 클레아르코스를 불러들였다. 클레아르코스는 오기를 거부했지만, 병사들 몰래 키루스에게 전갈을 보내 모든 일이 잘 풀릴 것이니 마음을 편히 가지라고 전했다. 그러면서도 자신은 계속 가지 않으면서 키루스에게는 계속 사람을 보내라고 주문했다. 그 후 그는 자신의 부하들과 그에게 합류한 병사들, 그리고 원하는 이들을 모두 모아 다음과 같이 말했다. "병사 여러분, 키루스와 우리의 관계가 우리와 그들의 관계와 같다는 점은 분명하오. 우리는 더 이상 그를 따르지 않으니 그의 병사가 아니고, 그 또한 우리의 급료를 주는 사람이 아니오. 하지만 그가 우리 때문에 부당한 대우를 받았다고 생각한다는 점은 의심할 여지가 없소. 그가 나를 계속 부르고 있지만, 나는 갈 수가 없소. 두 가지 이유 때문이오. 첫째는 부끄러움 때문인데, 내가 그를 완전히 속였다는 사실을 스스로 인정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오. 둘째는 그가 나를 붙잡아 자신이 생각하는 우리들의 잘못에 대해 처벌을 내릴까 두렵기 때문이오. 그러므로 지금은 우리가 잠을 자며 우리 자신을 잊어버릴 때가 아니오. 오히려 다음 행동을 어떻게 할지 숙고해야 할 긴박한 시기라오. 우리가 여기 머무는 동안 어떻게 안전을 확보할지, 혹은 당장 등을 돌리고 떠나기로 했다면 무엇이 가장 안전한 퇴로일지, 그리고 어떻게 보급품을 마련할지 고민해야 하오. 보급 없이는 지휘관이든 일반 병사든 아무런 소용이 없기 때문이오. 우리가 상대하고 있는 그 사람은 친구에게는 더없이 좋은 친구이지만 적에게는 매우 위험한 적이오. 그리고 그는 우리가 아주 가까이에서 보고 알다시피 보병과 기병, 함대까지 거느리고 있소. 그러니 누군가 제안할 의견이 있다면 지금 말하시오." 이 말을 끝으로 그는 말을 멈췄다.
그러자 여러 사람이 단상에 올랐는데, 누군가는 자신의 견해를 밝히기 위해 나섰고, 또 누군가는 클레아르코스의 사주를 받아 그대로 머무는 것도, 키루스의 호의 없이 되돌아가는 것도 절망적인 난관이라는 점을 역설했다. 특히 그중 한 사람은 더 지체하지 말고 귀환 행군을 시작해야 한다는 가식적인 불안감을 드러내며, 클레아르코스가 직접 이들을 이끌고 돌아갈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면 즉시 다른 장군을 선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즉시 보급품을 구매하고(시장터는 아시아인 병영 한복판에 있었다), 짐을 꾸려야 합니다. 키루스에게 가서 바닷길로 돌아갈 배를 달라고 요청합시다. 만약 그가 배를 내주지 않는다면, 우호적인 지역을 통과할 수 있도록 길잡이를 붙여달라고 요구해야 합니다. 그조차도 거부한다면 지체 없이 행군 대열을 정비하고, 우리가 그토록 많이 약탈했던 키루스와 킬리키아인들이 선수 치기 전에 우리가 먼저 파견대를 보내 길목을 점령해야 합니다." 이 연사의 주장은 그러했다. 그 뒤를 이어 클레아르코스가 단지 이렇게 말했다. "지금 이 시기에 내가 개인적으로 장군 역할을 수행하라는 제안은 하지 마시오. 그렇게 하는 데는 수많은 장애물이 보이기 때문이오. 하지만 여러분이 선택한 사람에게는 최대한의 복종을 바칠 수 있으니, 그것은 별개의 문제요. 내가 지휘를 받는 입장에서도 여러분 중 누구 못지않게 제 역할을 다할 수 있다는 것을 여러분은 보고 알게 될 것이오."
클레아르코스 뒤를 이어 다른 대변인이 일어나, 마치 키루스가 원정을 포기하고 배를 돌려 돌아갈 마음이라도 있는 것처럼 배를 요청하자고 제안한 앞선 연사의 순진함을 지적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그 계획을 망치고 있는 바로 그 당사자에게 길잡이를 부탁하겠다는 것이 얼마나 순진한 생각인지 지적하고 싶소. 키루스가 내려보낸 길잡이를 우리가 믿을 수 있다면, 왜 당장 키루스에게 우리를 위해 그 길목을 점령하라고 요구하지 않는 거요? 나 개인적으로는 그가 내어줄 배가 있다면 타기 전에 두 번은 생각해 볼 거요. 그가 군함으로 배를 가라앉힐까 두렵기 때문이오. 그가 붙여준 길잡이를 따르는 것도 주저할 것이오. 그는 우리가 탈출 불가능한 곳으로 우리를 인도할지도 모르기 때문이오. 만약 키루스의 뜻을 거스르고 고향으로 돌아가야 한다면, 나는 차라리 몰래 그를 따돌리고 떠나고 싶소. 물론 그것도 불가능한 일이지만 말이오. 그러나 이런 계획들은 그저 넌센스일 뿐이오. 내 제안은 클레아르코스를 포함한 적임자들을 키루스에게 사절로 보내라는 것이오. 그들이 키루스를 찾아가 물어보게 하시오. 그는 우리를 어디에 쓰려고 하는 것이오? 만약 그 일이 그가 예전에 외국인 부대를 고용했던 일과 비슷한 성격이라면, 당연히 우리도 따르도록 합시다. 예전에 그와 함께 행군했던 이들과 우리가 대등하다는 것을 보여줍시다. 그러나 만약 그 계획이 이전보다 더 큰 규모의 일이라서 더 많은 수고와 위험을 수반한다면, 우리는 그에게 우리가 그를 따라야 할 타당한 이유를 대라고 하거나, 아니면 우호적인 지역으로 우리를 돌려보내 달라고 요구해야 하오. 이런 식으로 하면, 우리가 그를 따를 때는 친구로서 진심을 다해 따를 것이고, 돌아갈 때면 안전하게 돌아갈 수 있을 것이오. 그에 대한 답을 이곳으로 보고하게 하고, 그 내용을 들은 뒤에 우리가 취할 최선의 방책을 논의합시다."
이 결의안은 통과되었고, 그들은 클레아르코스를 포함한 사절단을 선출해 키루스에게 보내 군대에서 합의된 질문들을 전달하게 했다. 키루스는 다음과 같이 답했다. 그는 자신의 적인 아브로코마스가 12구간 떨어진 유프라테스 강에 주둔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으며, 그 아브로코마스를 상대로 진군하는 것이 목적이라고 했다. 만약 그가 여전히 그곳에 있다면 벌을 주고 싶으며, "만약 그가 도망쳤다면"(답변은 이렇게 끝났다) "그곳에서 최선의 방책을 논의할 것이다." 사절단은 이 답변을 듣고 병사들에게 보고했다. 그가 병사들을 이끌고 왕을 공격하러 간다는 의심은 가시지 않았지만, 그를 따르는 것이 최선으로 보였다. 그들은 단지 급료 인상을 요구했고, 키루스는 기존에 받던 것보다 1.5배, 즉 1인당 월 1다레이코스가 아닌 1.5다레이코스를 지급하겠다고 약속했다. 과연 그는 정말로 병사들을 이끌고 왕을 공격하러 가는 것이었을까? 적어도 이 순간까지는 그 누구도 그 사실을, 어쨌든 공개적이고 명백한 방식으로 알고 있는 사람은 없었다.
IV
이곳에서 그는 행군을 계속하여 2개 구간, 10파라상가를 이동해 폭이 200피트인 프사루스 강에 도착했고, 거기서 1개 구간, 5파라상가를 더 행군하여 킬리키아의 마지막 도시인 잇시에 다다랐다. 해안에 위치한 이 도시는 크고 번성하며 부유했다. 그들은 이곳에서 3일간 머물렀는데, 키루스의 함대가 합류했다. 라케다이몬인 제독 피타고라스가 타고 온 펠로폰네소스 함선 35척이 있었다. 이 배들은 이집트인 타모스가 에페소스에서부터 인도해 왔는데, 타모스는 그 밖에도 키루스 소유의 함선 25척을 따로 거느리고 있었다. 이 배들은 밀레토스가 티사페르네스 편에 섰을 당시 타모스가 밀레토스를 봉쇄하던 함대였으며, 타모스는 그 함선들을 티사페르네스를 상대로 한 키루스의 군사 작전에서도 요긴하게 사용했다. 함대에는 라케다이몬인 케이리소포스라는 세 번째 지휘관이 타고 있었는데, 그는 키루스의 부름을 받고 중무장 보병 700명을 이끌고 와 키루스를 위해 그들의 장군직을 맡게 되었다. 함대는 키루스의 천막 맞은편에 닻을 내리고 정박했다. 이곳에서 또 다른 증원군이 나타났다. 아브로코마스를 섬기던 헬라스인 용병 중무장 보병 400명이었는데, 그들은 아브로코마스를 버리고 키루스에게 귀순하여 왕을 상대로 한 원정에 합류했다.
잇시에서 그는 행군을 계속하여 1개 구간, 5파라상가를 이동해 킬리키아와 시리아의 관문에 도착했다. 이곳은 이중 요새였는데, 킬리키아를 방어하는 안쪽의 가까운 요새는 시에네시스와 킬리키아인 수비대가 지키고 있었고, 시리아를 방어하는 바깥쪽의 먼 요새는 왕의 부대가 주둔하고 있다는 소문이 있었다. 두 요새 사이의 틈으로는 폭이 100피트인 카르수스 강이 흐르고 있었으며, 그 사이의 전체 공간은 600야드 남짓에 불과했다. 통로 자체가 워낙 좁은 데다 성벽이 바다까지 이어져 있고 위쪽에는 깎아지른 듯한 바위가 솟아 있었으며 두 요새 모두 문이 달려 있어 이곳을 무력으로 돌파하기란 불가능했다. 키루스가 함대를 불러들인 것은 바로 이 관문 때문이었는데, 중무장 보병 부대를 성문 안팎으로 이끌고 들어가 아브로코마스가 대군을 거느리고 지키고 있을 것으로 예상했던 시리아 관문을 무력으로 돌파하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아브로코마스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는 키루스가 킬리키아에 있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방향을 돌려 페니키아를 빠져나갔으며, 소문에 따르면 30만 명에 달하는 대군을 이끌고 왕에게 합류하러 떠났다.
이곳에서 키루스는 행군을 이어가 시리아를 통과하는 1개 구간, 5파라상가를 이동해 해안에 위치한 페니키아인들의 도시 미리안두스에 도착했다. 이곳은 상업 항구였고 항구에는 수많은 상선이 닻을 내리고 있었다. 그들은 이곳에서 7일간 머물렀는데, 이때 아르카디아인 장군 크세니아스와 메가라 출신의 파시온이 무역선을 타고 가장 귀중한 물건들을 실은 뒤 고향을 향해 출항했다. 사람들은 대체로 이 행동을 질투심 때문이라고 해석했는데, 키루스가 왕을 상대로 싸우러 가는 대신 헬라스로 돌아가길 바라는 마음에서 자신들의 곁을 떠나 클레아르코스에게 귀순했던 병사들을 그가 계속 데리고 있도록 허락했기 때문이었다. 두 사람이 그렇게 사라지자 키루스가 군함을 이끌고 그들을 뒤쫓고 있다는 소문이 퍼졌고, 어떤 이들은 그 겁쟁이들이 잡히기를 바랐지만, 다른 이들은 그들이 그런 운명을 맞이하게 될까 봐 안타까워하기도 했다.
그러자 키루스는 장군들을 소집하여 이렇게 말했다. "크세니아스와 파시온이 우리 곁을 떠났소. 하지만 그들은 그렇게 함으로써 몰래 도망쳤다고 자만해서는 안 될 것이오. 나는 그들이 어디로 갔는지 알고 있소. 그들이 도망칠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의 속도 덕분이 아니며, 원한다면 내 함선으로 그들의 배를 나포할 수도 있소. 하지만 내가 그들을 뒤쫓는다면 내 손에 장을 지지겠소! 그들이 내 곁에 있을 때는 나를 위해 일하게 하다가, 떠나고 싶어 할 때는 내가 그들을 붙잡아 괴롭히고 재산을 빼앗았다는 말이 내 이름에 꼬리표처럼 붙게 해서는 안 될 것이오. 결코 그럴 수 없소! 그들이 우리에게 했던 것보다 우리가 그들에게 더 나은 대우를 했다는 것을 깨닫게 하고 그들을 보내주시오. 나는 트랄레스에 그들의 자식과 아내를 안전하게 가두어 두었지만, 그들조차 빼앗지 않을 것이오. 그들은 나에게 베풀었던 지난날의 공로에 대한 대가로 그들을 돌려받게 될 것이오." 그가 이렇게 말하자, 내륙으로 진군하는 생각에 낙담해 있던 헬라스인들조차 키루스의 고결한 인품에 관한 소식을 듣고는 기뻐하며 더욱 열의를 가지고 그를 따라 길을 나섰다.
그 후 키루스는 행군을 계속하여 4개 구간, 20파라상가를 이동해 찰루스 강에 도착했다. 이 강은 폭이 100피트이며, 시리아인들이 신처럼 여기며 다치지 않게 보호하는 길들여진 물고기들이 가득했다. 그곳의 비둘기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이 진을 친 마을들은 파리사티스의 허리띠 비용으로 속한 영지였다. 이 지점에서 그는 행군을 이어가 5개 구간, 30파라상가를 이동해 폭이 100피트인 다르다스 강의 발원지에 다다랐다. 이곳에는 시리아의 통치자 벨레시스의 궁전과 공원이 있었는데, 그 공원은 매우 크고 아름다웠으며 계절에 따라 나는 온갖 산물이 가득했다. 하지만 키루스는 그 공원을 베어버리고 궁전을 불태웠다. 거기서 그는 3개 구간, 15파라상가를 행군하여 폭이 거의 0.5마일에 달하는 유프라테스 강에 이르렀다. 텝사쿠스라는 크고 번성한 도시가 강변에 자리 잡고 있었다. 그들은 이곳에서 5일간 머물렀는데, 키루스는 헬라스인 장군들을 불러 지금부터는 대왕을 상대로 바빌론으로 진격할 것이라고 말하고, 이 사실을 병사들에게 전달하여 그들이 따르도록 설득하라고 지시했다. 장군들은 회의를 소집하여 병사들에게 그 소식을 알렸다. 병사들은 오랫동안 알고 있던 사실을 숨겼다며 장군들을 비난하고 분노했으며, 과거에 키루스와 함께 그의 아버지 궁전으로 올라갔을 때 받았던 것과 같은 금전적 보상이 주어지지 않는다면 떠나지 않겠다고 거부했다. 그때는 지금처럼 전투를 위한 원정이 아니라 아들의 초청으로 아버지를 방문하는 평화로운 여정이었기 때문이다. 이 요구가 장군들을 통해 키루스에게 전달되었고, 그는 바빌론에 도착하는 즉시 1인당 은 5미나를 지급하고, 그들을 다시 이오니아로 안전하게 호송할 때까지 급료를 전액 지급하겠다고 약속했다. 이런 방식으로 헬라스 군대는 설득되었다. 즉, 대다수의 병사가 설득된 것이다. 사실 메논은 다른 병사들이 어떻게 할지, 즉 그들이 키루스를 따를지 여부가 불분명한 상황에서 자신의 부대를 따로 모아 다음과 같이 연설했다. "병사 여러분, 내 말을 듣는다면 위험이나 수고 없이 다른 병사들보다 키루스의 특별한 총애를 얻을 수 있는 방법이 있소. 내가 무엇을 하길 바라는지 묻는다면 말해주겠소. 키루스는 지금 당장 헬라스인들에게 자신을 따라 왕을 공격하라고 간청하고 있소. "그러니 내 말을 듣는다면, 다른 이들이 어떤 대답을 할지 분명해지기 전에 당장 유프라테스 강을 건너시오. 만약 그들이 따르기로 투표한다면, 여러분은 솔선수범했다는 공을 인정받을 것이고 키루스는 여러분에게 고마워할 것이오. 그는 여러분을 자신의 대의에 가장 열성적인 사람들로 여길 것이고, 그 누구보다도 잘 아는 방식대로 보답할 것이오. 반면 만약 다른 이들이 도하를 반대하는 쪽으로 투표한다면, 우리는 다시 돌아가게 될 것이오. 하지만 그가 전적으로 신뢰할 수 있는 유일한 추종자로서, 키루스는 수비대 지휘관이나 중대장으로 여러분을 기용할 것이오. 그저 원하는 것을 그에게 요청하기만 하시오. 키루스의 친구로서 그로부터 그것을 얻어낼 수 있을 것이오."
병사들은 그 말을 듣고 따랐으며, 다른 이들이 대답을 내놓기도 전에 이미 강을 건넜다. 그러나 키루스는 메논의 부대가 강을 건넌 것을 보고 매우 기뻐하며 글루스를 그 부대에 보내 다음과 같은 메시지를 전했다. "병사 여러분, 우선 내 감사를 받아주시오. 결국 여러분도 나에게 감사하게 될 것이오. 내가 그렇게 만들 테니, 내 이름이 키루스라는 것을 기억해 두시오." 이에 병사들은 그의 성공을 간절히 빌 수밖에 없었다. 그만큼 그들의 기대는 컸다. 한편 메논에게는 키루스가 관대한 대인배의 풍모를 담아 선물을 보냈다고 한다. 이 일이 있은 후 키루스도 강을 건너기 시작했고, 그 뒤를 이어 나머지 군대도 전원이 강을 건넜다. 강을 건널 때 어느 누구도 가슴 위까지 젖지 않았다. 텝사쿠스 사람들에 따르면 이 순간까지 강을 이런 식으로 걸어서 건넌 적은 한 번도 없었으며, 언제나 배가 필요했다고 한다. 그러나 아브로코마스는 키루스가 강을 건너지 못하게 방해하려고 그 배들을 애써 불태워 버린 상태였다. 이로써 도강은 기적적인 일로 여겨졌고, 강은 마치 미래의 왕에게 절을 올리는 신하처럼 키루스 앞에서 분명하게 물러났다. 이곳에서 그는 시리아를 통과하는 9개 구간, 50파라상가를 계속 행군하여 아락세스 강에 도착했다. 그곳에는 곡물과 포도주가 가득한 마을들이 여럿 있었고, 그들은 그곳에서 3일간 머물며 군대의 보급을 마쳤다.
V
그곳에서 그는 유프라테스를 오른쪽에 두고 아라비아를 관통하여 5개 구간, 35파라상가의 사막을 행군했다. 이 지역의 땅은 바다처럼 멀리까지 펼쳐진 긴 평원이었으며 쑥이 무성했다. 그 밖의 나무나 갈대 같은 식물들은 모두 향료나 향기로운 풀처럼 달콤한 향기를 풍겼다. 나무는 하나도 없었지만, 야생 당나귀가 매우 많고 타조도 풍부했으며, 그 외에도 느시와 영양이 있었다. 기병들은 이 동물들을 가끔 추격했다. 당나귀들은 뒤쫓기면 앞질러 달려가다가 잠시 멈춰 섰는데, 그 속도가 말보다 훨씬 빨랐고 말이 가까이 다가가면 똑같은 행동을 반복했다. 당나귀를 잡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기수들이 일정한 간격을 두고 배치되어 릴레이 방식으로 사냥하는 것뿐이었다. 붙잡은 것들의 고기는 사슴 고기와 비슷했지만 더 부드러웠다. 타조를 잡은 운 좋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기병 몇몇이 추격에 나섰지만 곧 포기해야 했는데, 타조는 도망치려 할 때 다리를 최대한 빨리 놀리고 날개를 돛처럼 이용하며 금세 추격자들과의 거리를 멀리 벌렸기 때문이다. 느시는 갑자기 놀라게 하면 잡기가 그리 어렵지 않았는데, 자고새처럼 짧게 날다가 금세 지쳐버리기 때문이었다. 그 고기는 맛이 일품이었다.
군대가 이 지역을 지나 나아가다 보니 폭이 100피트인 마스카스 강에 도착했다. 이곳에는 코르소테라고 불리는, 텅 빈 큰 도시가 있었는데, 강물이 도시를 원형으로 휘감아 돌고 있어 마치 강에 에워싸인 듯했다. 그들은 여기서 3일간 머물며 식량을 비축했다. 그곳에서부터 유프라테스 강을 오른쪽에 끼고 13개 구간, 90파라상가의 사막을 더 행군하여 관문에 도달했다. 이 행군 과정에서 풀이나 푸른 채소, 나무가 전혀 없는 척박한 땅이었기에 짐을 나르던 동물들이 굶주림으로 여럿 죽어 나갔다. 주민들은 강둑에서 맷돌을 캐내 다듬은 뒤 바빌론으로 가져가 팔고, 그 대가로 곡물을 구입해 생계를 이어가고 있었다. 군대에는 곡물이 떨어졌고 키루스의 아시아인 군대 내에 열린 리디아 시장을 제외하고는 돈으로도 구할 수 없었다. 그곳에서 밀이나 보리 한 카피테의 가격은 4세켈이었다. 1세켈은 아테네 오볼 7.5개와 같고 1카피테는 아테네 건량 단위로 2코이닉스와 같았기에, 병사들은 그 기간 내내 고기만으로 연명해야 했다. 물이나 사료를 찾아 서둘러야 할 때는 행군 거리가 매우 길기도 했는데, 한 번은 깊은 진흙 때문에 수레가 나아가는 데 방해가 되는 좁은 길에 갇히고 말았다. 키루스는 귀족들과 함께 멈춰 서서 작업을 감독했고, 글루스와 피그레스에게 이방인 병력을 이끌고 가서 수레를 빼내는 일을 도우라고 명령했다. 그들의 작업 속도가 더딘 듯하자 키루스는 화가 난 표정으로 페르시아 귀족들을 돌아보며 수레를 밀어내라고 재촉했다. 그때야말로 군 규율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광경이 펼쳐졌다. 명령을 받은 귀족들은 각자 서 있던 그 자리에서 자색 외투를 벗어 던지고, 마치 승리를 위한 돌격이라도 하듯 열성적으로 작업에 뛰어들었다. 비싼 튜닉과 수놓은 바지를 입은 그들은 가파른 언덕을 달려 내려왔고, 목에는 목걸이를, 팔에는 팔찌를 찬 채 순식간에 진흙탕 속으로 뛰어들었으며, 생각보다 훨씬 짧은 시간에 수레를 안전하게 단단한 땅 위로 끌어올렸다.
키루스가 진군을 서두르고 있으며, 보급이나 기타 필수적인 목적을 위해 멈춰야 할 때를 제외하고는 정지하는 것을 꺼린다는 점은 전반적으로 분명했다. 그는 자신이 빨리 전진할수록 왕이 전투 준비를 덜 마친 상태일 것이라고 확신했고, 자신의 진군이 늦어질수록 왕이 그만큼 더 많은 적군을 모을 것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사실 유심히 관찰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왕의 제국이 영토의 넓이나 인구수 면에서 강할지라도, 침략자가 강행군을 통해 전쟁을 밀어붙일 때 길어진 이동 거리와 필연적으로 분산되는 방어 병력으로 인해 내재적인 약점이 상쇄된다는 사실을 한눈에 알 수 있었다.
이 사막 구간들 중 한 지점에서 도달한 곳의 유프라테스 강 건너편에는 카르만데라는 크고 번성한 도시가 있었다. 병사들은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강을 건너 뗏목을 타고 이 마을에서 식량을 구입했다. 그들은 천막 덮개로 쓰던 가죽을 가져와 가벼운 풀로 채운 다음, 물이 건초에 닿지 않도록 끝부분을 꽉 조이고 꿰맸다. 그들은 이것들을 타고 건너가 대추야자로 만든 술과 그 지역의 주식인 조나 기장을 식량으로 구했다. 이곳에서 메논의 병사들과 클레아르코스의 병사들 사이에 어떤 분쟁이 발생했고, 클레아르코스는 메논의 부하 한 명을 범법자로 판결하여 매질을 가했다. 그 병사는 자기 부대로 돌아가 동료들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 동료들은 자신의 전우에게 가해진 일을 듣고 분통을 터뜨리며 클레아르코스에게 몹시 격분했다. 같은 날 클레아르코스가 강 도하 지점을 방문하고 시장을 둘러본 뒤 몇 명의 수행원과 함께 말을 타고 자기 천막으로 돌아오던 중 메논의 진영을 지나가야 했다. 키루스는 아직 도착하지 않았으나 같은 방향으로 말을 타고 올라오는 중이었다. 메논의 병사 중 나무를 패던 한 사람이 클레아르코스가 말을 타고 지나가는 것을 보고 도끼를 휘둘러 그를 공격했다. 빗맞았으나 다른 병사가 그에게 돌을 던졌고, 세 번째 병사, 그리고 이어서 여러 병사가 고함을 지르고 야유하며 그에게 돌을 던졌다. 클레아르코스는 급히 자기 부대 쪽으로 도망쳤고 즉시 무장할 것을 명령했다. 그는 중무장 보병들에게 방패를 무릎에 댄 채 위치를 고수하라고 지시하고, 자신은 부대에 40명 이상 소속된 기병대(대부분 트라키아인이었다)와 트라키아인들을 이끌고 메논의 병사들을 향해 진격했다. 그러자 메논과 그의 병사들은 겁에 질려 허둥지둥 무기를 챙기러 달려갔고, 일부는 당혹스러운 상황에 제자리에 얼어붙어 있었다. 바로 그때 마침 프로크세노스가 뒤에서 중무장 보병대를 이끌고 나타나, 잠시의 주저도 없이 대치하던 양측 사이의 빈 공간으로 행진해 들어와 무기를 내려놓고는 클레아르코스에게 그만두라고 애원하기 시작했다. 돌에 맞아 죽을 뻔했던 클레아르코스는 자신의 곤경을 가볍게 여기는 듯한 그의 태도를 보고 기분이 좋을 리 없었으며, 그는 프로크세노스에게 물러나서 사이 공간을 그대로 두라고 명령했다. 바로 그 순간 키루스가 도착하여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물었다. 망설일 시간이 없었다. 그는 손에 투창을 굳게 쥐고, 곁에 있던 충직한 경호원들의 호위를 받으며 달려왔고, 곧장 대치 상황의 한복판에 이르러 외쳤다. "클레아르코스, 프로크세노스, 그리고 거기 있는 헬라스인 여러분, 지금 무슨 짓을 하는 건지 모르겠소. 서로 무기를 맞대는 순간 우리 운명은 끝장이오. 오늘 당장 나는 갈가리 찢겨 죽을 것이고, 여러분도 마찬가지일 것이며 내 뒤를 따르게 될 것이오. 우리가 조금이라도 불리한 상황에 처하면, 지금 주위에 보이는 이 이방인들이 왕을 섬기는 자들보다 우리에게 더 끔찍한 적이 될 것이오." 이 말을 듣고 클레아르코스는 제정신을 차렸다. 양측은 전투를 멈추고 각자의 숙소로 돌아갔으며, 질서가 회복되었다.
VI
그 지점(카르만데 맞은편)에서 진군을 계속하자, 그들은 말발굽 자국과 말똥을 자주 발견했다. 2,000마리쯤 되는 말들이 지나간 흔적 같았다. 앞서가던 이들은 풀과 그 밖에 쓸모 있는 모든 것을 불태워 버렸다. 당시 오론타스라는 페르시아인이 있었는데, 그는 혈통상 왕과 가까운 친척이었으며 전쟁에 관해서는 페르시아 최고의 전사 중 하나로 꼽혔다. 일찍이 키루스와 전쟁을 벌였다가 나중에 화해했던 그는, 이번에는 키루스를 몰락시키려는 음모를 꾸몄다. 그는 키루스에게 제안하기를, 만약 키루스가 기병 1,000명을 내준다면 앞서가며 모든 것을 불태우는 저 기병들을 처리하겠다고 했다. 그는 매복하여 그들을 베어 넘기거나, 아니면 다수를 생포하겠다고 했으며, 어쨌든 그들의 공격과 방화를 멈추게 하고 그들이 키루스의 군대를 발견하여 왕에게 그 진격을 보고할 기회조차 얻지 못하게 만들겠다고 장담했다. 키루스에게는 그 제안이 그럴듯하게 들렸기에, 오론타스에게 각 장군 부대에서 분견대를 차출해 떠나도록 허락했다. 기병들을 손에 넣었다고 생각한 그는 왕에게 편지를 써서, 곧 자신이 데려올 수 있는 만큼의 기병을 이끌고 합류할 테니 왕실 기병대에게 자신을 친구로 맞아들이라고 지시해 달라고 청했다. 그 편지에는 또한 과거의 우정과 충성에 대한 상기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는 이 서신을 믿을 만한 전령이라고 생각한 이의 손에 들려 보냈으나, 전령은 그것을 받아 키루스에게 가져다주었다. 키루스가 편지를 읽고 오론타스를 체포했다. 그러고는 키루스가 자신의 천막으로 개인 수행원 중 가장 고귀한 페르시아인 7명을 소환하고, 헬라스인 장군들에게는 중무장 보병 부대를 이끌고 오라고 명령했다. 이 부대는 그의 천막 주위에 배치되었다. 장군들은 명령대로 약 3,000명의 중무장 보병을 데리고 왔다. 클레아르코스 또한 군법회의를 돕기 위해 안으로 초대받았는데, 이는 키루스뿐만 아니라 다른 궁정 인사들의 의견으로도 그가 다른 장군들 사이에서 차지하는 지위에 합당한 예우였다. 재판이 끝난 뒤 그가 밖으로 나와(재판 내용에 대해서는 사실 비밀이 없었다) 친구들에게 그 상황을 전했다. 그가 전하기를, 키루스는 다음과 같은 말로 심문을 시작했다고 한다. "친구 여러분, 그대들과 상의하여 신과 사람 앞에서 오론타스라는 이 자에 대해 내가 행해야 할 정당한 조치를 내리고자 이 자리에 불렀소. 이 죄수는 처음에 내 아버지가 나에게 나의 충성스러운 신하로 삼으라고 보낸 자였소. 그다음 그는 스스로 말했듯이 내 형의 명령에 따라 사르디스의 아크로폴리스를 점거하고 나와 전쟁을 벌였소. 나는 전쟁으로 전쟁을 맞대어 그가 나와의 전쟁을 그만두는 것이 더 현명하다고 생각하게 만들었소. 그 후 우리는 악수하며 엄숙하게 서약을 교환했소." 여기서 키루스는 오론타스 쪽으로 몸을 돌려 직접 그에게 물었다. "그 후, 내가 그대에게 잘못한 것이 있는가?" "없습니다." 오론타스가 답했다. 다시 다른 질문이 이어졌다. "그러면 나중에, 그대도 인정하듯이 내게 어떤 해도 입지 않았으면서 그대는 뮈시아인들에게로 반란을 일으켜 내가 할 수 있는 한 내 영토를 침해했는가?" "그랬습니다." 그가 답했다. "그러고 나서 다시 자신의 한계를 깨닫고는 아르테미스 제단으로 도망쳐 회개한다고 외쳤는가? 그래서 그대가 나의 감정에 호소하여 우리가 두 번째로 악수하며 엄숙한 서약을 교환했는가? 이것이 사실인가?" 오론타스는 다시 동의했다. "그렇다면 그대는 내게 어떤 해를 입었기에, 이제 세 번째로 나를 향한 반역 음모를 꾸미다 발각된 것인가?"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가 대답했다. 그러자 키루스가 한 가지 질문을 더 던졌다. "하지만 그대가 다시 내 형에게 적대하고 나에게는 충실한 친구가 될 날이 오지 않겠는가?" 오론타스가 대답했다. "설령 제가 그런다고 해도, 키루스여, 당신은 결코 저를 믿지 못할 것입니다."
이 시점에서 키루스는 참석자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지금까지 이 죄수가 해온 행동과 지금 이 자가 내뱉은 말은 이러했소. 이제 그대들에게, 특히 클레아르코스 그대부터 의견을 밝히길 청하오. 어떻게 생각하시오?" 클레아르코스가 답했다. "내 조언은 이 자를 가능한 한 빨리 제거하여, 우리가 그를 감시해야 하는 번거로움을 덜고 진심 어린 우정을 보여준 이들에게 보답할 여유를 더 갖자는 것이오." 그가 우리에게 전하기를, "나머지 궁정 인사들도 이 의견에 동조했다." 그 후 키루스의 명에 따라 오론타스의 친족을 포함한 참석자 전원이 차례로 그의 허리띠를 잡았는데, 이는 곧 "그를 죽게 하라"는 뜻이었다. 그러고 나서 임명된 자들이 그를 끌고 나갔는데, 예전에 그에게 절을 올리던 자들은 그가 죽음을 맞이하러 끌려간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 순간마저 그 앞에 고개를 숙이는 것을 멈출 수 없었다.
그들이 그를 키루스의 가장 신뢰받는 지팡이 관리인 아르타파테스의 천막으로 데려간 뒤로는, 다시는 아무도 그를 살아서나 죽어서나 본 사람이 없었다. 아무도 그의 죽음이 어떤 방식이었는지 확실히 말할 수 없었으며, 사람마다 이런저런 추측만 내놓을 뿐이었다. 당시에도, 그 이후에도 그의 무덤을 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VII
이곳에서 키루스는 바빌로니아를 통과하는 3개 구간, 12파라상가를 행군했다. 3일째 되던 날 밤중 무렵, 키루스는 왕이 다음 날 군대를 이끌고 나타나 전투를 벌일 것으로 예상하고 평원에서 헬라스인들과 아시아인들의 사열을 실시했다. 그는 클레아르코스에게 우익 지휘를, 테살리아인 메논에게 좌익 지휘를 명령했고, 자신은 직접 병력을 배치했다. 사열이 끝난 뒤 동틀 무렵, 대왕의 진영에서 탈영병들이 도착하여 키루스에게 왕실 군대에 관한 정보를 가져왔다. 그러자 키루스는 헬라스인 장군들과 대장들을 소집하여 전투 계획을 세우기 위한 군사 회의를 열었다. 그는 이 기회를 빌려 참석자들에게 다음과 같은 칭찬과 격려의 말을 건넸다. "헬라스의 용사들이여, 내가 그대들을 아군으로 앞세운 것은 내 전투를 치를 이방인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그대들이 수많은 이방인들보다 더 훌륭하고 강하다고 믿기 때문이오. 그것이 내가 그대들을 택한 이유요. 그러니 그대들이 가진, 그리고 내가 부러워하는 그 자유에 합당한 사람들이라는 것을 증명해 보이시오. 자유란, 그대들이 확실히 알아두어야 할 것은, 내가 가진 다른 모든 재산을 수십 배로 불린 것과 맞바꾸어도 선택할 만큼 귀중한 것이오. 하지만 그대들이 어떤 투쟁 속으로 들어가는지 알려주고 싶소. 이 사실을 아는 사람에게 그 성격을 배우도록 하시오. 적들의 수는 많고 그들은 큰 소음을 내며 몰려올 것이오. 하지만 이 두 가지를 견뎌낼 수 있다면, 이 땅에 사는 자들이 얼마나 한심한 무리인지 알게 될 것이라 생각하니 도리어 부끄러울 지경이오. 하지만 그대들은 남자들이니, 남자답게 용감해야 할 것이오. 이것은 약속이오. 만약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은 자가 있다면, 고향에 있는 친구들이 부러워할 정도로 무사히 돌려보내 주겠소. 하지만 나는 내 제안을 받아들여 고향에 두고 온 것들 대신 이곳에서 내가 줄 보상을 선택할 이들이 많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소."
그 자리에 함께 있던 사모스 출신의 망명객이자 키루스의 충직한 친구인 가울리테스가 외쳤다. "키루스님, 사람들은 당신이 지금 절박한 위기에 처해 있기 때문에 큰 약속을 남발할 수 있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일이 잘 풀린다고 해도 과연 기억이나 하겠냐는 것이죠. 그들은 고개를 저으며, 설령 기억한다 한들 당신이 약속을 모두 이행할 수 있겠느냐며 의심합니다." 이 말을 듣고 키루스가 대답했다. "제군들, 잊지 마시오. 우리 아버지의 제국은 남쪽으로는 더위 때문에 사람이 살 수 없는 곳까지, 북쪽으로는 추위 때문에 거주할 수 없는 곳까지 뻗어 있소. 그 사이의 모든 공간은 내 형의 친구들이 다스리는 속주들로 채워져 있소. 따라서 우리가 승리한다면 그들의 자리를 우리 친구들에게 내주는 것 또한 우리 몫이 될 것이오. 사실 내가 걱정하는 것은 친구들에게 줄 것이 부족할까 함이 아니라, 내 것을 나누어 줄 친구들이 부족할까 함이오. 그러니 그대들 헬라스인들 각자에게도 금관을 하사하겠소."
이 말을 들은 그들은 다시금 그 어느 때보다 기세가 등등해졌고, 밖에서 기다리는 동료들에게 이 기쁜 소식을 전했다. 장군들과 다른 헬라스인들도 키루스를 찾아와 승리하면 무엇을 얻게 될지 묻기를 원했고, 키루스는 모두의 기대를 충족시켜 주고 그들을 돌려보냈다. 그와 이야기를 나눈 모든 이들은 그에게 직접 전투에 나서지 말고 병사들 뒤에 위치하라고 조언하고 충고했는데, 이때 클레아르코스가 그에게 물었다. "키루스님, 정말로 당신의 형이 당신과 전투를 벌일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키루스가 대답했다. "그가 다리우스와 파리사티스의 아들이자 내 형이라면, 전투 없이 승리를 거둘 수는 없을 것이오. 이 점은 확신해도 좋소."
이 시점에 전투를 위해 최종적으로 무장한 병력은 다음과 같았다. 헬라스인은 중무장 보병 1만 400명과 경무장 보병 2,500명이었고, 키루스와 함께한 이방인 병력은 총 10만 명에 달했다. 그는 낫 전차도 약 20대 보유하고 있었다. 적군의 규모는 120만 명으로 보고되었으며 낫 전차 200대와 아르타게르세스가 지휘하는 기병 6,000명이 별도로 있었다. 이들은 왕의 친위대 선봉을 구성했다. 왕실 군대는 4명의 장군 또는 야전 사령관이 각각 30만 명을 지휘하는 체제로 편성되었다. 그들의 이름은 아브로코마스, 티사페르네스, 고브리아스, 아르바케스였다. (하지만 아브로코마스가 페니키아에서 오던 중 전투에 5일 늦게 도착했기 때문에 이 총병력 중 90만 명 이하만이 낫 전차 150대와 함께 전투에 참여했다.) 이는 전투 전 왕의 군대에서 키루스에게 귀순한 탈영병들이 전한 정보였으며, 전투 후 생포된 적군 병사들에 의해 사실로 확인되었다.
이곳에서 키루스는 헬라스군과 이방인군 전 병력을 전투 대형으로 편성해 1개 구간, 3파라상가를 진군했다. 그는 왕이 당일에 전투를 벌일 것이라 예상했는데, 행군 도중 폭 30피트, 깊이 18피트의 깊게 파인 참호에 도달했기 때문이었다. 이 참호는 평원을 가로질러 내륙으로 12파라상가 거리만큼 떨어져 있는 메디아의 성벽까지 이어져 있었다. (이곳에는 티그리스 강에서 흘러나오는 운하들이 있는데, 운하는 모두 4개로 각각 폭이 100피트이며 매우 깊어 곡물을 실은 배들이 오가고 있었다. 운하들은 유프라테스 강으로 합류하며 서로 1파라상가 간격으로 떨어져 있고 다리가 놓여 있었다.)
유프라테스 강과 참호 사이에는 폭이 20피트에 불과한 좁은 통로가 있었다. 참호 자체는 대왕이 키루스의 접근 소식을 듣고 방어선으로 삼기 위해 구축해 둔 것이었다. 그 좁은 통로를 통해 키루스와 그의 군대가 통과했고, 참호 안쪽으로 안전하게 들어설 수 있었다. 그날은 왕과 전투를 벌이지 않았으나, 후퇴하는 기병과 보병의 흔적이 수없이 남아 있었다. 키루스는 이곳에서 앙브라키아 출신의 점술가 실라누스를 불러 3,000다릭을 하사했다. 11일 전 제사를 지낼 때 그가 왕이 10일 이내에는 싸우지 않을 것이라고 예언했고, 키루스가 이렇게 대답했기 때문이었다. "좋소. 만약 그가 그 기간 안에 싸우지 않는다면, 그는 영영 싸우지 않을 것이오. 그리고 당신의 예언이 맞으면 10탈렌트를 주겠소." 10일이 지났으므로 그는 약속한 금액을 건넨 것이다.
하지만 왕이 참호에서 키루스 군대의 통과를 막지 못했기 때문에, 키루스 자신과 나머지 병사들은 그가 전투를 포기했다고 결론지었고, 그래서 다음 날 키루스는 이전보다 경계를 덜하며 진군했다. 3일째 되는 날 그는 마차에 앉아 앞쪽에 소규모 부대만을 배치한 채 행군을 이끌었다. 대다수의 군대는 무질서하게 이동하고 있었는데, 병사들은 중무장 무기들을 수레나 짐승 등에 싣고 가고 있었다.
VIII
시장은 이미 파할 때가 되었고 군대가 숙영지로 삼을 곳에도 거의 다다랐을 때, 키루스의 개인 참모 중 믿음직한 페르시아인 파테기아스가 땀에 흠뻑 젖은 말을 타고 전속력으로 달려왔다. 그는 만나는 사람마다 헬라스어와 페르시아어로 숨 가쁘게 소리쳤다. "왕이 대군을 이끌고 전투 준비를 마친 채 다가오고 있소." 그러자 현장은 극심한 혼란에 빠졌다. 헬라스인들을 비롯한 모두는 당장이라도 공격이 들이닥칠까 봐, 그리고 미처 대형을 갖추기도 전에 공격받을까 봐 전전긍긍했다. 키루스는 마차에서 뛰어내려 흉갑을 입고는 군마에 올라타 투창을 굳게 쥐고, 나머지 병사들에게도 즉시 무장하고 각자의 부대 대형으로 정렬하라고 명령을 내렸다.
명령은 즉각 이행되었고 대열이 갖추어졌다. 클레아르코스는 유프라테스 강을 등지고 우익을 맡았고, 그 옆으로 프로크세노스가, 그다음으로 나머지 장군들이 섰으며, 메논은 자신의 병사들을 이끌고 헬라스군의 좌익을 맡았다. 아시아인 병력 중에서는 1,000명의 파플라고니아 기병대가 우익의 클레아르코스 곁에 배치되었고, 그들과 함께 헬라스 경무장 보병들도 섰다. 좌익에는 키루스의 부사령관 아리아이오스와 나머지 이방인 병력들이 위치했다. 키루스는 키루스처럼 흉갑과 가죽 갑옷, 투구를 모두 갖춘 약 600명의 기병 친위대와 함께 있었지만, 키루스는 달랐다. 그는 투구를 쓰지 않은 채 전투에 나섰다. 키루스와 함께한 모든 말 역시 이마 가리개와 가슴 가리개를 갖추고 있었고, 기병들은 짧은 헬라스식 검을 휴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