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요, 믿지 않습니다." 스메르댜코프가 속삭였다.
"그럼 왜 돌려주는 거지?"
"그만두시죠…… 아무것도 아닙니다!" 스메르댜코프가 다시 손을 내저었다. "당신이 그때 '모든 것이 허용된다'고 직접 말해놓고, 이제 와서 왜 그렇게 불안해하십니까? 스스로 자백하러 가겠다고까지 하시고…… 하지만 그런 일은 없을 겁니다! 당신은 자백하러 가지 않을 거예요!" 스메르댜코프가 다시 단호하고 확신에 찬 어조로 결론지었다.
"두고 봐!" 이반이 말했다.
"그럴 리가 없습니다. 당신은 아주 똑똑하니까요. 돈을 좋아하시는 것도 알고, 아주 오만하시니 명예도 좋아하시지요. 여성의 매력을 지나치게 좋아하시고, 무엇보다 평온하고 안락한 삶을 살면서 누구에게도 고개 숙이지 않는 것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시지 않습니까. 법정에서 그런 망신을 당하며 삶을 영원히 망치고 싶지는 않으실 겁니다. 당신은 표도르 파블로비치를 가장 많이 닮으셨어요. 모든 자식 중에서 그분을 가장 많이 닮았고, 영혼까지도 그분과 똑같지요."
"너는 멍청하지 않구나." 이반이 충격을 받은 듯 말했다. 얼굴에 핏기가 확 쏠렸다. "나는 전엔 네가 멍청한 줄 알았다. 이제 보니 진지하구나!" 그는 스메르댜코프를 갑자기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보며 말했다.
"당신의 오만함 때문에 제가 멍청하다고 생각하신 겁니다. 이 돈을 받으십시오."
이반은 세 다발의 지폐를 모두 받아 아무것도 씌우지 않은 채 주머니에 쑤셔 넣었다.
"내일 법정에서 이것들을 보여주겠다." 그가 말했다.
"그곳에서 아무도 당신 말을 믿지 않을 겁니다. 다행히 당신에게도 돈이 충분히 많으니, 상자에서 꺼내 가져왔다고 할 테니까요."
이반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시 말하지만, 내가 너를 죽이지 않은 건 내일 내게 네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명심해라, 잊지 마라!"
"그럼 죽이시든가요. 당장 죽이십시오." 스메르댜코프가 이반을 이상한 눈빛으로 바라보며 갑자기 기묘하게 말했다. "그것도 못 하시겠지요." 그가 쓰게 웃으며 덧붙였다. "아무것도 못 하실 겁니다, 예전의 그 용감한 분이!"
"내일까지다!" 이반이 소리치고는 걸어 나갔다.
"잠깐만요…… 다시 한번 보여주세요."
이반은 지폐를 꺼내 보여주었다. 스메르댜코프는 10초 정도 그것들을 쳐다보았다.
"그럼, 가보십시오." 그가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이반 표도로비치!" 그가 멀어지는 이반의 뒤를 향해 갑자기 다시 불렀다.
"왜 또 뭐지?" 이반이 걷던 도중 돌아보며 물었다.
"안녕히 가십시오!"
"내일까지다!" 이반이 다시 외치고는 오두막을 나갔다.
눈보라는 여전히 계속되었다. 그는 처음 몇 걸음을 힘차게 내디뎠으나, 갑자기 비틀거리는 듯했다. '이건 신체적인 문제야.' 그는 쓴웃음을 지으며 생각했다. 어느덧 마음속에 일종의 기쁨이 차오르는 것 같았다. 그는 자신 안에서 무한한 강인함이 느껴졌다. 그동안 그를 그토록 괴롭혔던 갈등도 끝이었다! 결심은 섰고, '이제 바뀌지 않을 거야.' 그는 행복하게 생각했다. 그 순간 그는 무언가에 걸려 넘어질 뻔했다. 멈춰 서서 살펴보니, 발치에 쓰러져 있던 농부가 조금 전과 똑같은 장소에 의식도 없이 그대로 누워 있었다. 눈보라는 이미 그의 얼굴을 거의 다 덮어버린 상태였다. 이반은 서둘러 그를 붙잡고는 등에 업었다. 오른쪽 작은 집에서 불빛을 발견한 그는 다가가 덧문을 두드렸고, 인기척을 듣고 나온 집주인에게 세 루블을 주겠다고 약속하며 그 농부를 관할 관청까지 옮기는 것을 도와달라고 부탁했다. 집주인은 차림을 하고 밖으로 나왔다. 이반 표도로비치가 어떻게 그 목적을 달성했고, 농부를 관청에 넘겨 의사에게 바로 진찰받게 했는지, 그 과정에서 다시 한번 '비용'으로 넉넉한 돈을 쥐여주었는지 등은 구태여 상세히 설명하지 않겠다. 다만 그 일로 거의 한 시간이 걸렸다는 것만 말해두자. 그러나 이반 표도로비치는 아주 만족스러웠다. 그의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만약 내일의 결심이 이토록 확고하지 않았다면,' 그는 문득 희열을 느끼며 생각했다. '한 시간이나 지체하면서까지 그 농부를 돌보려 하지 않았을 거야. 그냥 지나치며 얼어 죽든 말든 내버려 두었겠지... 하지만 내 행동을 이렇게 냉철하게 관찰할 수 있다니.' 그는 잠시 후 한층 더 큰 희열을 느끼며 생각했다. '그런데 그들은 저기서 내가 미쳐가고 있다고 결론을 내렸단 말이지!' 집에 도착했을 때, 그는 문득 갑자기 떠오른 의문 때문에 멈춰 섰다. '지금 당장 검사에게 가서 모든 걸 밝혀야 하지 않을까?' 그는 다시 집으로 발길을 돌리며 결론을 내렸다. '내일 한꺼번에 다 처리하자!' 그는 혼잣말로 중얼거렸는데, 이상하게도 그의 기쁨과 자기만족은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다. 방에 들어섰을 때, 마치 어떤 고통스럽고 혐오스러운 기억, 아니 기억이라기보다는 무언가에 대한 상기(想起)가 지금 이 방에, 바로 이 순간에, 그리고 예전에도 그랬듯이 도사리고 있는 것 같아 얼음장 같은 무언가가 심장을 찌르는 듯했다. 그는 피로에 지쳐 소파에 주저앉았다. 노파가 삼로바를 가져와 주었고 그는 차를 우렸지만, 입도 대지 않은 채 노파를 내일 아침까지 내보냈다. 그는 소파에 앉아 현기증을 느꼈다. 몸이 아프고 무력감이 들었다. 잠이 들려다가도 불안한 마음에 일어나 방 안을 서성거리며 잠을 쫓아내려 했다. 순간순간 자신이 헛소리를 하고 있는 것만 같은 환각에 빠져들었다.하지만 그를 가장 괴롭힌 것은 병이 아니었다. 그는 다시 자리에 앉아 무엇인가를 찾는 듯 이따금 주위를 둘러보기 시작했다. 그런 일이 몇 번이나 반복되었다. 마침내 그의 시선이 한곳에 고정되었다. 이반은 쓴웃음을 지었지만, 분노로 인해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그는 양손으로 머리를 단단히 받친 채 오랫동안 그 자리에 앉아 있으면서도, 시선은 여전히 아까 그 지점, 즉 맞은편 벽에 놓인 소파를 향해 삐딱하게 고정되어 있었다. 그곳에 있는 무언가, 어떤 물건이 분명히 그를 짜증 나게 하고, 불안하게 만들며, 괴롭히고 있었다.
IX. 악마. 이반 표도로비치의 악몽
나는 의사가 아니지만, 이반 표도로비치의 병세에 관해 독자에게 무언가라도 꼭 설명해야 할 순간이 왔음을 느낀다.앞서 말해두자면, 그는 오늘 저녁, 오랫동안 쇠약해져 있으면서도 병마에 끈질기게 저항해 온 그의 육체를 마침내 완전히 장악한 알코올성 섬망(흰 열병)의 문턱에 서 있었다.의학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없지만, 짐작건대 그는 아마도 자신의 엄청난 의지력으로 한동안 병을 떨쳐내고, 당연히 이를 완전히 극복하길 꿈꾸며 지연시켰을지도 모른다.그는 자신이 아프다는 것을 알았지만, 지금 이 시기에, 즉 자신의 인생에서 결정적인 순간들이 다가오는 이때 아픈 채로 있고 싶지 않았기에 혐오감을 느꼈다. 지금은 정신을 바짝 차리고 대담하고 단호하게 자신의 할 말을 하며, 스스로 '자기 자신 앞에서 자신을 변호'해야 할 때였기 때문이다.어쨌든 그는 전에 내가 언급했던 카테리나 이바노브나의 어떤 변덕 때문에 모스크바에서 초빙된 새로운 의사를 한 번 찾아간 적이 있었다.의사는 진찰을 마친 후 그의 뇌에 이상이 있는 것 같다고 진단했으며, 그가 혐오감을 느끼면서도 털어놓은 어떤 고백에 대해서도 조금도 놀라지 않았다."당신의 상태에서는 환각이 충분히 나타날 수 있습니다." 의사가 말했다. "확인이 필요하긴 하겠지만요. 아무튼 지체하지 말고 당장 진지하게 치료를 시작해야 합니다. 그러지 않으면 위험해질 수 있어요."하지만 이반 표도로비치는 그곳에서 나오자마자 의사의 현명한 조언을 따르지 않았고 치료받는 것도 소홀히 했다. '그래도 지금은 걸어 다니고 힘도 있으니까. 쓰러지면 그때는 다른 문제지. 그때는 누가 고치든 알아서 하라지.' 그는 손을 내저으며 그렇게 결심했다.아무튼 그는 지금 자신이 헛소리를 하고 있다는 것을 거의 의식하면서도 앉아 있었고, 앞서 말했듯이 맞은편 벽 소파에 있는 어떤 물체를 집요하게 응시하고 있었다.그곳에는 갑자기 어떤 사람이 앉아 있었는데, 이반 표도로비치가 스메르댜코프에게서 돌아와 방에 들어왔을 때만 해도 없었으니 도대체 어떻게 들어온 것인지 알 길이 없었다.그는 어떤 신사, 아니 좀 더 정확히 말하면 특정 부류의 러시아인 젠틀맨이었다. 나이는 젊지 않아 프랑스인들이 말하는 '50세를 앞둔' 정도였고, 여전히 숱이 많고 긴 어두운 머리카락에는 약간의 흰머리가 섞여 있었으며, 턱수염은 쐐기 모양으로 깎고 있었다.그는 갈색 재킷을 입고 있었는데, 분명 일류 양복점에서 맞춘 듯했지만 이미 낡아 있었다. 대략 3년 전에 만든 것으로 보였고 유행도 완전히 지나서, 부유한 상류층 사람들은 이미 2년 전부터 아무도 입지 않는 그런 옷이었다.속옷과 스카프 모양의 긴 넥타이 차림은 여느 멋쟁이 신사들과 다를 바 없었지만, 가까이서 들여다보면 속옷은 좀 더러웠고 넓은 스카프는 아주 닳아 있었다. 손님의 체크무늬 바지는 훌륭하게 맞았으나, 지금은 유행이 지난 너무 밝고 좁은 스타일이었고, 계절에 맞지 않는 부드러운 흰 솜털 모자도 쓰고 있었다. 한마디로 주머니 사정은 몹시 빈약하면서도 겉모습만은 멀쩡해 보이려는 차림새였다. 그는 농노제 시대에 한창 잘나가던 한량 지주 출신인 듯했다. 분명 사교계도 알고 괜찮은 사회도 경험했으며, 한때는 인맥도 있었고 지금도 어쩌면 그것을 유지하고 있는 듯했으나, 젊은 시절 방탕한 생활과 최근의 농노제 폐지 이후 가난해지면서 서서히 점잖은 식객 노릇을 하게 된 모양이었다. 그는 좋은 옛 친구들을 전전하며 머무는데, 그들은 그의 온순하고 싹싹한 성격 덕분에, 그리고 어쨌든 비록 소박한 자리일망정 누구와 함께 식탁에 앉혀도 괜찮을 정도의 예의 바른 사람이기에 그를 받아주는 것이었다. 그런 식객이자 싹싹한 성격의 신사들은 이야기를 잘 풀어내고 카드 게임도 할 줄 알지만, 부탁 같은 것은 딱 질색하는 이들로, 보통은 독신이거나 홀아비였다. 아이가 있을지도 모르지만 그들은 항상 멀리 떨어진 이모네 집에서 자랐고, 이 신사는 그런 친척 관계가 조금 부끄러운지 사교 모임에서는 거의 언급하지 않았다. 아이들과는 서서히 멀어져 완전히 남남이 되고, 가끔 명명축일이나 성탄절에 아이들에게서 축하 편지를 받으면 어쩌다 한 번 답장을 보내는 정도였다. 불청객의 인상은 선량하기보다는 상황에 따라 언제든 친절한 표정을 지을 준비가 된, 싹싹한 모습이었다. 시계는 없었지만 검은 끈에 매달린 거북 등껍질로 만든 로르네트(손잡이 달린 안경)가 있었다. 오른손 중지에는 값싼 오팔이 박힌 육중한 금반지가 빛나고 있었다. 이반 표도로비치는 화가 난 듯 침묵을 지키며 대화를 시작하려 하지 않았다. 손님은 마치 위층의 자기 방에서 내려와 차를 마시며 주인과 어울리려는 식객처럼 얌전히 앉아 기다렸는데, 주인은 무엇인가 골똘히 생각하며 찌푸리고 있었기 때문에 묵묵히 있었지만, 주인이 말을 걸기만 하면 언제든 친절하게 대화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러다 문득 그의 얼굴에 어떤 갑작스러운 근심이 스쳤다.
"들어봐." 그가 이반 표도로비치에게 말을 꺼냈다. "미안하지만, 이것만 상기시켜 주려고. 자네, 카테리나 이바노브나에 대해 알아보려고 스메르댜코프에게 갔던 건데, 아무것도 알아내지 못한 채로 나왔지? 틀림없이 잊어버린 거야……."
"아, 맞다!" 이반의 입에서 갑자기 탄성이 터져 나왔고, 그의 얼굴은 근심으로 어두워졌다. "그래, 잊었었군…… 뭐, 이제 상관없어. 전부 내일까지지." 그는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그리고 너," 그가 손님을 향해 짜증스럽게 말했다. "그건 내가 지금 막 떠올렸어야 했던 거야. 바로 그 점 때문에 고민하느라 괴로웠으니까! 네가 튀어나왔다고 해서 내가 네 말을 믿고 네가 알려준 거라고 생각할 줄 아나 본데, 내가 스스로 떠올린 거야!"
"믿지 마." 신사가 상냥하게 웃으며 말했다. "강요된 믿음이란 게 무슨 소용이 있겠어? 게다가 믿음에는 어떤 증거도, 특히 물질적인 증거는 도움이 안 되지. 토마는 부활한 그리스도를 봐서 믿은 게 아니라, 그전부터 이미 믿고 싶어 했기 때문에 믿은 거야. 예를 들어 심령술사들…… 난 그들이 정말 좋아. 상상해 봐, 그자들은 저세상 악마들이 뿔을 보여주니까 신앙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거든. '말하자면, 저세상이 있다는 물질적인 증거가 되는 셈이지.' 저세상과 물질적 증거라니, 맙소사! 그리고 설령 악마가 증명된다 해도, 신까지 증명되는 건지 아직 알 수 없잖아? 나는 이상주의자 협회에 가입해서 야당 노릇을 할 거야. '나는 유물론자가 아니라 리얼리스트다, 헤헤!'"
"들어." 이반 표도로비치가 갑자기 식탁에서 일어났다. "지금 나는 분명 헛소리를 하고 있어…… 분명히 헛소리를 하는 중이야. 마음대로 떠들어 봐, 난 상관없어! 지난번처럼 나를 발광하게 만들 순 없을 거다. 다만 왠지 부끄러울 뿐이야…… 방 안을 좀 걸어야겠어. 가끔은 네가 보이지도 않고 목소리도 안 들리지만, 지난번처럼 네가 헛소리하는 건 항상 알아채. 그건 네가 아니라 바로 나, 내가 스스로 말하는 거니까! 지난번에 내가 꿈을 꾼 건지 아니면 실제로 널 본 건지는 모르겠지만. 이제 수건을 찬물에 적셔 머리에 얹을 테니, 아마 넌 증발해 버릴 거다."
이반 표도로비치는 구석으로 가서 수건을 집어 들고 말한 대로 실행한 뒤, 젖은 수건을 머리에 얹고 방 안을 왔다 갔다 하기 시작했다.
"우리 사이에 바로 말을 놓게 된 점이 마음에 드는군." 손님이 말을 꺼냈다.
"바보 같으니." 이반이 웃으며 말했다. "내가 너한테 존댓말이라도 할 줄 알았나? 난 지금 기분이 좋아. 단지 관자놀이가 아플 뿐…… 정수리도 말이지. 제발 지난번처럼 철학적인 소리는 하지 마. 당장 사라질 게 아니라면, 뭔가 즐거운 소리나 지껄여 봐. 뒷담화라도 해. 넌 식객이니까 그런 건 잘하잖아. 이런 악몽이 다 붙어 있다니! 하지만 난 널 두렵지 않아. 내가 너를 이겨낼 거야. 정신병원 같은 데는 안 끌려가!
"참 근사하군, 식객이라니. 그래, 난 정확히 내 모습대로야. 세상에서 내가 식객이 아니면 또 뭐겠어? 그런데 자네 말을 듣고 있으니 좀 놀랍군. 맹세컨대, 자네는 지난번에 그렇게 고집했던 것과는 달리, 이제 나를 그저 자네의 환상이 아니라 정말로 실재하는 어떤 존재로 받아들이기 시작한 것 같거든……."
"단 1분도 너를 실재하는 진실로 받아들인 적 없어." 이반이 맹렬하게 외쳤다. "너는 거짓이고, 내 병이며, 환영일 뿐이야. 나는 단지 너를 어떻게 없애야 할지 모를 뿐이고, 한동안 고통을 겪어야 한다는 걸 알 뿐이지. 너는 내 환각이야. 너는 나 자신, 내 한쪽 면을 구현한 것에 불과해…… 내 생각과 감정 중 가장 추악하고 어리석은 부분 말이야. 그런 면에서는, 내가 너와 씨름할 시간만 있다면 너는 내게 흥미로운 존재가 될 수도 있었을 텐데……."
"잠깐, 잠깐만. 내가 증명해 보이지. 아까 가로등 아래에서 자네가 알료사에게 덤벼들며 이렇게 소리쳤잖아. '너 그 사람한테 들었지! 왜 그가 나한테 온다는 걸 안 거야?' 그건 자네가 나를 떠올렸다는 증거야. 결국 그 짧은 순간, 자네는 내가 정말로 존재한다고 믿었던 거지, 믿었던 거라고." 신사가 부드럽게 웃음을 터뜨렸다.
"그래, 그건 본성적인 나약함이었을 뿐이야…… 하지만 너를 믿을 수는 없었어. 지난번에 내가 잠을 잤는지 깨어 있었는지도 모르겠어. 아마 그때도 현실이 아니라 꿈속에서 널 봤을지도 모르지……."
"그런데 아까 왜 알료사에게 그렇게 매몰차게 굴었어? 그는 착한 친구인데. 나는 그에게 조시마 장로님에 대한 죄책감이 있거든."
"알료사에 대해선 입 다물어! 네까짓 게 감히!" 이반이 다시 웃음을 터뜨렸다.
"욕을 하면서도 웃고 있군. 좋은 징조야. 그런데 자네, 오늘은 지난번보다 나한테 훨씬 친절하군. 이유를 알겠어. 그 위대한 결심 때문이지……."
"결심에 대해선 닥쳐!" 이반이 흉포하게 외쳤다.
"알겠어, 알겠어. 고귀하고 아름다운 일이지. 자네는 내일 형을 변호하러 가고 스스로를 희생하려는 거잖아…… 기사도 정신이 깃들어 있어."
"닥쳐, 걷어차 버리기 전에!"
"내심 기쁘겠군. 그렇게 되면 내 목표는 달성된 셈이니까. 걷어찬다는 건 내가 실재한다고 믿는다는 뜻이잖아. 환영은 걷어찰 수 없으니까 말이야. 농담은 접어두고, 어차피 난 상관없으니 마음대로 욕해도 좋아. 하지만 나한테만큼이라도 조금만 더 예의를 갖추는 편이 낫지 않겠어? 바보라느니 하인이라느니, 그런 말들이 다 뭐야!"
"너를 욕하는 건 바로 나 자신을 욕하는 거야!" 이반이 다시 웃음을 터뜨렸다. "너는 나야, 바로 나 자신인데 단지 얼굴만 다를 뿐이지. 너는 정확히 내가 이미 생각하고 있는 걸 말할 뿐이야…… 나에게 새로운 건 아무것도 말하지 못하잖아!"
"내가 자네와 생각이 같다면, 그건 내게 영광일 뿐이지." 신사가 우아하고 품위 있게 말했다.
"내 저질스러운 생각들만 골라가는군. 무엇보다도 멍청한 것들만. 너는 멍청하고 천박해. 정말이지 끔찍하게 멍청해. 안 돼, 널 참을 수가 없어! 대체 어떻게 해야 하지, 어떻게 해야 한단 말인가!" 이반이 이를 갈며 말했다.
"내 친구, 그래도 난 신사가 되고 싶고 남들도 나를 그렇게 대해줬으면 좋겠어." 손님이 얹혀사는 자 특유의 기질과 앞서서 굽히고 들어가는 선량한 야심의 발작에 사로잡혀 말을 꺼냈다. "난 가난하지만…… 아주 정직하다고는 말 못 하겠어. 하지만 사회에서는 보통 나를 타락한 천사라고 단정 짓곤 하지. 맹세컨대, 내가 어떻게 언젠가 천사였을 수 있는지 상상조차 안 가. 만약 그랬다 해도 너무 오래전이라 잊어버려도 죄가 안 될 거야. 이제 나는 그저 괜찮은 사람이라는 평판을 소중히 여기며, 어떻게든 그럭저럭 즐겁게 살려고 노력해. 난 진심으로 사람들을 사랑해. 오, 다들 나에 대해 너무 많은 오해를 하고 있어! 가끔 이렇게 자네들 세상으로 건너오면 내 삶은 마치 정말로 존재하는 것처럼 흘러가는데, 그게 가장 마음에 들어. 사실 나도 자네처럼 환상적인 것들에 고통받거든. 그래서 자네들의 이 지상 현실주의를 사랑하는 거야. 여기서는 모든 게 분명하고 공식과 기하학이 존재하지만, 우리 쪽은 온통 정체를 알 수 없는 방정식뿐이니까! 난 여기서 거닐며 꿈을 꿔. 꿈꾸는 걸 정말 좋아하거든. 게다가 이 땅에서는 미신도 생기게 돼. 웃지 마, 부탁이야. 내가 미신을 갖게 된다는 바로 그 점이 마음에 드는 거니까. 나는 여기서 자네들의 온갖 습관을 받아들여. 목욕탕 가는 걸 좋아하게 됐는데, 상상이나 가? 상인들이나 신부들과 함께 찜질하는 게 얼마나 좋은지 몰라. 내 꿈은 어딘가 뚱뚱하고 덩치 큰 상인 아낙네로 완전히, 돌이킬 수 없게 현신해서 그녀가 믿는 모든 것을 그대로 믿어보는 거야. 내 이상은 교회에 들어가 진심 어린 마음으로 촛불을 켜는 거지. 맹세해, 진짜야. 그러면 내 고통도 끝날 테니까. 자네들 방식대로 치료받는 것도 좋아해. 봄에 천연두가 돌았을 때 나도 보육원에 가서 예방 접종을 받았거든. 그때 얼마나 기뻤는지 자네가 알면 놀랄걸! 슬라브 형제들을 위해 10루블이나 기부했으니까! ……자네는 내 말을 듣지도 않는군. 알다시피 오늘 자네 상태가 영 안 좋아 보여." 신사가 잠시 말을 멈췄다. "자네 어제 그 의사한테 갔었지?…… 그래서 몸은 좀 어때? 의사가 뭐라고 하던가?"
"멍청하긴!" 이반이 쏘아붙였다.
"그 대신 자네는 정말 똑똑하군. 또 욕을 하는 건가? 내가 뭐 걱정돼서 그런 건 아니고 그냥 물어본 거야. 대답하기 싫으면 말아. 요즘 또 류머티즘이 도져서……."
"멍청이." 이반이 다시 되풀이했다.
"여전히 고집불통이군. 그런데 나는 작년에 그런 류머티즘을 앓아서 아직도 기억이 생생해."
"악마한테 류머티즘이 있다고?"